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기초 히브리어 - 이스라엘 언어와 문화를 한 권에 쏙! 샬롬! 히브리어
임채의 지음, 이나현 감수 / 시원스쿨닷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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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은 히브리어와 약간의 아람어로 구성되어 있다. 기독교 신자가 구약성경의 언어로 알고 있는 히브리어는 단지 소수의 목회자들에게나 허용된 언어로 이해된다.

원어 성경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쉽게 접할 수 없는 고대어에 대한 높은 장벽이 히브리어는 신학교를 가지 않으면 배울 수 없는 난공불락의 언어라는 이미지를 형성시켰다. 상형문자와 같은 자음과 깨알 같은 점과 선으로 이루어진 모음, 문장을 읽어가는 어순 또한 한국어와 반대다. 모든 것이 생소한 히브리어를 조금은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꾸며진 책이 오늘 리뷰하는 <샬롬! 기초 히브리어>다.

보통 한국의 신학교에서 목사 후보생들은 '켈리' 박사가 쓴 <성경 히브리어>라는 책을 통해서 히브리어를 공부한다. 매우 좋은 책이다. 하지만 히브리어 초심자들에게는 조금 어렵다. 구약 성경을 읽어내기 위한 신학교 교재이다 보니 실용 히브리어와는 느낌이 다르다. 이 책 <샬롬! 기초 히브리어>의 가장 큰 특징은 실용성이다. 당장 이스라엘을 여행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실생활 히브리어의 용례를 제시한다.

저자는 7년간 이스라엘에서 공부하며 실제 그 땅에서 살았다. 실용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이자 장점은 문장 위주의 학습이다. 단어와 함께 문장을 통으로 공부한다. 자음과 모음이 모여서 단어가 되고 단어들이 모여 문장을 이루며 말이 된다는 기초적인 언어의 규칙을 성실하게 따른다.

모든 언어가 동일하듯 히브리어 알파벳인 '알레프베트'를 통해 자음을 익히고 장, 단, 반모음으로 이루어진 모음 체계를 공부한다. 이후 쉬운 단어들을 암기하면서 단어들을 조합시켜 문장을 완성한다.

현재형 평서문을 베이직으로 공부하면서 히브리어의 두려움을 걷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가 초심자들을 위해 배려한 부분이다. 기초 히브리어 교재라는 책이 가진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다.

 

 

본문은 총 10장 30개의 유닛으로 구성된다. 각 유닛은 해당 학습의 주요 단어를 설명하고 문장으로 구성한다. 해당과의 뒷부분은 연습문제와 그날의 학습을 정리할 수 있는 섹션으로 채웠다.

각 파트가 끝나면 저자가 이스라엘에서 생활하며 경험한 다양한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단순한 어학책이 가지는 딱딱함과 건조함을 탈피했다. 책은 이처럼 문화와 여행을 위한 일종의 가이드북 역할까지 겸한다. 독자는 본서를 통해 언어를 공부하는 목적이 한 나라를 이해하는 전체적인 작업임을 깨닫는다.

 

 בְּרֵאשִׁ֖ית בָּרָ֣א אֱלֹהִ֑ים אֵ֥ת הַשָּׁמַ֖יִם וְאֵ֥ת הָאָֽרֶץ׃

베레시트 바라 엘로힘 엣 하샤마임 베엣 하아레츠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장 1절)

 

오래전 히브리어를 공부했다. 생경한 단어를 외우고 문장으로 조합하여 해석하는 훈련을 했다. 매주 단어 시험을 치르는 등 힘겨운 노력을 기울인 결과 띄엄띄엄 성경의 명문을 읽어내려갈 때 맛보는 그 환희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히브리어 선생님은 수업 시간마다 우리에게 히브리어의 유려함과 아름다움을 극찬하셨다. 언어는 인간을 이해하고 문화의 속살을 들여다보며 한 공동체의 세계관을 조망할 수 있는 무형의 축적된 유산이다. 유대인을 이해하고 그들의 문화와 신앙의 뿌리를 엿볼 수 있는 히브리어는 언어 자체로도 매력적이다. 하지만 성경을 원어로 만날 때의 그 벅찬 감동이 신자를 히브리어나 헬라어 등의 성경 원어로 이끈다. 내가 믿는 진리를 진리의 원천이신 그분의 목소리로 직접 듣고 싶다는 신앙적 열망!

공부했던 단어들이 홍수 속 떠밀려간 가재도구처럼 망각의 물결 속에 흔적도 없다. 히브리어 교재를 펼쳐놓고 한참을 망연자실했다. "아! 다시 시작해야 하는구나!"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고 다시 시작해야만 하기에 마음을 가다듬는다. 그리고 본서 <샬롬! 기초 히브리어>를 만난다. 실용 히브리어를 통해서 다시금 히브리어의 매력에 빠져든다.

이스라엘 여행, 사업 목적의 출장, 유학, 성지 순례, 성경 공부 등 히브리어를 공부하려고 하는 목적은 제각각이다. 하지만 이 책이 종교를 떠나서 이 아름다운 언어에 접근하려는 독자들 모두에게 제목 그대로 샬롬(평안, 평화)으로서 다가오는 시간을 선사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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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편의점 불편한 편의점 1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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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밤이 없는 불야성의 나라다. 대한민국 불야성의 대표적 아이콘은 90년대 초중반부터 생겨난 24시간 편의점이다. 없는 게 없는 작은 백화점과 같은 편의점은 이제 우리네 일상에서 결코 없어서는 안 될 편의적 실재다. 동네 구멍가게의 자본적 현현이라고 볼 수 있는 이곳의 가장 큰 장점은 이름 그대로 편리함이다. 진열대에 가지런히 줄 맞춰 세워진 상품들의 눈높이가 고객들의 소비심리를 자극한다. 소비자의 몸을 감싸는 그 돈을 배설하고 싶은 카타르시스적 소비 욕구가 샘솟는다.

그런데 편리함을 주무기로 내세우는 편의점의 명칭 앞에 '불편한'이라는 역설의 형용사가 붙은 책 한 권을 본다.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한 김호연 작가의 신작 <불편한 편의점>.

염여사는 교단에서 역사 교사로서 평생토록 교편을 잡다 은퇴한 후 청파동에서 작은 편의점을 운영하는 사장이다. 소설은 염여사가 자신의 지갑을 찾아준 서울역 노숙자 '독고'씨와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극심한 알콜중독으로 인한 치매로 자신을 잊어버린 독고씨는 그야말로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곰처럼 커다란 덩치를 하고 말까지 더듬는 이 낯선 사내가 염여사의 편의점 야간 알바로 들어오면서 편의점에는 이상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손님에게 편의를 제공해야 할 편의점이 불편한 편의점이 되어가지만 손님들에게 있어서 그 불편함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

전직 노숙자였던 독고씨가 야간 알바로 취업하면서 벌어지는 흥미로운 이야기는 소설의 씨줄이다. 알바들에게 반말을 내뱉고 돈을 집어던지는 JS(진상) 손님 응대법부터 삼각김밥을 훔치는 가출 청소년을 다루는 독고씨만의 노하우가 제법 흥미롭다. 더불어 염여사라는 따뜻한 인성의 소유자를 만난 독고씨가 조금씩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들은 소설의 날줄이다. 점입가경! 편리함이 생명인 편의점을 불편하게 만드는 독고씨만의 업무 노하우(?)와 그가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아가는 두 개의 스토리가 씨줄과 날줄로 엮여 독자의 흥미를 결말까지 견인하는 힘이 대단하다.

 

 

어느새 편의와 편리함은 우리네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치다. 가볍게 먹을 수 있는 다양한 냉동식품과 각종 도시락, 즉석식품이 매대를 가득 채운다. 시간에 쫓기고 업무에 치인다. 허기진 배를 채워줄 수 있는 편의점은 생업 전선에서 만나는 보급 상자와 같다.

그러나 편의와 편리를 추구하다 보니 우리의 삶은 이전의 아날로그적 시간이 가져다주는 마음의 여유와 삶의 진한 여운을 놓친다. 편리성은 효율성으로 치환되고 인간의 의식 속에 빠르고 편한 것만이 좋은 것이라는 인식의 오류를 심는다. 느리고 불편한 것을 감수하지 못하는 감각적 90년대생들이 90년대에 탄생한 편의점의 출현과 묘하게 오버랩되는 것도 어쩌면 우연이 아니다.

편의와 편리의 극적인 추구가 메말라 가는 인간성과 이루는 역학이 새롭지만은 않다. 그러나 작가는 이러한 편의점에 불편함이라는 역설적 요소를 대척시켰다. 공격적 마케팅으로 성과를 내는 경쟁 편의점들과는 달리 자신의 편의점을 주요 생계수단으로 삼는 알바들을 위해 적자를 각오하고 편의점을 운영하는 염여사를 바라보는 문제아 아들의 마음은 불편하다. 노숙자를 데려와 도시락을 먹이고 배고프면 언제든 무료로 도시락을 먹고 가라는 선행과 급기야는 그 노숙자를 야간 알바로 들어 앉힌 염여사의 결정이 주변인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염여사의 선행과 노숙자에서 편의점 알바라는 어엿한 사회인으로 복귀한 독고씨가 펼치는 인간미 넘치는 훈훈한 이야기들이 편리해야 할 편의점을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다. 그러나 그 불편함이 싫지만은 않다. 오히려 그 불편함은 편리함이라는 싸한 공기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 시대가 바라는 무형의 가치다. 조금 불편해도 타자의 행복을 위해 참아줄 수 있는 세상.

휴지통 찾는 것이 불편해서 먹은 것 하나 분리수거하지 못하고 공원이며 길거리에 자신의 인성을 쓰레기와 함께 싸질러 놓고 간다. 불편함을 몸서리치도록 싫어하며 기를 쓰고 밀어내는 시대. 극도의 이기주의와 편의주의가 황금비율로 믹스 된 세대 속에 던져진 불편함의 반전 미학이 마음속 잔잔한 파고를 불러일으키는 책 <불편한 편의점>.

적절한 개그 코드와 작은 감동이 혼재되어 있고, 우리의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편의점이라는 친숙한 소재가 독자의 접근성을 낮췄다. 더불어 소설의 후반부에는 노숙자 출신 야간 알바 독고씨의 진짜 정체가 드러나는 반전적 요소까지 갖췄기에 흥미를 더한다. 사라져가는 불편함의 가치를 인간성 회복이라는 방정식에 대입시켜 보기 원하는 독자라면 일독해볼 만하다. 그리고 재미는 1 + 1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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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빌리의 비참
알베르 카뮈 지음, 김진오.서정완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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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태국 방콕 빈민촌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코를 찌르는 악취, 골목마다 넘쳐나는 쓰레기와 들끓는 벌레들, 오물과 하수가 넘쳐나는 거리를 헤집고 들어간 어느 거주민의 집. 그곳에서 사람이 먹고 자며 살고 있다. 1시간 남짓 전혀 다른 세상에서의 경험은 말 그대로 패닉이다.

최근 만난 책 한 권이 10여 년 전 나의 기억을 소환한다. <카빌리의 비참>은 <이방인>과 <페스트>의 작가 '알베르 카뮈'가 기자로서 쓴 일종의 르포이자 에세이다. 1939년 프랑스령 알제리의 동북부 산악 마을 '카빌리'를 방문한 카뮈는 그곳에서 충격적이고 비참한 삶의 현장을 목도한다.

26세 청년 기자 카뮈의 눈에 비친 처참한 절대빈곤의 현장은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카빌리의 자연경관과 흑백의 모순적 조화를 이룬다. 근원적 가난은 풀뿌리로 연명하는 기아의 문제로 직결된다. 높은 인구 밀집도와 그것을 따라잡지 못하는 빈약한 곡물 생산량이 굶주림의 주요 원인이다.

독을 지닌 뿌리를 먹고 다섯 명의 아이가 죽었다. 쓰레기통에서 먹을 것을 건지기 위해서 아이들과 개가 싸운다. 오물로 뒤덮인 시궁창 마을을 방문한 카뮈의 묘사는 방콕 빈민촌에서의 나의 경험과 오버랩되어 책을 읽는 내내 역겨웠다. 골목마다 쌓인 쓰레기, 가축과 사람의 분뇨, 마을을 흐르는 생활 하수, 진창길 하수에 손을 넣고 죽은 두꺼비를 돌리며 노는 아이들... 카빌리 마을의 현실을 제대로 묘사했다.

12시간 노동에 6~10프랑(한화 약 7,200~12,000원)이라는 악질적 임금은 카빌리인들의 비참을 가속화시키는 원인이며 빈곤 악순환의 고리다. 이 정도의 일당으로 5~6명의 가족이 하루를 산다. 주민 6만 명당 의사는 단 2명! 당장 굶어죽는 판에 의료를 말해 무엇하겠는가? 열악한 보건 의료 체계는 문장 하나로 대변된다. "카빌리에서는 100명이 태어나고 50명이 죽는다." 2명중 1명이 죽는 영아 사망율 50%. 믿겨지는가? 20세기 문명화 된 프랑스령에서 보여진 통계다.

 

 

내가 카뮈를 만난 것은 그의 대표작 <이방인>을 통해서다. 사회의 제도적 틀과 관습을 거부하는 듯한 인물 '뫼르소'는 보편적 인간상의 모습과는 반대다. 올바름의 정의를 고정화된 인식의 틀로부터 주조해내는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반항이 뫼르소를 통해 표출된다. 정작 자신들은 윤리적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삶을 살면서 다른 이들의 삶에는 무거운 삶의 멍에를 지운다. 극도로 이율배반적이다.

코로나19로 재소환된 카뮈의 책 <페스트>. 전대미문의 전염병 사태 속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나와 타자를 바라보는 시각이 묘하다. 자신의 것을 내려놓을 때 인간은 인간이 된다. 폐쇄된 '오랑'시에서 발견되는 인간 실존의 민낯을 직면하는 것은 책을 읽는 내내 고문이다. 드러난 빨간 속살을 예리한 면도날로 저미는 것과 같은 끔찍함! 카뮈의 문학적 천재성을 엿본다.

 

문제를 정치적인 시각에서 인간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될 때 항상 발전은 이루어진다. p123

 

카뮈는 두 가지 문제에 천착했다. 부조리와 실존의 문제! 프랑스령 알제리 카빌리의 비참한 현실에 대해 당시 프랑스 주류 사회는 침묵했다. 그들의 무관심은 인간 존엄과 불평등의 문제를 인정하는 암묵적 동의였다. 카뮈의 눈에 비친 프랑스 지성 사회의 가증스러운 모습은 그 자체가 부조리였으며 쓰레기통을 뒤지고 엉겅퀴 줄기를 먹다가 독에 감염되어 죽어가야만 하는 탈출구 없는 빈곤의 미로에 갇힌 카빌리인들의 삶 또한 부조리였다.

아울러 부조리한 삶은 먹고살아야 하는 인간 실존의 근원적 문제로 귀결된다. 타자에 대한 이기적이고 무관심한 삶의 태도는 부패한 인간 실존의 전형이다. 부조리한 삶을 자신들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체념하게 만드는 심정적 자살은 빈곤의 실존이다. 인간과 빈곤의 실존 모두를 끌어안으려 했던 알제리 태생 청년 기자 카뮈의 도덕적 준거와 가치 기준은 이후 집필된 그의 작품 <이방인>과 <페스트>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카빌리인들은 누구인가? 아프가니스탄 난민 문제가 연일 뉴스에 올라온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이 진한 책이다. 출판의 시기가 시의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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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복수 주식회사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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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함과 응어리진 원한을 누군가가 대신 복수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누구나 한 번쯤 이러한 일탈적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이러한 복수 대행을 위한 회사가 있다. 아! 물론 실제 회사는 아니고 스웨덴의 밀리언셀러 작가 '요나스 요나손'의 머릿속에서 잉태하여 책으로 탄생한 회사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명성으로 이미 한국에 폭넓은 찐팬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는 요나손 작가가 그의 웃음 폭탄을 가득 실은 신작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를 가지고 돌아왔다. 스톡홀름의 야비한 미술품 거래상 '빅토르', 그의 전 부인 '엔뉘'와 빅토르가 내버린 아들 '케빈 음바티안' 그리고 그의 양아버지이며 마사이 부족의 치유사 '올레 음바티안',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의 대표 '후고'가 펼치는 기상천외한 복수극이 시작된다.

엔뉘와 케빈은 사리사욕을 위해 자신들을 내쳐버린 탐욕스러운 빅토르에 대해 복수를 꿈꾼다. 이들은 자신들의 복수를 위해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 CEO 후고에게 손을 내민다. 책은 이러한 그들의 계획에 우연찮게 휘말린 후고가 표현주의 미술의 거장 '이르마 스턴'의 값을 매길 수 없는 그림 두 점을 둘러싸고 교활한 미술품 거래상 빅토르와 벌이는 물고 물리는 에피소드가 주를 이룬다.

처음에는 빅토르의 사회적 명성에 사망선고를 가하기 위해서 시작된 복수였다. 그러나 빅토르에게 미끼로서 던져 놓은 이르마 스턴의 억대 가치를 지닌 작품 두 점이 위작이 아닌 진품임이 밝혀지면서 복수가 아니라 오히려 빅토르에게 선물을 하게 생겼다. 거기에 더해 케빈의 양아버지인 마사이족 전사이며 치유사 올레 음바티안의 정신없는 등장으로 이야기는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데...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왜 사람들이 요나스 요나손에 열광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만드는 책이 주는 몰입감과 책 자체의 흡인력이 대단하다. 복수라는 키워드를 녹여내기 위해 작품 속에 다양한 역사적 장치를 설치했다. 그중 한 가지가 실존했던 표현주의 대가 이르마 스턴과 그녀의 작품이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통해서도 요나손 작가가 굴곡진 20세기 근현대사의 단면을 소설 속에 잘 투영시키고 녹여내었음을 본다. 그렇기에 이번 작품 역시 역사적 팩트와 소설이라는 픽션을 적절하게 조화시킨 한편의 마블링과 같다.



역자는 그의 작품 속 대표적 키워드가 웃음과 자유라고 꼽았다. 나는 여기에 더해 우연성을 첨가한다. 짜인 필연성을 거부하는 작가의 독특한 집필 방향은 반대로 우연성을 향해 열려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얌체공과 같이 그가 풀어놓는 이야기 또한 예측불가다. 다소 필연성이 우세해 보이는 세상 속에서 우연성은 말 그대로 이단적이다. 우연성은 필연성으로 꽉 막힌 세상 속에서 우리의 숨통에 숨 쉴 여유를 허락한다. 물론 더 숨 막히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기에 우연성은 가치 중립적이다.

요나손은 복수라는 키워드를 이 필연성과 우연성의 선상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관점으로 재단했다. 야비한 미술품 거래상 빅토르가 장인의 유산 상속자인 자신의 아내 엔뉘를 무일푼으로 내쳐버린 것은 필연적이다. 그러나 이후 엔뉘와 케빈의 만남은 우연적이며 후고와 함께 빅토르에 대한 복수를 실행하게 된 일은 또한 필연적이다. 이처럼 우리네 삶 또한 필연성과 우연성이 혼재되어 있다. 필연성의 수레바퀴에 눌려 실망할 필요도 없고 우연성의 날개 위에 올라탔다고 쾌재를 부를 이유도 없다.

이어서 생각해 볼 메시지! 복수는 진짜 달콤한가? 본성 상 타락한 인간은 복수를 달콤하게 여긴다. 복수는 순정 꿀과 같다. 소설 속 후고가 차린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에 고액의 비용을 마다않는 복수 청탁 의뢰가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복수가 마냥 달콤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입에는 달지만 속에는 쓰다. 마사이 전사며 치유사인 올레 음바티안의 난데없는 등장으로 이야기가 점입가경으로 빠져드는데 여기서 복수가 결코 100% 순정 꿀이 아님을 직감한다.

잔인함이나 잔혹함의 요소는 없다. 오히려 요나손 작가 특유의 웃음과 개그 코드가 지뢰밭처럼 여기저기 깔려있다. 그러나 요나손이 밀리언셀러 작가의 자격이 되는 이유는 폭소와 실소의 가면 뒤에 감춰진 역사와 사회, 인간 본성의 내면을 관통하는 예리한 통찰이다. 역사와 시대를 초월해 복수라는 테제는 인간의 내면에서 사라진 적이 없다. 사회와 법규라는 울타리 속 길들여진 맹수일 뿐 존재는 여전하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언제든 울타리를 열어 내면의 맹수를 풀어놓고 싶은 욕구가 누구에게나 있다. 요나손은 인간의 근원적 앙갚음의 욕구를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시연한다는 작가적 상상력을 지면 위에 눌러썼다. 그리고 그것을 달콤함으로 포장했다. 거부감 없이 스위트하게!

위법이 아닌 이상 타인을 향한 복수가 달콤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린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가 요나손 작가에게 또 한 번의 달콤한 성과를 가져다줄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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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북쪽 - 한국의 땅과 사람에 관한 이야기 대한민국 도슨트 9
현택훈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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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박이가 쓰고, 입도민이 읽는다!"

 

10여 년 전 4개월간의 제주 생활이 내가 제주도와 첫 인연을 맺은 시작이다. 다소곳한 새색시의 수줍음을 간직한 듯 태곳적 신비를 머금은 제주도는 내게 터전 이상의 곳이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원초적 매력의 땅. 이런 이끌림이 나와 우리 가족을 이곳 제주도, 그중에서도 제주 북쪽에 자리 잡게 했다.

이제는 각종 SNS로 인해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제주도 곳곳의 핫플레이스들이 세상에 드러났다. 그러나 진짜 제주를 만나려면 눈을 돌려야 한다. 관광객의 발길이 닿지 않는 작은 깡촌 바닷가 마을의 구멍 난 현무암 돌담길을 걸어보았는가? 시간이 멈춰진 듯 온몸을 휘감는 고즈넉함에 몸서리가 쳐진다. 깡촌 포구에 앉아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바라볼 때 찾아오는 평화로움과 고요함이 낯설다.

이렇듯 리얼 200% 제주의 속살을 마주할 수 있는 특권은 먹고 마시며 진탕 소비만하고 돌아가는 관광에는 없다. 얼마 전 화장기 없는 제주의 민낯을 마주하게 만드는 책 한 권을 만났다. <제주 북쪽>은 제주 토박이가 쓴 진짜 제주에 관한 이야기다. 서점 매대에 가득한 제주도 관광 가이드북과는 결이 다르다. 한 지역을 바로 알고 싶다면 먼저 그 땅의 사람들과 그들이 살아온 삶의 발자취를 배우는 것이 좋다. 이 책은 바로 제주도가 품은 사람과 삶에 관한 일종의 인문 에세이다.

 

 

한라산을 중심으로 제주의 동서남북 중 북쪽 5개 동네, 내가 사는 고장의 숨은 이야기가 사뭇 친숙하고 정겹다. 저자는 단순 여행 정보가 아닌 땅과 사람 이야기를 푼다. 아름다운 제주도 이면에 숨겨진 아픔의 역사와 그것을 오롯이 한 몸에 짊어지고 억척스럽게 살아온 이들의 체취가 깊고 아리다.

제주의 중심 북쪽 지역 28개의 다양한 이야기가 어우러져있다. 저자는 4.3으로부터 어렵사리 말을 꺼낸다. 진짜 제주도를 알고 싶다면 먼저 4.3과 마주해야 한다. 천혜의 관광지로서의 제주에 새겨진 4.3의 끔찍한 기억을 제주시 봉개동 4.3 공원에서 만난다. 이념과 색깔 다툼의 틈바구니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무참히 죽임 당했다. 불과 70여 년 전 눈부시게 아름다운 제주의 하늘 아래서 일어난 일이다. 제주도 전역에 4.3의 핏물이 고여있다.

'다크 투어리즘'이라고 들어봤는가? 아우슈비츠나 킬링필드와 같은 제노사이드 현장을 방문하는 프로그램이다. 4.3의 비극을 품은 제주에도 있다. 슬픔은 묻어둘수록 저며온다. 아픔을 직시할 때 회복과 상생의 활로가 보인다. 70여 년 전 눈부시게 아름다운 제주에서 자행된 인간성의 끝단을 마주할 때에야 만 지금의 빛나는 제주를 누릴 자격이 생긴다. 제주항, 금오름, 진아영 할머니 삶터, 곤을동 등의 이야기들이 독자를 4.3이라는 삭힌 비애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그러나 어둡고 슬픈 이야기 일색은 아니다. 저자는 종종 현지인들이 자주 가는 맛집에 대한 질문을 받는단다. 그런데 토박이들은 관광객 맛집은 꺼린단다. 비싸고 화려한 곳은 찐 맛집이 아니라는 반증이다. 진정한 토박이 맛집에 관한 이야기가 다수 등장하기에 입도민으로서 반가웠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서문시장 삼복당을 만난다. 50년간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제주의 명물 빵집이다. 지금도 빵 한 개의 가격이 500원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동문시장의 빙떡, 오메기떡, 모닥치기 떡볶이, 상외떡, 수애라고 불리는 보성시장의 베지근한 순대 국밥, 제주도에서 가장 오래된 헌책방인 책밭서점 등 이야기 속 사람 냄새가 구수하다.

 

 

저자는 한 권의 책을 통해 제주 북쪽이 간직한 천혜의 관광지와 역사, 신화와 설화,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를 골고루 버무렸다. 제주도는 삼성 건국 신화에서 보이듯 외부에서 온 사람들과 문물을 받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어우러져 공생했다. 제주도의 텃새 문화라고 알려진 '괸당'도 시간 속 어우러짐 속에서 볼 때 외지인들까지 괸당으로 받아주는 넉넉한 인심의 확장을 포함한다.

고려 시대 말을 관리하는 원나라 목호, 조선 시대 유배인들, 6.25 피난민들, 21세기 입도민들까지... 제주도는 오는 사람을 막지 않고, 가는 사람을 붙잡지 않는다.

"먹엄직이 살암직이" 어떻게든 살려고만 하면 살 수 있다는 제주 어르신들의 말이란다. 나는 아직 여기 사람들에게 새댁이라고 불리는 입도민이다. 배 타고 가다가 폭풍 만나 죽어도 상관없기에 극악한 죄인들을 유배 보냈던 조선 시대 유배지에서 나름 잘 적응하고 살아가고 있다. 낙향해서 뭐 먹고살지 하는 걱정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지만 막상 내려와보니 정말로 먹엄직이 살암직하다.

내가 발붙이고 살아가는 제주 북쪽의 숨결을 토박이의 입을 통해 직접 전해 들을 수 있어 반가웠다. 어디서도 쉽게 들을 수 없는 제주의 숨은 이야기들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 한편을 울린다. 제주도를 여행하며 '찐 제주'를 만나고 싶은 독자들에게 캐리어에 이 책 한 권 담아 가길 권한다.

슬픔과 환희가 공존하는 신비의 땅, 제주도는 오늘도 말없이 고요하다. 오늘 유난히 보룸이 많이 분다. 일어나 바당 보룸이나 맞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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