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누이
싱고 지음 / 창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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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고 글·그림, 詩누이, 창비

 

1. 신미나 시인이 창비블로그에 연재한 글과 그림을 묶은 책이다. 그의 첫시집 『싱고, 라고 불렀다』에서 따온 그림 그리는 싱고의 첫 책. 충북 청양에서 2남 5녀의 대가족 환경에서 자란 그의 유년 시절의 기억이 많이 담겨 있다. ‘어머니, 언니들, 친척들, 친구들’ 그리고 사람 나이로 환갑을 넘긴 고양이(이응옹)가 싱고와 함께 이야기를 풀어간다. 짧은 글과 그림 뒤에 시 한편 전문이 수록되어 있다. 쉬운 시라는 말에 어폐가 있지만 보편적으로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시들이 많다. 글과 그림은 시에 대한 짤막한 해설이자 시인의 성장기이자 또 다른 한 편의 시였다. 미운 시누이가 아닌 詩읽어주는 누이의 감성에 금방 젖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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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일기
다니엘 페나크 지음, 조현실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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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니엘 페나크 소설, 조현실 옮김, 몸의 일기, 문학과지성사


1. 1923년생 남자가 10대부터 80대까지 기록한 일기다. 일기라는 형식은 내면의 기록으로 작성자와 독자가 같은, 철저하게 1인칭 글쓰기다. 그런데 이 소설은 일기의 형식을 빌렸지만 내면보다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일어나는 몸의 변화(퇴화)에 철저히 중심을 맞추고 남자의 딸(리종)에게 남기는 글이었다. 1인칭 화자(‘나’)의 지극히 솔직한 몸에 대한 관찰과 감정의 표현, 내연의 관계, 치부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보이스카우트 활동에서 나무에 묶여 개미들의 밥이 될 뻔 했던 경험이 원체험으로 이 일기를 쓰게 만들었다. 전쟁으로 오랜 병석에 누웠다 돌아가신 아버지, 아들처럼 키워준 비올레트 아줌마, 손자 그레구아르, 단짝 친구(티조) 등 곁을 하나 둘 떠나가는 사람들과 남겨진 이의 내면과 글쓴이도 결국 많은 이들 곁을 떠나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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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모


- 요즘 의사들은 몸에 손을 대려고도 하지 않더군. 의사들에게 몸은 아주 단순한 것, 세포들의 조합일 뿐이지. X선 촬영, 초음파 검사, 단층촬영, 피 검사의 대상, 생물학, 유전학, 분자생물학의 연구 대상, 항체를 생성해 내는 기관. 결론을 말해줄까? 이 시대의 몸은 분석을 하면 할수록, 겉으로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덜 존재한다는 거야. 노출과 반비례하여 소멸되는 거지. 내가 매일 일기를 쓴 건 그와는 다른 몸, 그러니까 우리의 길동무, 존재의 장치로서의 몸에 관해서란다. 11쪽


- 그때 이후(개미사건) 평생 써온 이 일기의 목표는 이랬다. 몸과 정신을 구별하고, 내 상상력의 공격으로부터 내 몸을 보호하고, 또 내 몸이 보내는 부적절한 신호에 대항해 내 상상력을 보호하는 것. (중략) 난 엄마 생각은 하지도 않았었다. (중략) 그렇게 비명을 질러대면서도 내가 단 한 번도 부르지 않았던 유일한 사람은 바로 엄마였다는 것을. 22-23쪽




- 장갑과 비누로 아이들을 씻길 때마다 매번 놀라게 되는 건, 그 조그만 몸들이 정말로 단단하다는 것이다. 두 아이의 이 보드라운 살갗 아래 감춰진 단단한 살 속엔 에너지가 축적되어 있다. (중략) 인간은 극사실주의 속에서 태어나 점점 더 느슨해져서 아주 대략적인 점묘법으로 끝나 결국엔 추상의 먼지로 날아가버린다.



- 마침내 리종에게 남기는 글을 마무리했다. 글을 쓰는 건 지치는 일이다. 만년필 무게가 천근만근이다. 글자 한 자 한 자가 등정이요, 단어는 산이다. (86세 11개월 27일 2010년 10월 7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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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고,라고 불렀다 창비시선 378
신미나 지음 / 창비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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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미나 시집, 《싱고,라고 불렀다》, 창비


1. 한 음절, 한 단어, 한 문장, 한 행, 한 연, 한 편. 애달프다. 종이에 벤 상처처럼 피는 나지 않는데 쓰라리다. 세심하게 고른 징검다리들을 눈으로 밟으며 읽었다. 냇가 가장자리에 놓인 바위의 옆구리를 손으로 쓸었다. 올갱이가 한 움큼 쥐어진다.




- 싱고 14-15쪽 부분

십년 넘게 기르던 개가/ 돌아오지 않았을 때/ 나는 저무는 태양 속에 있었고/ 목이 마른 채로 한 없는 길을 걸었다/ 그때부터 그 기분을 싱고,라 불렀다// (중략) // 아버지가 화를 내면/ 싱고와 나는 아궁이 앞에 앉아/ 막대기로 재를 파헤쳐 은박지 조각을 골라냈다/ 그것은 은단껌을 싸고 있던 것이다// 불에 타지 않는 것들을 생각한다/ 이상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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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극장 - 사진의 순간들, 기억의 단편들
김은산.이갑철 지음 / 아트북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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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산 글, 이갑철 사진, 기억극장, 아트북스




1. 글쓴이는 사진작가 이갑철의 1980년대에 찍은 사진들에 주목했다. 1986년부터 1988년까지의 사진들이 많다. 이 시기는 1998년부터 2000년, 2014년부터 2017년처럼 우리 사회의 웅덩이다. 서울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외환위기와 밀레니엄, 세월호 사건의 대통령 탄핵 이후 새정부 출범까지. 너비와 깊이는 다르지만, 길을 걷다가 웅덩이에 발이 빠져 바짓가랑이가 젖었을 때의 당혹감은 똑같다.



나의 1980년대에 대한 기억은 그리 많지 않다. 아직 열 살도 안된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라 기억은 단편적이다. 저자가 에필로그에 밝혔듯, 이 책은 그 시기에 유년기를 보낸 자식들에 관한 얘기가 아니라 저자나 나의 아버지의 희망, 좌절, 격변기의 당혹감, 꿈이 담긴 에세이이자 아버지를 대신해 자식이 몰아 쓴 일기다.




* 메모



- 우리 각자에게는 돌아보지 않은 오래된 집이 있다. 역사, 무의식, 오랜 상처 고통의 기억, 그것을 무엇이라 불러도 상관없다. 다만 폐허에 쌓여 있는 쓰레기더미 위에 한 켜를 더 얹지 않기 위해 이제 오래된 집으로 돌아간다. 우리 안에서 이미 죽어버린 꿈들을 애도하고, 다시 살려내야 할 무언가를 아직 발견하지 못한 사이 마치 좀비처럼 죽어도 죽지 않고,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헛된 꿈을 떨쳐내기 위하여. 이미 죽어버린 것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고, 떠도는 죽음에 제대로 된 무덤을 선사하기 위하여. 그 답을 찾기 위해 오래된 집의 문을 열고 한 번도 마주하지 않았던 어두움을 응시하려 한다. 그곳에서 새로운 과거를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25-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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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아홉개의 빛을 가진 창비시선 399
이병일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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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일 시집, 아흔아홉개의 빛을 가진, 창비

 

 

1. 제목처럼 시집에는 참 많은 빛이 담겨 있는데, 빛의 색은 하얀 색이 많다. 흰색은 맑고 밝다는 인식 외에도 몽환적이고 모호한 느낌도 있다. 시인은 빛 자체보다는 빛이 비추는 다양한 생명에 주목을 한다. 꽃나무, 동물(뱀이 단연 많고, 멧돼지, 기린, 산양, 개 등)이 자주 등장하고 식물성과 동물성의 혼합(식물의 동물화, 동물의 식물화)을 시도한 시들이 많다. 수사법으로는 ‘AB’ 형태의 환유를 많이 쓴다.

 

 

- 시인의 말: ‘나의 시는 흙이 가진 빛이다.’

 

* 메모

 

- 꽃피는 능구렁이, 80-81쪽 부분

 

화살나무숲이 제 안의 과녁으로 어스름을 들일 때였네/ 팽팽하게 당겨진 시위가 된 능구렁이 배 속에서/ 나는 불꽃 튀기는 침묵의 두꺼비였네/ (후략)

 

- 산양의 유산 88-89

 

내가 잃어버린 침구는/ 희고 아름다운 불면증을 가진 자작나무숲인데// 중략// 흰 빛을 좋아하는 것들은 꼭 겨울밤에 죽었지만/ 사실 나는 흰 빛이 눈 속에 가득 차서/ 숲의 불면증 속으로 들어가보지 못했다

 

- 무릎이 빚은 둥근 각 96-97쪽 부분

 

나는 무용수의 세워진 발끝보다/ 십자가 앞에서 기도할 때의/ 여자의 무릎이 빚는 둥근 각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무릎부터 시작된 기도의 자세,/ 여자의 무릎은 점점 더 둥그렇게 휘며/ 정신은 수직에 가까워진다// 예배당 열친 창의 커튼이 휘날리는데도/ 방석과 여자의 무릎 사이는 점점 깊어진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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