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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세대 부모를 위한 SNS 심리학 - 소셜 미디어는 아이들의 마음과 인간관계, 삶을 어떻게 바꾸는가
케이트 아이크혼 지음, 이종민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9월
평점 :

한때 유행했던 신조어 중 '흑역사'라는 단어가 있다. 누군가의 과거 삶의 모습 가운데서 남에게 밝혀지기를 꺼리는 어리석고, 우스꽝스럽거나 암울한 삶의 단면을 가리키는 네거티브함을 내포한 용어다. 이렇듯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자신의 과거 중 지인들이나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고 조용히 묻혀 있기를 바라는 비밀과 같은 삶의 순간들이 있다. 이는 인기를 먹고 살아가는 연예인과 같은 공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몇 개월 전 우리 사회를 분노에 떨게 만든 N번방 사건과 같이 다른 이들의 보호되어야 할 인권을 유린한 일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렇듯 자신의 삶의 모습이 다른 이들에게 모두 다 까발려지는 것만큼 심각하고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는 세상이 되었으니 그것은 바로 인터넷의 출현과 스마트폰, SNS 시대의 도래로 인한 것이다. 특별히 자라나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있어서 자신의 어린 시절 과거가 고스란히 담긴 수많은 사진과 동영상 등이 사이버라는 가상의 공간 속에서 파편화되어 떠도는 사실은 21세기 최첨단의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있어서 한 번쯤 심각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문제가 아닐까? 이러한 단상 속에서 <Z세대 부모를 위한 SNS 심리학>이라는 제목의 매우 흥미롭고 시의적절한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스마트폰이 상용화된 이래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의 가장 큰 공통적인 일상 중 하나는 바로 귀엽고 예쁜 자녀들의 사진을 찍어 부지런히 자신의 SNS 계정에 업로드 시킨다는 점이다. 자신의 사회관계망 서비스에 올려진 자녀들의 일상을 담은 사진은 SNS 지인들의 '좋아요'와 댓글, 공유 등을 통해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에게 여기저기 공개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자녀들의 사진과 영상 등이 정작 자녀들이 청소년과 성인이 되었을 때 그들에게 있어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를 담은 콘텐츠들을 포함한다면 단지 귀엽고 예쁘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올린 부모들의 SNS 활동은 자녀들에게 독이 되는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오래전 개봉해서 많은 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내 머릿속의 지우개>라는 영화가 있다. 유독 건망증이 심한 여주인공과 그녀의 그러한 모든 삶을 사랑하는 남자 주인공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로맨스 영화였다. 마트에서 자신이 방금 산 물건조차도 잃어버리는 중증 치매 수준의 심각한 건망증을 가진 여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었다. 정말 망각이라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을 형편없이 무너뜨리는 몹쓸 병이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라나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지금껏 내가 몹쓸 병이라고 생각했던 망각이 가진 중요성이다. 저자는 망각과 기억의 상관관계 속에서 인간은 기억해야 하는 추억과 더불어 잊어버릴 때 더 좋은 망각의 이점을 배울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어린 시절 소위 '흑역사'의 기억들은 예전 시대였다면 사진 몇 장 없애버리는 수준으로 쉽게 해결할 수도 있는 부분이었지만 이제는 인터넷과 SNS라는 극강의 정보통신 기술로 말미암아 결코 쉽사리 지울 수 없는 망각을 허용치 않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저자는 우리의 아이들이 자신들의 어린 시절 속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에 대한 망각이 허용되지 않을 때 이것은 그들의 건강한 성장을 방해하는 또 하나의 걸림돌이 될 위험성이 있다고 경고한다.
부모들이 재미로 올린 아이들의 우스꽝스럽고 익살스러운 표정의 사진이나 바보 같은 영상 한편이 주변 지인들의 '좋아요' 와 댓글, 공유를 통해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퍼져나갔음을 이후 나의 아이들이 알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그들에게는 망각에 대한 권리를 빼앗기는 일이 되고 말 것이다. 더불어 저자는 아이들에게 성인이 되어가는 단계 가운데 반드시 있어야 할 시간으로서 '심리 사회적 유예'의 시간을 말한다. 이는 아이들이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무엇인가를 시도해보고 실수도 해볼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다. 그러나 이것은 망각이라는 안전한 그물망 속에서 가능한 일이었지만 이제는 디지털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결코 쉽게 주어질 수 없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좋은 추억은 평생토록 간직하고 꺼내볼 수 있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기억들은 망각의 강물 속에 흘려보낼 수 있을 때만이 인간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망각의 순기능이 심각하게 훼손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 특별히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있어서 이제는 잊음과 잊힘은 너무나 생소한 단어가 되어버렸다. 나의 머릿속에서 아무리 지우려고 노력한 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트위터, 유튜브, 블로그와 같은 SNS 사이버 가상의 공간 속에서 여전히 살아서 떠도는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들은 망령이 되어 되살아난다. 건강한 인격을 지닌 성인으로 자라가는 데 있어서 자신의 삶에 대한 유예의 기회와 재구성의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아이들은 이제 자신의 삶을 건강하게 가꾸어가는 데 있어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오래전 기억들에 의해 끊임없는 영향을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에게 자신을 어필하고 관심받기 위해서 몸살 난 이 '관종'의 시대 속에서 어쩌면 잊음과 잊힘이라는 단어는 매력적이지 않은 단어이다. 그러나 나는 본서를 펼쳐들고 건강하게 잊히는 것의 중요성을 발견하며 망각의 필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어린 시절 밤마다 유난히 이불에 세계지도를 잘 그렸던 나의 흑역사는 우리 가족들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모르는 가족비밀이다.(이제 이 서평을 통해서 오픈되었지만 말이다) 이제는 나의 아이들과도 나의 이러한 어린 시절 실수들을 추억 삼아 재미있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것은 내가 나의 기억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조건이 주어졌기에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이 원치 않는 삶의 모습이 부모를 포함한 누군가에게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돼서 다른 이들의 정보를 먹고사는 SNS라는 거대 디지털 기업의 먹잇감이 되어버렸을 때는 상황이 다르다.
책장을 덮으며 자신의 삶을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새하얀 도화지 위에 그리다가 실수하면 지우개로 지우고 그릴 수 있는 기회와 자율성, 주체성이 위협받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염려스럽다. 그렇기에 이러한 고민을 조금이라도 하는 부모라면 이제는 자신의 SNS에 아이들의 사진과 영상을 무분별하게 도배하는 일만큼은 조금 자제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끔 만들어주는 책이 아닐 수 없다. 저자가 책을 통해서 인용한 '프리드리히 니체'의 경구를 소개해본다. "망각이 없으면 진정한 의미에서 삶 자체가 불가능하다." 망각의 동물인 인간에게 있어서 이보다 적절한 말이 어디 있겠는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