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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 -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는 마음공부 ㅣ 한 권으로 끝내는 인문 교양 시리즈
정보현 옮김, 미야사카 유코우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2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모든 걱정과 근심의 근원을 잘 살펴보면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는 작위적 행태로 인한 것이 많다. 어떤 일을 해야지만 하고 그것을 하지 못했을 때 느끼는 고통과 좌절감이 사람에게 불만족과 행복하지 못한 느낌을 가져다준다.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가진 생각의 기저에는 하지 못한 것과 채워지지 않은 욕망에 대한 갈망과 아쉬움, 미련이 깔려있다.
오래전부터 불가에서 작은 대장경이라고 불린 반야심경은 이러한 당위로부터 오는 고통과 괴로움에서 해방되라는 가르침을 설했다.
<반야심경 / 미야사카 유코우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 펴냄>은 한 권으로 끝내는 인문 교양 시리즈답게 반야심경이라는 대승불교의 정수가 담긴 저작이다. 개인적으로 신앙하는 종교가 다르지만 반야심경이 가진 인간에 대한 이해와 고전으로서의 가치가 탁월하기에 주저함 없이 집어 들었다.
경전 600권 분량의 가르침이 단 262자로 압축되었다고 하니 웬만한 압축파일의 그것과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본서는 크게 반야심경의 역사와 가르침의 두 단원으로 나뉘어있다.
반야심경은 부처의 말씀(진언)을 관자재보살이 설한 경전이다. 특징적인 대목은 모든 괴로움은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며 그것으로부터의 해방이 곧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임을 설파한다. 태어나서 살아가는 것도 괴로움이고, 늙어가는 것도 괴로움이다. 병을 앓는 것도 고통이며 죽음 또한 피할 수 없는 괴로움이다. 반야심경에서는 이를 네 가지 고통이라고 하여 사고(四苦)라고 표현하는데 이들은 인간이라면 모두가 겪는 근본적인 괴로움이다.
반면 살면서 겪게 되는 정신적 괴로움이 있는데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것과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야 하는 것이 괴로움이다.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야 하는 '원증회고'에는 인간 본성을 예리하게 꿰뚫은 통찰이 담겼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것도 큰 고통이지만 인간은 미워하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 것에 대한 주관적 고통이 더 큰 존재다.
반야심경이 말하는 독특한 개념 하나가 더 있다. 공(空)과 무(無)의 역학이다. 우리는 흔히 공이라고 말하면 없다고 표현한다. 공을 숫자 0의 개념과 동일하게 여기기에 우리는 전화번호를 말할 때도 영일영(010)이라고 말하기보다는 공일공(010)이라고 말하는 것에 익숙하다.
그러나 반야심경은 공과 무의 의미에 대해 엄밀히 다른 설명을 내놓는다. 공은 공간에 대한 의미다. 공은 존재의 유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담는 공간에 대한 표현이다. 반면 무는 실제로 존재의 유무를 의미하기에 무엇인가가 없다면 그것은 무가 맞다.
공은 무엇인가를 담을 공간의 존재를 말하는 것이며 무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것을 가리킨다. 그래서 공은 무엇인가 발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기에 소홀히 할 수 없고 나름의 의미가 있는 중요성을 띈다.

또한 반야심경은 자아를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서도 독특함을 드러낸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인간은 자아에 대해 집착할 때 괴로움을 피할 수 없다. 인간사의 모든 어려움은 인간이 스스로에 대해 병적으로 집착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더 많이 가져야 하고, 더 유명해져야 하며 더 예뻐져야 한다는 스스로에 대한 끝없는 집착, 언제 어디서나 내가 주인공이 되어야 하고 세상의 모든 것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망상이 인간에게 순환적 불행의 뫼비우스 띠가 된다.
작은 대장경을 덮으며 다양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요 며칠 동네에서 삶이 축제라고 외치는 명상 요가 광고를 세뇌되듯 접하며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과연 삶은 축제인가? 질문의 대답은 삶은 축제가 아니라는 개인적 결론이다.
집착과 작위성에 함몰되어 가는 현대인의 삶이 축제일까? 축제 같은 삶을 살고 싶은 염원일 뿐이다. 반야심경은 거침이 없는 삶에서 필요한 나름의 해법을 제시한다. 유독 부정어가 많이 등장하기에 부정적이고 어두운 책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가지고 있는 저작이지만 읽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부처가 설파한 참된 인간 자아의 해방과 탈출에 대한 불교의 가르침은 축제 같지 않은 삶을 축제처럼 살도록 이끄는 나름의 진언이다.
262자의 짧은 경구 속에 담긴 대승불교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저작임은 확실하다. 종교를 떠나 인문고전으로 한 번쯤 읽어본다면 적게나마 불교를 이해하고, 불교가 바라보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관점을 새롭게 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용 자체가 상당히 재미있기에 지루함 없이 읽어 내려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