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랜드 - 심원의 시간 여행
로버트 맥팔레인 지음, 조은영 옮김 / 소소의책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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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교 시절 우리가 배운 과목 중 지구과학이 있다. 지학이라고 줄여서 불렀는데 이 과목 수업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지구의 구조에 관한 내용이다. 우주와 해양에 대한 내용과 더불어 땅 아래는 무엇이 있을까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은 예나 지금이나 흥미로운 주제다. 땅을 파들어가면 땅속에는 용암이 들끓는 지옥이 있다는 심연에 관한 막연한 공포는 과학이 발달한 지금의 우리에게는 종교적 두려움에 지나지 않는다. 핵이며 맨틀과 같은 지구 핵심부에 대한 지식들을 배우며 땅 아래에 관한 다수의 호기심은 상당 부분 사라졌지만 그래도 우리의 발밑에 있는 공간에 대한 그 알 수 없는 태곳적 신비에 대한 궁금증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러한 상념 속에 아주 매력적인 책 한 권을 만났다. 붉은 기운이 충만한 북 커버가 인상적인 땅속 세상에 관한 보고서 <언더랜드>는 제목 그대로 땅 아래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한 책이다. 저자인 '로버트 맥팔레인'은 자연과 경관의 신비에 대한 관심 속에 직접 찾아가서 경험하고 느낀 그대로의 사실과 감정을 지면 위에 너무나 아름답게 펼쳐가는 자연 작가이며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다. 땅 아래에는 무엇이 있을까 하는 지학 수업시간에 배운 객관적 사실을 잠시 밀어놓고 책을 접한다면 땅속 세상에 대한 낯선 풍경이 흥미로움으로 다가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는 두렵기에 버리고 싶고, 사랑하기에 지키고 싶은 것들을 언더랜드로 가져갔다. p16

저자는 책을 통해서 지하라는 공간이 지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의미로 다가오는지에 대한 나름의 철학적이고 인문학적인 사고를 제공한다. 책을 펼치고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던 키워드는 은신처, 생산지, 처리이다. 언더랜드는 인류에게 있어서 3가지의 키워드로 대변되는 공간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은 몸을 땅 아래로 내려보내며 행복했던 기억들을 함께 묻는다. 다양한 광물과 천연자원을 땅 아래로부터 추출하여 지상의 사람들에게 공급하는 것 또한 언더랜드만이 줄 수 있는 혜택이다. 동시에 지상의 사람들이 쓰고 버린 각종 쓰레기와 핵폐기물과 같은 위험천만한 부산물 또한 지상의 사람들은 언더랜드로 가져갔다.

이렇듯 언더랜드는 망자와 그에 대한 기억들이 묻히는 곳이며 동시에 지상의 사람들에게 쓸 것을 공급하고 다시 그 소비된 쓸 것의 잔재와 죽음의 물질을 회수하는 종말의 기능을 담당한다. 그렇기에 어쩌면 언더랜드는 산자와 죽은 자가 보이지 않는 유기적 관계로 엮어져 영원히 타자화할 수 없는 운명의 공간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책을 통해 이 세 가지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언더랜드의 숨겨진 의미를 밝힌다. 그러나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책의 내용이 우리가 중고교 시절 지학 시간에 배운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독자는 잘 다듬어진 교양 과학 에세이 한편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별히 우드 와이드 웹(Wood Wide Web)에 관한 이야기는 인상 깊게 각인된다. 한 조림지에서 백자작나무 묘목을 솎아내자 함께 자라던 주변의 더글러스전나무 묘목들이 시들해지다가 죽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 현상을 파헤치기 위해서 생태학자들이 숲 바닥을 벗겨내고 땅 아래를 관찰한 결과 아무 흥미로운 현상 하나를 발견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곰팡이가 토양에 퍼뜨린 가늘고 옅은 균사의 난립이었다. 거미줄과 같이 연결된 엄청난 균사들은 나무뿌리에 접점을 갖고 나무 상호 간의 영양물질을 운반해 주는 일종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재미있는 사실은 이 균근 네트워크를 통해 곰팡이들은 광합성 산물의 일부를 빼돌려 자신들의 대사에 사용함으로써 마침내 곰팡이와 나무들 간의 거대한 공생관계를 형성해갔던 것이다. 아무도 볼 수 없는 이 컴컴하고 어두운 지하 세계에 이러한 역동적인 생명의 활동이 있을 줄이야 지상의 사람들 중 그 누가 알 수 있었겠는가?

 

 

이렇듯 언더랜드는 고대와 중세를 거쳐 근현대를 지나는 지금까지도 인류에게 있어서 터부시되며 마냥 타자화하고만 싶은 제3의 공간이었지만 최근 들어 다시금 언더랜드의 가치와 숨겨진 진의가 속속 밝혀지고 있다. 좋은 것은 내어주고 모든 이들이 거부하는 부정적인 것들은 받아들이는 이 한없이 이타적인 공간이 바로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땅 아래에 있다. 책을 덮으며 이 책이 독자들에게 선사하는 스토리의 핵심은 무엇일까 고민해본다. 단지 한편의 잘 쓰인 과학 탐험기라고 보기에는 책이 가진 가치가 아깝고 아쉽다. 그 정도 수준이라면 초딩들의 Why? 책을 통해서도 적지 않게 배울 수 있는 내용들이 쌔고 쌨다.

개인적으로 느끼는 책의 감흥은 이 지구상의 모든 것들이 서로에게 인과 관계로서 영향을 주고받지 않는 것들이 없다는 사실에 대한 과학적 증명을 통해 확인됨으로부터 온다. 언더랜드는 지상의 존재들과 연결되어 있고, 지상의 존재들 또한 언더랜드와 연관되어 있지 않을 수 없다. 지상의 사람들은 죽음과 기억을 언더랜드로 가져갔고, 그것을 통해 언더랜드로부터 삶의 에너지를 환전 받았다. 그리고 가지고 올라간 생명 에너지의 네거티브한 부산물들을 다시금 언더랜드로 가져가 반환했다. 돌고도는 순환과 인과관계를 통해 언더랜드와 지상의 존재들이 유무형의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은 이 세상이 존재하는 한 계속될 수밖에 없는 법칙이다. 더불어 언더랜드가 지상의 사람들에게 주는 겸손과 겸허함의 교훈을 놓칠 수 없다. 베일에 싸여 있던 절대적 무의 공간이었던 언더랜드가 지상에 값없이 베푸는 시혜는 너무나 크고 광대하다. 자연의 은혜를 망각한 채 끊임없는 개발을 통한 파괴가 미덕이 된 세상 속에서 암흑의 언더랜드가 보여주는 겸손과 겸허의 태도는 지상의 인간들이 배워야 할 가장 큰 교훈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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