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리어 왕 - 1608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한우리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영국의 대문호 하면 당연히 '윌리엄 셰익스피어'를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그가 남긴 많은 걸작 중에서 우리는 주저함 없이 4대 비극이라 불리는 네 편의 희곡을 꼽게 되는데 본서 <리어 왕>은 햄릿, 오셀로, 맥베스와 더불어 그의 대표작 중 하나다. 초판본 커버 디자인을 그대로 살려 고풍스럽고 중후한 이미지를 부활시킨 미르북 더스토리의 이 책을 받아들고 떨리는 마음으로 책장을 편다. 저자 셰익스피어는 책을 통해서 인간 세상의 무정함과 인간의 타락한 본성에 기인한 인간 군상 추악함의 민낯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권력에 대한 말할 수 없는 탐욕은 부모와 자식 간의 천륜도 헌신짝처럼 던져버릴 수 있음을 셰익스피어는 책을 통해 당시와 지금의 독자들에게 하나의 교훈으로서 전달하는 수고를 마다않는다.

희곡 형식으로 구성된 책은 총 5막으로 구성되어 있고, 등장인물들의 대화체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한편의 연극을 관람하는 것과 같이 생생하다. 그렇기에 인물들의 감정의 곡선을 따라가며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또한 언어의 마법사답게 셰익스피어의 수려하고 지적인 문체는 위대한 고전으로서의 품격과 가치를 드러내주기에 손색이 없다. 고전이 가지는 난해함과 의미 전달의 고루함이라는 편견은 이 책을 집어 들고 읽는 순간만큼은 저 멀리 던져버려도 좋다!

 

 

세 딸을 둔 영국의 리어 왕은 자신에게 부모를 향한 사랑을 표현하는 정도에 따라 딸들에게 자신의 나라를 쪼개어서 양도하고, 자신은 권력의 뒷자리로 물러나 딸들의 봉양 속에 편안한 여생을 꿈꾼다. 큰딸 거너릴과 둘째 딸 리건은 갖은 아양과 아첨으로 아버지의 환심을 사서 많은 영토를 물려받지만 막내딸 코딜리어 만큼은 아버지를 자식 된 도리로서 사랑할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밝힘으로써 아버지의 분노를 사고, 그녀의 존재 자체를 사랑했던 프랑스왕과 결혼 후 단 한 푼의 지참금도 받지 못한 채 아버지로부터 내침을 당한다.

이후 이미 모든 영토와 권력을 이양 받은 두 딸들은 아버지의 봉양을 귀찮아하며 이빨 빠진 호랑이와 같은 아버지 리어를 괄시하며 경멸한다. 경솔하게 권력을 이양한 후 하루아침에 뒷방 늙은이 신세로 전락해버린 리어는 이제 반 정신질환자가 되어버린다. 또한 셰익스피어는 리어 왕의 비극과 더불어 또 하나의 이야기를 등장시키는데 그것은 리어 왕의 충실한 신하인 글로스터 백작과 그의 아들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비극이다.

글로스터 백작의 서자인 에드먼드는 자신의 신분적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자신의 이복형이자 아버지의 적자인 에드거가 아버지 글로스터 백작의 지위를 노리고 반역을 꾀한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려서 아버지 글로스터로 하여금 형을 제거하도록 부추긴다. 이로 인해 에드거는 아버지의 칼날을 피해 미치광이로 분하여 도망자로서 유리한다. 반면 에드먼드는 형인 에드거를 제거하고 자신이 적자의 지위를 차지하겠다는 야심을 넘어 이제는 아버지마저 제거하고 자신이 백작의 지위를 얻기 위해서 리어의 두 딸 거너릴, 리건과 반역의 손을 잡기에 이르는데...

 

 

책의 결말은 악인들의 죽음과 선인들의 죽음이 한데 어우러진 말 그대로 비극 그 자체로서 끝난다. 인간이 가진 끝없는 탐욕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낸 작품이 아닐 수 없다. 더불어 그 탐욕을 부추기는 것이 바로 인간의 어리석음임을 발견하게 된다. 세 치 혀가 놀리는 아첨에 자신의 권력을 내버림과 동시에 충직함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충신과 사랑하는 딸을 내쳐버린 리어 왕의 멍청함과 무지함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텅 빈 깡통 같은 존재인지에 대한 존재의 어리석음을 보게 된다.

음모와 술수, 거짓과 탐욕 거기에 어리석음이 더해져 피할 수 없는 가족 비극사 한편을 만들어냈다. 돈에 대한 탐욕과 쾌락으로 점철된 두 딸 거너릴과 리건 그리고 글로스터 백작의 서자인 에드먼드는 돈과 욕정이라면 영혼까지도 팔어버리는 지금의 세태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인간상이 아닐 수 없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를 죽고 죽이는 짐승들도 하지 않을법한 윤리와 인륜이 실종된 작금의 세대가 지금 우리가 숨 쉬고 살아가는 시대이기에 16세기를 살다 간 셰익스피어가 시간의 간극을 뛰어넘어 던져주는 메시지에 소름이 돋는다.

믿음과 신뢰의 실종으로 인한 끊임없는 의심,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탐욕과 욕망에 기인한 미움과 반목 급기야는 살인까지...지금의 세대를 어쩌면 이토록 정확하게 꿰뚫어 볼 수 있을까 자연스레 탄식이 흘러나온다. 그러면서 동시에 왜 셰익스피어가 셰익스피어인지에 대해 수긍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인간 본성에 대한 적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인간의 내면을 이처럼 예리하게 베어낸 작품이 또 있을까? 위대한 고전의 향기가 지적 현기증을 불러일으키는 본서와 함께 올여름밤 인간 본연의 속살을 마주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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