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 성동혁 시집 민음의 시 204
성동혁 지음 / 민음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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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동혁 시집, 6, 민음사, 2014
#성동혁



1. 이 시집의 첫 번째 시와 마지막 시의 제목이 「쌍둥이」다. 영어로는 twins. 부모님을 뜻하는 parents처럼 복수를 써야 쌍둥이 모두를 지칭하게 된다. ‘s’를 빼면 쌍둥이 중 한명을 가리킨다. 탄생부터 나와 다른 무엇을 전제하는 존재. 내가 있어야 그가 있고 우리가 있다.



‘6’의 쌍둥이는 ‘9’다. 같은 이치로 ‘OK'의 쌍둥이는 ‘돈'(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말고 나머지 세 손가락을 위로 세우면 전자, 아래로 떨어뜨리면 후자). ’6‘에 대해 조금 더 연상해 보자. 육손이는 다지증의 일종인데 대개 엄지 두 개가 한쪽 손에만 발생하는 경우가 흔하다. 새끼발가락이 2개인 경우도 있다.



육손이의 쌍둥이는 한 손가락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곰배팔이(팔이 꼬부라져 붙어 펴지 못하거나 팔뚝이 없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애꾸눈이, 절뚝발이, 딸깍발이, 절름발이 같은 ‘외돌토리들’이다. 동서남북상하 ‘육합(六合)’을 보아도 내 편이 없을 것 같은 그들에게 오감에 대한 욕구를 넘어 ‘생각하는 욕망’의 끄트머리, 지푸라기라도 되어주고 쌍둥이의 마음.




2. 시인은 세심하고 섬세한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본다. 묘사보다는 서사와 대화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풀어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종교적인 시어가 많다. 시집 초반보다 2부, 3부의 시들이 좋았다.




- 나의 투우사 46-47쪽
- 식사기도

누가 나의 투우사에게 소를 풀었나

붉은 헝겊을 걸치고 복사뼈를 땅에 묻고
움직이지 않는 나의 투우사

사람들이 발등에 망치질을 한다
저녁이 온다
소가 온다!

나를 이를 악물고 식탁보를 뺀다
저녁이 온다고
소가 온다고!

저녁은 눈두덩 위로 떨어지는 유황 가루인가
아니면 무릎 위로 떨어지는 붉은 스프인가

궁창을 찌르는 철탑
뿔이 관통한 그의 손바닥에서 빛이 터져 나온다

검지를 관자놀이에 붙이고 투우사의 구멍 안으로 달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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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로 숨 쉬고 싶은 그대에게 - 직장인의 어깨를 다독인 51편의 시 배달
김기택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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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택 산문집 다시, 시로 숨쉬고 싶은 그대에게, 다산책방, 2016
#김기택 #다시시로숨쉬고싶은그대에게



1. 김기택 시인의 첫 산문집. 2010년 오월부터 일 년 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학 집배원으로서 배달한 시와 감상에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 체험적 시론, 삶에 대한 여러 잡생각을 덧붙인 글. 봄·여름·가을·겨울 순 총 4부 구성이고 계절에 맞게 밝고 가벼운 시, 열정과 힘이 드러나는 시,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시, 추위에 맞서는 강한 정신력을 느끼게 하는 시가 담겨 있다. (12-13쪽)
장점은 저자가 선정한 시들이 너무 좋다는 점, 적당한 분량과 쉬운 해설, 시에 관한 얘기와 저자의 경험담의 적절한 조화. 단점? 없다!




2. 보름달 (박동민)

파도는 움켜 쥔 것들을 그 자리에 두고 제자리로 돌아가는데
불길(不吉)은 온몸을 던져 제국의 심지에 불을 붙였다
대한제국을 떠나 격랑에 몸 실어야 했던 조상들처럼
까슬까슬한 고목(枯木)과 붙박인 폐선의 배웅을 받으며
앙다문 밀항선의 뱃머리가 벼르고 별러
다다른 거인들의 나라

낯선 생활이 벼랑으로 내몰아도
납작이 엎드려 기어이
깊숙이 닻을 내렸다
낯가림 심한 돌멩이는 몽돌이 되었다

썰물처럼 빠져 나갔던 기억의 실뿌리가
지구 반대편 고향으로 뻗어가는 가을 밤

호미하나 들고 밭으로 가던 어매의 얼굴을 닮은
몽글몽글 속노랑 보름달
주름진 달빛으로 모든 흉을 덮고
바람의 고자질과 파도의 트집에도 웃기만 한다




3. 메모

- 시에는 정직하게 말하되 교묘하게 비밀을 감춰주는 장치들이 있다. 217쪽
허구적 장치(남 얘기인 척), 감정이나 정서나 은밀한 이야기를 이미지나 비유 속에 감추고 아름다운 이야기로 위장, 반어나 역설을 통해 시치미, 한 번에 다 말하지 않고 말 속에 감추어 놓은 풍부한 말들을 조금씩 끊임없이 흘려보내는 침묵과 여백




- 우리 동네 집들, 박형권, 44-45쪽 부분


(전략)
골목 하나 사이에 두고 마주한 집들은
활짝 열린 입술로
키스할까 말까 오랫동안 망설인다 문을 열고 사람이 나와
골목을 쓸면서
잘 잤어? 하는 것은
사람이 집의 혀이기 때문이다
집들이 하는 말 중에 가장 달콤하게 들리는 것은
우리 불 끌까?이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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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무선본)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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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2015



1. 호모 사피엔스의 과거, 현재, 미래를 인류학, 생물학, 역사학의 관점에서 풀어쓴 종합서다. 인지혁명(언어의 유연성, 문자의 발명, 허구를 만들어내는 능력), 농업혁명(최대의 사기, 보편적 화폐, 제국, 종교질서의 창조), 과학혁명(과학, 군사, 산업, 자본의 결합)을 되짚고 인류의 미래(유전공학, 사이보그공학, 비유기물공학)를 전망하고 있다.
인류의 전방위적인 협력망 구축이 생존과 발전의 비결이라는 관점으로 제 분야를 통찰하고 한 권의 책으로 담아냈다는 것이 놀랍다. 다만 제국주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비판하고 제국주의를 통해 인류가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견해와 예증에는 동의할 수 없다. 서구의 관점에서 쓰여진 부분들은 비판적으로 읽을 필요가 있다. 인지혁명, 농업혁명까지는 가독성이 높지만 뒤로 갈수록 서술이 늘어지고 중언부언하는 면도 있다. 두꺼운 책이지만 인지혁명, 농업혁명 부분은 꼭 찾아 읽어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제1부 인지혁명

- 사피엔스의 성공비결은 무엇이었을까? 튼튼하고 머리가 좋으며 추위에 잘 견뎠던 네안데르탈인은 어째서 우리의 맹공격을 버텨내지 못했을까? 논쟁은 뜨겁게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가장 그럴싸한 대답은 바로 이런 논쟁을 가능하게 하는 것, 즉 언어다. 41쪽

- 그렇다면 대체 우리의 언어는 무엇이 특별할까? 가장 보편적인 대답은 우리의 언어가 놀라울 정도로 유연하다는 것이다. 46

- 아마도 뒷담화이론과 ‘강변에 사자가 있다’ 이론은 둘 다 유효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언어의 진정한 특이성은 사람이나 사자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에 있다. 48쪽




제2부 농업혁명

- 오늘날 우리의 마음이 수렵채집인 시대의 것이라면, 우리의 부엌은 고대 농부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122쪽

- 농업혁명 덕분에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식량의 총량이 확대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여분의 식량이 곧 더 나은 식사나 더 많은 여유시간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인구폭발이 방자한 엘리트를 낳았다. 평균적인 농부는 평균적인 수렵채집인보다 더 열심히 일했으며 그 대가로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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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진다 갈라진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417
김기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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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택 시집, 갈라진다 갈라진다, 문학과 지성사

 

1. 하나를 오랫동안 바라보기는 생각만큼 쉽지 않다. 속도의 시대에 나의 어깨를 툭 치며 지나가는 경쟁자들의 거친 숨소리를 보내고 한 지점에 멈추어 그 하나를 바라보기에는 시간 외에도 여유가 필요하다. 여유가 물질적 여유를 의미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물질적 풍요가 정신적 풍요로 반드시 이어지지 않듯이 물질적으로 가난해도 풍요로운 사랑을 하는 커플을 많이 보았다. 고등학생, 대학생 때 대부분 우리들은 경제적으로 가난했지만 마음은 지금보다 부유했다고 생각한다. 시청역에 내려 덕수궁과 정동길을 걸으면 악취나는 은행열매도 내 앞과 옆에 놓인 사랑의 눈빛으로 다 덮을 수 있었다.

 

 

2. 「곱추」「소」등 한 사물을 오랫동안 바라보기의 최고봉 가운데 한 사람이 김기택 시인이다. 김사인 시인의 말씀처럼 ‘해부학적 시선과 미시적 관찰’이 시의 조제원리다. 설득하는 방식이 아닌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으로 시를 엮어 나가기 때문에 누구나 읽고 공감하기 좋은 시들이 많다. 그렇다고 가벼운 것은 아니다. ‘죽음, 노년’을 다루는 시가 많고 풍자를 통해 사회비판적인 작품도 있다. 시 읽기의 초심자부터 난해한 관념과 어지러운 수사에 갇힌 중급자 이상의 독자도 자꾸 들쳐보게 만드는 시집이다.

 

 

- 넥타이 10-11쪽 (김기택)

 

목이 힘껏

천장에 매달아 놓은 넥타이를 잡아당긴다

공중에 들린 발바닥이 날개처럼 세차게 바닥거린다

 

목뼈가 으스러지도록 넥타이가 목을 껴안는다

목이 제 안에 깊숙이 넥타이를 잡아당긴다

넥타이에 괄약근이 생긴다

 

발버둥치는 몸무게가 넥타이로 그네를 탄다

다리가 차낸 허공이 빙빙 돈다

몸무게가 발버둥을 남김없이 삼키는 동안

막힌 숨을 구역질하는 입에서 긴 혀가 빠져나온다

 

벌어진 입이 붉은 넥타이를 게운다

수십 년 동안 목에 맸던 모든 넥타이를 꾸역꾸역

게운다

게워도 게워도 넥타이는 그치지 않는다

 

바닥과 발끝 사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줄어들지 않는 한 뼘의 허공이

사람을 맨 넥타이를 든든하고 받쳐주고 있다

 

3. 뒤집힌 폭포 (박동민)

 

윗물이 아랫물에게

쏴아쏴아 침 튀기며 말했다

진정한 용기는 아래를 향한 도약

쏟아내는 폭포처럼

힙겹게 내린 오기의 뿌리를

더 깊게

더 멀리

더 힘차게

 

아랫물이 윗물에게

우아하게 말했다

진공관을 타고 오르는 사이펀 커피처럼

뜨끈한 김을 내뱉는 오줌발처럼

피 튀기게 틔운 오기의 싹을

더 높이

더 넓게

더 향기롭게

 

분수(分數)를 알아야지, 그 말이 역류하니

분수(噴水)처럼 살라는 말로 들렸다

 

그러나 아,

뒤집힌 폭포는 몇 초도 안 돼

고개 숙이고

말라버리고

 

얼어버린 내 발은

오줌 묻은

오줌발이 되었다

 

번복은 반복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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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을 찾아서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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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변방을 찾아서, 돌베개



1. 고 신영복 선생님이 당신의 글씨가 걸린 장소를 찾아가서 ‘변방’과 글씨에 담긴 소회를 연재한 글을 묶은 책이다. 경향신문 연재는 8회로 마감되었는데 아마 건강상의 문제였던 것 같다. 책의 서문에서 각 장소들(해남 송지초등학교 서정분교, 박달재, 벽초 홍명희 문학비와 생가, 오대산 상원사, 전주 이세종 열사 추모비·김개남 장군 추모비, 서울특별시 시장실의 〈서울〉, 봉하마을 고 노무현 대통령 묘석)에 대한 간략한 감상이 잘 요약되어 있다.



2. 지구의 역사가 약 45억년이라 할 때 인간의 조상은 약 400만 년 전에 출현했다. 1년을 기준으로 하면 12월 31일 오후 5시에 나타난 것인데, 인간의 역사 자체가 곧 변방의 역사다. 직립보행으로 두 손의 자유를 얻고 불과 도구를 사용하고 문명의 이룩하면서 지구의 중심으로 걸어왔다. 미래에는 지구의 중심을 로봇에게 내어 주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최근 들어 고조되고 있기도 하다.
피부에 와닿지 않게 너무 거시적인 관점이라고 생각된다면 우리나라의 경우로 축소해보자. 선생님의 말씀처럼 ‘변방’이 공간적 개념으로 한정되지는 않지만, 많은 국민들이 문화와 산업의 중심지인 서울과 수도권이라는 거대한 ‘중심’이나 그 근처에 살고자 욕망한다. 부동산, 교육, 직장 등의 이유로 구심력에 묶여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4대문 안, 산업화 이후의 강남이 빨아들이는 거대한 힘에 힘겨워 하면서도 현실적인 이유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중심의 과밀화로 인한 폐해를 인식하고 한적한 시골로 귀농하거나 제주도나 심지어 타국으로 이민을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젊은 층의 움직임이 반갑다. 중심의 구심력을 견디며 원심력을 잘 이용해 ‘변방의 창조성’을 일구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나도 언젠가는’ 하는 다짐을 해보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변방이 공간적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변방은 변방성, 변방 의식의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26쪽”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가장 결정적인 전제가 있다. 변방이 창조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콤플렉스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심부에 대한 열등의식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27쪽)”



신영복 선생님은 감옥이라는 변방에서도 미래를 내다보는 ‘담론’을 제시하셨듯, 나도 바로 지금 여기서 ‘변방의 중심’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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