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화학 - 엉뚱하지만 쓸모 많은 생활 밀착형 화학의 세계
조지 자이던 지음, 김민경 옮김 / 시공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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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가습기 살균제 파동, 치약 파동, 여성 위생용품 파동 등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들의 공통점은 모두 화학제품이 가진 위험성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소비자의 건강과 직결되는 사안인 만큼 한동안 화학제품에 대한 불신이 이어지기도 했었죠. 그러나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우리는 망각의 강을 건너 여전히 화학제품에 둘러싸인 삶의 편의를 누리며 삽니다. 얼마 전 이렇게 우리네 일상 속에서 생활 화학으로 만나게 되는 이야기를 책으로 접했습니다. MIT의 가장 웃긴 화학자라는 조지 자이던의 <오늘의 화학>은 일상 속 화학물질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기록한 과학 리포트이자 과학 에세이입니다.

저자는 책을 통해 화학이라면 고교시절 수업 시간,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파지는 주기율표와 염기서열 암기 세대에게 일상에서 만나게 되는 재미있는 화학에 얽힌 주제들을 투척합니다. "치토스를 먹으면 수명이 줄어들까?", "선크림을 평생 발라도 문제가 없을까?, "커피는 과연 몸에 이로운가?"와 같은 질문들이 그것이죠. 흥미 있는 주제에 대해 화학 상식을 배워간다는 심정으로 저자가 초청하는 화학 교실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논의의 핵심은 정말 치토스 과자를 먹어야 하느냐 마느냐와 같은 단편적인 해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자는 실제로 좀 더 광범위하게 논지를 확대시킵니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화학적 방법으로 만들어진 초가공식품이나 생활 화학제품들을 먹고 쓰고 하는 문제가 가진 오류와 오해,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작업을 펼쳐 가는 것이죠.

책은 가공식품의 폐해 여부, 자외선 차단제의 안전성, 담배와 전자담배의 안전성 비교, 커피의 유해성 여부, 수영장 냄새의 원인, 우리는 언제 죽을까와 같은 세부 주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저자는 그냥 몸에 안 좋으니 먹지도 말고 쓰지도 말라는 일방통행식 주입교육 텍스트의 시전이 아니라 정말 몸에 좋은지 안 좋은지 직접 확인해보자고 독자의 손을 잡아 이끕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너무나 쉽게 접하게 되는 초가공식품, 예를 들어 가공육, 스낵류, 라면, 탄산음료, 에너지 드링크, 유제품,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포장된 빵, 설탕, 시리얼, 사탕, 초콜릿, 아이스크림, 레인지에 돌려먹는 즉석식품 등은 정말 우리 몸에 안 좋은 것일까요? 저자는 그동안 우리가 무턱대고 안 좋다고 생각했던 초가공식품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내려놓으라고 말합니다. 책의 요지는 초가공식품을 비롯한 우리가 일상 속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화학 제품에 대해 무턱대고 나쁘다고 치부해버리지 말고 좋지 않다면 무슨 이유로 그런 것인지에 대해 생각의 회로를 가동하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10장으로 구성된 책의 내용 전체를 통해 우리의 일상 속 화학 식품과 제품이 가진 진실을 과학자답게 밝힙니다. 또한 다양한 실험과 문헌을 넘나들며 가능하면 독자들이 지루해하지 않도록 재미있게 설명하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합니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 서두에서 밝힌 초가공식품에 대한 자신만의 의견을 피력합니다. 가공식품을 "가능하면 먹지말라"라는 것이죠! 그러나 가공식품이 사람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한 결과는 상대적 위험성을 내포하기에 온전한 사실이라고 말할 수 없음을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것은 이제 가공식품을 더 이상 '독'이라고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자제해달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건강을 직접적으로 해치는 수많은 진짜 독이 상존하는 세상 속에서 사탕이나 초콜릿이 독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는 것이죠. 그러니 치토스를 먹으면 수명이 줄어들까와 같은 처음의 질문은 의미가 없습니다.

질문에 대한 명확한 정답을 요구하는 교육 문화 속에서 성장해온 나 같은 사람에게는 읽는 내내 의문이 떠나지 않았던 독특한 책이었습니다. 선크림을 발라도 되는가의 질문에 "바르면 안돼!"라고 이야기해 주지 않기 때문에 그렇죠. 커피를 마셔도 되는가의 질문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대체 커피가 몸에 좋다는 것인지 아닌지를 명확하게 답변해 주지 않기에 답답함도 있습니다. 그런데 책을 좀 더 주의 깊게 읽어내려가다 보면 저자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일종의 저술 패턴이 마치 한때 유행했던 매직아이에서 숨겨진 그림이 떠오르듯 보이기 시작합니다. 소위 천재들이 모인 MIT에서 제일 웃기는 화학자라는 닉네임이 허투루 지어진 것이 아님을 확인합니다. 주제 하나를 가지고 1+1=2라는 뻔한 해답을 알려주기 위해 책을 쓴 것이 아니죠. 1+1=3이 아니고 왜 2인지에 대한 이유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책의 목적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교실에서 선생님이 던져 놓은 사고의 미끼를 두고 급우들끼리 치열한 토론과 논쟁을 펼치게끔 방목하는 교육 문화 속에서 만들어진 논리적 괴물들의 특징이죠. 갇힌 우리 안에서 얌전히 끼니때마다 주는 여물을 먹으며 키워지는 우리의 교육 문화 속에서는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아무튼 치토스를 먹어야 하는가, 선크림을 발라야 하는가, 담배와 전자 담배 중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까, 커피는 마셔도 되는가, 실내 수영장에서 계속 운동을 해도 되는가와 같은 선택의 문제는 책을 읽은 독자가 직접 이해하고 선택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합리적 인과관계인 연관성 속에서 모든 문제를 확인해보라고 조언합니다. 건강을 염려한 초가공식품의 섭취 여부를 떠나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는 오히려 우리가 건강에 미치는 전혀 다른 요인들을 너무나 쉽게 간과해버린다는 것에 있다는 것이죠. 던져진 주제에 대해 그것이 왜 잘못되었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온전히 이해하라! 그리고 다른 요인들과의 합리적 연관성을 배제하지 말고 원인을 추론해나가라! 실제와 현상에 기반을 둔 과학, 합리성과 증명에 기인한 논리가 믹스 된 개성있는 책 한 권을 소개해봤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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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6-05 0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다양한 책을 많이 읽으시네요~~~
친추 하고 갑니다아
좋은 하루 되세요~

숨비북 2021-06-05 06:04   좋아요 1 | URL
네~이것저것 잡식성으로 읽어요~ㅎㅎㅎ
저도 친추했어요..감사합니다~^^
 
에이징 브레인 - 생생한 뇌로 100세까지 살아가기
티머시 R. 제닝스 지음, 윤종석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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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개봉된 <내 머리 속의 지우개>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진행성 치매에 걸린 여자 주인공과 그녀의 곁을 지키는 남자 주인공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영화였죠. 알츠하이머 치매라는 소재를 사용하여 보는 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한 영화였는데 개인적으로 치매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 치매와 뇌 건강에 대한 흥미로운 책 한 권을 만났는데요 미국의 신경정신과 의사이며 약리학자인 '티머시 R. 제닝스'가 집필한 <에이징 브레인>입니다. 책의 부제인 '시간의 법칙에 저항하라'해서 드러나듯이 이 책은 뇌의 노화와 치매의 상관성, 건강하게 늙어가기 위한 다양한 건강 실천방법에 대한 실용서입니다. 책은 뇌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들과 건강을 증진하는 생활방식, 치매를 예방하는 검증된 방법과 같이 매우 실제적인 지침들로 가득합니다. 또한 저자의 장모가 알츠하이머 치매에 걸렸던 개인적으로 아픈 가족사를 가지고 있기에 저자의 이야기는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편안한 노년은 젊은 날에 성실했던 사람이 누리는 보상이다.

노년의 전망은 슬프고 우울한 쇠퇴가 아니라 더 나은 세상에서 누릴 만년 청춘의 희망이어야 한다.

레이 파머(미국 성직자, 시인)

 

인간이라면 모두 나이를 먹고 언젠가는 죽음의 문턱에 이르게 됩니다.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나이 듦과 죽음의 순간을 맞기 전 우리는 늙음, 즉 노화라는 신체의 지속적이며 급격한 퇴보를 경험하게 되죠. 그런데 본서에서 매우 특이할만한 내용을 만났습니다. "살아온 경험과 그간의 선택이 각자 세월을 통과하는 데 영향을 미쳐 노화-활력과 기능의 점진적 상실-를 늦추기도 하고 촉진하기도 한다."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이 먹음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육체의 늙음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서 개인마다 차이가 있다는 뜻이죠. 노화를 촉진하는 요인이 있는 반면 노화를 늦추어 건강한 노년을 맞이하게 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 저자가 책에서 말하려는 요지입니다.

책은 노화와 뇌 건강을 위한 실제적이고 실용적인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매일 적당량의 운동과 수면, 자연식 위주의 식사, 흡연과 음주의 절제, 타인에 대한 원한과 적개심 줄이기, 긍정적 마인드와 건강한 신앙의 힘 의지하기, 다양한 예술과 취미 활동, 새로운 학습 기회에 참여하기 등이 그것이죠. 우선 저자는 건강법을 벗어나서는 건강을 유지할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인간은 자연과 조화로운 삶을 살 때만이 건강한 삶과 건강한 노년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제시하는 방법 중 하나는 '용불용의 법칙'입니다. 즉 무엇이든 강해지려면 그 부분을 써야 한다는 것으로서 뇌도 자꾸 쓰면 특정 활동에 상응하는 신경세포가 활성화된다는 것입니다. 부단한 자기계발과 새로운 교육과 정신활동, 학습을 이어가는 길만이 뇌의 노화를 늦추고 치매를 예방하는 가장 중요한 지름길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평생교육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나봅니다.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책과 펜을 놓지 않는 것!

 

 

우리 사회가 고령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가장 두드러지게 보이는 질병이 바로 치매이리라 봅니다. 그런데 책을 통해 발견하는 사실은 역시 만병의 근원은 바로 스트레스라는 것이죠. 만성적 염려, 해결되지 않은 죄책감, 계속 이어지는 갈등 관계 등은 스트레스의 주요 인자입니다. 거기에 덧붙여서 매사에 부정적이고 비판적이며 용서와 이해, 관대함이 없는 마치 싸움닭 같은 사람들은 치매의 위험에 더 쉽게 노출될 수도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저자는 원한과 갈등의 관계를 용서와 화해로써 해결하라고 강조합니다. 스트레스와 자기 스스로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것이 신체 건강과 뇌의 급속한 노화를 촉진시킨다는 사실은 두고두고 기억해야 할 본서의 중요한 key입니다. 아울러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소멸되고 없어지는 것이 우리네 육체이지만 호흡하는 동안만큼은 자신의 존재로 인해 누군가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운동하고 음식을 가려먹으며 나쁜 생활 습관을 개선하는 등의 실제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음식과 관련하여 저자의 실제적 조언이 매우 큰 도움이 됩니다. 개인적으로 커피를 좋아하기에 커피가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글을 읽으니 매우 반갑기도 했고요. 그외 오메가3, 기름기 많은 생선, 강황과 후추, 호두, 녹차, 석류주스, 해바라기씨, 아몬드, 시금치, 호박, 고추, 비타민C 등의 섭취를 권장하고 반대로 인공감미료와 탄산음료 등은 백해 무익한 식품으로 섭취를 자제하라고 말합니다. 또한 책의 챕터마다 중요하게 기억해야 할 사항들을 한 번 더 요약해 주면서 실천 계획을 제시하고 있는 것도 책이 가진 장점 중 하나입니다. 건강한 노화와 치매 예방을 위하여 실천 사항들을 따로 적어서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붙여두고 매일 실천해도 좋을 것 같네요.

책의 마지막은 치매 가족을 돌보는 데 있어서 기억해야 할 세부적인 지침들입니다. 그런데 내용 중에 매우 중요한 점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바로 치매 가족을 돌보는 데 있어서 간병의 기준을 정해놓으라는 것이죠. 쉽게 말하면 치매에 걸린 부모님의 요양원 이주 시기를 결정하는 기준점입니다. "돌볼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작 필요한 간호를 제공할 능력이 없어서다."라는 사실을 명확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한 매우 객관적 지표인 것 같습니다. 알츠하이머 치매라는 불청객을 최대한 예방하며 건강하게 생활하다가 눈을 감고 싶다는 생각은 누구나 품는 소망입니다. 그렇기에 책의 내용 하나하나가 마음 깊이 와닿네요.

한때 '웰빙(well being) 열풍이 불었죠! 몸에 좋은 음식을 찾아다니고, TV 홈쇼핑에서는 갖가지 건강 보조식품 광고가 화면을 가득 채웠습니다. 골목마다 생겨난 피트니스센터와 요가, 필라테스 스튜디오를 보며 육체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건강하게 살려는 사람들의 웰빙 욕구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죠. 그리고 또 한때는 웰다잉(well dying)의 바람이 불기도 했습니다.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죽는 것도 중요하다는 인식의 전환이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답게 죽고 싶은 갈망의 표출로서 의미 없는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움직임으로 나타나기도 했죠. 그런데 나는 책을 덮으며 웰에이징(well aging)의 개념을 추가하고 싶었습니다. 누구나 피할 수 없는 노화이지만 어떻게 하면 더 잘 늙을 수 있을까의 고민이 농축된 말이죠.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늙어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강건해진다)." 고린도후서라는 신약성경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필연 신앙과의 깊은 연관성이 있는 말씀이지만 책이 강조하는 뇌 건강 및 노화의 중요성과 표면적 의미상으로는 일견 일치하는 것도 같기에 다소 불경(?)스럽지만 인용해봤습니다. 잘 먹고 잘 살다가 잘 죽는 것도 중요하지만 품위 있게 늙어가는 일도 그에 못지않게 매우 중요한 일이죠. 지금껏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실존의 문제 앞에서 시시각각 다가오는 회피할 수 없는 운명이 너무나 무섭고 두려웠기에 죽음보다 선행되는 잘 늙는 것의 문제는 쉽사리 간과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나 책의 저자는 치매라는 불청객을 떨쳐버리고 건강하게 늙어가는 웰에이징이야말로 웰빙과 웰다잉을 연결해 주는 중요한 인생의 경첩임을 강조합니다. 그렇기에 책에 가득한 실제적 조언들은 자신의 장모가 치매에 걸려 죽어가는 현장을 목격한 증인으로서 저자가 독자에게 남기는 진정 어린 충고이며 가르침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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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신뢰 - 인생의 모든 답은 내 안에 있다 현대지성 클래식 36
랄프 왈도 에머슨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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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먹을 믿겠다!"라는 걸쭉한 호언을 심심찮게 듣고 자랐기에 스스로의 힘을 믿고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겠노라는 외침이 전혀 낯설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19세기 미국의 위대한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은 인간 존재의 숨겨진 잠재력을 거침없이 끄집어 내기 위한 그만의 사상적 고찰을 몇 권의 책으로 엮었습니다. 이번에 그의 철학적 담론이 녹아져있는 짤막한 세 편의 에세이가 현대지성 출판사에서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는데요 '자기 신뢰', '운명', '개혁하는 인간'이 그것이죠.

 

자기 본성에서 나오는 법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법도 자신에게 신성할 수 없다. p19

 

이단성 교리를 가진 유니테리언파의 목회자였던 에머슨이 가진 대표적 사상은 초월주의, 범신론입니다. 에머슨의 자기 신뢰는 인간의 영혼과 자연의 합일을 지향합니다. 자연을 신의 한 형태로서 이해했으며 인간 내면 안에 이미 신적 요소가 존재하며 그것을 깨닫고 발견하며 회복하는 길만이 바른 인간성을 향해 가는 길임을 설파합니다. 그의 주장은 사회적 관습과 다양한 제약 속에서 탈피하여 올바른 인간이 되기 위해 인간 스스로가 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인간을 포함한 모든 자연 만물 속에 신성이 깃들어져 있음을 말하는 스피노자의 범신론은 에머슨의 중요한 사상적 원류의 하나로서 작용합니다.

특별히 책의 타이틀인 '자기 신뢰'는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을 가늠해볼 수 있는 작품이죠. 종교적인 문제를 떠나 하나의 사상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할 때 초월주의는 저자가 살던 당시 미국의 사회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에머슨은 급격한 산업화로 인한 미국 사회의 경제 발전과 그로 인해 증대된 부가 미국인들의 삶은 윤택하게 해주었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정신이 텅 빈 공터와 같았음을 간파했습니다. 이러한 인간들의 공허한 외적 삶에 있어서 중요한 점은 눈에 보이는 삶이 아닙니다. 인간은 자신의 이성을 뛰어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떠한 영혼의 존재(오버 소울)를 통해 궁극의 '일자'와의 합일을 통해서만 완벽하고 참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죠. 인간 이성의 극대화, 내가 신이고 신이 내가 되는 인간성의 극치와 만개!

에머슨은 온전한 신의 경지에 도달하는 자기 신뢰는 운명과 맞서 싸울 수 있음을 이야기하며 두 번째 에세이 '운명'으로 논지를 이어갑니다. 그는 운명을 제약으로 이해했습니다. 인간의 삶을 제약하는 모든 것은 운명입니다. 그러한 운명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용기를 가지는 것이며 운명은 운명으로 맞설 수 있습니다. 즉 운명에 순응하지 말라는 것이죠! 내가 신이 된 마당에 그깟 정해진 운명이 나의 가는 앞길을 막지 못하도록 하라는 일종의 격려인 것입니다.

 

운명은 성품의 결과다. p105

 

그런데 2장에서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대목이 있습니다. 인간의 운명이 성품의 결과라는 점! 사람은 자기 성품이 서로 연관된 여러 사건 속에서 구현되며 그 사건들은 자신에게서 나오고 그를 따라다니며 그러한 사건들은 성품과 함께 확대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게 되는 크고 작은 모든 사건들은 나의 성품에 기인한다는 것입니다. "이 무슨 개똥같은 소리인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는데 에머슨이 진술한 이야기의 진의를 알고 나면 무릎을 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내가 이웃과의 관계에서 선한 성품을 갖고 그들을 착한 마음으로 대하고 인간의 예의로서 선행을 베푸는 삶을 살았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들의 도움을 받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죠. 그러나 반대로 내가 악한 성품에 기인한 지독한 악행을 저지르고 살아왔다면 그것으로 인해 언젠가는 반드시 나에게도 좋지 못한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에머슨은 삶을 인과 작용의 한 조각일 뿐이라고 정의합니다. 에머슨이 동양 사상에도 깊이 심취해 있었다는 사실을 살펴볼 때 마치 불교 연기설의 한 부분을 보는 것만 같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에세이 '개혁하는 인간'은 산업화로 인해 경제적 부를 축적한 미국 사회의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텅 빈 미국인들의 영혼과 내면의 무지를 일갈합니다. 에머슨은 바른 인간이 되려고 하는 이들에게 거짓된 마음, 속이고 아첨하는 환대를 경계하라고 말합니다. 세속화된 인간들이 흘려주는 썩은 꿀을 빨아먹는 삶을 멈추라는 것이죠! 더불어 개혁하는 인간에게 있어서 그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가치는 자신의 손으로 삽을 잡고 땀을 흘림으로써 얻게 되는 그 소산물을 먹는 노동임을 강조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먹고살기 위해서 손에 흙을 묻히고 기름을 묻히는 직업과 노동의 가치를 중시하지 않는 사회 속에서 신성한 땀의 가치를 말한 것이죠! 그렇기에 에머슨의 개혁하는 인간은 무위도식하는 삶이 아니라 운명을 개척하는 인간상의 모습을 의미합니다.

 

 

세 편의 에세이 전면에 흐르는 공통적인 키워드는 영혼, 자연, 운명, 개혁입니다. 영혼이 깃든 인간의 잠재력과 내면의 힘을 신뢰함으로써 우리를 둘러싼 운명을 개척하고 개혁하는 인간만이 참된 인간상의 표본이라는 것이죠! 에머슨이 책에서 말하는 신은 정통 기독교가 말하는 그 하나님과는 거리가 멉니다. 하나님의 외양만을 갖춘 전혀 다른 신적 요소를 이야기하는 그만의 레토릭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에머슨에게 있어서 신적 존재는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인간이 신이기 때문이죠! 전통과 종교라는 허울을 벗어던지고 내 안에 존재하는 신적 요소를 극대화함으로써 내가 신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본서는 신의 모든 계시가 담겨있다고 믿는 자연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범신론적 뉴에이지 사상이 책의 저변에 촉촉이 깔려있습니다. 또한 조금만 주의 깊게 보면 영혼과 빛이라는 일루미나티적인 사상도 책의 곳곳에 스며들어 있음을 쉽사리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한 프리메이슨의 국가 정신이 반영된 미국의 개척, 독립 정신의 초석이며 사상적 배경이 된 책으로서 대표적 무신론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초월주의에 깊은 영감을 끼쳤다고 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책의 분위기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비슷함을 느낄 수 있네요. 더불어 그 유명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에머슨의 제자이며 소로의 명작 <월든>이 실제로 소로가 에머슨이 소유한 호숫가 숲속에 오두막을 짓고 살면서 집필했다고 하는 내용도 흥미롭습니다.

서두에서 말한 "내 주먹을 믿겠다!"라는 호기로운 외침 속에서 깊은 서글픔을 느끼는 것은 나 자신이 결코 내 주먹을 믿고 신뢰할 수 없는 사람임을 알기에 그렇습니다. 책을 덮으며 나는 내가 결코 나를 믿을 수 없으며 신뢰할 수 없다는 그 사실을 신뢰하는 사람임을 확인합니다. 나만큼 불완전하고 죄악으로 가득한 모순투성이 인간도 없음을 알기에 에머슨이 말하는 자기 신뢰가 나에게만큼은 해당 사항이 없음을 깨닫게 된 시간이기도 했죠. 나 자신을 볼 때마다 부딪치는 인간적 한계와 존재의 무익함을 절감하는 나에게는 에머슨이 말하는 신이 아닌 진짜 신이 필요합니다. 매일 아침 눈을 떴을 때 햇살과 함께 쇠락해져가는 내 영혼의 곤고함을 바라보며 그 어디에서도 삶의 소망과 원천을 찾을 수 없는 인간 존재의 비루함을 느낄 때 내 안에 에머슨의 신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십자가로 증명된 참된 하나님을 갈망할 뿐입니다.

인간이 신이 될 수 있고 인간의 내면 안에 녹아져 있는 자연적 본성, 신적 합일을 통해서 스스로를 신뢰하고 주어진 운명을 개혁하고 개척할 수 있다는 가르침과 주장은 역사가 깊습니다. 아울러 신비주의, 범신론적 요소가 가득한 본서의 독자 포인트는 나의 모든 상황을 뛰어넘는 초월주의에 있습니다. 이 책은 인간 능력의 극대화라는 인본주의적 주장의 극치를 맛볼 수 있는 훌륭한 저작이라고 여겨집니다. 본서를 통해 인간 존재의 무한 신뢰, 더 나은 인간상으로의 발전과 향상, 운명의 수동적 순응이 아닌 인간의 자유로운 의지로서 결정하고 맞설 수 있다는 사상 등은 인간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독특한 관점을 제시해 주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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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히틀러의 아이였습니다 - '레벤스보른 프로젝트'가 지운 나의 뿌리를 찾아서
잉그리드 폰 울하펜.팀 테이트 지음, 강경이 옮김 / 휴머니스트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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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연코 뿌리뽑힘은 인간 사회가 경험하는 가장 위험한 병폐다.

시몬 베유

 

10여 년 전 캄보디아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3주가량의 일정 중 지금도 생각하면 마음 아픈 경험 중 하나가 프놈펜에 있는 제노사이드 추모관 방문입니다. 1975년부터 79년까지 공산정권 크메르루즈가 자국민 200만 명을 학살한 킬링필드의 현장을 고스란히 보존한 곳이죠. 그런데 크메르루즈가 캄보디아를 문명 이전의 원시 농민 공산주의 국가로 회귀시키기 위해 사회 재편성의 일환으로 자행한 대대적인 지식계층의 학살과 더불어 행한 일 중의 하나가 바로 mass marriage(집단 결혼)입니다. 생전 일면식도 없는 남녀를 양쪽으로 줄지어 세워 놓고 마치 소개팅 자리에서 파트너를 고르듯 공산당이 현장에서 즉석 매칭해주는 남녀가 강제 결혼을 하는 것이죠. 이러한 해괴망측한 일들로 인해 버젓이 배우자와 아이들이 있는 기존의 가정이 빠르게 해체되어갔고, 강제적으로 맺어진 결혼 관계를 통해서 새로운 아이들이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폴 포트 정권 붕괴 이후 캄보디아 사회 전체의 가족 체계를 얽히고설킨 실타래 마냥 엉망진창으로 만든 원흉이 된 것이죠.

요 며칠 이런 정체성과 뿌리에 대한 가슴 아픈 한 사람의 회고록 겸 작은 역사서 한 권을 만났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나치에 의해 자행된 아리안족 인종 우월주의의 망령이 낳은 비극 '레벤스보른 프로젝트'의 희생자였던 '잉그리트 폰 욀하펜'여사의 책이 그것이죠. 당시 나치의 2인자였던 친위대장 '하인리히 힘러'는 북유럽 아리아인의 혈통적 우수성에 대한 병적인 집착과 망상에 사로잡혔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히틀러의 명을 받아 우등 민족인 독일의 아리아인이 전 유럽을 다스리는 나치 천년 제국을 꿈꿨는데요, 이러한 계획의 일환으로 나치 제3제국 우수 인종의 인구수를 증가시키기 위해 혈통적으로 검증된 남녀의 자유로운 성관계와 출산을 권장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힘러가 구상한 레벤스보른(생명의 샘) 프로젝트였죠. 그러나 힘러의 계산과는 달리 임신과 출산율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지 않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력 점령한 유럽의 여러 지역에서 아리안족의 외모적 특성을 가진 어린아이들을 그들의 부모로부터 강제적으로 빼앗아 자신들의 레벤스보른 프로젝트 양육시설로 데려옵니다. 그리고 독일 각지의 순수 혈통을 가진 독일인 가정에 입양시킴으로서 아이들을 완전히 '독일화'시키게 되는데요, 이 책은 바로 이렇게 나치에 의해서 부모로부터 강제 납치되어 독일인 가정에서 양육되었던 저자가 자신의 정체성과 뿌리를 찾아가는 가슴 아픈 비극의 여정을 극도의 절제된 필치로 써 내려간 책입니다.

 

총통께 아이를 드리자! p144

 

저자 잉그리트는 책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에 의해 점령된 유고슬라비아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생후 9개월 된 아기였습니다. 그녀의 원래 이름은 '에리카 마트코'. 레벤스보른 프로젝트의 아이가 된 것이죠. 다소 부유한 독일인 가정에서 자신이 독일인으로 태어나 독일인 부부의 아이로만 알고 살아왔던 그녀는 열 살 무렵 우연한 기회에 자신이 위탁 양육된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후 그녀는 자신의 출생과 어린 시절 잃어버린 기억의 퍼즐 조각을 맞추기 위한 기나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그러는 과정 중 레벤스보른 프로젝트라는 결코 믿을 수 없는 경악할만한 나치 우수 인종 프로그램의 숨겨진 내막을 알게 되죠. 나치 히틀러의 아이가 되어 잉그리트 폰 욀하펜이라는 독일인으로 살아왔던 지난 50여 년의 삶을 회고하며 잃어버린 뿌리에 대한 아픔, 정체성의 혼란이 가져다 준 슬픔, 모든 비극의 원흉인 나치 독일과 사실을 끝까지 무덤까지 가지고 간 그녀의 독일인 어머니에 대한 분노는 그녀가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의 대부분을 메우는 감정들이죠.

 

 

이 책은 한 사람의 뿌리를 찾아가는 회고록인 동시에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에 의해 자행된 천인공노할 비극의 숨겨진 현장에 대한 역사고발서이기도 합니다. 아리아인의 어휘적 의미는 '존귀한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레벤스보른 프로젝트는 히틀러가 얼마나 인종과 혈통에 대해 사이코 패스적으로 집착했는지에 대해 보여줍니다. 또한 열등 종족의 청소라는 미명 하에 600만 명이 넘는 유대인 홀로코스트, 인종적 순결과 경제적 이유로 장애와 정신질환, 불치병을 앓는 자국민 8만 명을 안락사 시킨 이른바 T4 작전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한 사실은 레벤스보른이 우등 종족의 번식이라는 정반대의 개념으로 탄생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레벤스보른 프로젝트는 어느 한쪽의 피는 더럽기에 죽여야 하고 또 다른 쪽의 피는 깨끗하기에 살려야 한다는 우생학적 모순과 극도의 광기 어린 인종적 오만함의 극치를 보여준 20세기 최대의 비극이었던 것이죠.

전후 수많은 유럽의 아이들이 나치에 의해 지워져버린 자신의 정체성과 뿌리로 인해 혼란스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내가 누구이며 나의 진짜 부모는 누구인지에 대한 존재의 근원을 흔드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 것이죠. 마치 리뷰의 서두에서 말한 캄보디아의 집단 결혼으로 인해 태어난 아이들과 기존의 아이들, 집단 결혼의 당사자들이 얽히고설켜버린 가족 관계 안에서 느끼는 감정의 그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저자는 자신의 내장을 끊어놓는 것만 같이 고통스러웠던 뿌리를 찾는 지난한 여정의 끝에서 독자의 마음을 울리는 깊은 깨달음을 선사합니다. 오랜 세월 독일인으로 살아온 자신이 유고슬라비아에서 아직까지 생존한 자신의 혈육의 흔적을 만났을 때 느낀 감정은 반가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는 것이죠. 오히려 그녀는 자신과 더 많은 시간을 '가족'이라는 끈으로 함께한 독일인 동생과의 관계에 더 큰 친밀감을 느끼는 자신을 보며 나치가 고수했던 피의 이데올로기를 무너뜨리는 깨달음을 말합니다. '피'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미치광이 한 사람이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에게 끼친 말할 수 없는 역사적 비극의 현장 속에서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저자의 감정의 곡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보는 이의 마음도 숙연해집니다. 저자는 자신이 레벤스보른 프로젝트의 아이로 키워졌지만 지금 자신의 삶은 결코 나치가 결정한 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님을 말합니다. 물리치료사로서 수많은 장애 아동의 삶을 치료하고 돌보는 지금의 잉그리트 폰 욀하펜의 삶은 그녀 자신이 선택한 것이라는 고백이 깊은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나치는 그녀를 유전학적, 우생학적 순수 혈통의 시험관 속에서 규정하려 했지만 자신의 참된 정체성은 자신의 자유로운 의지의 선택의 결과였음을 고백하는 그녀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더불어 그녀는 이 여정의 끝에서 과거를 이해할 뿐 아니라 용서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는 깨달음을 말하며 자신의 뿌리를 찾아 헤맨 15년의 기나긴 과거로의 여행의 마침표를 찍습니다.

지난 주말 영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의 유명 축구 선수가 인종 차별을 당했습니다. 지난해에는 미국에서 비무장한 흑인이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것이 21세기 문명의 정점 한가운데서 벌어지고 있는 인종 차별과 혐오의 현주소입니다. 우리 사회 깊숙이 뿌리박혀 있는 광기 어린 인종 차별주의와 혐오의 망령은 깊기만 합니다. 인간을 인간 그 자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혈통과 피부색, 생김새로 재단하고 분류하는 이 오만스럽고 야비한 인종 차별의 역겨운 행태는 언제쯤 막을 내릴까요? 저자 잉그리트가 말한 그대로 피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더 똑똑한 인종도 없고 더 멍청한 인종도 없습니다. 그것은 개별 민족성의 차이일 뿐 그것을 그렇게 분류하고 구분하는 관점 자체가 문제인 것이죠. 책은 뿌리를 찾는 모험으로 시작해 삶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되새겨보는 결말로 끝맺습니다. 더불어 20세기 중반 제대로 미친 한 사이코패스 집단에 의해 자행된 유럽 역사의 비극은 차별과 혐오가 일상이 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크나큰 경종이 되어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 반향이 너무나 크기에 이 책을 집어 들고 읽을 독자들에게는 기나긴 심호흡이 요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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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 빅터 프랭클의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가능하면 매일 같이 면도를 하게. (중략)자네들이 살아남기를 바란다면 한가지 방법밖에는 없어. 일할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야. (중략)그러니까 늘 면도를 하고 똑바로 서서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게. p50

 

면도를 하고 뺨을 문질러서 혈색이 좋게 보이도록 해야지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처절하고 절박한 삶을 향한 의지가 위의 문장처럼 녹녹히 녹아져 있는 글도 없을 겁니다. 위의 글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에 의해 인간 도살장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수감 생활을 하며 그 참혹함의 상황을 지극히 담담하고 절제된 필치로 기록하여 전 세계 독자들의 관심과 호응을 이끌어 낸 베스트셀러, '빅터 프랭클' 박사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에 나오는 한 대목입니다. 저자는 이곳에서 3년의 시간을 보내며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 속에 보이는 인간들의 삶을 향한 다양한 생각과 의지, 심리적 반응을 자신의 경험담과 적절히 혼합하여 한편의 훌륭한 정신심리학 보고서를 완성했습니다.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를 수 있는 행위 중 인류 역사상 최악이라 불리는 나치 홀로코스트의 중심부에서 벌어진 지옥의 참상을 오롯이 겪어내며 그 안에서 발견한 삶과 죽음의 의미를 기록한 책의 내용이 일상을 살아가는 독자들에게는 무척 충격적이면서도 생경하지 않을 수 없지요.

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아우슈비츠라는 지옥에서 사람들이 보인 감정의 굴곡진 변화를 정신심리학적 단계에 맞춰 설명합니다. 나치 친위대 장교의 손가락이 오른쪽이면 작업장행이고, 왼쪽이면 가스실행이라는 삶의 죽음의 갈림길에서 사람들이 보이는 감정과 반응에 대해 저자가 자신만의 다소 직업적으로 느껴지는 사유를 행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더 놀라울 따름이죠. 아무튼 아우슈비츠에 도착한 사람들의 첫 번째 반응은 믿고 싶지 않은 현실에 대한 충격입니다.

 

이 세상에는 사람의 이성을 잃게 만드는 일이 있는가 하면 더 이상 잃을 이성이 없게 만드는 일도 있다.

고트홀드 레싱, p51

 

이후 며칠이 지나면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무감각의 단계가 찾아온다고 합니다. 눈앞에서 감시병들에 의해 동료 수감자가 참혹한 린치를 당하는 장면을 목격해도 어떠한 혐오감이나 공포, 동정심도 느낄 수 없게 되는 상태인 것이죠. 저자 또한 두 시간 전에 본인과 이야기를 나누었던 동료가 눈앞에서 시체가 되어 끌려나가는 현장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먹던 수프를 맛있게 먹었다는 이해할 수 없는 경험을 나눕니다. 인간 정신의 무감각함이 가져다준 감정 둔화의 전형을 보여 준 것이죠.

 

그런데 저자는 지옥의 상황 속에서도 자신보다 더 연약한 동료에게 자신이 가진 빵 한 조각을 기꺼이 내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동료 수감자의 고혈을 뽑아 먹음으로써 자신의 안위만을 챙기는 돼지 같은 짐승들이 있었다는 기이한 사실을 이야기하며 조금 독특한 인간 이해를 밝힙니다. 즉, 수면과 식량부족, 죽음의 공포로 인한 환경이 수감자에게 특정한 행동을 유도할 수는 있지만 최종적으로 그 사람이 어떤 종류의 사람이되는 가의 문제는 결국 그 개인의 내면적인 선택의 결과이지 수용소라는 환경의 영향이 아니라는 점이죠. 이것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많은 점을 시사합니다. 어린자녀를 끔찍하게 학대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인면수심의 인간들도 결국은 그들의 내면이 살인마의 삶을 살기로 선택한 것이지 그들이 처한 환경의 영향은 아니라는 것이죠.

 

인간이 시련을 가져다 주는 상황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그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는 있다. p233

 

 

또 한 가지 저자는 매일매일 죽음을 등에 업고 살아가는 수감자들 중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발견되는 눈여겨볼 만한 사실은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과 자신의 삶에서 살아 남아야할 의미와 목적을 잊지 않았다는 매우 중요한 핵심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점이 바로 이 책의 나머지 2부와 3부의 내용을 이루는 로고테라피의 기본 개념입니다. 저자가 자신의 끔찍했던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연구의 결과를 도출해 낸 로고테라피는 미래에 환자가 이루어야 할 과제가 갖고 있는 의미에 초점을 맞춘다는 의미입니다. 지옥과 같은 아우슈비츠에서 도저히 살아나갈 수 없다는 절망 속에 자살을 선택하려는 사람들이 중도에 자살을 포기하는 이유도 바로 자신이 살아남아야 할 이유와 미래의 의미를 되새겼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일견 죽음에 이르는 병은 다름 아닌 '절망'이라고 말한 키에르케고르의 말이 생각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살아 돌아온 사람이 시련을 통해 얻은 가장 값진 체험은 모든 시련을 겪고 난 후, 이제 이 세상에서 신(神)이외에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경이로운 느낌을 갖게 된 것이다. p161

 

마침내 저자인 빅터 프랭클은 종전과 더불어 지옥에서 살아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인류가 결코 직접 체험하기를 꺼리는 끔찍한 비극 속에서 또 다른 미래의 인류를 위한 지적 유산을 잉태하고 출산했습니다. 저자가 1부의 끝에 남긴 위의 문장들은 특별히 지금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지옥에서 생환한 아우슈비츠의 생존자들은 아마도 그들에게 주어진 남은 자유의 삶 속에서 정말 신(神) 이외에는 어떤 상황도, 어떤 사람도 두렵지 않은 삶을 살다 갔으리라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아우슈비츠라는 생지옥을 경험하고 돌아온 사람들에게 사실 무엇이 두렵고, 어떤 인간들이 무서울 수 있을까요?

이 책은 죽음이라는 인간 실존이 맞부딪쳐야만 하는 궁극의 현실 앞에서 인간의 내면과 삶이 가진 진의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전라의 모습으로 까발립니다. 그러나 저자의 진술이 결코 가볍거나 천박하지 않은 이유는 매일 자신을 기다리는 죽음의 문턱 앞에서 삶의 실존과 운명의 민낯을 그가 직접 체험했기 때문이죠. 죽음과 삶의 외나무다리 위에서 그에 대한 깊은 고민과 사유로서 탄생된 본서는 매우 큰 가치를 지닙니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 속에서 자신의 삶을 너무나 쉽게(?) 내던지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말하고 있는 '삶의 의미'에 대한 개념은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저자가 본서를 통해 전하는 저작의 총체적인 메시지는 바로 살아야 할 이유와 의미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죠! 고난과 시련 앞에서 인간은 더 살고자 하는 생(生)에 대한 애착과 경향성을 가지는 존재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살아야 할 이유와 목적이 없었기에 목을 매고 수용소의 고압전류 철조망에 몸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그들에게 삶의 이유와 목적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이유와 목적을 자신의 내면 안에서 발견하지 못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삶과 죽음,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재조명해 볼 수 있었던 너무나 훌륭한 베스트 스테디셀러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역사가 존재하는 한 잊히지 않을 나치 홀로코스트와 함께 인류의 탁월한 지적 유산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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