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사랑 무브 1
후카미 준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1999년 11월
평점 :
품절


오카노 카츠라. 인기있는 남자 키자키에 반했지만 결국 짝사랑.
못생긴 채 실연당한 그대로 움츠러든 주인공은 히지리교 난간에 소원을 빌게 됩니다. 여고생들이 얘기하는 속에서 요즘엔 그 다리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낭설을 들었던 것이죠. 카츠라는 다리 난간에 푹 기댄 채 멋진 여자가 되게 해주세요,하고 빕니다. 키자키가 내게로도 아니고, 세상에서 제일 예쁜 여자가 되게도 아닌, 멋진 여자가 되게...라는 소원을.

결국 카츠라는 소망을 이루어 주는 무브라는 조그맣고 동그란, 그러나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천사 비스름한 것과 조우하게 됩니다. 하필 그런 소망이라서 무브도 상당히 난처하게 된 셈. 결국 무브와 함께 멋진 여자의 조건을 하나하나 얻어가는 긴 여행을 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죠.

과연 어떤 여자가 멋진 여잘까. 각 장의 맨 앞에는 아주 예쁜 성장을 한 얼굴없는 여자가 포즈를 취하고 있습니다만 그녀들이 멋진 여자라는 건지 어떤지는 알 수 없습니다. 작가의 캐리커처는 완전 남자아이. 그 모습과 관련된 선입관만으로 보자면, 쭉쭉빵빵이라든가 고급 브랜드를 걸쳐 만들어지는 겉모습만으로는 멋진 여자가 될 수 없다..가 정답일 듯싶습니다.

아직 완결은 아니나, 벌써 12권.

카츠라는 자기 사랑 대신 여러사람을 사랑에 골인하게 하는 위업을 이룩하는데요. 놀라운 것은 남자 하나가 등장할 때마다 하나같이 카츠라의 사랑은 혹시 이 남자? 하는 의혹으로부터 시작하게 된다는 것. 그러나 그건 당근 아닙니다. 조급한 순정매니아의 단순한 도식 따라가기가 실패한 것이죠, 뭐.

하나하나의 사랑을 엮어 주게 될 때마다 카츠라는 자신감과 더불어 타인을 통해 자기 안에 있는 소망과 용기와 고독을 끌어안게 됩니다. 일종의 제어라고나 할까요? 게다가 그건 단순한 개인의 방어기제로써만이 아닌 타인과 화합되고 조화되는, 포월..이랄까. 그저 초월이 아닌.. 그런 것이죠. 저러다 세상 전체에 퍼지는 고마운 공기가 되지나 않을까 좀 겁이 나는. 후후

결코 미남미녀로는 안보이는, 나카소네 스타일의 넙적한 인물들만 나오는 이 만화의 흡인력은 어디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의 그 조급한 단정에서 오는 의혹도 그렇지만 제가 주목했던 건 사람들의 마음, 즉 속을 점령한 어떤 것들입니다. 외로워 우는 외톨이, 기다리는 마음, 무서움, 게다가 소망 등등.

소망과 용기는 외로움이라든가 무서움을 감싸안아 그것들이 점령한 채로 사악해진 사람들을 이전의 형태로 돌려놓게 됩니다. 과연 이전의 형태란 게 있기나 한 건지, 한 사람에게 외로움이나 무서움, 기다림 같은 걸 빼버리면 순수하고 착한 인간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건지, 순수한 인간이란 뭔지 상당히 복잡한 생각에 빠져들고 말더군요. 어찌 보면 너무나 상식적이고 그래서 간단한 풀어가기일 수도 있겠구요. 물론 한 사람이 어떤 한 가지에 광적으로 집착하여 전인으로서의 자기를 폐기시키는 단계에까지 이른다면, 정직하고 용기있는 소망인이 그 집착이라는 매듭을 풀어 새로운 삶의 기회를 줄 수는 있겠지만.

그러고 보니 사람의 마음을 송두리째 사로잡은 그 어떤 걸 집착이라 불러도 상관없겠군요. 사실 사람이 어떤 것에 집착하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성격이 결정된다는 이론들은 많잖아요. 집착은 그 강도에 따라 분명히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점이 되긴 하지만 그 어떤 인간에게도 아예 없다고는 말할 수 없는 거고 때론 삶의 힘이 되어 주는 것이 그것이기도 한데. 아아, 헷갈리는군요. 한 개인의 집착이 자신의 일상생활과 나아가 타인에게까지 피해를 주게 되면 치료가 필요한 장애행동이 되는 것. 이 정의를 성실히 되뇌이긴 하지만 여전히, 나를 사로잡는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저 타인에게 피해를 줄 정도만 아니면 소망을 이루게 해주는 무브가 달라붙은 카츠라같은 사람이 내 인생을 간섭하고 들어오지는 않을 것이다 정도로 정리를 해야겠군요.

과연 소망과 용기로 무장한 정직한 사랑의 메신저, 카츠라 앞을 기다리는 멋진 여자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알게 됐다는, 누구나 외롭고 상처받고 있다는 걸 알게 되서,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서 실연도 극복할 수 있었다는 카츠라. 측은지심인가?  남의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는 모성의 세계에 그 멋진 여자는 또아리를 틀고 있는 걸까요? 웨딩피치..인가? 차라리 절대적인 사랑의 포로가 낫지, 내가 선택한 것이라는 깨달음이 낫지, 남들도 그러니까 안심하는 정도..로는 끝이 상당히 불안하다는 생각이 다시금 고개를 쳐드는군요. 보이쉬한 이 작가의 결론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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