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 한림신서 일본현대문학대표작선 30
가지이 모토지로 지음, 이강민 옮김 / 소화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다는 가지이 모토지로의 [레몬].
재작년 일본문학동호회에서 [레몬]을 원서 읽기 재료로 채택하고서부터 신경이 쓰이던 소설이었다. 일본의 이상李箱이라 불리는 사람이라고.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 그리 불렀을 터라 그에 비중을 두지 않고 읽었다.

과연 심리묘사로 줄창 사람을 괴롭혔다.
Stream of Consciousness.
젊었을 때는 동서, 노소를 안 가리고 곧잘 읽었지만 젊은이의, 서사가 충분하지 않은 의식을 그 자체로 읽는 것에는 이미 식상하여 단편 하나가 끝나고 다음 단편으로 넘어가는 시점 사이의 뜸이 꽤 길었다. 대부분의 심리묘사 중 간간이 등장하는 비유 몇 개를 즐기는 걸로 이 단편집을 끝냈다.

맛이냐 색깔이냐. 둘 중 하나만을 취하고서는 레몬의 참맛을 알 도리가 없다. 왜 이상이 죽어가면서 '레몬을 다오'라고 했는지  지금도 어렴풋이 짐작이나 할 뿐이다.

 

레몬



죽는 순간에
나에게 레몬을 다오, 했다는
시인 이상의 얘길 듣고 스무살 나는
그 자리에서 웃었다
아주 크게 또한 짧게
가슴이 콱 막혔다
가혹한 천구백삼십년대에
아아, 레몬을 찾으며 죽어가다니

레몬에 대해서 생각한다
뱃속에 아이를 키우며 헛구역질에 가슴까지 상할 때
그 때 신 것이 먹고 싶었다
갈비집에서 남의 살 뜯고나서 그 때
정신이 번쩍 드는 레몬같이 신 것이 먹고 싶었다

이도 저도 아니고
살았다가 죽는 순간에
아직 죽음이 아니 와서
너무 지루해, 세상이 도대체 뭐란 말인가,
겨우 짧은 숨에 시든 몸을 얹고 있을 때
새콤한 레몬, 두 눈이 번쩍 뜨이고
온 몸 세포들이 화들짝 놀라는
레몬같은 날카로운 통증이
그가 죽는 순간에
어쩌면 내가 죽는 순간에
정말 그리울지도 몰라

그 레몬, 죽음이라고 얘기해도 되는 시절에
본데없이 가늘고 긴 이 시절에
나는 레몬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가끔 이거였을 거야, 하는 그것, 레몬. 그 레몬의 맛을 이 짧은 단편 [레몬]에서 맛볼 수 있으리라.


이젠 소설에서 감동을 얻기가 힘들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전까지도 내가 감동했던 소설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대개가 언제나 감탄이었다는 것. 이는 순수한 독자의 자리에 앉아본 적이 없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기도 해서 반성을 좀 했다.

사족인데, 실은 이 소설보다 그저 저 레몬이라는 이름 때문에 근 한 시간도 넘게 친구와 이야기한 경제학 쪽의 레몬이야기가 더 재미있었다. 레몬이론. 솔직히 말해서, 레몬이론은 이 소설집 [레몬] 읽기에도 그대로 부합한다. [레몬] 읽기를 이 현상만큼 짧고 정확하게 설명하긴 곤란할 듯하다.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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