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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사슴 (리커버 한정판) - 백석 탄생 108주년 기념, 초호화 패브릭 에디션 ㅣ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백석 지음 / 더스토리 / 2019년 12월
평점 :

모든 시인들이 사랑한 천재 시인이라는 수식어구가 붙는 시인 '백석'의 시 전집이 서울대생이 읽어야 할 필독 인문고전 100선에 뽑혔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시라는 장르에 대해서 소위 마니아층이 아니고서야 선뜻 시집에 손길이 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나 또한 백석의 시 전집을 언제나 읽어 볼 수 있을까 생각만 하던차에 좋은 기회가 생겨서 이번에 백석의 시 전집 <사슴>을 읽게 되었다. 작품해제에 보면 모더니즘과 이미지즘 계열의 시인으로서 평가받는 백석은 191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시집 <사슴>을 펼쳐들고 한편한편의 시를 소리내어 나지막하게 읖조리며 읽어내려간다. 평안도 방언이 시 전면에 빼곡히 수놓아져 있기에 언뜻 이것이 한국어인가 할 정도로 문학에 조예가 깊은 전문가가 아니라면 쉽사리 이해하기 어려운 그야말로 외계어와 같은 시의 향연이 펼쳐진다. 나와 같은 범인들이 감상하기에 쉽지 않은 이와같은 백석의 시가 왜 문학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그 머리좋다고 하는 서울대생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인문고전 100선에 선정되었는지 쉽게 이해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 저기 박혀있는 평안도 사투리의 의미를 편집자가 각주로 친절하게 수록해주고 있기에 퍼즐을 짜맞추듯 시인이 말하고자하는 시의 의미와 내용을 조금씩 파악해가는 재미가 있다. 우선 그의 시가 가지는 특징은 향토적이다. 구수하고 정겨운 평안도 방언은 문장과 문장을 치댄다. 더불어 한편의 시가 가지는 그 시상마저도 매우 아날로그적이기에 독자는 그의 시를 통해 따뜻하고 포근한 마음 속 그리운 고향을 떠올리게 된다.
아래는 읽으면서 왜 백석 시인이 이미지즘의 대표시인으로 일컬어지는지를 조금이나마 수긍하게 만드는 <국수>라는 시의 한 토막이다.
<국수>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익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고 고담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
어떤가? 무엇인가 눈에 보여지는 그림들이 있지 않은가? 눈이 수북히 내린 한겨울밤 하얀 국수에 살얼음이 서린 잘 익은 동치미국물을 말아서 겨울밤 야식으로 먹어본 기억이 있는 독자라면 이 시를 읽고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그의 대부분의 시들이 이처럼 사람들로 하여금 이미지를 연상케 만드는 시상이 많다. 추상적이지 않고 우리네 삶에서 만나게 되는 매우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소재들을 시상으로 사용했기에 백석의 시들은 대체로 소박하다. 그리고 현실친화적이다.

크게 6개로 나뉘는 단편 시집이 한데 묶여 출간되었기에 모르긴 몰라도 이 한권이면 백석의 대표적인 시들을 대부분 감상할 수 있다. 워낙 토속적인 방언들이 많고 향토색이 짙지만 조용한 방안에서 소리내어 읽다보면 시 한편한편에서 스물스물 올라오는 고유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살았고, 6.25전쟁을 겪었으며 북한에서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 분명 한국 근현대사 중 가장 어렵고 힘들었을 질곡의 시간을 오롯히 통과해 낸 사람의 시라고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을 그만의 작품세계는 참으로 독특하다. 그래서 혹자는 백석의 시가 현실과 동떨어졌다고 평가한다. 실제라고 받아들이기 너무 힘겹고 버거운 현실을 목도한 시인에게는 자신이 펼쳐가는 작품세계 안에서만이라도 현실과는 정반대의 치열하지 않은 무던한 삶을 그려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일본에서 대학 공부를 했던 당시로 말하면 엘리트이며 지성인이었던 그가 왜 무지렁이 백성들의 언어인 평안도 방언과 토속어를 그의 시집 전면에 수놓았을까? 사실 지금의 현대인들이 읽기에도 이해하기 쉽지 않은 어휘와 문체의 독특성은 그의 또 다른 작품세계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본서의 말미에 수록된 작품해설을 통해서 그가 일제 강점기에 순수 우리말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음을 언급한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노력들은 그의 시상 속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 책을 덮으며 여기에 덧붙여 나는 한명의 평범한 독자로서 나라 잃은 깊은 슬픔을 일상이라는 삶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노력한 시인의 절제된 그 무엇을 느낀다. 대놓고 표현할 수 없는 그 깊은 절망과 애통의 마음을 민초들의 밥그릇과 옷가지 위에 언어로서 풀어놓으려고 했던 그였기에 그의 시집에서는 돌담벽 흙냄새가 피어나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