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지프 신화 - 부조리에 대한 시론 현대지성 클래식 66
알베르 카뮈 지음, 유기환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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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세상은 정녕 살만한 곳인가? 인류가 존재해 온 이래 인간의 삶이 살만했던 적이 과연 있었을까? 여전히 "죽겠다! 못 살겠다!"와 같은 단말마적 외침이 가득하기에 살 만큼 녹녹했던 시절을 떠올려보려 해도 딱히 생각나는 때는 없다.


이처럼 우리네 삶은 항상 팍팍했고, 모질기만 했다. 오늘도 피로에 절은 육체를 침상으로부터 들어 올려 밥벌이의 최전선으로 나아가야 하는 현대인의 형상은 귀환을 기대할 수 없는 마지막 백병전을 치르기 위해 나아가는 병사들의 암울한 모습 그 자체다.


그런데 태어났기에 살아내야 하는 인간의 보편적 운명을 어떠한 시각과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수 있음을 한 권의 책 속에서 발견한다.



<시지프 신화 / 알베르 카뮈 지음 / 현대지성 펴냄>는 전작 <이방인>에서 '뫼르소'라는 인물을 통해 부조리한 세상의 작위성을 고발했던 프랑스의 작가 '알베르 카뮈'가 펴낸 철학적 시론이다.


카뮈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시지프 이야기를 통해 세상이 담지한 부조리적 삶의 의미를 개별적 인간이 추구해야 할 삶의 양식으로 결연시키는 그만의 철학적 작업을 해나간다.


시지프는 올림포스 신들의 심기를 건드려 골짜기에 있는 거대한 바위를 어깨에 짊어지고, 산정에 올려놓아야 하는 신벌을 받는다. 갖은 고생을 하며 바위를 정상에 올려놓은 순간 바위는 다시 골짜기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시지프는 다시 골짜기로 내려가 바위를 짊어지고, 산정을 향해 비탈을 오른다.


루프와 같은 무한 반복의 무의미한 작업이 시지프에게 내려진 벌이자 삶이다. 하지만 시지프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무한 반복의 신벌을 감당함으로서 닥친 운명을 능동적으로 받아내는 진취적 인간상을 구현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카뮈의 <시지프 신화>를 재미있는 이야기책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독자는 본서를 펼치기 전 책의 주제를 이루는 '부조리'에 대한 개념 습득이 필요하다. 부조리의 사전적 의미는 이치에 맞지 않는 것, 합리적이지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카뮈가 책에서 밝혀나가는 부조리의 감정은 인간의 이성과 세계의 침묵이 충돌할 때 발생한다. 인간은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참된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끝없이 몸부림 친다.


그러나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세상은 그 의미에 대해 침묵한다. 그렇기에 인간은 오늘도 여전히 쳇바퀴 돌듯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낼 수밖에 없다.


인생이 살만한 가치가 없고 무의미하다면 정답은 자살밖에 없다고 말하지만 그것 또한 완벽한 해답이 아니다. 오히려 반복되는 시간 속 그 나름의 의미를 찾고 주어진 삶 속에서 목적과 방향을 찾아가는 것이야말로 자살보다 더 현명하다.


더불어 카뮈는 희망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사람들은 자살이 아닌 다른 출구를 찾으려 하다가 어떠한 희망을 발견하는데 그것이 바로 종교다. 카뮈의 표현을 빌리자면 종교가 말하는 내세에 대한 희망은 주어진 삶에 대한 직면을 거부케하는 일종의 회피 행위라는 것.


그렇기에 결국 인생의 의미를 찾다가 좌절하여 자살하거나 종교라는 희망으로 회피하는 것은 나약한 인간에게나 어울릴법한 일이다. 인간은 시지프와 같이 무의미하고 절망적인 순간의 반복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낼 만한 가치있는 삶을 인식하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갈 때 참다운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완성할 수 있다는 것.



인간 이성에 대한 무한 신뢰가 팽배했던 20세기 초중반에 1, 2차 세계대전이라는 거대 악을 맞닥뜨린 인류에게 세상은 부조리의 전형이다. 서로를 증오하며 어떻게 하면 상대를 가장 끔찍한 방법으로 고사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 천착했던 시대 속 카뮈라는 지성은 부조리를 직면하는 가운데 생의 의미를 재고했다.


본서는 갑갑한 현실, 끝없이 반복되며 순환되는 뫼비우스띠와 같은 일상의 현장 속 오늘의 독자에게 인생의 주체성과 삶을 능동적으로 관조할 수 있는 노하우를 전수한다. 삶은 포기하거나 회피하기에는 너무나 고귀하다.


그렇기에 삶을 포기하거나 그곳에서 도망치지 말고 오히려 굳건히 맞서라! 부조리한 세상은 어차피 답을 주지 않기에 정답을 완성해가는 것은 오로지 인간 스스로에게 던져진 숙제다.


<시지프 신화>는 세상을 원망하고, 부모와 환경을 탓하며 인생을 허비하는 세대에게 생의 참다운 의미를 숙고토록 하며 자신을 성찰하고, 내면의 견고함을 쌓도록 격려한다. 인생은 살아가야 할 이유가 포기해야 할 이유보다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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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케로 의무론 (라틴어 원전 완역본) -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현대지성 클래식 61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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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흔히 권리를 주장하기 전에 당신의 의무를 다하라고들 말한다. 의무의 사전적 의미는 무엇인가 당위적으로 해야 하는 어떠한 행위이며 삶의 정제된 태도다. 그러나 의무의 의미가 조금 다른 관점에서 해석된 저작이 있다.

<키케로 의무론 /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지음 / 현대지성 펴냄>에서 로마 공화정 말기를 살다간 위대한 철학자이며 정치가인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는 우리가 흔히 아는 작위적 강제성을 내포한 의무와는 다른 의미를 갖는 의무론을 설파한다.

본서는 총 3권으로 나뉜다. 1권에서는 도덕적 올바름에 대해 논하며 2권에서는 유익함을 말한다. 마지막 3권은 도덕적 올바름과 유익함의 상충에 관한 키케로의 논지다.

키케로는 의무를 도덕적 올바름의 관점에서 해석하는데 이는 지혜, 정의, 용기, 적절함의 네 부분으로 구성된다. 인간은 자신의 행위를 도덕적 올바름 가운데서 행할 수도 있고, 욕심과 이기적 욕망에서 비롯된 그릇됨 속에서 행할 수도 있다.



가령 통돼지 바비큐를 만들어 파는 상인이 있다고 하자! 양질의 돼지고기를 가져오는데 50만 원이 소요되고 이것을 요리하여 팔면 100만 원의 이득을 올릴 수 있다. 반면 항생제를 잔뜩 맞아 이곳저곳에 누런 고름이 낀 저품질의 돼지고기를 단돈 15만 원에 가져와서 100만 원의 이윤을 남길 수도 있다.

어차피 바비큐로 요리하면 손님들은 고기의 출처를 알 수 없다. 맛이나 빛깔 면에서도 큰 차이가 없다. 상인에게는 도덕적 올바름 속에서 양질의 고기를 갖다 팔아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의 사적 유익을 취하기 위해서 항생제에 쩔은 저품질 고기를 가져다 팔 수도 있는 선택권이 있다.

공적인 정의와 사적인 유익은 반드시 충돌하게 되어있다. <키케로 의무론>에서는 이 두 가지의 가치가 불꽃을 튀며 상충하는 모습이 보이지만 의아하게도 그것이 완전한 반목 가운데 있지 않다.

본서의 3부에서는 바로 이와 같은 가치 체계의 부딪힘을 상세하게 묘사한다. 손님을 속이고 판매를 하면 분명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반면 정직하게 장사를 한다면 남들과 동일하거나 어쩌면 남들보다 적은 수입을 올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상인의 도덕적 올바름에 기초한 의무는 정직하게 장사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분명 그에게 유익한 일이 될 수 없다.

그러나 키케로는 본서를 통해 얼핏 보면 정면으로 상충되는 도덕적 올바름과 사적인 유익함의 부침이 결코 상반되는 결과를 낳는 것이 아님을 역설한다. 위대한 철학자의 관점은 도덕적 올바름을 선택하는 것이 현실적으로는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양심을 따르고 정의를 지키기로 결정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올바른 삶이며 그것이 곧 그 사람에게는 유익함 그 자체라는 것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의무를 이해하는 가의 여부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바르게 해석하고 삶의 영역 속에서 정당하게 풀어내야 한다. 이것을 하지 못한다면 인간은 짐승보다 못한 존재다.



공화정 체제의 로마는 귀족과 평민의 끊임없는 견제와 갈등이 상존했던 시대다. 주변 도시국가들에 대한 다양한 정복 전쟁을 통해 로마는 수많은 속주를 만들어 내었고, 그 속에서 엄청난 양의 재물을 축적했으며 많은 전쟁 포로들을 노예로 삼았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는 대부분 귀족들에게 돌아갔으며 엄청난 부를 축적한 귀족들과는 달리 평민들은 상대적 빈곤 속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국가 체제 자체가 가진 모순이 당시 로마 공화정의 민낯이다. 키케로는 이러한 로마 사회의 불합리함과 부조리, 정의롭지 못한 부덕함에 대해 의무론을 통해 신랄하게 비판한다.

리더들은 어떻게든 더 가지려고 미친 듯이 몸부림친다. 자신의 사욕을 채우기 위해서 민초들의 고혈을 짠다. 도덕적 올바름에 기초한 바른 의무를 이해하지 못해서 생기는 비극이다. <키케로 의무론>이 시대적 적실성을 갖는 이유는 지금의 시대가 바로 로마 공화정의 때와 소름 끼치도록 동일하기에 그렇다.

바른 의무를 이해하는 것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것이다. 도덕적으로 올바른 행위는 분명 그것을 받아 실천하는 이의 삶에 있어서는 유익함이 맞다. 양질의 고기를 사다가 파는 행위는 도덕적 올바름에 기초한 선택이며 그것은 그에게 더 큰 금전적 유익을 보장하지 않지만 바른 인간으로서 살아가도록 인도하는 데 있어서는 확실히 유익한 삶의 태도다.

도덕적으로 올바른 삶을 추구하라! 그것이 곧 유익한 삶이다! 시대의 지성이 남긴 여운이 제법 깊은 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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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로 대학 가다 - 세계적 명문대에 진학한 남매와 제자들의 확실한 성공 비결
이미영 지음 / 학지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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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에 아이들이 없다. 학교를 마친 아이들 대부분이 학원을 가기에 그렇다. 한창 뛰어놀아야 할 시기에 기본적으로 3~4개의 학원을 소화해 내야 하는 이 시대 대한민국 아이들의 자화상이다.

옆 친구가 함께 협력할 대상이 아닌 내가 더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밀어내야 하는 경쟁자가 될 수밖에 없는 교육 구조가 지금의 대한민국을 경제 강국으로 만들었다. 땅덩어리는 작고, 천연자원은 희소한 분단된 나라가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자구책은 사람이다.

무서운 사교육비를 감당할 수 있는 소위 가진 이들의 자녀들은 사교육의 시혜로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부를 대물림한다. 반면 다수의 평범한 가정의 자녀들은 상대적 학업의 열세를 느끼며 가난을 대물림 받는 사회적 양극화의 골은 깊어만 간다.

줄 세우기 교육의 부작용이 사회 곳곳에서 곪아 터진 상처처럼 터져 나오는 가운데 새로운 대안에 대한 성찰의 목소리 또한 여기저기서 흘러나온다.

과연 대한민국 공교육 회복의 묘수는 없는가? <IB로 대학 가다 / 이미영 지음 / 학지사 펴냄>는 바로 이와 같은 물음에 대한 답으로 가득한 책이다.

IB를 말하면 여전히 많은 이들이 미국의 아이비리그 대학을 떠올린다. IB는 International Baccalaureate의 약자다. 국제 바칼로레아는 1968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설립된 비영리 교육재단에서 시작된 교육 프로그램이다.

IB 교육이 추구하는 목표는 무한 경쟁으로 옆 친구를 밟고 일어나야지만 성공하는 구조의 대한민국이 표방하는 비인간적 교육 목표와는 달리 다른 문화와 사람들을 존중하며 함께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지식과 탐구심, 배려심 많은 전인적 바른 인간상 구현이다.

이 책은 싱가포르 국제 학교에서 IB 한국어 교사로 일하고 있는 현직 교사가 IB 교육 문외한들에게 IB 교육의 장점을 소개한다. 단순히 IB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나열이 아닌 저자와 두 자녀가 함께 경험한 IB 교육의 생생한 현장 스토리를 통해 대한민국 공교육의 문제와 대안으로서의 IB 교육의 필요성을 함께 고민해 볼 수 있는 생각거리로 가득하다.



책은 먼저 저자가 싱가포르로 이민을 떠나면서부터 시작된다. 우여곡절 끝에 싱가포르에 안착한 저자의 가정이 IB를 만나게 되고, IB 국제 학교의 한국어 교사가 되면서 경험한 다양한 삶의 이야기가 진부함 없이 진솔하게 다가온다.

그러면서 그 안에는 한국의 학부모에게 낯선 IB 교육 시스템의 철학이 잔잔하게 녹아있기에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IB 교육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기에 충분하다. 더불어 IB를 통해 공부하여 세계 유수의 명문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의 수기와 그러한 자녀들을 둔 학부모들의 수기가 IB 교육이 가진 잠재력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돕는다.

IB는 초, 중, 고교의 전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서에는 초, 중, 고교 시절을 IB에서 공부한 학생들의 직접적인 경험담이 실려있다. 이는 IB 교육 시스템에 대한 막연한 오해를 불식 시켜주기에 충분하다.

더불어 IB 교육 철학과 프로그램의 개념을 소개하는 마지막 챕터를 통해 "도대체 그렇게 좋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IB 교육이 뭐야?"라는 독자의 예상 물음에 친절하게 답변한다.

교사 중심의 일방적이고 막연한 주입식과 암기식 학습법으로 대변되는 대한민국 공교육의 현실은 1%의 기득권층을 생산하기 위한 시스템이다. 나머지 99%는 대학 입학이라는 경쟁에서 도태되어 상위 1%를 위해 헌신하며 사회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지탱하는 일개미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소시민들이다.

IB가 가진 교육 철학의 매력은 이러한 불공평하고 비인간적인 사회 시스템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모든 아이들이 자기주도적 학습을 통해 비판적 사고력과 창의성을 함양하며 함께하는 동료를 진정한 친구로 여기며 공부하도록 격려한다. 이러한 IB 교육은 이미 전 세계가 인정했고, 세계 유수의 명문 대학이 IB 출신들을 격하게 환영하는 이유다.

지옥 같은 12년의 학창 시절을 맛보았기에 필자의 아이들에게 여전히 변치 않는 지옥을 맛보게 하고 싶지 않았다. <IB로 대학 가다>를 통해 IB 학교에 가게 될 아이들을 위해 선행 학습을 하게 된 시간이 너무나 소중했다.

대한민국의 모든 아이들이 서로를 죽여 그 핏값으로 성공을 보장받는 '오징어 게임'같은 교육 시스템에서 하루 속히 자유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본서를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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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 칼 - 일본 문화의 양상 현대지성 클래식 60
루스 베네딕트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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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난징 대학살, 관동 대학살, 버마 대학살, 마닐라 대학살, 종군 위안부, 강제 징용의 근현대 역사에서부터 여전히 억지 일색의 독도 영유권 주장까지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의 대표적인 역사적 과오다.

까도 까도 본심을 알 수 없는 양파 같은 나라 일본의 실체와 일본인의 민낯은 과연 무엇일까? 이러한 물음에 답한 탁월한 저작 한 권이 있다.

<국화와 칼 / 루스 베네딕트 지음 / 현대지성 펴냄>은 일본과 일본인에 관한 20세기 최고의 고전으로 꼽히는 저작이다. 일본과 일본인에 대해 가장 빠르면서도 손쉽게 파악하기를 원할 때 집어 들어야 할 책은 단연코 <국화와 칼>임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아주 오래전 접했던 저작을 좋은 기회에 새롭게 만나 새마음으로 읽었다. 일본인보다 일본인을 더 잘 알고 파악했다는 믿기지 않는 평가가 과장이 아니다.

저자인 '루스 베네딕트'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을 향해가던 1944년 미국 정부의 위촉을 받고 적국인 일본에 대한 심층 연구를 시작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국화와 칼>이다.

이 책의 놀라운 가치는 저자가 일본과 일본인의 민족성과 문화적 양상을 연구하는 데 있어 한 번도 일본 땅을 밟지 않았다는 기이한 점에 있다. 미국과 일본의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었기에 미국인인 저자가 일본을 가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상황이었다.

저자는 문화 인류학자로서 연구 대상 민족의 터전을 밟지 않고 미국에 거주하는 일본인들과의 면담, 선배 학자들의 연구 문헌, 선전 영화와 같은 대중 매체 등을 이용하여 나름의 연구 기법을 개발시켰다.



일본은 지금껏 미국이 맞붙었던 적국으로서 가장 종잡을 수 없는 기이한 민족이라고 운을 떼는 책의 첫머리부터 저자에게 일본을 연구해달라고 부탁한 미국 정부의 일본에 대한 모호함이 짙게 깔려있다.

희뿌연 안갯속에 가려진 미지의 나라, 일본은 미국인들의 이해를 벗어나는 미스터리한 존재였다. 유혈이 낭자하고 살점이 튀는 전장의 상황 속 종잡을 수 없는 일본군의 행태가 미군에게는 그 어떠한 호러 영화보다 무서웠을 것이다.

미군의 기관총이 불을 뿜어대는 총구 앞에서 '반자이' 총검 돌격을 감행하며 소위 집단 자살을 선택하는 일본군이 미군의 눈에는 어떻게 비쳤을까? 비행기를 타고 미군 함정에 돌진하는 '가미카제' 특공대 또한 달리 설명할 방법이 요원하다.

책은 이러한 정신의 공백을 의심케 만드는 당시 일본군의 사이코틱한 행위의 이면에 있는 일본 민족의 독특한 특질을 역사에 기반하여 차분하게 벗겨낸다.

책의 제목인 <국화와 칼>이 상징하는 바를 알게 될 때 독자는 일본 문화 안에 녹아있는 일본인이 가진 이중성과 모순적 행태에 대한 명징한 이해가 가능하다. 한없이 친절하고 순종적이며 충성되면서도 야비하고 잔혹하며 배신을 밥 먹듯이 하는 야만적 기질이 공존하는 일본 문화 안에 내재한 상반된 모습은 일본이 가진 독특한 민족성이다.

국화는 예술을 사랑하고 친절하며 순종적인 일반적인 일본인의 문화적 양상을 드러내는 은유인 반면 칼은 무자비하고 잔혹하며 잔인한 일본인의 또 다른 내면적 특성을 드러내는 수사다.

은혜를 입게 될 때 그것을 일종의 부채의식으로 느끼며 어떤 식으로든지 보은해야 하는 일본인의 관념은 '온'의 개념으로서 탄생했다. 원수에게 당한 굴욕은 어떻게든 되갚음해 주는 것이 삶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라는 생각은 '기리'라는 독특한 가치로서 드러난다.

그렇기에 가장 큰 천황의 온을 입은 황군의 전사들이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며 반자이 돌격을 감행할 수 있었을 것이고, 미군에게 당한 원수를 어떻게든 갚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미덕이라고 생각한 황군의 파일럿들은 꽃다운 목숨을 폭약 실은 비행기에 내맡길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국화와 칼>이 가진 저작의 가치는 타자와 타문화에 대한 상대적 존중에 기반한다. 내 민족과 나의 문화만이 탁월하다는 문화적 우월주의, 국수주의는 이 책에서 찾아볼 수 없다.

매우 논리정연하게 일본 문화와 일본인에 대해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연구한 저자의 학자적 열정과 학문적 겸손함이 진하게 묻어나는 빛나는 고전이다. 타문화권에 대한 진지한 이해가 수반되는 본서는 다른 이에 대한 사랑과 배려가 사라져가는 폭압의 시대 속 여전히 읽혀야 할 충분한 가치를 지닌 눈부신 저작임과 동시에 우리에게는 먼나라 이웃나라 일본을 면밀하게 살필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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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 -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는 마음공부 한 권으로 끝내는 인문 교양 시리즈
정보현 옮김, 미야사카 유코우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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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모든 걱정과 근심의 근원을 잘 살펴보면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는 작위적 행태로 인한 것이 많다. 어떤 일을 해야지만 하고 그것을 하지 못했을 때 느끼는 고통과 좌절감이 사람에게 불만족과 행복하지 못한 느낌을 가져다준다.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가진 생각의 기저에는 하지 못한 것과 채워지지 않은 욕망에 대한 갈망과 아쉬움, 미련이 깔려있다.


오래전부터 불가에서 작은 대장경이라고 불린 반야심경은 이러한 당위로부터 오는 고통과 괴로움에서 해방되라는 가르침을 설했다.


<반야심경 / 미야사카 유코우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 펴냄>은 한 권으로 끝내는 인문 교양 시리즈답게 반야심경이라는 대승불교의 정수가 담긴 저작이다. 개인적으로 신앙하는 종교가 다르지만 반야심경이 가진 인간에 대한 이해와 고전으로서의 가치가 탁월하기에 주저함 없이 집어 들었다.


경전 600권 분량의 가르침이 단 262자로 압축되었다고 하니 웬만한 압축파일의 그것과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본서는 크게 반야심경의 역사와 가르침의 두 단원으로 나뉘어있다.


반야심경은 부처의 말씀(진언)을 관자재보살이 설한 경전이다. 특징적인 대목은 모든 괴로움은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며 그것으로부터의 해방이 곧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임을 설파한다. 태어나서 살아가는 것도 괴로움이고, 늙어가는 것도 괴로움이다. 병을 앓는 것도 고통이며 죽음 또한 피할 수 없는 괴로움이다. 반야심경에서는 이를 네 가지 고통이라고 하여 사고(四苦)라고 표현하는데 이들은 인간이라면 모두가 겪는 근본적인 괴로움이다.


반면 살면서 겪게 되는 정신적 괴로움이 있는데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것과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야 하는 것이 괴로움이다.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야 하는 '원증회고'에는 인간 본성을 예리하게 꿰뚫은 통찰이 담겼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것도 큰 고통이지만 인간은 미워하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 것에 대한 주관적 고통이 더 큰 존재다.


반야심경이 말하는 독특한 개념 하나가 더 있다. 공(空)과 무(無)의 역학이다. 우리는 흔히 공이라고 말하면 없다고 표현한다. 공을 숫자 0의 개념과 동일하게 여기기에 우리는 전화번호를 말할 때도 영일영(010)이라고 말하기보다는 공일공(010)이라고 말하는 것에 익숙하다.


그러나 반야심경은 공과 무의 의미에 대해 엄밀히 다른 설명을 내놓는다. 공은 공간에 대한 의미다. 공은 존재의 유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담는 공간에 대한 표현이다. 반면 무는 실제로 존재의 유무를 의미하기에 무엇인가가 없다면 그것은 무가 맞다.


공은 무엇인가를 담을 공간의 존재를 말하는 것이며 무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것을 가리킨다. 그래서 공은 무엇인가 발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기에 소홀히 할 수 없고 나름의 의미가 있는 중요성을 띈다.



또한 반야심경은 자아를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서도 독특함을 드러낸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인간은 자아에 대해 집착할 때 괴로움을 피할 수 없다. 인간사의 모든 어려움은 인간이 스스로에 대해 병적으로 집착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더 많이 가져야 하고, 더 유명해져야 하며 더 예뻐져야 한다는 스스로에 대한 끝없는 집착, 언제 어디서나 내가 주인공이 되어야 하고 세상의 모든 것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망상이 인간에게 순환적 불행의 뫼비우스 띠가 된다.


작은 대장경을 덮으며 다양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요 며칠 동네에서 삶이 축제라고 외치는 명상 요가 광고를 세뇌되듯 접하며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과연 삶은 축제인가? 질문의 대답은 삶은 축제가 아니라는 개인적 결론이다.


집착과 작위성에 함몰되어 가는 현대인의 삶이 축제일까? 축제 같은 삶을 살고 싶은 염원일 뿐이다. 반야심경은 거침이 없는 삶에서 필요한 나름의 해법을 제시한다. 유독 부정어가 많이 등장하기에 부정적이고 어두운 책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가지고 있는 저작이지만 읽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부처가 설파한 참된 인간 자아의 해방과 탈출에 대한 불교의 가르침은 축제 같지 않은 삶을 축제처럼 살도록 이끄는 나름의 진언이다.


262자의 짧은 경구 속에 담긴 대승불교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저작임은 확실하다. 종교를 떠나 인문고전으로 한 번쯤 읽어본다면 적게나마 불교를 이해하고, 불교가 바라보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관점을 새롭게 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용 자체가 상당히 재미있기에 지루함 없이 읽어 내려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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