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합본 특별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20년 6월
평점 :
품절


 

몇 년 전 세계 영화팬들의 호평을 받으며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 있다. 이 영화는 다름 아닌 보는 내내 나의 존재를 끊임없이 의심케 만들며 지금 이 순간이 현실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수시로 손등을 꼬집어봐야만 했던 여전히 내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셉션>이다. 타인의 꿈에 들어가 생각을 훔친다는 전혀 생각하기 어려운 기발한 소재를 가지고 제작된 영화는 국내에서만 거의 600만 관객을 동원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런데 최근 이런 놀랄 말한 영화가 생각나게 만드는 책 한 권을 만났으니 그 책이 바로 오늘 리뷰하게 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상실의 시대>를 통해 한국 독자들에게도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일본 작가이다. 그의 명성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지만 사실 개인적으로 소설을 선호하지 않기에 그의 작품을 읽어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오래전 출간되었던 본서가 이번에 합본 특별판으로 재간되었고, 좋은 기회가 생겨서 책을 펼쳐드는 순간 왜 한때 한국 서점가에 '무라카미 붐'이 일었는지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본서는 의식의 중첩을 소재로 한 판타지 소설로서 느낌이나 분위기가 서두에서 이야기한 영화 인셉션의 그것과 비슷함을 느끼게 만든다. 소설은 두 가지의 제목이 하나로 합쳐진 듯한 느낌에서 볼 수 있듯이 두 개의 이야기가 한 권의 소설 속에서 각기 평행선을 그으며 투 트랙으로 진행된다. 결말을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두 개의 이야기가 마치 씨줄과 날줄로 엮여 잘 짜인 직조물의 그것과 같이 질서정연하다. 그리고 소위 시쳇말로 독자들을 '멍' 때리게 만드는 소설의 끝에서 만나게 되는 반전을 보며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학적 천재성에 나도 모르게 나지막한 감탄의 신음이 흘러나온다.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주인공은 어느 날 정체불명의 뇌 생리학 분야의 권위자인 老 박사를 만나게 되고 그를 통해 자신의 머릿속에 잠재되어 있는 2개의 의식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인간의 의식 구조가 하나의 세계를 지향하는 것이 아닌 각기 다른 세계를 향해 열려있다는 이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를 오래전 자신을 포함한 26명의 사람들이 어느 조직에 의해 선발되어 자신들의 뇌가 이용된 생체실험의 대상자였음을 듣고 알게 된다. 실험 직후 25명의 사람들은 모두 죽고, 주인공 혼자만 살아남아 인간 의식이 가진 잠재적인 능력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주인공이 가진 비범한 능력에 대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취하려고 덤벼드는 각기 다른 조직들의 위협 앞에서 주인공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음을 인지하게 되는데...

더불어 '세계의 끝'은 어느 특정한 가상의 마을이라는 공간을 상정한다. 이 마을의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존재의 완결성과 또 다른 인격을 대변하는 본인의 그림자를 잃어버린 채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가는 불사의 존재들이다. 더불어 마을에 존재하는 전설 속 동물 일각수들은 죽음을 통해 마을 사람들의 반쪽자리 의식과 꿈을 자신의 두개골 속에 간직한 채 죽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주인공은 마을에 갇혀서 일각수라는 전설 속 동물의 두개골 안에 들어있는 사람들의 꿈을 읽어내는 '꿈 읽기'라는 직업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주인공은 언젠가는 자신의 잃어버린 그림자를 되찾아서 이 불사의 공간에서 탈출하겠다는 계획을 품고 차근차근 일을 진행해나가게 되는데...

 

 

790여 페이지에 달하는 벽돌 소설책 한 권이 뿜어내는 저작의 무게감이 대단하다. 소설이라고 하면 킬링타임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장르로 생각했던 나의 오만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 책이 가진 저력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꿈과 현실을 넘나들며 생각을 훔치는 주인공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활약 앞에 열광했던 영화 인셉션에서와 같이 결코 결말을 예상할 수 없는 각기 다른 두 세상의 주인공들이 펼쳐가는 스토리는 매우 흥미롭기에 독자들로 하여금 책을 덮을 때쯤 잘 짜인 각본 한편을 읽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다른 출발선에서 시작된 이야기의 끝이 결말에서 서로 만났는가? 만나지 않았는가? 해석하기 나름이다. 실제로 이 책의 후기를 보면 책을 읽은 독자들의 의견과 해석이 분분하다. 책을 읽고 난 후까지도 독자로 하여금 논쟁의 여지를 던져주는 책이 가진 그 원초적 매력을 참으로 오랜만에 만나본다. 그렇기에 이 책에 대한 박수갈채가 책이 출간된 지 3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한 것이 아닐까?

결말의 합치점과 그 이견에 대한 이슈는 차치하고서라도 이 책에 대해 할 말은 많다. 한 명의 평범한 독자로서 책을 덮으며 내가 느낀 책에 대한 단상은 인간 의식의 중첩을 통해 작가 하루키가 지금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사고 구조와 의식 세계의 불안정함을 꼬집고 있음을 발견했다는 점이다. 머릿속에 단 하나의 생각만을 간직한 채 그것만을 위해서 달려갔던 이전 세기 사람들의 전통적 사고가 가지는 가치는 나와 가정, 기성 사회와 국가에 대한 바른 이미지가 전부다. 그러나 과학 기술이 발달하며 사람들이 가지는 생각과 사고 구조 안의 의식 또한 다양한 형태로 분화와 복잡한 변화의 과정을 거쳤다. 즉 의식의 분열은 전통적인 인간의 사고가 가지고 있었던 나와 가정, 사회와 국가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바꿔놓은 것이다. 근현대 일본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소설을 통해 교묘하게 비꼰 하루키의 혜안이 돋보이면서도 조금은 무섭다. 소설 속에서는 26명 중 1명만이 자신의 뇌 속에 2개의 각기 다른 의식의 장을 가지고 있었지만 현실 속에서는 더 많은 익명의 대중들이 이러한 다중적이고 이중적인 의식의 중첩을 갖고 이 사회를 활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머리털이 곤두선다.

 

우리를 둘러싼 삶은 부요하고 풍요로워졌지만 인간의 내면과 의식은 더없이 팍팍해진 현실을 생각할 때 어찌 보면 소설의 제목과 같이 세계의 끝은 인간 그 자체가 아닐까 생각된다.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지금 무엇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의식하지 못한 채 흐릿해진 의식의 흐름을 파리한 손으로 부여잡고 따라가는 메마르고 건조한 현대인들에게 이 소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 여름휴가에는 숨겨진 의미를 알면 등골이 서늘해지는 일본 천재 작가의 책 한 권을 통해 무더위를 날려보내는 것도 좋은 피서가 될 것 같다.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의 서평 제안을 통해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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