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수레바퀴 아래서 (리커버 한정판, 패브릭 양장) - 헤르만 헤세 탄생 140주년 기념 초호화 패브릭 양장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헤르만 헤세 지음, 이순학 옮김 / 더스토리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가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있는 선택권이 없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이다. 이 세상이 그런 것 같다. 사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 몇이나 될까? 부모님의 기대와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떠밀려 운명이라는 강물의 흐름 속에 자신을 내어던진 채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다수 아닐까? 몇일 전 이처럼 인간 주체성에 대한 상념을 엿보게 만드는 책 한권을 만났다. 독일의 대문호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는 그가 본인의 성장기를 바탕으로 구성한 자전적 소설이다.

당시 근대 독일의 교육문화와 사회현실을 간접적으로 비꼬는 사회 풍자적 요소가 적지 않게 가미되어 있는 본서에는 주인공 소년 '한스 기벤라트'가 삶과 현실 속에서 느끼는 내면의 갈등과 괴리를 매우 담담하고 절제된 필치로 그려져있다. 더불어 헤세는 본인의 성장기에서 느꼈던 당시 독일 사회의 모순과 자신이 느낀 인생의 참의미에 대한 물음을 책의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를 통해 조용하게 투사시킨다. 어찌보면 사회적 관습과 기성 사회가 요구하는 암묵적 규정에 의해 몰개성화되어가는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이 책은 매우 큰 동질감으로 다가온다.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는 독일 슈바르츠발트의 작은 시골마을 라틴어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다. 머리좋고 성실하며 재능있는 학생인 한스는 그의 마을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존재다. 대부분이 평범한 소시민들로 구성된 마을에서 한스는 몇주 후 마을과 학교를 대표해서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리는 주(州)신학교 시험을 치를 예정이다. 전국에서 모여드는 수재들이 경쟁하여 소수의 학생들이 신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신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은 그곳에서 무상으로 8~9년간 공부를 한 후 교구 목사 또는 교수라는 국가에서 주어지는 매우 안정적인 직업을 얻게 된다.

국가로부터 장학금을 받아서 공부하고 졸업 후에는 역시 국가로부터 안정적인 월급을 받으며 일 할 수 있는 교구 목사나 교수라는 편안한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은 당시 독일 사회에서 똑똑한 젊은이들에게는 매우 매력적인 장미빛 인생의 기회였다. 치열한 경쟁을 뚫기 위해 한스는 벅찬 학업을 감당하며 시험을 준비했다. 아버지와 학교의 교장 선생님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은 채 시험에 응했고, 결과는 2등으로 합격. 이윽고 기쁨과 설레임을 안고 시작한 신학교에서의 시간들이 시작되는데...

 

 

헤세는 <호밀밭의 파수꾼>의 작가 샐런저처럼 대놓고 현실 사회의 모순을 꼬집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간접적으로 함의된 메타포 하나하나가 더 소름돋는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의 기대와 부러움의 시선들이 어느 새 한스의 어깨를 짙눌렀다. 우수한 성적을 유지함으로서 마을과 학교, 가족의 명예를 드높여야하며 나아가서는 안정적인 직장과 높은 사회적 지위를 쟁탈해야 한다는 외부적인 요구와 한스 본인의 내면에 숨겨진 야망이 한데 어우러져서 급기야는 전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변해가는 주인공의 모습이 안쓰럽기만 하다.

한스는 신학교에서 만난 개방적 정신의 소유자이면서 룸메이트인 '하일러'와 어울리며 변해간다. 이로인해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던 한스의 성적이 떨어지자 신학교 교장 선생님께서 한스를 불러서 면담을 한다.

"...기운이 빠져서는 안 돼. 그렇게 되면 수레바퀴 아래에 깔리고 말 거야."

책을 읽으며 줄곧 책의 제목에 대해서 궁금했던 차에 위의 문장을 통해 수레바퀴의 진의를 깨닫게 된다. 교장 선생님이 위로와 격려랍시고 던진 말 속에 제시된 수레바퀴는 바로 이 세상을 가리킨다. 이 세상은 거대한 수레바퀴이다. 세상이라는 수레바퀴 위에 앉아 수레바퀴를 굴리는 소수의 사람이 있는 반면 그 수레바퀴 아래에서 그 위로 올라타지 못한 채 오히려 수레바퀴에 깔리는 다수의 인간이 공존하는 이원화 된 세상에 대한 일종의 알레고리이다. 그렇기에 교장 선생님은 경쟁에서 도태되어질 한스를 염려(?)하며 힘을 내라고 독려한다. 힘을 내지 않으면 다른 이들이 운전하는 수레바퀴에 깔리는 비천한 인생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는 의미를 내포한 채...

책을 덮으며 여러가지 상념이 머릿속을 울린다. 근대 독일의 사회상 뿐 아니라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의 사회문화, 교육생태계의 모순과 비윤리성의 수레바퀴에 깔리는 수 많은 청소년들의 아픔이 책을 통해 고스란히 전달되어진다. 헤세는 약육강식 동물의 왕국과 같은 냉혹한 현실 속에서 주인공이 어떻게 서서히 자신의 자아를 상실하며 사회가 던지는 무형의 폭력 앞에 함몰되어가는지를 독일인다운 극도의 절제된 필치로 묘사했다. 지금 이 시간도 수레바퀴 위와 아래에서 누군가를 깔아뭉개며 깔아뭉갬을 당하는 수 많은 무명의 한스들에게 이 책은 일독 그 이상의 가치로서 다가오는 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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