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성이 Dear 그림책
황선미 지음, 김용철 그림 / 사계절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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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미 글, 김용철 그림, 칠성이, 사계절



1. 애완동물을 기르는 주인은 개나 고양이를 자신과 동일시한다. 말을 걸고 밥을 먹고 쓰다듬고 같이 아파한다. 반려동물이 집을 나가 길을 잃거나 병에 걸려 죽는 경우에 그들과 주인은 헤어진다.



소는 다르다. 우주(牛主)는 기르는 소를 자신과 동일시하는 면에서는 개나 고양이의 주인과 같다. 하지만 소는 도축되어 상품화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것이 소의 운명이다. 대부분의 소들이 겪는 길의 곁가지에 싸움소의 운명이 위치한다. 영양식이 가득한 구유의 여물을 먹고 1톤이 넘는 싸움소가 되기도 한다. 강력한 뿔로 모래판을 호령하는 우주(牛主)의 분신이다.



주인공 ‘칠성이’는 황 영감 자신이다. 몇 해 전 싸움판에서 아끼던 범소를 잃고 도축 직전의 ‘칠성이’를 만나 싸움소로 길러내고 강력한 적들을 물리치는 소로 키워낸다.
꽁무니를 보이는 상대는 공격하지 않는 불문율을 지키지 않고 습격을 당해 ‘범소’를 잃은 황 노인. 똑같은 방식으로 범소를 잃게 한 소를 쓰러뜨린 ‘칠성이’를 왜 한동안 황 영감은 쳐다보지도 않고 내버려두었을까.



칠성이의 되갚음의 뿔은 황 노인에게는 범소에 대한 기억을 상기시켰을 것이다. 또한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되어버린 것 같은 복잡한 심경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 혼란을 황 노인과 칠성이는 어떻게 이겨 나갔을까. 소싸움일 뿐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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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하다 - 조심하지 않는 바람에 마음이 온통 시로 얼룩졌다
진은영 지음, 손엔 사진 / 예담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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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 시(詩)시(時)하다(진은영의 시가 필요한 시간), 예담


1. 친숙한 시인들의 시도 많지만 우리나라에 별로 소개되지 않은 외국 시인들의 시들도 많다. 번역의 문제와 역사와 문화의 차이로 본연의 감성을 온전히 느끼지 못할 수도 있지만 친절한 해설이 있어 다행이다. 사실 해설이라기보다는 또 하나의 짧은 시적 산문이다. 시를 왜 쓰고 읽는가. 시는 시시하기 때문이다. 어눌하고 하찮고 즉각적인 결과물을 안겨 주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시(時)에 맞춰 찾아온 친구는 누추한 옷차림과 상한 얼굴에도 반갑지 않은가. 시와 음악을 사랑했던 공자의 말씀을 빌리지 않고도 시는 그 자체로 충분하다.



* 메모


- 이문재, 사막, 62쪽 전문

사막에/모래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 모래와 모래 사이다.// 사막에는/ 모래보다/ 모래와 모래 사이가 더 많다// 모래와 모래 사이에/ 사이가 더 많아서/ 모래는 사막에 사는 것이다// 오래된 일이다.




- 세사르 바예호, 이 집에는 아무도 살지 않아요, 195-196쪽 부분

집을 짓는다고 그 집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 집에 사람이 살 때에야 비로소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다. 집이란, 무덤처럼, 사람들이 머무르는 곳이기 때문이지. 이것이 바로 집과 무덤이 너무너무 똑같은 점이지. 단, 집은 인간의 삶으로 영양을 취하는 데 반해서, 무덤은 인간의 죽음으로 영양을 취한다는 게 다른 거다. 그래서, 집이 서 있고, 무덤은 누워 있는 법. //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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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스펙트럼 - 한 가지 색으로는 그릴 수 없는 청춘의 꿈
전명진 글.사진 / 컬처그라퍼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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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명진, 글·사진, 꿈의 스펙트럼, 컬쳐그라피



1. 나라면 한복을 입고 1년 동안 세계 곳곳의 이정표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여행할 수 있었을까. 돈과 시간의 문제만은 아니다. 용기의 문제다. 지금은 많이 알려진 ‘카우치 서핑’을 통해 인맥을 쌓아 주거를 해결하고, 멕시코에서 가짜 현금인출기에서 비밀번호가 노출되어 50일을 빈털터리로 유럽을 돌아다닐 수 있었을까. 한국 문화를 알리는 뜻있는 프로젝트를 위해 계획을 세우고 협찬을 받고, 사진작가 김중만 선생을 찾기 위해 길거리에서 며칠 동안 해맬 수 있었을까. 절실함과 추진력. ‘저울이 흔들리는 동안에는 무게를 잴 수 없다’는 저자의 말처럼 나는 흔들리고 있지만 ‘흔들려야 흔들리지 않는다’는 역설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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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혐오 - 공쿠르상 수상 작가 파스칼 키냐르가 말하는 음악의 시원과 본질
파스칼 키냐르 지음, 김유진 옮김 / 프란츠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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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키냐르, 음악 혐오, 프란츠



1. 음악을 사랑하고 조예가 깊었던 저자가 음악을 왜 증오하게 되었을까. 저자는 음악의 기원 그 이유를 짚어본다. 시각과는 달리 청각은 눈꺼풀 같은 차단막이 없다. 무차별적이고 강압적으로 소리에 노출된 청자는 수동적으로 소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로써 음악은 밤과 공포, 2차 세계대전 당시 수용소에서 이루어졌던 강제노동과 학살, 현대 사회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소음과 관련된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책 대신 휴대폰과 이어폰을 챙긴다. 많은 사람들이 이동 중에 음악을 듣는다. 그들이 듣는 음악은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대한 방패인 동시에 내 안의 침묵을 못 견뎌하는 불안에 대한 눈꺼풀이다. 가끔은 천천히 걸으면서 ‘나’라는 악기가 내는 음악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발바닥으로 땅을 짚고 팔을 흔들며 숨을 들이 내쉬고 주변의 말과 음악에 대해 내 몸이 반응하는 미세한 속삭임을 듣는 시간을 하루에 몇 분이라도 가져야겠다.


* 메모


- 우리는 극도로 상처 입은 어린아이와 같은 유성(有聲)의 나체를, 우리 심연에 아무 말 없이 머무는 그 알몸을 천들로 감싸고 있다. 천은 세 종류다. 칸타타, 소나타, 시. 노래하는 것, 울리는 것, 말하는 것. 이 천들의 도움으로 우리는 우리 몸이 내는 대부분의 소리를 타인이 듣지 못하게 하려는 것과 같이, 몇몇 음(音)들과 그보다 오래된 탄식에서 우리의 귀를 지켜 내려 한다. 9쪽

- 공포와 음악, 음악과 공포. 이 두 단어는 영원히 결속된 것만 같다. 비록 그 기원과 시대가 어긋난다 할지라도, 성기와 그것을 덮고 있는 천과 같이. 13쪽



- 끝없는 수동성(비가시적인 강제된 수신)은 인간 청력의 근간이다. 내가 ‘귀에는 눈꺼풀이 없다’고 요약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104쪽


- 음악은 모든 예술 중에서, 1933년부터 1945년에 이르기까지 독일인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 학살에 협력한 유일한 예술이다. 음악은 나치의 강제수용소에 징발된 유일한 예술 장르다. 그 무엇보다도, 음악이 수용소의 조직화와 굶주림과 빈곤과 노역과 고통과 굴욕, 그리고 죽음에 일조할 수 있었던 유일한 예술임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187쪽

- ‘음악 혐오’라는 표현은 음악을 그 무엇보다 사랑했던 이에게, 그것이 얼마나 증오스러운 것이 될 수 있는지를 말하고자 한 것이다. 1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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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잘 모르겠어 문학과지성 시인선 499
심보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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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보선 시집, 오늘은 잘 모르겠어, 문학과지성사


1. 강동연 주연의 영화 ‘가려진 시간’은 초등학교 동창인 성민(강동원)과 수린(신은수)과 그의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다. 우연히 발견한 동굴에서 꺼낸 알이 깨져 수린을 제외한 친구들이 모든 현실이 정지된 시간 속에서 살다가 성민만 제외한 두 친구는 죽게 된다. 성민만 훌쩍 커버린 채 수린 앞에 나타나 벌어지는 아이들의 실종사건을 다룬다.



오랜만에 시집을 낸 심보선 시인의 두꺼운 시집을 읽다가 ‘가려진 시간’을 떠올렸다.

- 당나귀 12-14쪽 부분

당나귀는 태아 때부터 등에 굳은살이 박여 있다// 당나귀는 벤자민처럼 태어날 때부터 늙은 당나귀다// 당나귀는 벤자민과 달리 계속 늙기만 한다// 당나귀는 자기보다 젊은 늙은 말을 연민한다// 당나귀는 자기보다 젊은 늙은 사람을 신뢰한다//

: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그 ‘벤자민과 달리 계속 늙기만’ 하는 당나귀. 늙어감은 예정된 죽음에 남들보다 일찍 도달하는 것이다. 이런 서글픈 상황에서 당나귀는 자기보다는 젊지만 늙은 말과 사람에게 공감한다. 절대 긍정적이라 볼 수 없는 환경에서 애써 밝은 척 하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당나귀. 훌쩍 커 버린 ‘성민’을 알아보고 어떻게든 성민에게 원래의 삶을 되돌려주려고 애쓰는 수린의 마음을 닮았다.


2. 눈에 들어오는 시 중엔 문학(시)에 대한 시들이 많았다. 사회학자답게 사회 문제에 대한 생각을 은유하는 시와, 가족 중엔 아버지에 관한 시가 눈에 띈다. 5부의 장시(마치 혀가 없는 것처럼, 브라운이 브라운에게)도 인상적이다. 시집이 두껍고 긴 호흡으로 읽어야 하는 시도 많았다.




* 메모


- 소리 9-11쪽 부분

들어라/ 인적이 드문 밤거리여/ 쨍그랑 병 하나가 깨지면 순식간에/ 모든 집의 불빛이 꺼지는 첨단의 도시여



- 오늘은 잘 모르겠어 28-29쪽 전문

당신의 눈동자/ 내가 오래 바라보면 한 쌍의 신(神)이 됐었지// 당신의 무릎/ 내가 그 아래 누우면 두 마리 새가 됐었지// 지지난밤에는 사랑을 나눴고/ 지난밤에는 눈물을 흘렸던 것으로 볼 때/ 어제까지 나는 인간이 확실했었으나// 오늘은 잘 모르겠어// 눈꺼풀은 지그시 닫히고/ 무릎은 가만히 펴졌지// 거기까지는 알겠으나// 새는 다시 날아오나// 신은 언제 죽나// 그러저나 당신은······



- 근육의 문제 144-147쪽

불을 꺼뜨리는 물이 있다면/ 물을 증발시키는 불도 있다/ 무너지는 세계 속에서 뭔가 시작하려는/ 역설, 진동, 이끌림, 자기장의 형성// 중략// 그날 거기서 어떤 변화가 시작됐다// 표정을 갖는다는 것은/ 감정이 아니라 근육의 문제였다/ 자살과 살인, 죽음, 삶,/ 죽음의 죽음, 삶의 삶······/ 그 모든 것이 근육의 문제였다/ 근육 안에 흐르는 전기의 세기와 방향/ 그것들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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