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 탐정 숨은 그림 색칠놀이 엉덩이 탐정 색칠놀이 2
서울문화사 편집부 지음 / 서울문화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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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연호케하는 엉덩이 탐정의 숨은 그림과 색칠놀이가 접목된 놀이워크북 제 2탄이 돌아왔습니다. 83개의 엉덩이 탐정 애니메이션의 다양한 캐릭터 스티커가 수록된 본서가 아이로 하여금 흥분을 감추지 못하게 하네요. 책의 구성은 크게 숨은 그림 찾기와 캐릭터 색칠하기 그리고 특별 게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책을 펼치면 한 페이지는 엉덩이 탐정과 조수 브라운 그리고 말티즈 서장님과 그외 애니메이션 속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캐릭터들을 색칠하고 반대쪽 페이지에서는 책이 제시하는 아이템들을 찾아내는 미션이 주어집니다.

사실 너무나 쉬운 문제이기에 아이들에게 있어 미션을 수행하는 일에는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책은 아이들에게 미션 수행의 부담보다는 놀이 콘텐츠를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색칠과 함께 아이템 찾기 미션의 중간에는 첫번째 특별 게임이 등장합니다. 이름하여 <붕어빵 얼굴 이모티콘>이라는 게임인데 스티커 붙이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것 아시나요? 아이들은 다 똑같은 것 같아요. 뭔가 떼어서 붙이는 것에 흥미를 느끼는 아이들은 스티커, 그것도 엉덩이 탐정이라는 최애 캐릭터에 등장하는 스티커를 보면 흥분한답니다. 다양한 등장인물의 얼굴이 그려진 스티커를 떼어서 해당 그림판에 붙이고 같은 얼굴끼리 선으로 연결합니다. 그런데 이때 아이들의 집중력을 유발시키는 문제가 등장하죠! 그것은 캐릭터 얼굴 표정들이 미묘하게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얼굴만 보고 "엉덩이 탐정이니까, 브라운이니까"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면서 줄을 그으면 틀리게 된다는 것이죠.

후반부에는 나머지 숨은 그림 찾기와 색칠놀이가 수록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엉덩이 탐정 애니메이션의 깨알 재미를 선사해주는 깜찍한 조연 캐릭터들이 등장해서 더 큰 흥미를 유발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아이와 제가 꼽는 이 책의 백미는 바로 특별 게임 2 입니다. <퍼즐 스티커 게임> 으로 명명된 이 미션은 작은 아이템들이 그려진 스티커를 퍼즐 맞추듯이 붙여나가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스티커를 해당 그림판에 색깔과 그림을 보며 맞추어서 붙이는 작업을 열심히 하다보면 어느덧 신기한 일이 생깁니다. 그것은 바로 위의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이 2페이지에 걸친 그림판에 뭔가 글씨와 같은 형상이 드러나기 시작한다는 것이죠. 보이시나요? 아이가 열심히 붙이고 나서 제게 뭐라고 써있는지 읽어보라고 했을 때 사실 저는 글씨를 한번에 읽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책을 멀찌감치 뒤로 미루고 보았을 때 신기하게도 다섯글자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그 글자는 다름아닌 '엉덩이 탐정'

어렵지 않은 미션들을 재미있게 풀어가면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이책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되요. 숨은 그림을 찾으면서는 관찰력과 주의집중력이 요구되고, 직접 스티커를 떼며 색연필을 들고 캐릭터를 색칠하는 등의 모든 활동들은 아이들의 손가락 소근육 발달과 협응력 증진에도 많은 도움이 되리라 여겨집니다.

그리고 마지막 3번째 특별 게임 또한 말그대로 특별합니다. <사라진 캐릭터 이름 찾기>라는 게임인데 한면에는 엉덩이 탐정 애니메이션 속 조연과 단역 캐릭터들이 빼곡합니다. 아이가 TV 속 엉덩이 탐정 애니메이션을 넋을 잃고 시청할 때 저 또한 함께 시청한 적이 있음에도 사실 저는 그곳에 등장하는 조연 캐릭터들의 이름은 거의 모릅니다. 주인공인 엉덩이 탐정과 조수 브라운, 말티즈 서장, 방울이 정도죠. 그렇기에 이번 특별 게임은 엉탐의 조연과 단역 캐릭터들의 이름까지도 외우고 있는가의 여부를 통해 진정한 엉탐 매니아를 가릴 수 있는 미션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아이들의 관심과 암기력 향상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본서의 마지막을 장식하네요.

여전히 코로나19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 아이들에게 작지만 큰 선물이 될 수 있었던 책이었습니다. 이제 여름방학이 다가옵니다. 집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질 우리 아이들에게 TV 속 인기 애니메이션의 주인공들을 소환하여 부모님과 함께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본서의 가치가 요즘 시기만큼 크게 다가오는 때가 없는 것 같아요. 자! 거두절미하고 지금 당장 인터넷서점 장바구니에 본서를 살포시 담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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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수레바퀴 아래서 (리커버 한정판, 패브릭 양장) - 헤르만 헤세 탄생 140주년 기념 초호화 패브릭 양장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헤르만 헤세 지음, 이순학 옮김 / 더스토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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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가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있는 선택권이 없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이다. 이 세상이 그런 것 같다. 사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 몇이나 될까? 부모님의 기대와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떠밀려 운명이라는 강물의 흐름 속에 자신을 내어던진 채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다수 아닐까? 몇일 전 이처럼 인간 주체성에 대한 상념을 엿보게 만드는 책 한권을 만났다. 독일의 대문호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는 그가 본인의 성장기를 바탕으로 구성한 자전적 소설이다.

당시 근대 독일의 교육문화와 사회현실을 간접적으로 비꼬는 사회 풍자적 요소가 적지 않게 가미되어 있는 본서에는 주인공 소년 '한스 기벤라트'가 삶과 현실 속에서 느끼는 내면의 갈등과 괴리를 매우 담담하고 절제된 필치로 그려져있다. 더불어 헤세는 본인의 성장기에서 느꼈던 당시 독일 사회의 모순과 자신이 느낀 인생의 참의미에 대한 물음을 책의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를 통해 조용하게 투사시킨다. 어찌보면 사회적 관습과 기성 사회가 요구하는 암묵적 규정에 의해 몰개성화되어가는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이 책은 매우 큰 동질감으로 다가온다.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는 독일 슈바르츠발트의 작은 시골마을 라틴어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다. 머리좋고 성실하며 재능있는 학생인 한스는 그의 마을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존재다. 대부분이 평범한 소시민들로 구성된 마을에서 한스는 몇주 후 마을과 학교를 대표해서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리는 주(州)신학교 시험을 치를 예정이다. 전국에서 모여드는 수재들이 경쟁하여 소수의 학생들이 신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신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은 그곳에서 무상으로 8~9년간 공부를 한 후 교구 목사 또는 교수라는 국가에서 주어지는 매우 안정적인 직업을 얻게 된다.

국가로부터 장학금을 받아서 공부하고 졸업 후에는 역시 국가로부터 안정적인 월급을 받으며 일 할 수 있는 교구 목사나 교수라는 편안한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은 당시 독일 사회에서 똑똑한 젊은이들에게는 매우 매력적인 장미빛 인생의 기회였다. 치열한 경쟁을 뚫기 위해 한스는 벅찬 학업을 감당하며 시험을 준비했다. 아버지와 학교의 교장 선생님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은 채 시험에 응했고, 결과는 2등으로 합격. 이윽고 기쁨과 설레임을 안고 시작한 신학교에서의 시간들이 시작되는데...

 

 

헤세는 <호밀밭의 파수꾼>의 작가 샐런저처럼 대놓고 현실 사회의 모순을 꼬집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간접적으로 함의된 메타포 하나하나가 더 소름돋는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의 기대와 부러움의 시선들이 어느 새 한스의 어깨를 짙눌렀다. 우수한 성적을 유지함으로서 마을과 학교, 가족의 명예를 드높여야하며 나아가서는 안정적인 직장과 높은 사회적 지위를 쟁탈해야 한다는 외부적인 요구와 한스 본인의 내면에 숨겨진 야망이 한데 어우러져서 급기야는 전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변해가는 주인공의 모습이 안쓰럽기만 하다.

한스는 신학교에서 만난 개방적 정신의 소유자이면서 룸메이트인 '하일러'와 어울리며 변해간다. 이로인해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던 한스의 성적이 떨어지자 신학교 교장 선생님께서 한스를 불러서 면담을 한다.

"...기운이 빠져서는 안 돼. 그렇게 되면 수레바퀴 아래에 깔리고 말 거야."

책을 읽으며 줄곧 책의 제목에 대해서 궁금했던 차에 위의 문장을 통해 수레바퀴의 진의를 깨닫게 된다. 교장 선생님이 위로와 격려랍시고 던진 말 속에 제시된 수레바퀴는 바로 이 세상을 가리킨다. 이 세상은 거대한 수레바퀴이다. 세상이라는 수레바퀴 위에 앉아 수레바퀴를 굴리는 소수의 사람이 있는 반면 그 수레바퀴 아래에서 그 위로 올라타지 못한 채 오히려 수레바퀴에 깔리는 다수의 인간이 공존하는 이원화 된 세상에 대한 일종의 알레고리이다. 그렇기에 교장 선생님은 경쟁에서 도태되어질 한스를 염려(?)하며 힘을 내라고 독려한다. 힘을 내지 않으면 다른 이들이 운전하는 수레바퀴에 깔리는 비천한 인생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는 의미를 내포한 채...

책을 덮으며 여러가지 상념이 머릿속을 울린다. 근대 독일의 사회상 뿐 아니라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의 사회문화, 교육생태계의 모순과 비윤리성의 수레바퀴에 깔리는 수 많은 청소년들의 아픔이 책을 통해 고스란히 전달되어진다. 헤세는 약육강식 동물의 왕국과 같은 냉혹한 현실 속에서 주인공이 어떻게 서서히 자신의 자아를 상실하며 사회가 던지는 무형의 폭력 앞에 함몰되어가는지를 독일인다운 극도의 절제된 필치로 묘사했다. 지금 이 시간도 수레바퀴 위와 아래에서 누군가를 깔아뭉개며 깔아뭉갬을 당하는 수 많은 무명의 한스들에게 이 책은 일독 그 이상의 가치로서 다가오는 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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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사슴 (리커버 한정판) - 백석 탄생 108주년 기념, 초호화 패브릭 에디션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백석 지음 / 더스토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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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인들이 사랑한 천재 시인이라는 수식어구가 붙는 시인 '백석'의 시 전집이 서울대생이 읽어야 할 필독 인문고전 100선에 뽑혔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시라는 장르에 대해서 소위 마니아층이 아니고서야 선뜻 시집에 손길이 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나 또한 백석의 시 전집을 언제나 읽어 볼 수 있을까 생각만 하던차에 좋은 기회가 생겨서 이번에 백석의 시 전집 <사슴>을 읽게 되었다. 작품해제에 보면 모더니즘과 이미지즘 계열의 시인으로서 평가받는 백석은 191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시집 <사슴>을 펼쳐들고 한편한편의 시를 소리내어 나지막하게 읖조리며 읽어내려간다. 평안도 방언이 시 전면에 빼곡히 수놓아져 있기에 언뜻 이것이 한국어인가 할 정도로 문학에 조예가 깊은 전문가가 아니라면 쉽사리 이해하기 어려운 그야말로 외계어와 같은 시의 향연이 펼쳐진다. 나와 같은 범인들이 감상하기에 쉽지 않은 이와같은 백석의 시가 왜 문학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그 머리좋다고 하는 서울대생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인문고전 100선에 선정되었는지 쉽게 이해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 저기 박혀있는 평안도 사투리의 의미를 편집자가 각주로 친절하게 수록해주고 있기에 퍼즐을 짜맞추듯 시인이 말하고자하는 시의 의미와 내용을 조금씩 파악해가는 재미가 있다. 우선 그의 시가 가지는 특징은 향토적이다. 구수하고 정겨운 평안도 방언은 문장과 문장을 치댄다. 더불어 한편의 시가 가지는 그 시상마저도 매우 아날로그적이기에 독자는 그의 시를 통해 따뜻하고 포근한 마음 속 그리운 고향을 떠올리게 된다.

아래는 읽으면서 왜 백석 시인이 이미지즘의 대표시인으로 일컬어지는지를 조금이나마 수긍하게 만드는 <국수>라는 시의 한 토막이다.

<국수>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익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고 고담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

어떤가? 무엇인가 눈에 보여지는 그림들이 있지 않은가? 눈이 수북히 내린 한겨울밤 하얀 국수에 살얼음이 서린 잘 익은 동치미국물을 말아서 겨울밤 야식으로 먹어본 기억이 있는 독자라면 이 시를 읽고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그의 대부분의 시들이 이처럼 사람들로 하여금 이미지를 연상케 만드는 시상이 많다. 추상적이지 않고 우리네 삶에서 만나게 되는 매우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소재들을 시상으로 사용했기에 백석의 시들은 대체로 소박하다. 그리고 현실친화적이다.

 

 

크게 6개로 나뉘는 단편 시집이 한데 묶여 출간되었기에 모르긴 몰라도 이 한권이면 백석의 대표적인 시들을 대부분 감상할 수 있다. 워낙 토속적인 방언들이 많고 향토색이 짙지만 조용한 방안에서 소리내어 읽다보면 시 한편한편에서 스물스물 올라오는 고유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살았고, 6.25전쟁을 겪었으며 북한에서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 분명 한국 근현대사 중 가장 어렵고 힘들었을 질곡의 시간을 오롯히 통과해 낸 사람의 시라고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을 그만의 작품세계는 참으로 독특하다. 그래서 혹자는 백석의 시가 현실과 동떨어졌다고 평가한다. 실제라고 받아들이기 너무 힘겹고 버거운 현실을 목도한 시인에게는 자신이 펼쳐가는 작품세계 안에서만이라도 현실과는 정반대의 치열하지 않은 무던한 삶을 그려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일본에서 대학 공부를 했던 당시로 말하면 엘리트이며 지성인이었던 그가 왜 무지렁이 백성들의 언어인 평안도 방언과 토속어를 그의 시집 전면에 수놓았을까? 사실 지금의 현대인들이 읽기에도 이해하기 쉽지 않은 어휘와 문체의 독특성은 그의 또 다른 작품세계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본서의 말미에 수록된 작품해설을 통해서 그가 일제 강점기에 순수 우리말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음을 언급한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노력들은 그의 시상 속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 책을 덮으며 여기에 덧붙여 나는 한명의 평범한 독자로서 나라 잃은 깊은 슬픔을 일상이라는 삶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노력한 시인의 절제된 그 무엇을 느낀다. 대놓고 표현할 수 없는 그 깊은 절망과 애통의 마음을 민초들의 밥그릇과 옷가지 위에 언어로서 풀어놓으려고 했던 그였기에 그의 시집에서는 돌담벽 흙냄새가 피어나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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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너머로 달리는 말
김훈 지음 / 파람북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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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롭고 정제된 문장이 마치 하얗고 파르스름하게 날 선 식도의 그것과 같이 문단과 문단을 넘나들며 글이 가진 그 원초적 기운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몇 안되는 작가로 꼽히는 '김훈'이 산문집 <연필로 쓰기> 이후 근 1년만에 장편소설로 독자들을 만났다. 김훈 작가의 글을 사랑하는 평범한 독자로서 항상 느끼는 것은 그의 글을 보고 있노라면 글에 대한 말할 수 없는 동경이 나의 심연에 정동으로서 일어난다는 점이다. 유난히도 빨리 찾아온 초여름의 어느날, 김훈의 신간 출판 소식을 접하고 내가 느낀 솔직한 감정이다. <칼의 노래>를 통해 평생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접했기에 2017년 소설로서는 <남한산성> 이후 뜸했던 그의 행보가 무척이나 궁금했던차였다.

그렇기에 코로나로 한참 세상이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이 때 그의 출간 소식은 내게 가뭄 속 단비와 같은 작은 희열을 가져왔다. 책을 받고 속지에 인쇄된 저자의 친밀 서명을 응시하며 책내음을 들이킨다. 인쇄지에서 전해져오는 야릇하고 진한 잉크 냄새를 변태스럽게 흠향함과 동시에 그가 그려갈 이야기의 향연을 기대하며 첫 페이지를 연다. 책장을 넘길때 전혀 예상치 못한 내러티브가 펼쳐진다는 사실은 독자에게 있어서 행운이자 한편으로는 상당한 모험일 수도 있는 경험이다. 문장은 여전히 살아서 치근덕대듯 꿈틀대고 있지만 지금까지 느껴왔던 김훈이 보인 집필의 전형이 아니라는 사실을 초입부에서 강하게 느끼는 순간 기대감과 함께 출처를 알 수 없는 염려가 엄습했다.

어차피 픽션인 소설은 팩트보다는 글쓴이의 생각의 곡선을 따라가는 것이 더 매력적인 장르라는것을 알고 있지만 김훈이 이러한 작품을 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역사와 공상이 만나서 탄생된 이름하여 '역사판타지' 소설이라고 표현한들 그의 작품에 대한 경의를 잃는 것은 아니리라. 역사적 배경을 깔았지만 실제로 없는 무형의 역사를 지면으로 소환해내어 육필로 꾹꾹 눌러 쓴 저자의 문학적 저력이 엿보인다. 더군다나 책의 주인공은 인간이 아닌 짐승이다. 옛부터 영특하다 여겨진 영물로서의 말(馬)을 전면에 내세워 말의 눈으로 본 인간 사회의 대소사를 지극히 절제되고 담담한 필치로 그려냈다.

저자는 책의 전반 지면을 할애하여 소설의 배경을 멍석깐다.'나하' 라는 강을 사이에 두고 태고의 국가로서 북쪽 초나라와 남쪽 단나라가 존재했다. 유목민의 피가 흐르는 초나라와 땅에 정착하여 흙을 먹고 살아가는 단나라는 분명 인류 문명의 이질성을 드러낸다. 각기 다른 문명이 서로의 다름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은 피가 당기는 것과 같이 참을 수 없는 인간 본연의 본성에 기인한다. 저자는 두 문명의 충돌을 이야기의 근간으로 삼지만 거기에는 전중반부터 시작되는 인류 문명 속에 깊이 관여했지만 그 태동은 알 수 없는 말(馬)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으로 자리 잡는다. 말(馬)이라는 짐승이 언제부터 인간에게 자신의 잔등을 허락했고, 인간은 어떻게 말(馬)을 문명의 중심축으로 끌어들였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말(馬)이 인간사의 굴곡진 일상 속에 깊이 관여한 것인지 아니면 인간이 말의 역사를 찢고 침범한 것인지 그 진위를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저자가 본서를 통해서 드러내는 것은 인간과 말의 서사를 통한 문명과 야만의 민낯을 독자들에게 가감없이 전달하고자 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는 점이다.

초나라의 신월마 토하와 단나라의 비혈마 야백은 순수 혈통의 우수한 명마들이며 이야기의 중심이다.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이질성을 극복하지 못한 인간들은 죽고 죽이는 전쟁을 통해 야만과 광기를 여실히 드러낸다. 그리고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인간의 폭력을 여과없이 목격한 말의 관점을 빌려 물고 물리는 아수라장 같은 인간사 각축장의 혼돈을 다소 거칠게 그러나 때로는 한없이 세밀하면서도 절제된 저자만의 명문으로 토해낸다. 문명은 길들여진 것이며 야만은 날 것 그대로의 비릿함을 전한다. 인간에게 자신의 등을 허락하지 않았을 때의 말은 야만 자체였으며 자신의 등에 인간을 태우고 달리기 시작하면서 말은 문명의 일원이 되었다. 그렇기에 저자는 문명과 야만의 충돌을 모두 다 지켜본 말(馬)을 이야기의 전면에 내세운다.

신화적 상상력으로 써내려간 저자의 신작은 분명 또 하나의 한국 문학계에 일획을 긋는 소설로서 기억될 것이다. 본서는 <칼의 노래>와 같은 벼락같고 날카로우면서도 무섭게 절제된 명문보다는 시원의 그 알지 못하는 언어의 태고적 신비스러움이 더 많이 묻어나오는 저작이다. 저자는 간격과 공간마다 어휘와 문장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서 읽는 이로 하여금 쉽사리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여리면서도 동시에 매몰찬 긴장감을 책의 말미까지 끈질기게 끌고간다. 이렇듯 작은 틈새 하나도 허투루 날려버리지 않는 진득한 저력이 바로 작가 김훈만이 가진 그 무엇이다.

스러져가는 공상 속 두 나라의 저물어가는 운명의 끝단을 지켜보는 신월마 토하와 비혈마 야백의 관점을 통해 저자가 지금을 살아가는 현대의 독자들에게 전달하려는 진의는 무엇일까? 흩어진 역사의 파편들을 마치 깨진 토판 조각을 줏어모아 엇댄듯한 이야기의 편린들은 지금의 문명에 대한 조소이며 경계이다. 저자 김훈은 책의 '뒤에' 서 3호선 전동차를 타고 창밖의 일상을 바라보며 느낀 자신의 회상을 이렇게 적는다. "세상을 지워버리고 싶은 충동이 내 마음 깊은 곳에 서식하고 있었던 모양인데, 이 책은 그 답답함의 소산이다. 세상을 지우면 빈자리가 드러날 테지만, 지우개로 뭉갤 수 없어서 나는 갈팡질팡하였다."

부정하고 싶고 지워버리고 싶은 세상에 대한 절절한 바람이 존재하지도 않았을 공상의 나라 속으로 그를 침잠케했고, 한바탕 세차게 불어닥치는 비바람과 같이 흥망성쇠 문명의 한장면을 말(馬)이라는 영물의 관점으로 마음껏 비웃었다. 약육강식의 야만적 습성이 여전히 정상으로 여겨지는 이 비정상적인 세상에 대한 부정을 저자는 그나마 소설 속 두 문명의 대립과 스러짐이라는 메타포를 사용하여 훌륭하게 묘사한다. 그리고 그 숨겨진 진의를 고발하는 주된 장치로서 말(馬)은 그에게 더할나위없이 중요한 도구다. 부인하고 부정하고 싶은 우리네 일상에 대한 애증이 들끓는다면 김훈 작가의 역사판타지 한편으로 이번 여름 우리네 삶의 틀어진 추를 의미있게 재정렬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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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오만과 편견 - 1894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제인 오스틴 지음, 김유미 옮김 / 더스토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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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이를 먹고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하면서 뼈저리게 느끼는 것 중 하나가 관계의 어려움이다. 각자가 살아온 인생의 배경과 스토리가 다르기에 개개인의 개성과 성향, 성격 또한 천차만별이다. 우리 주변에는 만나면 함께 있고 싶은 따뜻한 성향의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얼굴만 봐도 역겨운 사람들이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를 더욱더 혼란스럽게 만드는 불편한 진실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미스터리한 팩트를 직면하면서 시작된다. 내가 좋아하는 너무나 따스한 성품을 가진 사람의 이면에 믿기지 않는 차가움과 건조함이 공존한다면 그 사실을 순순히 믿을 수 있겠는가? 반대로 주는 것 없이 밉고 그냥 이유 없이 진저리 나도록 싫은 끔찍한 사람들의 내면 안에 우리가 간과하고 있었던 따뜻한 인간미와 숨은 인품의 고결함이 고요한 강물처럼 흐르고 있다면 그 또한 쉽사리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내면과 속성에 대해 18세기 말 한 여류작가에 의해 흥미로운 소설로 탄생된 한 권의 위대한 고전 문학 작품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다. 18세기 영국의 한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베넷 가문의 가장인 '베넷'과 그의 아내 '베넷 부인' 그리고 다섯 명의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장성한 딸들이 이야기의 중심이다. 그들이 사는 롱본 지역과 가까운 네더필드에 부유하고 잘생긴 상류층 가문의 청년 '빙리'와 그의 친구 '다아시'가 이사를 온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베넷 가문의 큰딸 '제인'과 둘째 딸 '엘리자베스'는 빙리와 다아시를 알게 된다. 상류층의 품위와 품격을 드러내며 누구에게나 따뜻한 성품과 친절함으로 모든 이들에게 칭찬을 받는 빙리는 그야말로 훈남이며 전형적인 신사로서 모든 여성들의 흠모의 대상이다. 그러나 그의 친구 다아시는 빙리보다 훨씬 더 부유하고 높은 계급의 가문이었지만 자신의 가문이 가진 고결함을 뽐내듯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마치 깔보는 듯 무뚝뚝한 표정과 일면식 있는 사람 외에는 낯선 사람들과 대화조차 기피하는 차가운 인상의 인물이다.

이후 따뜻하고 자상하며 지적이고 우아한 아름다움을 지닌 베넷 가문의 첫째 딸 제인과 역시 부드럽고 따뜻한 성품을 가진 빙리는 서로를 향한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둘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하는데 그 원인은 다름 아닌 빙리의 친구 다아시의 반대로 인한 것이었다. 자신의 착하디착한 언니가 상류층 부유한 가문의 훈남 빙리와 이루어지는 것을 반대한 다아시에 대해서 가뜩이나 오만스럽고 건방지기 짝이 없다고 생각한 역겨운 귀족 다아시에 대해 둘째 딸 엘리자베스는 분노의 감정을 품게 된다.

여러 가지 얽히고설킨 사건들이 진행되면서 하나씩 밝혀지는 진실들이 독자들로 하여금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끔 만드는 고전 문학이 가진 매력이 대단하다. 사건이 중반을 지난 종반으로 치달을 때쯤 독자는 제인과 빙리의 결혼을 반대한 다아시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진짜 이유를 알게 되면서 그동안 극중 인물 엘리자베스와 동일하게 가지고 있었던 다아시에 대한 관점이 극심한 편견이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자신이 가진 지위를 이용하여 악행을 일삼는 교만하고 염치없는 뻔뻔한 인간인 줄 알았던 다아시. 그러나 그의 진심을 발견하고 내면 안에 흐르는 누구보다도 따뜻한 참된 마음의 소유자가 바로 다아시임을 알게 된 베넷 가문의 둘째 딸 엘리자베스는 오래전부터 자신을 연모하며 사랑을 고백했던 다아시에 대해 편견의 비늘을 벗기 시작하는데...

 

 

 

오만으로 대변되는 다아시와 편견으로 대변되는 엘리자베스의 대립 구도는 책이 가지는 메인 테마이다. 그러나 주의 깊은 독자라면 다아시와 엘리자베스 두 사람 모두에게서 오만과 편견의 그늘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이 가진 엄청난 부와 가문의 명예를 업고 차갑기 그지없는 오만스러운 모습으로 일관했던 다아시는 자신의 친구 빙리가 자신들과는 가문의 품격이 다른 중산층 베넷 가문의 천박함 속에 함몰되어 갈 것을 우려함으로써 친구의 결혼을 반대하는 편견을 보였다. 18세기 근대 유럽의 계급주의적 편견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다아시의 차가운 첫인상과 그가 행한 악행(사실은 그렇지 않은)의 소문을 듣고 그를 상류층 사람들의 오만스러움의 전형으로 여기며 극도로 경멸스럽게 대한 엘리자베스의 편견은 자신이 상대보다 더 인간적이고 공정하다는 오만스러운 망상에 기인한다.

책 한 권에 18세기 근대 유럽 계급주의에 의한 신분상의 차별, 남성과 여성의 차별을 비롯한 시대와 문화의 한 단면을 매우 절제된 언어의 방식으로 녹여 낸 본서의 가치는 탁월하다. 고착화되어버린 사회 시스템 안에 내재한 다양한 구조적 갈등은 전부 오만과 편견으로부터 파생된다. 타자에 대해 내가 가진 신분의 높고 낮음, 빈부 여부를 통해 선을 긋는 모든 행위는 오만스러운 것이며 극심한 편견에 의한 병적 태도이다. 혹자는 본서가 연예학 개론의 고전이라고 평하였지만 단순한 남녀 간의 갈등, 화해와 공존을 말하는 핑크빛 소설이라고만 한정 짓기에는 책이 가지는 그 진중한 의미가 아깝다.

오만과 편견은 개별적으로 분리된 성향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자웅동체와 같이 인간 내면 안에 동일하게 상존한다.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가 거미줄처럼 엃히고설킨 이 복잡다단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18세기 말 쓰인 고전 문학 작품 한 권이 던져주는 인상이 크고 깊다. 매일의 일상에서 만나게 되는 타자들에 대해 우리는 스스로도 느끼지 못하는 촌음 사이에 수십수백 가지의 편견을 머릿속에 주입한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살인적인 오만함을 갖고 타자들을 내 삶의 영역 밖으로 쉴 새 없이 밀쳐내는 데에 전력을 다한다. 책의 마지막 뚜껑을 덮으며 인간 사회 어디에서나 발견하게 되는 오만과 편견의 프레임을 장밋빛 소설 한 권에 담아낸 저자 제인 오스틴의 인간 본성과 시대를 읽는 혜안에 박수를 보낸다. 더불어 책임 있는 독자라면 인간 본성에 코드화된 이 오만과 편견의 네거티브한 습성을 끊어내라고 요구하는 고전적 교훈을 겸손히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저자 제인 오스틴이 미래의 독자인 우리에게 원하는 작은 바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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