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드이발소 3 - 천재 이발사 브레드 브레드이발소 3
(주)몬스터스튜디오 원작, 미디어-S 구성 / 형설아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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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코로나19로 인해 답답했던 내게 작은 즐거움을 선사해 주고 있는 <브레드 이발소> 필름북 3권의 리뷰를 올리는 나의 마음이 사실 조금 즐겁다. 글이 잘 안 써질 때는 서평 하나 남기는 일이 그렇게 곤욕일 수 없는데 책 자체가 워낙 재미있는 경우는 서평 쓰는 시간이 기다려질 정도다. 그런데 브레드 이발소 필름북이 서평 쓰는 재미가 느껴지는 바로 그런 책 중 한 권이다.

제3권 또한 여섯 편의 에피소드가 수록되어 있다. 그중에서 오늘은 요즘 시대에 대한 교훈을 선사해 준 '거지 손님'이라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베이커리 타운에 비상이 걸렸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잡지사인 '머슐랭'의 암행 평가단이 베이커리 타운에 떴다는 소문이고, 더군다나 이들이 브레드 이발소를 타깃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천재 이발사 브레드와 그의 조수 윌크, 초코 등은 머슐랭의 평점 하나에 가게 문을 닫을 수도 있는 이 절체절명의 순간을 극복하기 위해서 초긴장 모드로 돌입한다. 별점 3개를 받음으로써 최고의 가게로 거듭날 것인가 아니면 별 1개도 받지 못하고 파산을 신고할 것인가의 갈림길!

머슐랭의 평론가가 방문하리라는 예상일과 시간을 접수한 브레드 이발소에 마침내 손님 한 명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머리는 아무렇게나 헝클어져 떡지고, 몸에서는 고약한 악취를 내뿜으며 머릿속 곳곳에는 구더기와 같은 벌레가 득실거리는 정말 제대로 된 거지 그 자체의 모습을 한 빵이다. 이런 최악의 모습을 한 손님을 보고 브레드는 직감한다. 분명 이는 브레드 이발소의 민낯을 평가하기 위해 찾아온 머슐랭 평론가의 암행을 위한 거지 코스프레 일 것이라고 말이다. 브레드는 예리한 직감 하에 이 거지 손님을 앉히고 냉정하면서도 열정적인 모습으로 자신의 천재적인 이발 실력을 발휘하여 최선을 다해 거지 손님의 머리를 꾸미기 시작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거지가 이발소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곧장 뒤따라 들어온 손님 한 명이 더 있었고, 거지에게 간발의 차이로 순서를 빼앗겨 뒤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게 된 이 손님이 바로 진짜 머슐랭의 평론가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을 모르는 브레드는 거지를 머슐랭의 평론가일 것이라고 찰떡같이 믿은 채 그의 머리를 깨끗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일에 혼신의 힘을 쏟는다. 너무나 더러운 거지의 머리를 처음부터 완전히 새로운 헤어스타일로 바꾸어야 하는 극도로 어려운 작업이기에 이발소 폐점 시간이 다 되어가는 때까지 거지의 머리를 다듬고 있는 브레드를 보고 기다리다 못해 화가 난 머슐랭의 평론가가 신경질적으로 내뱉는다. "도대체! 기껏 거지의 머리를 이발하는데 이렇게까지 시간을 쏟는 이유가 뭐요?!" 평론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비장한 표정의 브레드는 이렇게 대답한다. "기껏? 지금 기껏이라고!? 이 가위 앞에선 거지나 왕족이나 똑같은 손님일 뿐이오!"

"헉! 이렇게 고결한 인성을 가졌다니... 이 자에겐 뭔가 특별한 게 있어...!" 평론가는 이처럼 말하고 자리를 뜬다. 나는 이 대목에서 완전 빵 터졌다. 깨알 반전! 이야기의 결말은 우리가 예상할 수 있듯이 해피엔딩! 이발사 브레드는 베이커리 타운 최고의 천재 이발사라는 머슐랭의 극찬을 받으며 별 3개를 받는다. 그리고 그 시각 이발소에서는 모든 상황의 전말을 알게 된 브레드와 거지 간의 한 바탕 소동이 벌어지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거지 손님' 에피소드는 우리에게 두 가지 깨달음을 던져준다. 첫째는 인간 본연의 가치와 인간성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 사라져 가는 우리 사회 민낯에 대한 보고다. 그깟 거지에게 뭘 그리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열정을 쏟아부을 필요가 있는가라며 따지듯이 물었던 머슐랭 평론가의 말을 통해서 인간을 외모와 겉모습, 그가 가진 조건으로만 모든 것을 판단하는 우리 사회의 병든 관점에 대해 엿볼 수 있다. 자신이 볼 때 영향력 있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굽신거리고, 예의를 다해 대하지만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되는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예의는커녕 한없이 차갑고 냉정한 모습으로 돌변하는 위선적인 사람들이 내 주변에 좀 있기에 나는 이 에피소드가 각별하게 다가온다.

둘째는 '거지 손님'이라는 에피소드 제목이 내포한 역설이다. 대우받을 수 없는 존재인 거지와 극진히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손님이라는 단어가 마치 합성어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는 것 자체가 역설 아닌가? 거지와 손님의 구별을 애써서 구별하려는 우리 사회는 신분의 높고 낮음에 따라서 사람들을 평가하고 줄 세우는 데에 익숙한 사회다. 그렇기에 높은 신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볼 때 비천하다 여겨지는 사람들에 대해 경시하며 유무형의 폭력을 정당화시킨다. 거지가 머슐랭 평론가가 아니고 그로 인해 진짜 머슐랭 평론가를 그냥 돌려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브레드가 거지와 싸우면서 "너 때문에 중요한 손님을 놓쳤어!"라고 던진 말 한마디는 우리 사회 속에 병적으로 뿌리 깊이 박혀있는 계급과 신분 의식에 대한 우리 스스로에게 던지는 일갈이다. 세상에 중요한 손님이 어디 있고 덜 중요한 손님이 어디 있단 말인가? 가위 앞에선 거지나 왕족이나 똑같은 손님일 뿐이고, 조물주 앞에선 거지나 왕족이나 똑같은 인간일 뿐이다!

한바탕 웃고 덮어버리면 그만인 애니메이션 한편에 진짜 이렇게 심오한 의미가 숨겨져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숨겨진 교훈 코드들을 찾아내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점은 <브레드 이발소> 이 책은 제대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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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드이발소 2 - 맛있게 꾸며주는 이발의 달인 브레드이발소 2
(주)몬스터스튜디오 원작, 미디어-S 구성 / 형설아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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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커리 타운의 천재 이발사 브레드와 그의 동료들이 펼치는 요절복통 이야기가 가득한 두 번째 책을 펼친다. 두 번째 책에서는 어떠한 이야기들이 우리를 즐겁게 해줄지 자못 궁금한 마음을 가지고 자리에 앉았다. 여섯 편의 에피소드 제목 하나하나가 흥미로움을 자아낸다. 우리 집 1호는 벌써 다섯 권을 완독했기에 책을 들고 앉은 내 옆에서 깔깔대며 마치 바둑을 복기하듯 눈으로 나의 책장을 따라 시선을 옮긴다. 재미있는 장면이 나오면 어쩔 줄 모르고 웃어대는 아이의 웃음소리에 책장 넘기는 시간의 더딤을 느끼지만 일반적인 책을 읽는 독서와는 또 다른 소소한 즐거움이 묻어난다.

이번 2권에서도 모든 이야기들이 재미있었지만 유독 한편의 에피소드가 재미와 함께 찐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책의 두 번째 이야기인 '윌크 이야기'가 그것이다. TV에서 방영하는 것을 놓쳤기에 필름북으로 만나볼 수 있게 된 윌크 이야기는 브레드 이발사의 조수인 우유 '윌크' 군의 출생비밀이 담긴 스토리이다. 나는 처음에 브레드 이발소 애니메이션을 접했을 때 왜 우유가 MILK가 아닌 WILK로 철자가 잘못 씌어 있는지에 대한 이유를 몰랐다. 작가가 그냥 재미있게 개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캐릭터 중 하나의 이름을 엉뚱하게 작명한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본서의 윌크 이야기를 통해서 윌크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의 첫 철자가 M이 아닌 W로 태어났으며 이것은 현대의학으로도 고칠 수 없는 심각한 결함이었음을 말해준다. 아들의 결함은 부모들에게는 매우 큰 슬픔이었으며 윌크가 자라서 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을 때 그것은 또래 밀크들에게 하나의 놀림감의 원인이 되었다. 자신이 정상적인 밀크가 아닌 윌크라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윌크로 하여금 세상과 담을 쌓게 했고, 깊은 슬픔의 근원이 되었다.

책을 읽으며 미처 깨닫지 못했던 브레드 이발소의 세계관을 엿보게 된다. 태어날 때부터 윌크는 정상적인 밀크가 아닌 윌크로서 소위 말하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다. 뭔가 어리숙하고 실수투성이에다 똑똑하지 못한 윌크는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아이들의 전형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러한 아이들은 장애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세상의 편견과 차별을 극복해야만 하는 힘겨운 싸움을 이어간다. 숨고만 싶고 혼자 있고만 싶은 이러한 아이들에게 세상의 밝은 빛으로 손을 잡고 이끌어 줄 수 있는 그 누군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들을 편견 없이 그들 나름의 고유한 가치로서 존귀하게 바라봐 줄 수 있는 그 무엇 말이다.

 

 

윌크는 자신의 유일한 친구인 도넛 레인저 피규어를 품에 안고 골방에서 홀로 눈물짓지만 이내 자신의 장애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한다. 그것은 바로 천재 이발사 브레드를 찾아가는 것! 윌크와 브레드의 운명적인 만남! 브레드는 자신의 천재적인 이발 솜씨를 발휘하여 윌크의 W를 M으로 고쳐주기에 혼신의 힘을 다하나 결국 실패하고 만다. 그러나 브레드는 마침내 윌크를 향한 최고의 솔루션을 처방하기에 이른다. 유일한 희망이었던 브레드 이발사마저 자신을 고칠 수 없음을 알게 되어 슬퍼하는 윌크에게 브레드는 이렇게 말한다. "너는 이곳에 왜 많은 빵들이 찾아오는지 알고 있니? 바로 특별해지기 위해서란다. 모든 빵들은 저마다 특별한 매력을 갖고 싶어 하지! 그래서 이발소를 찾아와서 머리를 꾸미는 거란다. 그런 면에서 윌크, 넌 정말 행운아야! 생각해 봐. 다른 우유들은 모두 똑같이 MILK라고 인쇄되어 있잖아? 오직 너만이 윌크인 거야!"

브레드의 이 말에 윌크는 자신이 이상한 게 아니라 특별한 거였음을 깨닫는다. 다른 이들과 다른 자신의 장애가 결함이 아닌 자신만의 고유함과 특별함일 수 있음을 깨달은 윌크의 삶은 이후 초긍정의 삶으로 바뀐다.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발견함과 동시에 참된 가치를 깨닫게 해준 브레드 이발사의 말 한마디가 그의 삶을 바꾸어놓는 장면을 보며 한편의 만화를 통해 가슴 뭉클한 감동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한편의 애니메이션이 이렇게 순기능적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며 브레드 이발소가 가진 긍정적 가치에 높은 평가를 매기게 된다. 윌크의 이야기를 통해 이 시대의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아이들을 향한 작가의 숨겨진 메시지가 내포된 것인지 그 진의와 집필 의도를 확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브레드 이발소라는 필름북은 책을 펼친 우리의 아이들에게 자신이 세상에서 얼마나 소중한 존재이며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특별하고 존귀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대한 긍정적 자기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히 선한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말 멋진 애니메이션이다!

오로지 때려 부수고 죽이는 것 아니면 훌러덩 벗고 나오는 폭력성과 선정성이 극에 달한 쓰레기 같은 애니메이션이 우리 아이들의 영혼을 갉아먹는 오염된 시대 가운데서 단연 브레드 이발소 필름북은 보석 같은 만화책이 아닐 수 없다. 부모로서 같은 돈을 주고 살바에야 이런 책 한 권을 더 사주고 싶다. 코로나19로 인해 아이들과 함께 어디 가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면 올가을에는 깨알 재미와 흥미 만점, 거기에 덧붙여 감동과 교훈을 선사하는 브레드 이발소 필름북 세트와 함께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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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드이발소 1 - 컵케이크들의 화려한 변신 브레드이발소 1
(주)몬스터스튜디오, 미디어-S / 형설아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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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아들과 초등 저학년들에게 핫한 애니메이션을 꼽으라면 몇 편 떠오르는 것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아기자기한 일러스트레이션과 의외로 탄탄한 스토리라인을 가진 애니는 역시 <브레드 이발소>가 아닐 수 없다! 나 또한 우리 집 1호가 넋을 잃고 시청하는 모습을 보고 잠시 옆에 앉아 함께 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만화의 매력 속에 빠져들었던 적이 있다. 이후로 아이와 함께 틈틈이 챙겨(?) 보고 있는 만화도 바로 이것이다.

애니메이션의 배경이나 스토리는 단순하다. 도시의 작은 빵집 안에서 다양한 모양을 지닌 빵들은 저마다 먹기 좋고 예쁜 모습으로 손님들의 선택을 기다리며 매장의 매대에 오르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빵의 제조과정 중 찌그러지거나 실수로 못난이가 되어버린 빵들은 이러한 기회를 얻기가 어렵다. 이런 슬픔을 가진 빵들에게 '빵생역전'의 기회를 줄 수 있는 빵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이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식빵 '브레드' 이발사이다. 천재적인 이발 실력을 가진 브레드는 자신의 이발소를 찾는 수많은 빵들의 헤어스타일을 책임짐으로써 그들이 다시금 용기를 얻고 손님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도록 멋지고 예쁜 빵들로 재탄생시켜준다.

이렇듯 만화의 주요 배경은 바로 브레드 이발소이며 이곳에서 벌어지는 좌충우돌의 일상적인 에피소드가 가히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재미를 선사 하기에 어린이들은 물론이거니와 어른들에게도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그런데 반가운 소식은 그동안 TV 애니메이션으로만 볼 수 있었던 브레드 이발소를 필름북으로 만나볼 수 있도록 책으로 출간되었다는 것이다. 이미 TV에서 볼 수 있었던 브레드 이발소의 주요 에피소드가 그대로 수록되어 있지만 책장을 넘기는 것 자체는 TV와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책을 받아들고 놀랐던 점은 아이들의 책이라고 허투루 만들지 않았음을 확인하면서였다. 우선 종이의 질과 컬러의 선명도가 매우 뛰어나고 좋다. 진짜 TV에서의 장면들이 생생하게 살아서 다가오는 것 같은 또렷한 느낌이 손끝에 전해진다. 현재 총 5권이 출간되었고 각 권마다 '베이커리 타운'과 브레드 이발소에서 완소 캐릭터들이 펼치는 다양한 에피소드가 매우 탄탄하게 구성되어 있기에 여느 아동 도서 못지않게 아이들의 관심을 끄는 데에 있어서 큰 지속성과 저력을 가진다.

 

 

브레드 이발소에는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몇몇 주요 캐릭터들은 브레드 이발소를 빛내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되는 캐릭이다. 대표적으로 브레드 이발사의 조수로서 매사에 실수를 저지르는 조금 어리숙하지만 마음씨만큼은 정말 순수하고 착한 '윌크'가 있고, 브레드 이발소의 캐셔 직원으로서 시크한 매력이 돋보이는 '초코'는 브레드 이발소 애니메이션에 입문(?)하고자 하는 시청자나 독자라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인물들이다. 그 외에도 브레드 이발소의 똑똑한 애완견 '소시지', 베이커리 타운 최고의 꽃미남 '버터', 윌크의 절친 동생 '치즈' 그리고 브레드 이발사의 적수인 베이커리 타운의 독보적 빌런인 '감자칩'까지 이들 모두는 매 에피소드에 깨알 재미를 선사한다.

더불어 TV에서도 느꼈지만 브레드 이발소의 작가는 정말 세밀한 감성과 유머의 소유자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브레드 이발소의 캐셔인 초코의 시크한 매력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항상 초코의 아침 출근 모습은 어깨에는 백을 걸치고 한 손에는 아메리카노 커피를 손에 든 모습으로 연출한다. 차가운 도시녀의 이미지 그대로다. 그리고 윌크는 우유이지만 MILK의 첫 자인 M이 태어날 때부터 거꾸로 뒤집여서 WILK로 태어난 것으로 설정함으로써 윌크가 어딘가 모르게 정상적인 밀크들과는 달리 어리숙하면서도 독특한 점을 가진 캐릭터임을 우회적으로 암시해 준다. 또한 언어유희 또한 수준급이다. 윌크가 좋아하는 DVD의 주인공 도넛 레인저는 파워 레인저에서 치즈가 입고 있는 옷인 사우스페이스는 노스페이스에서 영감을 얻은 듯 하다.

1권에서는 총 6개의 에피소드가 실렸고 중간에 브레드 이발 교실이라고 브레드 이발사가 손님들의 헤어스타일을 멋지게 꾸며주는 모습을 짤막하게 그려 넣었다. 나는 윌크가 브레드 이발소에 입사하기 위해서 테스트를 받는 이야기는 TV에서 못 봤기에 책을 펼쳐들고 흥미롭게 완독했다. 책이 도착했을 때 아이들이 난리가 났는데 아이들을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뺏다. 그만큼 브레드 이발소를 아는 아이들에게 이 책이 내뿜는 영향력이 작지 않음을 느끼게 만드는 경험이다. 아울러 국내에서 만들어졌다고 하니 순수 토종 애니메이션도 이렇게 성공적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필름북이다. 또한 책의 내용이 상당히 교훈적이라는 점은 책이 아이들에게 주는 보너스다. 절망과 슬픔 가운데 있는 못난이 빵들의 고민을 해결해 줌으로써 그들에게 살아갈 희망과 소망을 선사하는 브레드 이발사의 존재는 빵들에게 있어서는 그 자체가 복음이다. 더불어 적절한 유머 코드가 믹스되어 한번 펼치면 손에서 뗄 수 없게 만드는 흥미 유발자로서의 책이 가진 매력은 그야말로 측정불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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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세대 부모를 위한 SNS 심리학 - 소셜 미디어는 아이들의 마음과 인간관계, 삶을 어떻게 바꾸는가
케이트 아이크혼 지음, 이종민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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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유행했던 신조어 중 '흑역사'라는 단어가 있다. 누군가의 과거 삶의 모습 가운데서 남에게 밝혀지기를 꺼리는 어리석고, 우스꽝스럽거나 암울한 삶의 단면을 가리키는 네거티브함을 내포한 용어다. 이렇듯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자신의 과거 중 지인들이나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고 조용히 묻혀 있기를 바라는 비밀과 같은 삶의 순간들이 있다. 이는 인기를 먹고 살아가는 연예인과 같은 공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몇 개월 전 우리 사회를 분노에 떨게 만든 N번방 사건과 같이 다른 이들의 보호되어야 할 인권을 유린한 일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렇듯 자신의 삶의 모습이 다른 이들에게 모두 다 까발려지는 것만큼 심각하고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는 세상이 되었으니 그것은 바로 인터넷의 출현과 스마트폰, SNS 시대의 도래로 인한 것이다. 특별히 자라나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있어서 자신의 어린 시절 과거가 고스란히 담긴 수많은 사진과 동영상 등이 사이버라는 가상의 공간 속에서 파편화되어 떠도는 사실은 21세기 최첨단의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있어서 한 번쯤 심각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문제가 아닐까? 이러한 단상 속에서 <Z세대 부모를 위한 SNS 심리학>이라는 제목의 매우 흥미롭고 시의적절한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스마트폰이 상용화된 이래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의 가장 큰 공통적인 일상 중 하나는 바로 귀엽고 예쁜 자녀들의 사진을 찍어 부지런히 자신의 SNS 계정에 업로드 시킨다는 점이다. 자신의 사회관계망 서비스에 올려진 자녀들의 일상을 담은 사진은 SNS 지인들의 '좋아요'와 댓글, 공유 등을 통해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에게 여기저기 공개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자녀들의 사진과 영상 등이 정작 자녀들이 청소년과 성인이 되었을 때 그들에게 있어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를 담은 콘텐츠들을 포함한다면 단지 귀엽고 예쁘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올린 부모들의 SNS 활동은 자녀들에게 독이 되는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오래전 개봉해서 많은 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내 머릿속의 지우개>라는 영화가 있다. 유독 건망증이 심한 여주인공과 그녀의 그러한 모든 삶을 사랑하는 남자 주인공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로맨스 영화였다. 마트에서 자신이 방금 산 물건조차도 잃어버리는 중증 치매 수준의 심각한 건망증을 가진 여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었다. 정말 망각이라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을 형편없이 무너뜨리는 몹쓸 병이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라나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지금껏 내가 몹쓸 병이라고 생각했던 망각이 가진 중요성이다. 저자는 망각과 기억의 상관관계 속에서 인간은 기억해야 하는 추억과 더불어 잊어버릴 때 더 좋은 망각의 이점을 배울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어린 시절 소위 '흑역사'의 기억들은 예전 시대였다면 사진 몇 장 없애버리는 수준으로 쉽게 해결할 수도 있는 부분이었지만 이제는 인터넷과 SNS라는 극강의 정보통신 기술로 말미암아 결코 쉽사리 지울 수 없는 망각을 허용치 않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저자는 우리의 아이들이 자신들의 어린 시절 속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에 대한 망각이 허용되지 않을 때 이것은 그들의 건강한 성장을 방해하는 또 하나의 걸림돌이 될 위험성이 있다고 경고한다.

부모들이 재미로 올린 아이들의 우스꽝스럽고 익살스러운 표정의 사진이나 바보 같은 영상 한편이 주변 지인들의 '좋아요' 와 댓글, 공유를 통해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퍼져나갔음을 이후 나의 아이들이 알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그들에게는 망각에 대한 권리를 빼앗기는 일이 되고 말 것이다. 더불어 저자는 아이들에게 성인이 되어가는 단계 가운데 반드시 있어야 할 시간으로서 '심리 사회적 유예'의 시간을 말한다. 이는 아이들이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무엇인가를 시도해보고 실수도 해볼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다. 그러나 이것은 망각이라는 안전한 그물망 속에서 가능한 일이었지만 이제는 디지털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결코 쉽게 주어질 수 없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좋은 추억은 평생토록 간직하고 꺼내볼 수 있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기억들은 망각의 강물 속에 흘려보낼 수 있을 때만이 인간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망각의 순기능이 심각하게 훼손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 특별히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있어서 이제는 잊음과 잊힘은 너무나 생소한 단어가 되어버렸다. 나의 머릿속에서 아무리 지우려고 노력한 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트위터, 유튜브, 블로그와 같은 SNS 사이버 가상의 공간 속에서 여전히 살아서 떠도는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들은 망령이 되어 되살아난다. 건강한 인격을 지닌 성인으로 자라가는 데 있어서 자신의 삶에 대한 유예의 기회와 재구성의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아이들은 이제 자신의 삶을 건강하게 가꾸어가는 데 있어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오래전 기억들에 의해 끊임없는 영향을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에게 자신을 어필하고 관심받기 위해서 몸살 난 이 '관종'의 시대 속에서 어쩌면 잊음과 잊힘이라는 단어는 매력적이지 않은 단어이다. 그러나 나는 본서를 펼쳐들고 건강하게 잊히는 것의 중요성을 발견하며 망각의 필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어린 시절 밤마다 유난히 이불에 세계지도를 잘 그렸던 나의 흑역사는 우리 가족들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모르는 가족비밀이다.(이제 이 서평을 통해서 오픈되었지만 말이다) 이제는 나의 아이들과도 나의 이러한 어린 시절 실수들을 추억 삼아 재미있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것은 내가 나의 기억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조건이 주어졌기에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이 원치 않는 삶의 모습이 부모를 포함한 누군가에게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돼서 다른 이들의 정보를 먹고사는 SNS라는 거대 디지털 기업의 먹잇감이 되어버렸을 때는 상황이 다르다.

책장을 덮으며 자신의 삶을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새하얀 도화지 위에 그리다가 실수하면 지우개로 지우고 그릴 수 있는 기회와 자율성, 주체성이 위협받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염려스럽다. 그렇기에 이러한 고민을 조금이라도 하는 부모라면 이제는 자신의 SNS에 아이들의 사진과 영상을 무분별하게 도배하는 일만큼은 조금 자제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끔 만들어주는 책이 아닐 수 없다. 저자가 책을 통해서 인용한 '프리드리히 니체'의 경구를 소개해본다. "망각이 없으면 진정한 의미에서 삶 자체가 불가능하다." 망각의 동물인 인간에게 있어서 이보다 적절한 말이 어디 있겠는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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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확신 세계기독교고전 40
헤르만 바빙크 지음, 임경근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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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신앙에 있어서 믿음은 무엇인가? 나의 삶의 마지막 종착역에서 무엇이 나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이러한 진지한 고민들을 가끔 해본다. 어린 시절부터 이어온 오랜 신앙생활을 통해서 막연하게나마 나의 믿음과 구원의 확신을 단언하지만 진정 나는 내가 믿는 믿음의 대상과 그것에 대한 확신을 소유한 자인가 자문하게 된다. 이러한 물음 속에서 너무나 귀한 저작 한 권을 만났다. 그것은 바로 화란 개혁주의 교회에서 '아브라함 카이퍼'와 더불어 양대 거목이라 불리는 '헤르만 바빙크'의 위대한 저작 <믿음의 확신>이다. 이미 한국 교회에 바빙크 평생의 역작이라 불리는 <개혁교의학> 4권 전집이 출간되어 있기에 저자에 대한 명성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그런데 본서 <믿음의 확신>은 <개혁교의학>의 명성에 비하면 대중에게 덜 알려진 책이다. 그러나 본서가 최근 들어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다. 놀랄만한 과학기술의 발전과 변화의 물결 가운데 신자의 믿음이 도전을 받는 지금의 시대 속에서 바빙크의 저작 <믿음의 확신>이 다시금 주목받게 된 것은 참으로 시의적절하다. 신자는 자신의 믿음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있는가? 물론이다! 왜냐하면 믿음의 주체가 믿는 믿음의 객체와 그 내용이 너무나 정확하고 한 치의 오차도 없기에 그렇다. 신자가 믿는 믿음의 객체인 하나님의 존재와 믿음의 내용인 하나님의 계시는 신자가 자신의 믿음을 확신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어서 결코 흔들림 없이 견고한 토대이다.

바빙크는 본서를 통해서 확신에 대한 자신의 명확한 논구의 작업을 펼쳐간다. 그가 살던 19세기는 17~18세기에 시작된 계몽주의와 산업혁명이 꽃을 피우며 극에 달했던 시대였다. 과학 기술의 발전은 인간에게 있어서 더 나은 미래를 약속했고, 인간의 이성이 극도로 고양된 시대 속에서 종교 특별히 기독교가 믿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앙은 이성의 울타리 안에서 더 이상의 확신을 자신할 수 없게 된다. 진화론과 같은 과학적 사고가 팽배해있던 시대 조류 가운데 신자들은 이제 성경의 무오성마저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본서는 이렇듯 의심이 곧 미덕이 된 확신이 실종된 시대 속에서 탄생하게 된다.

바빙크는 먼저 확신이 무엇인지를 밝힌다. 그는 "한 사람의 지성이 자신의 인식 대상 속에서 완벽한 쉼을 얻을 때에 거기에는 확신이 존재한다"라고 말한다. 즉 신자에게 있어서 지성으로서 인지하고 인식할 수 있는 믿음의 대상은 바로 하나님이다. 그리고 신자가 믿음을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그 확신의 토대로서의 증언이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에게서 나오기에 그렇다. 반면 과학적 확신은 믿음의 확신보다 더 정확하고 객관적이며 합리적일 수 있다. 그러나 과학적 확신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믿음의 확신은 과학적 확신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한 사람의 영혼 안에서 믿음의 대상과 더 친밀하고 끈질기게 결합하며 역사적으로 그러한 믿음의 확신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놓았음을 역사는 증언하다.

그러면서 바빙크는 자신이 말하는 확신에 대해서 개혁주의 신학과 인접한 다른 종교, 그리고 개신교 내의 신학적 견해가 상이한 여타 사상들과의 비교를 언급하는데 바로 로마 카톨릭, 종교개혁, 정통주의와 경건주의가 그것이다. 끊임없는 인간의 고행과 선행의 실천, 합리성에 기인한 이성적 논증, 체험과 경험을 통한 확신 등 역사적으로 자신의 구원을 보증 받고 참된 영혼의 쉼을 얻기 위한 확신의 과정과 방법은 다양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여전한 의심이며 불안이다. 바빙크는 믿음의 확신을 구원의 최종 목적지로 가리키지 않는다. 믿음의 확신은 신자에게 있어서 언제나 신앙생활의 출발점이다. 또한 믿음은 행위의 토대이지 행위가 믿음의 토대는 아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에 대한 확신은 계시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의 진실성에 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 약속의 신실성을 믿는 신자라면 어떠한 의심도 없이 자신의 믿음과 영혼 구원을 확신할 수 있다.

근래 들어 형광펜 밑줄을 가장 많이 긋게 만든 책이 아닐 수 없다. 헤르만 바빙크라는 명불허전 신학자의 음성을 통해서 들려오는 매 구절이 내게 너무나 큰 감동과 깊은 깨달음으로 다가온 시간이었다. 진정 나는 나의 믿음과 영혼에 대한 구원을 확신할 수 있는지와 같은 질문을 맞닥뜨렸을 때 자신 있게 "Yes!"라고 대답할 수 있는 신자인가? 그리고 그러한 나의 믿음의 확신의 근거는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의 전통과 학문과 철학과 사상, 감정과 체험이나 경험이나 선행이나 고행과 같은 외형적이며 부수적인 요소들로 인해서 오지 않는다. 신자가 일평생 자신의 믿음을 확신할 수 있는 근거는 오직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과 그분의 계시인 말씀의 진실성과 명확성에 기인한다.

책을 덮으며 나의 마음에 진한 감동과 함께 잊히지 않는 한 구절을 소개하며 리뷰를 마치려 한다. 바빙크는 "인간이란 자고로 죽음의 순간에 근원적 질문을 던지게 되어 있고, 그 해답을 찾든지 못 찾든지 하게 된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1921년 7월, 죽음을 목전에 둔 이 노학자는 죽음의 침상 위에서 아래와 같은 영혼을 뒤흔들어 놓는 증언을 남기고 하나님의 품에 안긴다.

"내 학문이 내게 준 유익이 무엇입니까? 내 교의학 또한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오직 믿음만이 나를 구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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