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와 칼 - 일본 문화의 양상 현대지성 클래식 60
루스 베네딕트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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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난징 대학살, 관동 대학살, 버마 대학살, 마닐라 대학살, 종군 위안부, 강제 징용의 근현대 역사에서부터 여전히 억지 일색의 독도 영유권 주장까지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의 대표적인 역사적 과오다.

까도 까도 본심을 알 수 없는 양파 같은 나라 일본의 실체와 일본인의 민낯은 과연 무엇일까? 이러한 물음에 답한 탁월한 저작 한 권이 있다.

<국화와 칼 / 루스 베네딕트 지음 / 현대지성 펴냄>은 일본과 일본인에 관한 20세기 최고의 고전으로 꼽히는 저작이다. 일본과 일본인에 대해 가장 빠르면서도 손쉽게 파악하기를 원할 때 집어 들어야 할 책은 단연코 <국화와 칼>임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아주 오래전 접했던 저작을 좋은 기회에 새롭게 만나 새마음으로 읽었다. 일본인보다 일본인을 더 잘 알고 파악했다는 믿기지 않는 평가가 과장이 아니다.

저자인 '루스 베네딕트'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을 향해가던 1944년 미국 정부의 위촉을 받고 적국인 일본에 대한 심층 연구를 시작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국화와 칼>이다.

이 책의 놀라운 가치는 저자가 일본과 일본인의 민족성과 문화적 양상을 연구하는 데 있어 한 번도 일본 땅을 밟지 않았다는 기이한 점에 있다. 미국과 일본의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었기에 미국인인 저자가 일본을 가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상황이었다.

저자는 문화 인류학자로서 연구 대상 민족의 터전을 밟지 않고 미국에 거주하는 일본인들과의 면담, 선배 학자들의 연구 문헌, 선전 영화와 같은 대중 매체 등을 이용하여 나름의 연구 기법을 개발시켰다.



일본은 지금껏 미국이 맞붙었던 적국으로서 가장 종잡을 수 없는 기이한 민족이라고 운을 떼는 책의 첫머리부터 저자에게 일본을 연구해달라고 부탁한 미국 정부의 일본에 대한 모호함이 짙게 깔려있다.

희뿌연 안갯속에 가려진 미지의 나라, 일본은 미국인들의 이해를 벗어나는 미스터리한 존재였다. 유혈이 낭자하고 살점이 튀는 전장의 상황 속 종잡을 수 없는 일본군의 행태가 미군에게는 그 어떠한 호러 영화보다 무서웠을 것이다.

미군의 기관총이 불을 뿜어대는 총구 앞에서 '반자이' 총검 돌격을 감행하며 소위 집단 자살을 선택하는 일본군이 미군의 눈에는 어떻게 비쳤을까? 비행기를 타고 미군 함정에 돌진하는 '가미카제' 특공대 또한 달리 설명할 방법이 요원하다.

책은 이러한 정신의 공백을 의심케 만드는 당시 일본군의 사이코틱한 행위의 이면에 있는 일본 민족의 독특한 특질을 역사에 기반하여 차분하게 벗겨낸다.

책의 제목인 <국화와 칼>이 상징하는 바를 알게 될 때 독자는 일본 문화 안에 녹아있는 일본인이 가진 이중성과 모순적 행태에 대한 명징한 이해가 가능하다. 한없이 친절하고 순종적이며 충성되면서도 야비하고 잔혹하며 배신을 밥 먹듯이 하는 야만적 기질이 공존하는 일본 문화 안에 내재한 상반된 모습은 일본이 가진 독특한 민족성이다.

국화는 예술을 사랑하고 친절하며 순종적인 일반적인 일본인의 문화적 양상을 드러내는 은유인 반면 칼은 무자비하고 잔혹하며 잔인한 일본인의 또 다른 내면적 특성을 드러내는 수사다.

은혜를 입게 될 때 그것을 일종의 부채의식으로 느끼며 어떤 식으로든지 보은해야 하는 일본인의 관념은 '온'의 개념으로서 탄생했다. 원수에게 당한 굴욕은 어떻게든 되갚음해 주는 것이 삶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라는 생각은 '기리'라는 독특한 가치로서 드러난다.

그렇기에 가장 큰 천황의 온을 입은 황군의 전사들이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며 반자이 돌격을 감행할 수 있었을 것이고, 미군에게 당한 원수를 어떻게든 갚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미덕이라고 생각한 황군의 파일럿들은 꽃다운 목숨을 폭약 실은 비행기에 내맡길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국화와 칼>이 가진 저작의 가치는 타자와 타문화에 대한 상대적 존중에 기반한다. 내 민족과 나의 문화만이 탁월하다는 문화적 우월주의, 국수주의는 이 책에서 찾아볼 수 없다.

매우 논리정연하게 일본 문화와 일본인에 대해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연구한 저자의 학자적 열정과 학문적 겸손함이 진하게 묻어나는 빛나는 고전이다. 타문화권에 대한 진지한 이해가 수반되는 본서는 다른 이에 대한 사랑과 배려가 사라져가는 폭압의 시대 속 여전히 읽혀야 할 충분한 가치를 지닌 눈부신 저작임과 동시에 우리에게는 먼나라 이웃나라 일본을 면밀하게 살필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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