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가방




‪#‎책가방‬


가방은 무거웠다 다음날 준비물은 색종이와 가위 그리고 풀이었다

엄마가 싸준 책보따리를 메고 버스를 타면 사람들이 쳐다 보았다 

보온 도시락과 실내화 가방을 낑낑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선생님은 점심시간에 교실에 남았다 

누가 무슨 반찬을 싸 왔나 둘러 보았다

선생님 얼굴을 보지 않았다 멸치와 김치와 콩이었다 열어 보지 않고도 

알았다

선생님은 내 얼굴을 보지 않았다 성적표가 나온 날 처음 선생님 얼굴을

알았다

"내일은 덥다니까 꼭 시원한 옷을 입고 오세요."

엄마에게 졸랐다 선생님이 꼭 새 옷입고 오랬다고 시장에 갔다

천원 짜리 로봇 장난감을 사달라고 졸랐다 다음에 사준다는 말은

다음에 그 다음에 다음다음에도






오천원 짜리 반팔 티를 입고 학교에 갔다

"빨간 옷이 시원해 보인다."는 말이 왜 그렇게 무거웠을까

나는 낙타처럼 가방을 메고 집에 와서 말했다

"빨간 옷이 시원해 보인단다."

나는 요즘도 책가방을 메고 다닌다 

가방은 여전히 무겁고 버스를 타면 사람들이 쳐다본다

옷을 사러 가자는 아내의 말에 

"난 됐어, 당신 옷이나 사."






선생님을 만났다 "키가 많이 안컸네"

"선생님 그때 가방이 너무 무거워서 안컸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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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그림자


그림자는 어둑해져야 일어난다 일어나 무슨 짓을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블랙
박스에도 없다 그림자는 피부색이 없다 빛은 그림자를 낳았을 뿐 기르지는 않았다
그림자를 기른 것은 꿈이었다





꿈은 욕실에서 노래를 불렀고
물줄기는 노래를 타고 흘렀다
몸을 닦고 그대로 밖으로 나와 거울 앞에 섰다





키가 컸지만 말랐구나 먹어도 살찌지 않는 체질이란 말은 위로가
아니었다 많이 먹고 쑥쑥 자라고 싶지만 내일이면 쪼그라들겠지





그림자를 불렀다
길게 한 숨 쉬더니 뒤를 돌아보려다 저만치 앞으로 걸어갔다
쫒아갔다 쫒아갈수록 더 멀어지는 그림자를 보며
가만히 섰다
그림자는 훌쩍 컸고 겅중겅중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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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삿날


떠난 날 떠나 보낸 말 남긴 말 넘긴 날 숨은 말 숨긴 날
모인 날 모은 말 주린 날 줄인 말 늘인 말 느린 날
두살배기 증손녀가 제문(祭文)을 읽는다
며느리 딸 아들 손녀 손자 갈치 삼치도 따라 부른다
사과 배 감 바나나 키위 멜론 삼치 갈치도
둥그런 제삿상에 절을 한다
상하좌우는 주객전도



빨간 사과와 흰 밤도 내일이면 나이를 먹는다
나이를 먹어도 향은 하나
향에 취한 젓가락은 몸을 튕기며 휘청거린다
목이 마르면 탄국을 들이킨다



밥먹기 싫다는 아이도 밥달라는 날
벽이 열린다 보살도 신부도 집사도 손을 모은다
뒤집고 붙이고 조리고 조르고 줄이고 주리고 
귀밝이 술을 마신 바람은 밤새도록 제삿상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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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는 완투를 앞두고 손가락에 물집이 잡혔다
스윙을 먹고 자란 물집과 실밥을 먹고 자란 물집간의 집안 싸움
물집을 짜려는 자와 부풀어 오를 때까지 기다리는 자의 눈싸움
터져버린 물집의 눈물은 갈라진 손바닥을 따라 흘렀다


야구공의 실밥으로 터진 상처를 꿰멜 수 없어
투수는 변화구를 던질 수 없다
물집은 온몸을 뻗어 야구공을 안았다
무회전 너클볼은 흔들리다가 가라앉는다


타자의 배는 물집처럼 부풀었다
방망이가 날아간다
물집은 포수 글러브에 안기며 울음을 터뜨린다
마스크를 쓴 남자가 울부짖었다 스트라이크
야유와 환호가 물병에 담겨 날아든다
투수와 포수는 중간에서 만나 마운드에 깃발을 꽂는다


물집이 터져 하늘이 노랗게 변하면 
아이는 홈으로 달려가 슬라이딩한다
살아온 날보다 많은 퍼즐조각을 맞춘 아이는 
퍼즐을 뜯어 다시 맞추기 시작한다
물집은 타자와 포수의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스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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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우물



두레우물에 두레박이 없다 

이끼 낀 물동이만 뒹군다




우물 속에는 인형이 있다

가만히 쳐다본다

가만히 쳐다본다

얼굴을 그린다





마중물을 부었다

뒤주를 던졌다

달빛이 베여 나온다

짜고 부었다





우물의 깊이를 잰다 

뛰는 대신 파고든다

개구리는 없다





동네사람들은 우물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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