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오만과 편견 - 1894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제인 오스틴 지음, 김유미 옮김 / 더스토리 / 201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나이를 먹고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하면서 뼈저리게 느끼는 것 중 하나가 관계의 어려움이다. 각자가 살아온 인생의 배경과 스토리가 다르기에 개개인의 개성과 성향, 성격 또한 천차만별이다. 우리 주변에는 만나면 함께 있고 싶은 따뜻한 성향의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얼굴만 봐도 역겨운 사람들이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를 더욱더 혼란스럽게 만드는 불편한 진실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미스터리한 팩트를 직면하면서 시작된다. 내가 좋아하는 너무나 따스한 성품을 가진 사람의 이면에 믿기지 않는 차가움과 건조함이 공존한다면 그 사실을 순순히 믿을 수 있겠는가? 반대로 주는 것 없이 밉고 그냥 이유 없이 진저리 나도록 싫은 끔찍한 사람들의 내면 안에 우리가 간과하고 있었던 따뜻한 인간미와 숨은 인품의 고결함이 고요한 강물처럼 흐르고 있다면 그 또한 쉽사리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내면과 속성에 대해 18세기 말 한 여류작가에 의해 흥미로운 소설로 탄생된 한 권의 위대한 고전 문학 작품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다. 18세기 영국의 한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베넷 가문의 가장인 '베넷'과 그의 아내 '베넷 부인' 그리고 다섯 명의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장성한 딸들이 이야기의 중심이다. 그들이 사는 롱본 지역과 가까운 네더필드에 부유하고 잘생긴 상류층 가문의 청년 '빙리'와 그의 친구 '다아시'가 이사를 온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베넷 가문의 큰딸 '제인'과 둘째 딸 '엘리자베스'는 빙리와 다아시를 알게 된다. 상류층의 품위와 품격을 드러내며 누구에게나 따뜻한 성품과 친절함으로 모든 이들에게 칭찬을 받는 빙리는 그야말로 훈남이며 전형적인 신사로서 모든 여성들의 흠모의 대상이다. 그러나 그의 친구 다아시는 빙리보다 훨씬 더 부유하고 높은 계급의 가문이었지만 자신의 가문이 가진 고결함을 뽐내듯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마치 깔보는 듯 무뚝뚝한 표정과 일면식 있는 사람 외에는 낯선 사람들과 대화조차 기피하는 차가운 인상의 인물이다.

이후 따뜻하고 자상하며 지적이고 우아한 아름다움을 지닌 베넷 가문의 첫째 딸 제인과 역시 부드럽고 따뜻한 성품을 가진 빙리는 서로를 향한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둘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하는데 그 원인은 다름 아닌 빙리의 친구 다아시의 반대로 인한 것이었다. 자신의 착하디착한 언니가 상류층 부유한 가문의 훈남 빙리와 이루어지는 것을 반대한 다아시에 대해서 가뜩이나 오만스럽고 건방지기 짝이 없다고 생각한 역겨운 귀족 다아시에 대해 둘째 딸 엘리자베스는 분노의 감정을 품게 된다.

여러 가지 얽히고설킨 사건들이 진행되면서 하나씩 밝혀지는 진실들이 독자들로 하여금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끔 만드는 고전 문학이 가진 매력이 대단하다. 사건이 중반을 지난 종반으로 치달을 때쯤 독자는 제인과 빙리의 결혼을 반대한 다아시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진짜 이유를 알게 되면서 그동안 극중 인물 엘리자베스와 동일하게 가지고 있었던 다아시에 대한 관점이 극심한 편견이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자신이 가진 지위를 이용하여 악행을 일삼는 교만하고 염치없는 뻔뻔한 인간인 줄 알았던 다아시. 그러나 그의 진심을 발견하고 내면 안에 흐르는 누구보다도 따뜻한 참된 마음의 소유자가 바로 다아시임을 알게 된 베넷 가문의 둘째 딸 엘리자베스는 오래전부터 자신을 연모하며 사랑을 고백했던 다아시에 대해 편견의 비늘을 벗기 시작하는데...

 

 

 

오만으로 대변되는 다아시와 편견으로 대변되는 엘리자베스의 대립 구도는 책이 가지는 메인 테마이다. 그러나 주의 깊은 독자라면 다아시와 엘리자베스 두 사람 모두에게서 오만과 편견의 그늘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이 가진 엄청난 부와 가문의 명예를 업고 차갑기 그지없는 오만스러운 모습으로 일관했던 다아시는 자신의 친구 빙리가 자신들과는 가문의 품격이 다른 중산층 베넷 가문의 천박함 속에 함몰되어 갈 것을 우려함으로써 친구의 결혼을 반대하는 편견을 보였다. 18세기 근대 유럽의 계급주의적 편견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다아시의 차가운 첫인상과 그가 행한 악행(사실은 그렇지 않은)의 소문을 듣고 그를 상류층 사람들의 오만스러움의 전형으로 여기며 극도로 경멸스럽게 대한 엘리자베스의 편견은 자신이 상대보다 더 인간적이고 공정하다는 오만스러운 망상에 기인한다.

책 한 권에 18세기 근대 유럽 계급주의에 의한 신분상의 차별, 남성과 여성의 차별을 비롯한 시대와 문화의 한 단면을 매우 절제된 언어의 방식으로 녹여 낸 본서의 가치는 탁월하다. 고착화되어버린 사회 시스템 안에 내재한 다양한 구조적 갈등은 전부 오만과 편견으로부터 파생된다. 타자에 대해 내가 가진 신분의 높고 낮음, 빈부 여부를 통해 선을 긋는 모든 행위는 오만스러운 것이며 극심한 편견에 의한 병적 태도이다. 혹자는 본서가 연예학 개론의 고전이라고 평하였지만 단순한 남녀 간의 갈등, 화해와 공존을 말하는 핑크빛 소설이라고만 한정 짓기에는 책이 가지는 그 진중한 의미가 아깝다.

오만과 편견은 개별적으로 분리된 성향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자웅동체와 같이 인간 내면 안에 동일하게 상존한다.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가 거미줄처럼 엃히고설킨 이 복잡다단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18세기 말 쓰인 고전 문학 작품 한 권이 던져주는 인상이 크고 깊다. 매일의 일상에서 만나게 되는 타자들에 대해 우리는 스스로도 느끼지 못하는 촌음 사이에 수십수백 가지의 편견을 머릿속에 주입한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살인적인 오만함을 갖고 타자들을 내 삶의 영역 밖으로 쉴 새 없이 밀쳐내는 데에 전력을 다한다. 책의 마지막 뚜껑을 덮으며 인간 사회 어디에서나 발견하게 되는 오만과 편견의 프레임을 장밋빛 소설 한 권에 담아낸 저자 제인 오스틴의 인간 본성과 시대를 읽는 혜안에 박수를 보낸다. 더불어 책임 있는 독자라면 인간 본성에 코드화된 이 오만과 편견의 네거티브한 습성을 끊어내라고 요구하는 고전적 교훈을 겸손히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저자 제인 오스틴이 미래의 독자인 우리에게 원하는 작은 바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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