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빌리의 비참
알베르 카뮈 지음, 김진오.서정완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21년 9월
평점 :
품절


 

2011년 10월, 태국 방콕 빈민촌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코를 찌르는 악취, 골목마다 넘쳐나는 쓰레기와 들끓는 벌레들, 오물과 하수가 넘쳐나는 거리를 헤집고 들어간 어느 거주민의 집. 그곳에서 사람이 먹고 자며 살고 있다. 1시간 남짓 전혀 다른 세상에서의 경험은 말 그대로 패닉이다.

최근 만난 책 한 권이 10여 년 전 나의 기억을 소환한다. <카빌리의 비참>은 <이방인>과 <페스트>의 작가 '알베르 카뮈'가 기자로서 쓴 일종의 르포이자 에세이다. 1939년 프랑스령 알제리의 동북부 산악 마을 '카빌리'를 방문한 카뮈는 그곳에서 충격적이고 비참한 삶의 현장을 목도한다.

26세 청년 기자 카뮈의 눈에 비친 처참한 절대빈곤의 현장은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카빌리의 자연경관과 흑백의 모순적 조화를 이룬다. 근원적 가난은 풀뿌리로 연명하는 기아의 문제로 직결된다. 높은 인구 밀집도와 그것을 따라잡지 못하는 빈약한 곡물 생산량이 굶주림의 주요 원인이다.

독을 지닌 뿌리를 먹고 다섯 명의 아이가 죽었다. 쓰레기통에서 먹을 것을 건지기 위해서 아이들과 개가 싸운다. 오물로 뒤덮인 시궁창 마을을 방문한 카뮈의 묘사는 방콕 빈민촌에서의 나의 경험과 오버랩되어 책을 읽는 내내 역겨웠다. 골목마다 쌓인 쓰레기, 가축과 사람의 분뇨, 마을을 흐르는 생활 하수, 진창길 하수에 손을 넣고 죽은 두꺼비를 돌리며 노는 아이들... 카빌리 마을의 현실을 제대로 묘사했다.

12시간 노동에 6~10프랑(한화 약 7,200~12,000원)이라는 악질적 임금은 카빌리인들의 비참을 가속화시키는 원인이며 빈곤 악순환의 고리다. 이 정도의 일당으로 5~6명의 가족이 하루를 산다. 주민 6만 명당 의사는 단 2명! 당장 굶어죽는 판에 의료를 말해 무엇하겠는가? 열악한 보건 의료 체계는 문장 하나로 대변된다. "카빌리에서는 100명이 태어나고 50명이 죽는다." 2명중 1명이 죽는 영아 사망율 50%. 믿겨지는가? 20세기 문명화 된 프랑스령에서 보여진 통계다.

 

 

내가 카뮈를 만난 것은 그의 대표작 <이방인>을 통해서다. 사회의 제도적 틀과 관습을 거부하는 듯한 인물 '뫼르소'는 보편적 인간상의 모습과는 반대다. 올바름의 정의를 고정화된 인식의 틀로부터 주조해내는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반항이 뫼르소를 통해 표출된다. 정작 자신들은 윤리적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삶을 살면서 다른 이들의 삶에는 무거운 삶의 멍에를 지운다. 극도로 이율배반적이다.

코로나19로 재소환된 카뮈의 책 <페스트>. 전대미문의 전염병 사태 속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나와 타자를 바라보는 시각이 묘하다. 자신의 것을 내려놓을 때 인간은 인간이 된다. 폐쇄된 '오랑'시에서 발견되는 인간 실존의 민낯을 직면하는 것은 책을 읽는 내내 고문이다. 드러난 빨간 속살을 예리한 면도날로 저미는 것과 같은 끔찍함! 카뮈의 문학적 천재성을 엿본다.

 

문제를 정치적인 시각에서 인간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될 때 항상 발전은 이루어진다. p123

 

카뮈는 두 가지 문제에 천착했다. 부조리와 실존의 문제! 프랑스령 알제리 카빌리의 비참한 현실에 대해 당시 프랑스 주류 사회는 침묵했다. 그들의 무관심은 인간 존엄과 불평등의 문제를 인정하는 암묵적 동의였다. 카뮈의 눈에 비친 프랑스 지성 사회의 가증스러운 모습은 그 자체가 부조리였으며 쓰레기통을 뒤지고 엉겅퀴 줄기를 먹다가 독에 감염되어 죽어가야만 하는 탈출구 없는 빈곤의 미로에 갇힌 카빌리인들의 삶 또한 부조리였다.

아울러 부조리한 삶은 먹고살아야 하는 인간 실존의 근원적 문제로 귀결된다. 타자에 대한 이기적이고 무관심한 삶의 태도는 부패한 인간 실존의 전형이다. 부조리한 삶을 자신들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체념하게 만드는 심정적 자살은 빈곤의 실존이다. 인간과 빈곤의 실존 모두를 끌어안으려 했던 알제리 태생 청년 기자 카뮈의 도덕적 준거와 가치 기준은 이후 집필된 그의 작품 <이방인>과 <페스트>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카빌리인들은 누구인가? 아프가니스탄 난민 문제가 연일 뉴스에 올라온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이 진한 책이다. 출판의 시기가 시의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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