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푸가 - 철학자 김진영의 이별 일기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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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와 프루스트, 바르트와 벤야민과 아도르노.

단상의 지휘자는 각 파트의 연주자들을 밀고 당기고 달래고 소리치며

베토벤의 대푸가를 연주해 나간다.



가사가 없는 노래, 침묵의 멜로디, 부재의 앙상블



당신이 앉았던 빈 조주석을 들여다보며 "추방하는 건 내가 아니다. 그건 옆 자석이다. 그 빈자리는 나의 마음을 알고 있다." 23쪽



후회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과거에 대한 후회" 다른 하나는 " 헤어진 뒤의 후회다."고 말한다.



헤어진 뒤의 후회라. 헤어지기 전에는 헤어진 후회를 겪을 수 없다. 헤어진 다음에라야

'헤어진 일은 정말 잘한 일일까. 그때 붙잡아야 했나. 헤어지고 나만 아픈가. 다시 연락을 하지 않으면 또 후회할까.' 같은 과거에 대한 후회와는 또다른 감각이 물밀듯이 밀려오는 것이다.



이런 튼튼하지만 넘나들 수 있는 울타리를 접었다 펼치며 나는 행복한 이별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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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도서] 80일간의 세계 일주 2 - 쥘 베른 장편동화 창비 재미있다! 세계명작 큰글자도서
쥘 베른 지음, 김주열 옮김, 이상권 그림 / 창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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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포그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여행의 과정에는 관심이 없으며, 오직 80일간의 세계일주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존재. 고난과 역경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 기계 같은 존재. 주변에 가족과

친척과 친구가 없는 단단한 섬. 그가 궤도를 벗어나는 순간이 있는데, 프랑스 보르도를 기착지로 하는

배의 선장을 가두고 리버풀로 행선지를 바꾸고 직접 배를 모는 장면, 자신이 은행강도범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 픽스 형사를 때리는 장면 그리고 아우다 부인의 고백을 받고 수락하는 장면이다.



"시점이 종점이 되고, 종점이 시점이 된"(윤동주, 종시) 여행에서 포그에게 남은 것은 사랑과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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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려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이규리 아포리즘 2
이규리 지음 / 난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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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와 '뒷모습' 관한 챕터의 글이 기억에 남았다.

'뒤는 여백이다. 뒤는 말하지 못한 고백이다' 같은.



저자는 카프카를 꽤 좋아하는 것 같다.

'오래 끈 어떤 죽음 이후 가족들은 단란하게 소풍을 갔다.'



굳이 카프카가 아니더라도 저 문장은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려 모노 누울 때, 누군가 내게 말해주었다.

누구나, 더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써보라고.



웃었다. 바늘에 찔리고도 웃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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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그림의 역사
데이비드 호크니 외 지음, 로즈 블레이크 그림, 신성림 옮김 / 비룡소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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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7일 일요일, 올 상반기 힘든 부서에서 수고했다고 아내로부터

한나절 휴가를 허락받았다. 1호선을 타고 시청역에서 내려 점심을 먹고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를 보고 돌아오는 짧은 여정을 좋아한다. 이 날도 덕수궁 옆 중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걸었다. 평소 같으면 붐빌 장소가 아닌데 사람들로 입구부터 미술관 앞이 북적인다. 정문을 중심으로 오른편에 임시 부스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영국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 전의 매표소였다.


노 화가의 시대별로 정리된 섹션과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면서 화가의 생애를 일별했다. 특히 시대에 따라 도구가 계발되고 바뀌는 과정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변신을 거듭해 나가는 화가의 포용성과 적극성이 인상깊었다. 기념품 숍에서 엽서를 몇 장 구입했다. '클라크 부부와 퍼시'(1970년-1971년)과 화가의 부모님을 찍은 사진, 수영장에서 사람이 물에 뛰어드는 찰나를 감각적으로 포착한 'a big splash'였다.


화집은 따로 구매하지 않고 호크니 관련 도서를 검색했다. 최근 도서중에 부천시 희망도서로 "어린이를 위한 그림의 역사"를 신청했다. 큰 도판으로 전시에서 보았던 '클라크 부부와 퍼시'를 다시 볼 수 있었고화가가 생각하는 빛과 그림자, 공간, 거울에 관한 활용을 엿볼 수 있어서 제목과 달리 어른들이 읽어도 매우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위 전시를 본 사람이라면 더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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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있다 - 윤동주 산문의 숲에서
김응교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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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이마까지 바짝 다가와 툭 툭 수박씨를 내뱉을 때 번져가는 어둠에 물들지 않도록 이내 방향을 정해야 합니다 전갈의 등을 타고 세제곱의 발걸음으로 계단을 무너뜨리며 쫓아오는 우레에 급한 마음은 포도(鋪道)에 박힌 별의 모양으로 나아갈 길을 점치어 봅니다

 

남쪽에 고향이 있습니다 그 고향의 하늘에 두고 온 참외처럼 생긋이 웃는 애인이 있습니다 토마토를 도마도, 장어를 짱어라 말하는 애인입니다 복숭의 솜털 같은 애인의 눈망울을 바라볼 때면 연륜을 알 수 없는 녹나무 한 그루가 맑은 그늘을 공작의 날개처럼 펼치고 있습니다

 

나는 별들의 폭우를 피해 나무로 들어갑니다 동굴 같은 여름 속에는 폭염을 피해 흘러든 무궁무진한 별똥의 숲이 있습니다 극단의 마음을 끌어안고 사는 나무는 어쩌면 내가 잊고 살던, 내게서 떨어져 날아간, 언젠가 내가 나에게 버린, 내게 스며든 애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무는 보고 싶지 않은 내 얼굴을 가리는 그늘막이자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을 보지 않게 해 주는 가림막입니다

 

나는 숲에서 별스러운 관통을 꿈꿉니다 뒤로 한 걸음 혹은 앞으로 세 걸음의 봄을 생각합니다 빗금처럼 차창이 비틀거립니다 한 평 남짓 내 그늘에 낀 시간의 녹 위로 투명한 개미들이 지나갑니다 고요한 레일 위에 펼쳐진 소리의 그물에 몸을 던져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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