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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지도를 바꾼 돈의 세계사 - 화폐가 세상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미야자키 마사카츠 지음, 서수지 옮김 / 탐나는책 / 202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정부의 새로운 부동산 정책이 발표되었다. 계약 갱신청구권제, 전월세 상한제와 같이 세입자들을 위한 새로운 부동산법이라고 한다. 새로운 부동산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찬반 의견이 뜨겁고 이권 당사자들은 서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혈안이 되곤 한다. 그러면서 느끼는 것은 현대 사회에 있어서 특히 자본주의 경제 사회에서 정말 '돈'이 가지는 위상과 의미는 남다르구나라는 생각을 해보며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이러한 상념 속에 만난 책은 바로 이 돈에 관한 역사를 다룬 저작이다. 책을 받아들고 저자의 이름이 눈에 익었기에 찾아보니 오래전 읽었던 <물건으로 읽는 세계사>라는 책을 쓴 '미야자키 마사카츠' 교수였다. 이전 책을 제법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기에 본서 또한 기대감을 가지고서 펼친다.
총 크게 6장으로 나뉘어서 초반부에는 돈의 탄생과 문명과의 관계를 통해 인류 문명의 태동과 함께 돈이 어떻게 생겨났고 발전해왔는지를 흥미롭게 기술한다. 이후 대항해 시대를 통해 유럽의 각국이 신대륙을 발견하고 그로 인해 그곳에서 파생되는 각종 자원과 물품들이 어떻게 각국의 경제적인 이익을 가져오게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들이 매우 흥미롭다. 한 예로 네덜란드에서 튤립이 투기의 대상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생소하면서도 재미있다. 튤립은 원래 오스만 제국에서 들여온 이국적인 품종의 꽃이다. 그런데 이 튤립의 알뿌리가 변종을 일으키면서 독특하고 화려한 무늬의 튤립이 양산되기 시작했고, 이것을 엄청난 돈벌이의 기회로 삼은 네덜란드 상인들이 튤립의 변종 품종들을 다량으로 수입했다. 이후 튤립의 엄청난 가격 폭등으로 말미암아 너도나도 튤립을 사들이려는 붐이 일어났다고 하니 일개 밭에서 자라는 꽃송이 하나도 돈이라는 가치로서 높이 평가된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또한 우리가 먹는 수많은 음식 속에 빠지지 않고 첨가되는 설탕 또한 엄청난 금액의 경제적 부를 창출시킨 품목이었다는 사실과 그 설탕이 노예무역과 연관되었다는 이야기는 마음을 아프게 한다. 브라질과 서인도 제도에서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을 행하는 유럽의 농장주들은 유럽으로부터 유입된 전염병으로 선주민의 수가 감소함으로써 노동력을 얻지 못하자 아프리카 노예들을 사들여서 늘어나는 설탕의 수요를 충당했고, 이로 인해 그들은 막대한 부를 거머쥐게 되었다. 설탕이 돈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고, 그로 인해 노예 무역이 더욱더 활성화되었다는 사실은 돈을 통해 인간의 존엄도 손쉽게 폐기될 수 있다는 돈의 어두운 면을 쉽게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나는 경제와 관련해서는 완전히 문외한이다. 주식이나 펀드와 같은 경제 관련 이야기들은 내게는 머나먼 이국의 언어다. 경제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경제관념이 이처럼 없다. 그래서 가끔 돈의 기준은 무엇일까? 유아적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들은 바로는 금의 보유량이라고 하는데 사실 그 금이라는 것도 일종의 광물이고 사람이 직접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무슨 그렇게 큰 가치가 있을까 하는 매우 무식한 생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금본위 체제와 국제통화로서의 금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배가 고프다고 당장 금괴를 씹어먹을 수는 없지만 우리의 허기진 배를 채워줄 수 있는 음식을 살 수 있도록 매개체의 역할을 해주는 종잇조각으로서의 돈에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 금이며 그것은 반드시 희소성이라는 필수 조건을 가져야 한다는 것! 반드시 희소해서 구하기 어려워야 한다. 예를 들어 아무 데나 굴러다니며 쉽게 구할 수 있는 돌맹이를 가지고 가서 음식을 사려고 한다면 그 사람을 제정신으로 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부는 이제 새로운 부동산 정책을 내놓았다. 영향력있는 한 지방자치단체장은 자신의 수하에 있는 간부급 공무원들 가운데 집이 2채 이상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거주할 집만 빼고 나머지 집들은 모두 매각하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단다. 부동산이 투기의 온상이 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여러 가지 대안들이 쏟아진다. 그러나 부동산뿐 아니라 돈 자체가 투기가 된 오랜 역사를 책을 통해 거슬러 올라가 볼 때 돈이 투자와 투기의 외줄타기를 해 온 내용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더불어 인류 문명이 탄생한 이후 현물을 직접거래하는 시기를 지나서 무엇인가 손쉽게 가볍게 다양한 물건을 거래하기 위한 화폐의 탄생 그리고 그에 얽힌 여러 가지 다양한 비화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 또한 이 책이 가진 장점이다. 당장 지금이라도 생활필수품을 장만하고 밥을 먹고 살아가야 하는 누구 하나 이 세계의 경제 구조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시대에 우리 지갑 속 돈이 지나온 역사를 읽어보는 것도 이번 여름 휴가철을 맞아 흥미로운 시간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