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예술이 된다 - 문학과 영화에서 죽음을 사유하는 방식
강유정 지음 / 북바이북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강유정 에세이, 죽음은 예술이 된다(문학과 영화에서 죽음을 사유하는 방식), 북바이북



문학평론가이지만 영화평론가로 훨씬 더 많이 알려진 저자의 글은 쉽게 읽히는 것 같지만 정곡을 찌른다. 문학, 영화 아니 모든 예술에서 ‘죽음’은 빼놓을 수 없는 소재이며 주제다. 이 책이 특별한 것은 서사 장르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소설과 영화에 담긴 죽음을 두루 잘 섞어 맛있게 내놓은 점이다. 책 속의 영화와 소설을 찾아 읽는 재미도 준다.



● 메모



- 죽음이 예술과 몸을 섞어 다른 무엇으로 현현하는 그 작은 시간들, 스몰 아워(small hour). 빛도, 어둠도 아닌 밝은 밤, 그런 밤에 이 글을 쓴다. 황혼은 길고, 밤은 깊고, 아침이 오기 전까지의 깊은 새벽, 스몰 아워는 속삭인다. 8쪽







* 환상의 빛과 삶의 투박함 사이에서



『환상의 빛』미야모트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바다출판사, 2014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동명의 영화


“눈에는 비치지 않지만 때때로 저렇게 해면에서 빛이 날뛰는 때가 있는데, 잔물결의 일부분만을 일제히 비추는 거랍니다. 그래서 멀리 있는 사람의 마음을 속인다, 고 아버님이 가르쳐주었습니다. 대체 사람의 어떤 마음을 속이는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그러고 보면 저도 어쩌다 그 빛나는 잔물결을 넋을 잃고 바라볼 때가 있습니다. 풍어 같은 걸 해본 적이 없는 이 근방 어부 나부랭이들의 흐리멍덩한 눈에 한순간 꿈을 꾸게 하는 불온한 잔물결이라고, 아버님은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에게는 좀 다른 의미가 있는 듯했습니다. 그냥 그런 기분이 들었다는 것일 뿐, 그게 대체 어떤 것인지 저로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환상의 빛’은 사실 작은 파도들에 불과하지만 커다란 물고기 때의 등지느러미처럼 보이는 빛의 교란을 의미한다. 실체는 다르지만 인간의 눈에는 다르게 보이는 아름다운 빛, 그게 바로 환상의 빛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일상의 저편에 놓인 일종의 환상이며 비현실이다. 61-6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 제8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임현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7 제8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문학동네




임현의 「고두」, 최은미의 「눈으로 만든 사람」, 김금희의 「문상」을 읽고 책을 책장에 넣어 두었다가 얼마 전에 다시 꺼내 뒤쪽에 실린 네 편을 읽었다. 그래서인지 뒤쪽에 실린 작품들이 나에겐 훨씬 강렬하게 다가왔다. 백수린의 「고요한 사건」을 읽으면서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찾아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강화길의 「호수-다른사람」은 여성이 느끼는 폭력에 대해 남성인 내가 읽어도 섬뜩하고 박진감 있게 서사를 밀고 나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소설집 쇼코의 미소를 감명 깊게 읽어서 그런지 최은영의 「그 여름」도 충분히 좋았다.


* 임현, 고두(叩頭)


- 고두: 공경하는 뜻으로 머리를 땅에 조아림


- 진정성이라든가 진심 같은 말을 나는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 그걸 무엇으로 판단할 수 있겠니? 진짜는 머리를 조아리는 각도, 무릎을 꿇는 자세에서 오는 것들 아니겠니? 너를 때리긴 하지만 사랑하는 마음만은 진심이다, 같은 건 없단다. 호소력 같은 것이 다 무엇이겠니. 그것은 형식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잘못을 했다면 더 오래 무릎을 꿇고 더 낮게 엎드리는 자세, 그게 가장 필요하단다. 15-16쪽




* 김금희, 문상



- 선택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실패가 선택되는 것이다. 107쪽
- 사람은 죽어서도 삼 일간은 귀가 열려 있다는 희극 배우의 말

- “걱정이야. 마지막 장면에서 독창을 해야 하거든. 어디 이민이라도 가야지 싶다니까.” 115쪽

- “조용히 우는 사람”




* 백수린, 고요한 사건


- 그러니까 소금고개는 내가 그때까지 살아왔던 곳과는 완전히 달랐다. 우리가 이사하던 날,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의 뒷좌석에 앉아 꾸벅꾸벅 졸다가 눈을 떴을 때 우리의 구형 엘란트라는 굽이굽이 이어진 좁다란 비탈길을 힘겹게 올라가고 있었다. 차창 너머로 단층의 낡고 허름한 집들이 줄지어 있는 풍경이 보였다. “엄마, 여기가 서울이야?” 내가 상상했던 서울의 모습과 달라도 너무 달랐으므로 나는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차는 한참을 더 올라간 끝에 멈춰 섰다. 어머니가 앞장서서 문을 열고 들어가서 나는 골목 안쪽, 청록색 대문의 집이 우리가 앞으로 살게 될 곳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때는 봄기운이 돌기 시작하는 3월 중순이었고, 유난히 맑은 날이었다. 눈부신 햇살 속에서 칠이 벗어진 담벼락과 동그란 엉덩이를 내놓고 아무데나 주저앉는 아이들의 오줌 자국이 길바닥 여기저기에 말라가던 골목은 서글프리만큼 초라했다. 나는 안에 든 것이 깨질까봐 이삿짐 트럭에 싣는 대신 서울까지 직접 들고 온 종이상자를 끌어안은 채 부모님을 따라 조심조심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기분 탓인지 집안에 들어서자 하수구 냄새가 푹 끼쳤다. 131-132쪽



* 강화길, 「호수-다른사람」

작가노트) 아직 남은 사람

“물론, 다른 이야기도 있었다. 밤새 홀로 누워 있던 그녀의 몸이 얼마나 차가웠는지, 그녀가 흐릿하게 맴도는 의식을 어떻게 간신히 붙잡았는지, 어떻게 눈을 부릅뜨고 견뎠는지.”

나에게는 이 장면이 중요했다. 204쪽




● 천희란, 다섯 개의 프렐류드, 그리고 푸가


- 은유란 선명하고 매혹적이지만, 때로는 그 아름다움이 우리를 미혹한다는 것을 잊지 마라. 이를테면 네가 망쳐온 그 화분들은 결코 네가 얻게 될 생명과는 등가의 것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303쪽


- “절대로 쓰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가진 것의 의미를 알 것 같다. 한 작가에게 쓰고 싶지 않은 것은 곧 쓸 수 없는 것일 테다. 비열한 글쓰기란 자신과 타인의 삶을 팔아 연명하는 것도, 핍진한 허구를 구성하지 못하는 것도, 삶의 새로운 의미를 발굴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저 쓸 수 없는 것을 쓸 수 없는 것으로 남겨두는 것. 지금까지의 절망이 모두 허위였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303-30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눈물을 두고 왔다 시인동네 시인선 62
이진욱 지음 / 시인동네 / 201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프로골퍼 13쪽

아폴로 14호 셰퍼드 선장은/ 달 표면에 내려서기 전/ 6번 아이언과 골프공을 챙겨/ 착륙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달 표면에 흠이 생겼다



- 다른 건 잘 몰라도 30-31쪽 부분

다른 건 모른다는 건/ 비로소 채비가 되었다는 것/ 그건 모든 걸 알고 있다는 깊은 말/ (중략)



- 드라이버의 꿈

“꿈은 힘이 될 수 있지만/ 힘은 꿈이 될 수 없었다”



- 봉숭아가 쓴 詩 86-87쪽 부분

꽃잎에 앉은 물방울 속으로 참새 떼가 들어가고/ 늙은 참새가 내려앉은 슬레이트집 불빛 속으로 저녁연기 같은 사람도 들어옵니다



- 고욤나무 옛집 98-99쪽 부분

주인이 떠난 집에 바람이 들어앉자/ 먼지가 살림을 풀어놓았다



- 늙은 목수의 꿈 102-103쪽 부분

대패는 아재의 밥/ (중략)/ 한때 대패는 명함이었고 거드름이었으며 때론 한 잔의 가락이 되기도 했다



해설) 김춘식, 다른 것은 몰라도, 시는, 시인은

이 시집에서 1부와 2부의 시편이 자본주의적인 만화경에 의해 낯설게 보이는 세상을 담고 있다면, 3부와 4부는 토속적이면서도 서정적인 시인의 언어적 장점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작품이 주로 배치되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연을 따라. 기초시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W. G. 제발트 지음, 배수아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W.G. 제발트, 배수아 옮김, 『자연을 따라. 기초시』, 문학동네



긴 산문시라는 느낌보다는 시의 형식을 띈 보고서, 시적 산문의 느낌이 강하다. 각주와 옮긴이의 해설이 꼼꼼해서 이해에 무리는 없다. 작가의 소설이나 산문을 읽고 읽으면 좀 더 이해가 쉽겠다. 『현기증, 감정들』 『이민자들』을 찾아 읽어봐야겠다.


* 메모

- 알프스의 눈과 같이

- 그리고 내가 바다 끝에 가서 머물지라도

- 어두운 밤이 전진한다


옮긴이의 말) 배수아, 「황무지 위로 퍼지는 광기의 속삭임」



-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한 편의 장시인 『자연을 따라. 기초시』는 르네상스 시대의 독일 화가 그뤼네발트, 18세기 독일 과학자이며 의사로 비투스 베링의 캄차카 탐험에 동행한 자연연구가 슈텔러, 그리고 작가 자신의 부분적인 전기로 이루어진다. 아마도 제발트는 자신의 세 폭 제단화를 위해 예술적 형제애를 갖고 이들에게 자기 스스로의 모습을 투영했을 것이다. 이 세 인물들의 단 한 가지 뚜렷한 공통점이라면, 그들 모두 눈에 보이는 세계를 이어주는 보이지 않는 연관성, 현세 너머에 있는 궁극의 근원을 발견하고자 애썼다는 것이다. 147-148쪽


- 첫 번째 시는 화가 그뤼네발트의 죽음으로 끝나며, 두 번째 시는 슈텔러의 죽음으로 끝난다. 그리고 세 번째 시는 벽에 걸린 알트도르퍼의 그림을 가리키는 “죽음이 우리의 눈 앞에 놓여 있다”라는 카프카의 인용으로 막이 내린다. 그뤼네발트와 슈텔러의 죽음, 그리고 얼마 후 도래할 작가 자신의 죽음이, 승리와 영광이라고 믿지만 사실은 ‘파괴의 자연사’를 쌓아가는 인간 역사를 묘사한 알트도르퍼의 그림에 투영되고 있다. 권력과 정복에의 지향은 나폴레옹과 히틀러에게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다. “이것은/ 약속된 종말인가? / 오, 돌로 된 인간들아.‘(본문 134쪽) 162-16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은 우르르 꿀꿀 문학과지성 시인선 502
장수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장수진 시집, 사랑은 우르르 꿀꿀, 문학과지성사


연극을 전공한 시인이 쓴 시들에 극적인 요소가 짙다. 화자는 어딘가 억눌려 있고 욕망을 분출하고 싶어한다. 독백처럼 중얼거리고, 스스로 감정을 쌓아올리다가 한순간에 무너뜨리기도 한다. 남들이 뭐라 하든 자신만의 세계를 지키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비슷한 음가를 사용한 말놀이 요소도 보이지만 화자가 능청스럽게 한 편의 드라마를 구축한다.




* 메모



- 친애하는 비애 11쪽

숲은 뒤집혀/ 불타고// 불은 부리가 되어/ 탄 숲을 새의 눈 속에 넣고// 날아갔지// 돌아오기 위해// 다만 무언가 죽여야 했어// 심부름을 했지// 불은 내 거야





- 예술가들 216-221쪽 부분

오른쪽 어깨가 벽에 쓸렸다/ 외투 깃을 조였다/ 내 왼쪽 어깨를 부수고 달려가는/ 차의 전조등과/ 핸들에 식칼을 꼽듯 경적을 울리는/ 운전자들// 나를 죽이지 못하네// 미친년 터널을/ 걷네/ 걷네// 걷는다 물컹한 고기 한 근의 자존심 입에 물고/ 동물의 피를 떨구며 간다// 삵// 고양이가 쥐를 물었는가/ 쥐의 안부를 물었는가// (중략)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