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나지 않음, 형사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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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호께이,《기억나지 않음, 형사(The Man Who Sold the World)》, 한스미디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는 형사가 살인사건이 발생한 2003년부터 현재(2009년)까지의 기억을 문자 그대로 잃어버렸다. 부부와 뱃속의 태아까지 3명의 일가족이 무참히 살해된 사건은 이미 종결된 지 한참이다. ‘쉬유이’ 형사는 위 사건을 영화화하는 소식을 듣고 이를 취재하는 ‘아친’ 기자와 위 사건을 되짚어나간다.


전반부까지 일반적인 추리소설의 스토리를 충실히 따른다. 이 소설의 푼크툼(punctum)은 데이비드 보위의 음반과 노래(세계를 팔아넘긴 사나이(The Man Who Sold The World))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이다. 보위의 노래는 진범의 추리과정에서 단서를 제공하고 외상 후 스트레스는 이 소설의 중심 소재이자 후반부의 반전의 반전의 반전의 근거다.


기억나지 않음. 사람들은 망각을 괴로워한다. 나이가 들수록 예전에는 또렷이 기억나던 것들이 기억나지 않을 때가 많다. 반대로 수십 년 전의 기억은 또렷한데 어제 있었던 일은 기억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기억할 대상, 망각의 대상 자체가 없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억 자체를, 망각 자체를 망각하는 상황이 두렵다.



* 메모


- 전문가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반응에 네 가지 단계가 있다고 한다. 과민반응, 감정의 회피, 충격의 재경험, 그리고 회복이다. 138쪽




지난주에 홍콩섬 웨스턴 서덜랜드가에 있는 둥청아파트 3층에서 섬뜩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부부가 칼에 찔려 사망했는데, 아내는 심지어 임신 중이었다. 남편 정위안다(鄭元達)는 키가 작고 통통한 체형이며 작은 무역회사에서 한 부서의 책임자로 일했다. 아내인 뤼슈란은 정위안다보다 몇 살 어린데, 결혼한 뒤 말단 창구직원으로 일하던 은행을 그만두었다. 네 살 난 딸을 돌보면서 새로 태어날 아기를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18-19쪽


- 지금 이런 감각을 ‘미시감’이라고 하는 거겠지? 낯선 사물을 익숙하게 느끼는 ‘기시감’과 반대로 미시감은 익숙한 사물에 대해 낯선 감각을 느낀다. 이상한 것은, 낯설긴 한데 또 한편 완전히 낯선 느낌은 아니라는 점이다. 마치 기시감과 미시감을 동시에 느끼는 것 같다. 27쪽



- “난 린젠성이 진범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그냥 사건에 어떤 의문점이 있으니 확실하게 하고 싶은 거예요. (중략)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단기적인 기억상실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내 주치의가 한 말입니다. 단기적이라는 건 몇 시간 정도 짧은 기간의 기억을 잃어버린다는 뜻이 아니라 기억상실 상태가 이어지는 기간이 짧다는 뜻입니다. 나는 기억을 잃은 지 세 시간밖에 안 됐지만, 금방이라도 기억이 돌아올지 몰라요.” 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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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이음 희곡선
박근형 지음 / 이음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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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형 희곡,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이음


2016년 3월 남산예술센터에서 초연된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의 대본이다. 연극을 보진 못했지만 탈영병, 카미카제, 초계함, 이라크 등 각 장면마다 그때 그 장소에 있었던 군인들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생각해보게 만드는 희곡이다.



“안 맞는 신발이지만” “자갈길을 맨발로 다닐 수는 없”는 없는 우리들은 탈영병이다. “탈영병 우린 모두 전쟁 중이고, 우린 모두 군인이라고.” 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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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 창비시선 417
장석남 지음 / 창비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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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남 시집,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 창비


1. 창비에서 주최(1월 17일 수요일 저녁 7시 30분 창비 지하1층 스튜디오 홀)한 장석남 시인 북토크에 초대받았다. 2017년 12월에 발매된 시집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를 낭독하고 질문하는 자리였다. 스무 남짓한 독자들이 모였다.



사회와 진행은 KBS아나운서 출신으로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이상협 시인이었다. 성우처럼 목소리가 좋았다. 지금 소속된 회사가 파업 중이었고, 장석남 시인과 개인적인 인연도 있어서 사회를 본 것이다.



신작 시집의 첫 번째 시 「소풍」두 번째 시「불멸」시인이 직접 낭독했다. 이상협 시인의 말처럼 시집은 악보요, 시인의 목소리는 연주였다. 성우처럼 정갈하지는 않지만 한 단어 한 행에 묘한 리듬이 느껴졌다. 사나운 파도가 아니라 해변을 걷는 내 발을 적시는 하얀 포말이었다.



인간은 고작 백년도 안 되는 삶을 살지만 바위는 그에 비할 수 없는 오랜 세월을 이 땅에서 살아왔으므로 “바위 살림에 귀화를 청”하는 시인의 마음은 답이 더딜 수 밖에 없다. 「불멸」에서는 “긴 비문을 쓰려” 한다는 다짐을 하는데 “꽃으로 낯을 씻고 나와” 비문을 읽겠다는 마음과 “꽃 흔한 철을 골라 꽃을 문질러 새기려” 하는 마음은 돌을 정으로 찍어 음각하는 비문보다 훨씬 더 가슴 속에 오래 남을 불멸의 다짐이다.



그밖에 「문을 얻다」 「문을 내려놓다」 연작에서 이 ‘문’은 시인은 질문으로 생각했다는 사실을 들었고 3부의 ‘고대’에 대한 생각 등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초록’ ‘죄’ 에 관해 질문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아이’의 이미지 색으로 나타나는 ‘초록’의 이미지는 근원과 고대를 탐구하고 열망하는 시인의 색이 아닐까, 「정육점」이나 「우는 돌」에서 엿보이는 ‘죄’에 관해 종교적 사유와 어떻게 연결시켜야 할지 고민해보는 것이 나의 일이다.




조선일보 인터뷰 중에서)

“고대는 시간의 이름이면서 분할 이전의 세계다. 우리 삶 속의 고대성은 무엇인가. 먹고 우는 일처럼 원초적인, 불교적으로 얘기하면 무(無)는 아니지만 조화를 상징하는 틈이 벌어지지 않는 언어다. 단순하면서도 의미가 탈락하지 않은 언어다.”


제자들에게 항상 하는 말: 제발 소박하게 써라. 시에 삶이 안 보이고 언어만 보인다. 시가 삶에 작용할지 자문하라. 손으로 공작된 큰 시는 가슴에서 일어나는 가장 약한 시보다 아래다. 간절한 시는 반드시 떨림이 드러난다. 자기가 써서 자기가 먼저 감흥할 수 있어야 한다.



* 메모

- 소풍 10쪽

소매 끝으로 나비를 날리며 걸어갔지/ 바위 살림에 귀화(歸化)를 청해보다 돌아왔지/ 답은 더디고/ 아래위 옷깃마다 묻은 초록은 무거워 쉬엄쉬엄 왔지/ 푸른 바위에 허기져 돌아왔지/ 답은 더디고


- 입춘 부근 12쪽

끓인 밥을/ 창가 식탁에 퍼다놓고/ 커튼을 내리고/ 달그락거리니/ 침침해진 벽/ 문득 다가서며/ 밥 먹는가, / 앉아 쉬던 기러기들 쫓는다

오는 봄/ 꽃 밟을 일을 근심한다/ 발이 땅에 닿아야만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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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사뿐사뿐 오네
김막동 외 지음, 김선자 / 북극곰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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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할머니들의 시에 할머니들이 직접 그린 그림을 함께 엮었다.



왼손은 허릴 짚고, 오른손은 지팡이를 짚고 먼 곳에 시선을 두고



"눈이 사뿐사뿐 오네/ 시아버지 시어머니 어려와서/ 사뿐사뿐 걸어오네"



노래하는 할머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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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 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 개정판
최규석 지음 / 창비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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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밝았네

물은 끓어오르기 시작하네

물은 100도에서 끓지만

한 걸음 한 걸음 그렇게

우리 모두가 한 걸음 씩 모으면

끓는점은 점점 낮아질 거라네



우리는 꼭 거기에서 만나야 해

향린교회, 성공회 회관, 명동성당, 광화문 광장

화염병에서 빨간 꽃이 피어나고

그 꽃을 우리를 막아서는 전경에서 꽂아주어야 하네



꽃은 그렇게 번져가네

촛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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