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신뢰 - 인생의 모든 답은 내 안에 있다 현대지성 클래식 36
랄프 왈도 에머슨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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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먹을 믿겠다!"라는 걸쭉한 호언을 심심찮게 듣고 자랐기에 스스로의 힘을 믿고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겠노라는 외침이 전혀 낯설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19세기 미국의 위대한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은 인간 존재의 숨겨진 잠재력을 거침없이 끄집어 내기 위한 그만의 사상적 고찰을 몇 권의 책으로 엮었습니다. 이번에 그의 철학적 담론이 녹아져있는 짤막한 세 편의 에세이가 현대지성 출판사에서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는데요 '자기 신뢰', '운명', '개혁하는 인간'이 그것이죠.

 

자기 본성에서 나오는 법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법도 자신에게 신성할 수 없다. p19

 

이단성 교리를 가진 유니테리언파의 목회자였던 에머슨이 가진 대표적 사상은 초월주의, 범신론입니다. 에머슨의 자기 신뢰는 인간의 영혼과 자연의 합일을 지향합니다. 자연을 신의 한 형태로서 이해했으며 인간 내면 안에 이미 신적 요소가 존재하며 그것을 깨닫고 발견하며 회복하는 길만이 바른 인간성을 향해 가는 길임을 설파합니다. 그의 주장은 사회적 관습과 다양한 제약 속에서 탈피하여 올바른 인간이 되기 위해 인간 스스로가 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인간을 포함한 모든 자연 만물 속에 신성이 깃들어져 있음을 말하는 스피노자의 범신론은 에머슨의 중요한 사상적 원류의 하나로서 작용합니다.

특별히 책의 타이틀인 '자기 신뢰'는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을 가늠해볼 수 있는 작품이죠. 종교적인 문제를 떠나 하나의 사상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할 때 초월주의는 저자가 살던 당시 미국의 사회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에머슨은 급격한 산업화로 인한 미국 사회의 경제 발전과 그로 인해 증대된 부가 미국인들의 삶은 윤택하게 해주었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정신이 텅 빈 공터와 같았음을 간파했습니다. 이러한 인간들의 공허한 외적 삶에 있어서 중요한 점은 눈에 보이는 삶이 아닙니다. 인간은 자신의 이성을 뛰어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떠한 영혼의 존재(오버 소울)를 통해 궁극의 '일자'와의 합일을 통해서만 완벽하고 참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죠. 인간 이성의 극대화, 내가 신이고 신이 내가 되는 인간성의 극치와 만개!

에머슨은 온전한 신의 경지에 도달하는 자기 신뢰는 운명과 맞서 싸울 수 있음을 이야기하며 두 번째 에세이 '운명'으로 논지를 이어갑니다. 그는 운명을 제약으로 이해했습니다. 인간의 삶을 제약하는 모든 것은 운명입니다. 그러한 운명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용기를 가지는 것이며 운명은 운명으로 맞설 수 있습니다. 즉 운명에 순응하지 말라는 것이죠! 내가 신이 된 마당에 그깟 정해진 운명이 나의 가는 앞길을 막지 못하도록 하라는 일종의 격려인 것입니다.

 

운명은 성품의 결과다. p105

 

그런데 2장에서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대목이 있습니다. 인간의 운명이 성품의 결과라는 점! 사람은 자기 성품이 서로 연관된 여러 사건 속에서 구현되며 그 사건들은 자신에게서 나오고 그를 따라다니며 그러한 사건들은 성품과 함께 확대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게 되는 크고 작은 모든 사건들은 나의 성품에 기인한다는 것입니다. "이 무슨 개똥같은 소리인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는데 에머슨이 진술한 이야기의 진의를 알고 나면 무릎을 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내가 이웃과의 관계에서 선한 성품을 갖고 그들을 착한 마음으로 대하고 인간의 예의로서 선행을 베푸는 삶을 살았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들의 도움을 받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죠. 그러나 반대로 내가 악한 성품에 기인한 지독한 악행을 저지르고 살아왔다면 그것으로 인해 언젠가는 반드시 나에게도 좋지 못한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에머슨은 삶을 인과 작용의 한 조각일 뿐이라고 정의합니다. 에머슨이 동양 사상에도 깊이 심취해 있었다는 사실을 살펴볼 때 마치 불교 연기설의 한 부분을 보는 것만 같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에세이 '개혁하는 인간'은 산업화로 인해 경제적 부를 축적한 미국 사회의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텅 빈 미국인들의 영혼과 내면의 무지를 일갈합니다. 에머슨은 바른 인간이 되려고 하는 이들에게 거짓된 마음, 속이고 아첨하는 환대를 경계하라고 말합니다. 세속화된 인간들이 흘려주는 썩은 꿀을 빨아먹는 삶을 멈추라는 것이죠! 더불어 개혁하는 인간에게 있어서 그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가치는 자신의 손으로 삽을 잡고 땀을 흘림으로써 얻게 되는 그 소산물을 먹는 노동임을 강조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먹고살기 위해서 손에 흙을 묻히고 기름을 묻히는 직업과 노동의 가치를 중시하지 않는 사회 속에서 신성한 땀의 가치를 말한 것이죠! 그렇기에 에머슨의 개혁하는 인간은 무위도식하는 삶이 아니라 운명을 개척하는 인간상의 모습을 의미합니다.

 

 

세 편의 에세이 전면에 흐르는 공통적인 키워드는 영혼, 자연, 운명, 개혁입니다. 영혼이 깃든 인간의 잠재력과 내면의 힘을 신뢰함으로써 우리를 둘러싼 운명을 개척하고 개혁하는 인간만이 참된 인간상의 표본이라는 것이죠! 에머슨이 책에서 말하는 신은 정통 기독교가 말하는 그 하나님과는 거리가 멉니다. 하나님의 외양만을 갖춘 전혀 다른 신적 요소를 이야기하는 그만의 레토릭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에머슨에게 있어서 신적 존재는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인간이 신이기 때문이죠! 전통과 종교라는 허울을 벗어던지고 내 안에 존재하는 신적 요소를 극대화함으로써 내가 신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본서는 신의 모든 계시가 담겨있다고 믿는 자연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범신론적 뉴에이지 사상이 책의 저변에 촉촉이 깔려있습니다. 또한 조금만 주의 깊게 보면 영혼과 빛이라는 일루미나티적인 사상도 책의 곳곳에 스며들어 있음을 쉽사리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한 프리메이슨의 국가 정신이 반영된 미국의 개척, 독립 정신의 초석이며 사상적 배경이 된 책으로서 대표적 무신론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초월주의에 깊은 영감을 끼쳤다고 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책의 분위기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비슷함을 느낄 수 있네요. 더불어 그 유명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에머슨의 제자이며 소로의 명작 <월든>이 실제로 소로가 에머슨이 소유한 호숫가 숲속에 오두막을 짓고 살면서 집필했다고 하는 내용도 흥미롭습니다.

서두에서 말한 "내 주먹을 믿겠다!"라는 호기로운 외침 속에서 깊은 서글픔을 느끼는 것은 나 자신이 결코 내 주먹을 믿고 신뢰할 수 없는 사람임을 알기에 그렇습니다. 책을 덮으며 나는 내가 결코 나를 믿을 수 없으며 신뢰할 수 없다는 그 사실을 신뢰하는 사람임을 확인합니다. 나만큼 불완전하고 죄악으로 가득한 모순투성이 인간도 없음을 알기에 에머슨이 말하는 자기 신뢰가 나에게만큼은 해당 사항이 없음을 깨닫게 된 시간이기도 했죠. 나 자신을 볼 때마다 부딪치는 인간적 한계와 존재의 무익함을 절감하는 나에게는 에머슨이 말하는 신이 아닌 진짜 신이 필요합니다. 매일 아침 눈을 떴을 때 햇살과 함께 쇠락해져가는 내 영혼의 곤고함을 바라보며 그 어디에서도 삶의 소망과 원천을 찾을 수 없는 인간 존재의 비루함을 느낄 때 내 안에 에머슨의 신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십자가로 증명된 참된 하나님을 갈망할 뿐입니다.

인간이 신이 될 수 있고 인간의 내면 안에 녹아져 있는 자연적 본성, 신적 합일을 통해서 스스로를 신뢰하고 주어진 운명을 개혁하고 개척할 수 있다는 가르침과 주장은 역사가 깊습니다. 아울러 신비주의, 범신론적 요소가 가득한 본서의 독자 포인트는 나의 모든 상황을 뛰어넘는 초월주의에 있습니다. 이 책은 인간 능력의 극대화라는 인본주의적 주장의 극치를 맛볼 수 있는 훌륭한 저작이라고 여겨집니다. 본서를 통해 인간 존재의 무한 신뢰, 더 나은 인간상으로의 발전과 향상, 운명의 수동적 순응이 아닌 인간의 자유로운 의지로서 결정하고 맞설 수 있다는 사상 등은 인간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독특한 관점을 제시해 주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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