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드이발소 3 - 천재 이발사 브레드 브레드이발소 3
(주)몬스터스튜디오 원작, 미디어-S 구성 / 형설아이 / 2019년 12월
평점 :
절판


 

요 며칠 코로나19로 인해 답답했던 내게 작은 즐거움을 선사해 주고 있는 <브레드 이발소> 필름북 3권의 리뷰를 올리는 나의 마음이 사실 조금 즐겁다. 글이 잘 안 써질 때는 서평 하나 남기는 일이 그렇게 곤욕일 수 없는데 책 자체가 워낙 재미있는 경우는 서평 쓰는 시간이 기다려질 정도다. 그런데 브레드 이발소 필름북이 서평 쓰는 재미가 느껴지는 바로 그런 책 중 한 권이다.

제3권 또한 여섯 편의 에피소드가 수록되어 있다. 그중에서 오늘은 요즘 시대에 대한 교훈을 선사해 준 '거지 손님'이라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베이커리 타운에 비상이 걸렸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잡지사인 '머슐랭'의 암행 평가단이 베이커리 타운에 떴다는 소문이고, 더군다나 이들이 브레드 이발소를 타깃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천재 이발사 브레드와 그의 조수 윌크, 초코 등은 머슐랭의 평점 하나에 가게 문을 닫을 수도 있는 이 절체절명의 순간을 극복하기 위해서 초긴장 모드로 돌입한다. 별점 3개를 받음으로써 최고의 가게로 거듭날 것인가 아니면 별 1개도 받지 못하고 파산을 신고할 것인가의 갈림길!

머슐랭의 평론가가 방문하리라는 예상일과 시간을 접수한 브레드 이발소에 마침내 손님 한 명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머리는 아무렇게나 헝클어져 떡지고, 몸에서는 고약한 악취를 내뿜으며 머릿속 곳곳에는 구더기와 같은 벌레가 득실거리는 정말 제대로 된 거지 그 자체의 모습을 한 빵이다. 이런 최악의 모습을 한 손님을 보고 브레드는 직감한다. 분명 이는 브레드 이발소의 민낯을 평가하기 위해 찾아온 머슐랭 평론가의 암행을 위한 거지 코스프레 일 것이라고 말이다. 브레드는 예리한 직감 하에 이 거지 손님을 앉히고 냉정하면서도 열정적인 모습으로 자신의 천재적인 이발 실력을 발휘하여 최선을 다해 거지 손님의 머리를 꾸미기 시작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거지가 이발소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곧장 뒤따라 들어온 손님 한 명이 더 있었고, 거지에게 간발의 차이로 순서를 빼앗겨 뒤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게 된 이 손님이 바로 진짜 머슐랭의 평론가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을 모르는 브레드는 거지를 머슐랭의 평론가일 것이라고 찰떡같이 믿은 채 그의 머리를 깨끗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일에 혼신의 힘을 쏟는다. 너무나 더러운 거지의 머리를 처음부터 완전히 새로운 헤어스타일로 바꾸어야 하는 극도로 어려운 작업이기에 이발소 폐점 시간이 다 되어가는 때까지 거지의 머리를 다듬고 있는 브레드를 보고 기다리다 못해 화가 난 머슐랭의 평론가가 신경질적으로 내뱉는다. "도대체! 기껏 거지의 머리를 이발하는데 이렇게까지 시간을 쏟는 이유가 뭐요?!" 평론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비장한 표정의 브레드는 이렇게 대답한다. "기껏? 지금 기껏이라고!? 이 가위 앞에선 거지나 왕족이나 똑같은 손님일 뿐이오!"

"헉! 이렇게 고결한 인성을 가졌다니... 이 자에겐 뭔가 특별한 게 있어...!" 평론가는 이처럼 말하고 자리를 뜬다. 나는 이 대목에서 완전 빵 터졌다. 깨알 반전! 이야기의 결말은 우리가 예상할 수 있듯이 해피엔딩! 이발사 브레드는 베이커리 타운 최고의 천재 이발사라는 머슐랭의 극찬을 받으며 별 3개를 받는다. 그리고 그 시각 이발소에서는 모든 상황의 전말을 알게 된 브레드와 거지 간의 한 바탕 소동이 벌어지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거지 손님' 에피소드는 우리에게 두 가지 깨달음을 던져준다. 첫째는 인간 본연의 가치와 인간성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 사라져 가는 우리 사회 민낯에 대한 보고다. 그깟 거지에게 뭘 그리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열정을 쏟아부을 필요가 있는가라며 따지듯이 물었던 머슐랭 평론가의 말을 통해서 인간을 외모와 겉모습, 그가 가진 조건으로만 모든 것을 판단하는 우리 사회의 병든 관점에 대해 엿볼 수 있다. 자신이 볼 때 영향력 있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굽신거리고, 예의를 다해 대하지만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되는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예의는커녕 한없이 차갑고 냉정한 모습으로 돌변하는 위선적인 사람들이 내 주변에 좀 있기에 나는 이 에피소드가 각별하게 다가온다.

둘째는 '거지 손님'이라는 에피소드 제목이 내포한 역설이다. 대우받을 수 없는 존재인 거지와 극진히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손님이라는 단어가 마치 합성어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는 것 자체가 역설 아닌가? 거지와 손님의 구별을 애써서 구별하려는 우리 사회는 신분의 높고 낮음에 따라서 사람들을 평가하고 줄 세우는 데에 익숙한 사회다. 그렇기에 높은 신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볼 때 비천하다 여겨지는 사람들에 대해 경시하며 유무형의 폭력을 정당화시킨다. 거지가 머슐랭 평론가가 아니고 그로 인해 진짜 머슐랭 평론가를 그냥 돌려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브레드가 거지와 싸우면서 "너 때문에 중요한 손님을 놓쳤어!"라고 던진 말 한마디는 우리 사회 속에 병적으로 뿌리 깊이 박혀있는 계급과 신분 의식에 대한 우리 스스로에게 던지는 일갈이다. 세상에 중요한 손님이 어디 있고 덜 중요한 손님이 어디 있단 말인가? 가위 앞에선 거지나 왕족이나 똑같은 손님일 뿐이고, 조물주 앞에선 거지나 왕족이나 똑같은 인간일 뿐이다!

한바탕 웃고 덮어버리면 그만인 애니메이션 한편에 진짜 이렇게 심오한 의미가 숨겨져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숨겨진 교훈 코드들을 찾아내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점은 <브레드 이발소> 이 책은 제대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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