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의 붉은 거울 문학과지성 시인선 288
김혜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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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시

         

              갑자기 입 속이 가득해지는 것이었다
              이빨을 악물었는데 자꾸 차오는 것이었다
              양볼이 미어지게 쳐들어오는 그것을
              악문 이빨이 씹지를 못하는 것이었다
              목구멍까지 차서 숨을 쉬기 어려운 것이었다
              금세 토할 것 같은 것이었다
              씹지도
              삼키지도
              토하지도 못할 그것이
              입구덩에서 나오길 싫어하는 것이었다

              오래된 냉장고 속에서
              이미 많이 익었고
              이제 더는 썩어지지 않을
              새파랗고 새빨간 그 중늙은이가
              아주 달콤하게 아주 부드럽게
              입 안에 들어와 나가기를 거부했다
              오직 토하는 것이 싫은
              악문 이빨이 미어진 볼이 막힌 목구멍이 간신히
              욕을 삼켰다

              처녀같은 늙은이의 살점이 위장에 들러붙어서
              피를 빨고 다시 자란다
              트림도 시원하게 나오지 않는
              소화불량의 겨우살이가 다시 시작되었다
 

  

; 늙었으나 늙지 않는 그 여자의 시와 마주쳤을 때는 조심해야 한다.
우연을 가장하고 달겨들어서 껍데기는 물론이요
속알맹이까지 파간다, 그 거머리같은 중늙은이여자는.
나는 매년 겨우살이가 힘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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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6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시`는 김혜순의 시가 아니라 내 시다.
시집을 읽고 시를 썼다면 그 시집은 괜찮은 것이 되는 거라고나 ㅋㅋ
작자를 넣지 않아서 혹시 김의 시라고 오해하실까봐서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