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복수 주식회사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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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함과 응어리진 원한을 누군가가 대신 복수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누구나 한 번쯤 이러한 일탈적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이러한 복수 대행을 위한 회사가 있다. 아! 물론 실제 회사는 아니고 스웨덴의 밀리언셀러 작가 '요나스 요나손'의 머릿속에서 잉태하여 책으로 탄생한 회사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명성으로 이미 한국에 폭넓은 찐팬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는 요나손 작가가 그의 웃음 폭탄을 가득 실은 신작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를 가지고 돌아왔다. 스톡홀름의 야비한 미술품 거래상 '빅토르', 그의 전 부인 '엔뉘'와 빅토르가 내버린 아들 '케빈 음바티안' 그리고 그의 양아버지이며 마사이 부족의 치유사 '올레 음바티안',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의 대표 '후고'가 펼치는 기상천외한 복수극이 시작된다.

엔뉘와 케빈은 사리사욕을 위해 자신들을 내쳐버린 탐욕스러운 빅토르에 대해 복수를 꿈꾼다. 이들은 자신들의 복수를 위해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 CEO 후고에게 손을 내민다. 책은 이러한 그들의 계획에 우연찮게 휘말린 후고가 표현주의 미술의 거장 '이르마 스턴'의 값을 매길 수 없는 그림 두 점을 둘러싸고 교활한 미술품 거래상 빅토르와 벌이는 물고 물리는 에피소드가 주를 이룬다.

처음에는 빅토르의 사회적 명성에 사망선고를 가하기 위해서 시작된 복수였다. 그러나 빅토르에게 미끼로서 던져 놓은 이르마 스턴의 억대 가치를 지닌 작품 두 점이 위작이 아닌 진품임이 밝혀지면서 복수가 아니라 오히려 빅토르에게 선물을 하게 생겼다. 거기에 더해 케빈의 양아버지인 마사이족 전사이며 치유사 올레 음바티안의 정신없는 등장으로 이야기는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데...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왜 사람들이 요나스 요나손에 열광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만드는 책이 주는 몰입감과 책 자체의 흡인력이 대단하다. 복수라는 키워드를 녹여내기 위해 작품 속에 다양한 역사적 장치를 설치했다. 그중 한 가지가 실존했던 표현주의 대가 이르마 스턴과 그녀의 작품이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통해서도 요나손 작가가 굴곡진 20세기 근현대사의 단면을 소설 속에 잘 투영시키고 녹여내었음을 본다. 그렇기에 이번 작품 역시 역사적 팩트와 소설이라는 픽션을 적절하게 조화시킨 한편의 마블링과 같다.



역자는 그의 작품 속 대표적 키워드가 웃음과 자유라고 꼽았다. 나는 여기에 더해 우연성을 첨가한다. 짜인 필연성을 거부하는 작가의 독특한 집필 방향은 반대로 우연성을 향해 열려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얌체공과 같이 그가 풀어놓는 이야기 또한 예측불가다. 다소 필연성이 우세해 보이는 세상 속에서 우연성은 말 그대로 이단적이다. 우연성은 필연성으로 꽉 막힌 세상 속에서 우리의 숨통에 숨 쉴 여유를 허락한다. 물론 더 숨 막히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기에 우연성은 가치 중립적이다.

요나손은 복수라는 키워드를 이 필연성과 우연성의 선상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관점으로 재단했다. 야비한 미술품 거래상 빅토르가 장인의 유산 상속자인 자신의 아내 엔뉘를 무일푼으로 내쳐버린 것은 필연적이다. 그러나 이후 엔뉘와 케빈의 만남은 우연적이며 후고와 함께 빅토르에 대한 복수를 실행하게 된 일은 또한 필연적이다. 이처럼 우리네 삶 또한 필연성과 우연성이 혼재되어 있다. 필연성의 수레바퀴에 눌려 실망할 필요도 없고 우연성의 날개 위에 올라탔다고 쾌재를 부를 이유도 없다.

이어서 생각해 볼 메시지! 복수는 진짜 달콤한가? 본성 상 타락한 인간은 복수를 달콤하게 여긴다. 복수는 순정 꿀과 같다. 소설 속 후고가 차린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에 고액의 비용을 마다않는 복수 청탁 의뢰가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복수가 마냥 달콤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입에는 달지만 속에는 쓰다. 마사이 전사며 치유사인 올레 음바티안의 난데없는 등장으로 이야기가 점입가경으로 빠져드는데 여기서 복수가 결코 100% 순정 꿀이 아님을 직감한다.

잔인함이나 잔혹함의 요소는 없다. 오히려 요나손 작가 특유의 웃음과 개그 코드가 지뢰밭처럼 여기저기 깔려있다. 그러나 요나손이 밀리언셀러 작가의 자격이 되는 이유는 폭소와 실소의 가면 뒤에 감춰진 역사와 사회, 인간 본성의 내면을 관통하는 예리한 통찰이다. 역사와 시대를 초월해 복수라는 테제는 인간의 내면에서 사라진 적이 없다. 사회와 법규라는 울타리 속 길들여진 맹수일 뿐 존재는 여전하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언제든 울타리를 열어 내면의 맹수를 풀어놓고 싶은 욕구가 누구에게나 있다. 요나손은 인간의 근원적 앙갚음의 욕구를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시연한다는 작가적 상상력을 지면 위에 눌러썼다. 그리고 그것을 달콤함으로 포장했다. 거부감 없이 스위트하게!

위법이 아닌 이상 타인을 향한 복수가 달콤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린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가 요나손 작가에게 또 한 번의 달콤한 성과를 가져다줄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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