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바꾼 만남 -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1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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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과 정약전. 천주학과 노론에 밀려 유배지로 끌려간 형제다. 동생은 강진으로, 형은 흑산도에 똬리를 튼 게 그것. 동생은 훗날 '자연과학'에 눈을 떠 신앙을 접었고, 형은 끝까지 믿음을 지키다 순교한다. 동생 정약용을 높이 치는 건 그가 남긴〈경세유표〉,〈주역사전〉, 〈목민심서〉같은 업적들에 있다.

정약용이 강진의 다산초당에서 제자들을 기른 것은 익히 아는 바다. 물론 처음부터 그 집터를 마련한 건 아니었고 유배초기에는 동문 밖 샘터 옆에 있는 주막을 서당으로 삼았다. 그곳에서 손병조(孫秉藻), 황상(黃裳), 황경(黃褧), 황지초(黃之楚), 이청, 김재정(金載靖) 등 여섯 제자를 두었다.

정민 교수의 〈삶을 바꾼 만남〉은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이 엮은 사제 간의 발자취를 담은 책이다. 이른바 다산이 40세에 강진에 내려간 시점부터 회혼연(回婚宴)을 맞이할 즈음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둘 사이의 교학상장(敎學相長)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학문만 주고받는 사제간이 아니라 참된 정을 나눈 그 흔적들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처음 스승 정약용 앞에 섰을 때 제자 황상은 자신의 둔함과 막힘과 답답함을 털어놓는다. 그야말로 공부하기에는 너무나 연약하다는 뜻이다. 그때 스승은 뭔가 민첩하게 외우고, 예리하게 글을 짓고, 깨달음이 빠른 아이들보다 오히려 둔한 더 눈여겨본다. 그런 제자라야 세상의 흐름에 약삭빠르게 대처하기보다 어떤 상황속에서도 꿋꿋한 제 길을 갈 거라 확신했던 이유다.

보통 그 당시에는 아이들이〈천자문〉과 〈자치통감〉을 5년 넘게 꿰차고 외우는 학습관을 가졌다고 한다. 그 이후에 사서삼경과 제자백가를 깨우치게 한다는데, 다산은 일관되지 않는 체계와 단절된 의미를 전달하는〈천자문〉보다 자신이 직접 집필한〈兒學編〉(유학편) 상하권을 가르쳤는데, 그것은 지금 강진군에서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가르침은 직접 연표를 만들어서 가르친〈자치통감〉과〈통감강목〉에서도 드러난다고 한다.

그건 현재 내가 집필하고 있는 성경에 관한 책도 그런 흐름일 것이다. 사실 서구신학에 영향 받은 목회자들이 성경을 중구난방 식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많다. 이른바 공시적인 접근 방법이 그것인데, 그로 인해 괜한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이단과 여러 사이비들에게 엉뚱한 해석을 내비치게 하는 빌미가 되기도 한다. 그것을 바로 잡고자 성경을 하나의 줄로 꿰는 통시적인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약용이 〈유학편〉을 직접 집필하여 가르쳤다는 건 그래서 내게 의미심장하게 다가 온 바이다.

제자들을 위해 그토록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던 다산은 되레 성깔을 부리기도 한다. 18살 되던 해에 제자 황상이 장가를 들어 안식구에게 빠져든 채 공부를 하지 않는 그 무렵이다. 그때 다산은 황상에게 짐을 싸서 따로 각방을 쓰도록 호통을 치기도 한다. 이유인 즉 하던 공부를 게을리 하면 아예 하지 않은 만 못한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일로 황상은 보은산 산방에 올라가 기거하는데, 그곳에서 23살 된 다산의 첫째 아들 학연과 돌림놀이 시 짓기 시합도 벌이고, 또 28살의 천재 스님 혜장과도 2년 동안 어울리게 된다. 그 이듬해에는 둘째 아들 학포까지 초당에 내려와 아버지 밑에서 배움을 얻게 되는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57세에 달한 다산은 서울로 돌아가는데, 제자 여럿이서 스승에게 과거급제에 관한 청탁을 넣기도 한다. 물론 황상 만큼은 꿋꿋한 야인(野人)이자 유인(流人)으로 사는데 족할 뿐이다.

"황상은 겉으로 꾸밀 줄 모르는 질박한 사람이었다. 그는 다른 제자들처럼 스승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거나 바라지 않았다. 오로지 스승의 가르침을 새기고 또 새겨 자신의 삶 속으로 옮겨오는 일에만 마음을 쏟았다. 다산이 강진을 떠나자 그도 읍내를 떠났다. 아전으로 백성의 고혈을 빨며 탐욕스럽게 사는 삶은 견딜 수가 없었다. 백적산 깊은 골짝으로 가족과 함께 들어가 돌밭을 일궈 농사를 지었다. 예전 스승에게 삼근계를 받고 그랬던 것처럼 다른 잡생각 없이 오로지 스승이 일깨워 준 유인의 삶을 일구고야 말겠다는 서원만을 되새겼다."(387쪽)

그러던 황상은 만 18년 만에 다산을 찾아 서울로 상경한다. 그건 가난한 삶에 해결책을 찾고자 함도 아니요, 청탁을 넣어 과거에 급제코자 함도 아니었다. 병들어 누워 지내는 스승을 참되게 알현코자 함이었고, 그 해가 다산이 부인과 혼인한 지 60년 되던 날이라 축하코자 함도 있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다산을 만나 강진으로 내려오던 며칠 뒤 황상은 스승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이 책 뒷부분은 황상과 다산의 큰 아들 학연과의 서신왕래를 비롯하여, 황상과 초의선사의 대화, 그리고 황상과 추사 김정희와의 대화도 담겨 있다. 추사 김정희와 초의선사는 황상이 쓴 시는 두보나 한유나 소동파나 육유의 시들에 견줄 만큼 그의 시는 개성 있는 빛깔로 가득 차 있다고 평가한다.

사제 간의 의리와 정이 땅에 떨어진 지 오래다. 스승이 어떤 분이지를 묻는 제자가 없는 시대다. 물질적인 교환 가치처럼, 좋은 대학에 들어간 제자들을 배출하는 선생만 기억케 하는 이 세상과 교육 풍토다. 정민 교수도 그걸 안타까워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펴냈으니, 스승과 제자 사이의 도탑고 질박한 정을 맛보길 원한다면 이 책을 들춰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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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 上 - 신화적 상상력으로 재현한 천 년의 드라마
스티븐 세일러 지음, 박웅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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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건국은 로물루스와 레무스라는 쌍둥이로부터 비롯된다. 모두가 아는 정사적인 측면이 그렇다. 그들이 늑대 젖을 먹고 자라 그 힘을 바탕으로 로마를 세웠다는 이야기도 설득력을 얻는다. 물론 그것은 설화적인 측면이 강하다. 사람이 늑대 젖을 먹고 자랄 수는 없는 까닭이다.

하여 '신화적인 상상력'으로 로마의 역사를 쓴 책이 나왔다. 이른바 스티븐 세일러의 <로마>(상, 하)가 그것이다. 그는 이미 4권에 달하는 <로마 서브 로사>를 쓴 바 있는데, 이번에는 신화적 상상력과 추리소설 기법으로 로마 역사를 그려낸 것이다. '역사가 전설적이듯 전설은 역사적이다'는 <로마 건국>을 쓴 알렉산드레 그란다치의 말을 인용하면서 말이다.

세일러가 그래서 전설적인 신화를 바탕으로 현실역사를 꾸민 것일까? 늑대 젖을 '아카 라렌티아'로 읽으면서 '암늑대'로 풀어쓰고 있는 것도 그렇고,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어머니가 정통적인 집안의 귀부인이 아니라 창녀라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바도 그렇다. 더욱이 두 쌍둥이의 건국도 제사장 출신의 포티티우스 가문이 떠받들도록 그려내고 있는 것도 다분히 신비적인 요소를 부각시킨 것이다.

사실 이 책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게는 견줄 수가 없다. 나나미는 인물과 폭동과 혁명에 중점을 맞춘 정사에 접근하고 있다면, 세일러는 영화 속 한 인물을 통해 로마의 역사와 문화를 관찰토록 하는 야사(野史)에 근접하는 까닭이다. 이른바 '파스키누스' 목걸이를 물려받는 포티티우스 가문과 그 가문과 가까운 피나리우스 가문을 통해 본 로마의 창문이 그것이다.

상권은 B.C.1,000년으로부터 시작해 B.C.373년까지 거의 700년간의 로마 역사를 꾸며낸다. 최초 소금장수와 쇠붙이 장수가 쉬어갔던 그 길목에 로마의 도시가 형성된 것을 시작으로 국가와 전쟁이 어떤 양상으로 흘러 왕권이 세워지게 되었는지, 하나하나 각색해 준다. 그렇다고 정사와 같은 기반까지 다 흐려놓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로마가 생겨나기 훨씬 전부터 중추역할을 했던 포티티우스 가문이 공화정을 거치면서 노예로 추락하게 된 사연은 정말로 흥미진진하다.

"내가 노예로 태어났고 어머니도 그런 건 사실이지만 어머니의 아버지는 가장 유서 깊은 귀족 혈통인 티투스 포티티우스와 평민 호민관을 지낸 루키우스 이킬리우스의 누이 동생인 이킬리아의 아들이었소. 티투스 포티티우스와 이킬리아의 아들은 사생아였고, 외삼촌의 원한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노예가 되고 말았소. 하지만 노예 신분으로도 포티티우스가의 호신부를 걸고 다녔고, 티투스 포티티우스는 아들에게 은밀히 출생의 내력을 말해주었소. 그 노예가 호신부를 딸에게 물려주었는데, 그 분이 내 어머니였소. 어머니는 이킬리우스 집안에서 노예로 태어났지만 뒤에 내 주인에게 팔렸기 때문에 나는 그 집에서 태어난 거요.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호신부를 내게 물려주었소."(상권, 343쪽)

하권은 B.C. 312년부터 B.C. 1년까지, 검찰관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해 악티움 해전에서 안토니우스를 물리치고 개선장군이 되어 훗날 '아우구스투스'란 칭호를 얻은 받은 옥타비아누스의 모습을 담아낸다. 물론 한니발과 스키피오의 대결이라든지,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정책들은 살짝 넘어간다. 더욱이 상권에서는 연대기적으로 역사를 풀어나갔지만 하권에서는 세대들을 훌쩍 뛰어넘기도 한다. 그러니 상권에 비해 하권이 재미는 덜할 수 있다.

상권에서는 그나마 주연들이 대거 등장하는 것 같지만 하권에서는 조연들의 잔치로 끝을 맺은 스티븐 세일러의 <로마>(상, 하). 비록 하권의 흥미진진함은 상권에 비해 덜하지만 로마 역사 속 조연들이 어떤 행보를 걸었는지, 그들의 발자국을 눈여겨본다면 그것으로도 이 책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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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경영의 원칙 서울대학교 관악초청강연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안철수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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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 삶은 무척이나 힘들다. 교회를 설립한 지 3년이 넘어서고 있는데 뜻한 대로 부흥하지 않는 까닭이다. 맨 땅에 헤딩한 꼴이라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이 정도로 어려울 줄은 몰랐다. 가끔 선배 목사들이 몇 명이나 모여서 예배하는지 묻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가 가장 곤혹스럽다. 그런 걸 예상하고서 아예 모임 자체에 안 나갈 때가 많다.

외판원처럼 이집 저집 전단을 들고 찾아가도 문전박대받기가 일쑤다. 그나마 고마운 이들이 있다. 전철역에서 전단을 받아들고 고마워하는 이들이 그렇고, 이른 아침 버스 정류장에서 전단을 받아주는 젊은 학생들이 그렇다. 그래도 대부분은 무시하거나, 받았다가도 금방 집어던지기가 일쑤다. 고귀한 뜻을 홍보(?)로 대변해 보려다 낭패를 겪고 있는 일상의 모습이다.

처음엔 10년간 열심히 개척을 해보기로 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10년 동안 한 가지 일에 정념하면 수맥이 잡히지 않겠냐 싶은 까닭이다. 그러나 개척교회의 현실은 3년 안에 판가름이 난다는 게 정설이다. 되는 교회, 되지 않는 교회, 그게 3년 안에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기준을 따라 그만 접고 새로운 곳으로 옮겨야 할지, 아니면 기존 교회에 눈을 돌려야 할지, 그도 아니면 정말로 10년간 한 우물을 팔지, 망설이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머리를 식힐 겸 책 한권을 받아들고 읽어봤다. 이름 하여 <안철수 경영의 원칙>이 그것이다. 문고판처럼 얇디얇은 책이라, 휘리릭 단숨에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안철수 교수가 '관악초청강연'에서 한 강연과 토론과 회중의 질문에 답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뭐랄까? 안철수가 걸어온 삶의 이력, 혹은 그의 인간경영의 원칙 같은 것들을 엿볼 수 있었다.

그가 이 책을 통해 내게 정리해 준 인생경영의 원칙은 세 가지였다. 첫째는 단기적인 행복보다 장기적인 행복을 선택하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행복보다 정작 자기 자신의 행복을 취해야 그 일을 오래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내성적인 사람이 의사가운을 입으면 환자도 그렇지만 자기 자신도 병든다는 것도 그 이치였다. '영혼 없이' 치·의대에 혹은 목회자의 길에 몰려드는 것도 그런 경우에 해당되지 않을까?

둘째는 죽어도 부끄럽지 않는 역사적인 이력서를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를 위해 그는 매 순간 순간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뭔가를 노리는 이해타산의 목적이 아니라 결과보다 과정에 방점을 찍어왔다는 뜻이다. 교수로 임명받은 기간도 2008년부터 2027년까지였다는데, 그는 미래에도 교수로 있을지 장담할 수 없고, 다만 현재의 일에 모든 최선을 다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그거 보면서 '내가 2027년까지 여기에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계획을 안 세우니까 아마 2027년에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이 일이 좋으면 정년까지 있을 수 있을 것이고, 아니면 또 다른 일을 하고 있을 수도 있겠지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제가 어떤 일을 하고 있든지 그 순간에 제가 가장 의미를 느낄 수 있고 재밌게 일할 수 있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72쪽)

마지막 하나는 그가 추구한 융합의 원리인데, 한 분야에 전문성을 갖추고서 다른 분야에도 열려 있는 상식과 포용력을 갖추도록 한 게 그것이다. 그래야만 자기 자신과 다른 길을 추구하고 있는 사람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심지어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로 삼을 을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새로운 길도 트일 것이다.

그것이 안철수 교수가 밝힌 인간경영이었다. 그런데 그 세 가지 것은 내가 어느 정도 잘 지켜온 것들이지 싶다. 장기적인 행복을 위해 개척을 했고, 또 돈으로 목회지를 사고파는 목회세계에 부끄럽지 않는 길을 택해왔고, 그리고 상식과 포용력으로 반대편 사람들까지도 기꺼이 품고 있는 까닭이다.

그런데도 문제가 있다면 뭘까? 정치도 생물이듯이, 목회는 더더욱 생물이라는 데 문제가 있지 않을까. 모두가 인간 경영에서 비롯되지만 목회 세계엔 신적인 경영의 원리가 스며 있는 것 말이다. 그걸 제대로 연결시키지 못하고, 또 바른 다리를 놓지 못하는 까닭에 헤메이고 있는 게 아닐까?

어떻게든 결단을 해야 할 때다. 안철수 교수는 큰 결단을 해야 할 때, 성공해도 성공에 집착해서 안 되고 실패해도 실패에 얽매이지 않도록 충고한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에는 보통 과거가 발목을 잡는다는 까닭일 것이다. 더욱이 주위 사람의 평가에도 연연하고, 미래의 결과에 대해 미리 욕심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것들을 털어낼 수 있는 길, 아직은 이 책에서 답을 얻지 못했다.

다만 현재에 더 충실해 보자는 것, 그게 현재로서 내가 얻는 답이다. 사람들은 안철수 교수가 내년에 대선에 나올지, 관심을 둘 것이다. 그 부분의 답은 이미 이 책에 나와 있다. 그는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택할 것이요, 역사적으로 부끄럽지 않는 이력서를 쓸 것이요, 미래에 대한 이해타산보다 현재 과정에 최선을 다한다는 게 그것이다. 나도 그가 발로 쓰고 있는 현재의 이력서, 곧 '현재의 최선'에 내 방점을 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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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 싶은 유럽의 현대미술관 - 테이트 모던에서 빌바오 구겐하임까지 독특한 현대미술로 안내할 유럽 미술관 16곳을 찾아서
이은화 지음 / 아트북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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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적인 현대미술의 거장들이 살아 숨 쉬는 곳. 그곳이 바로 영국의 사치 갤러리(The Saatchi Gallery)다. 영국 미술계의 '불량소녀'라 불리는 세라 루커스와 나와 함께 잤던 모든 사람들>로 유명한 트레이시 에민도 그 속에 숨결을 불어넣고 있다. 특히 순수제작비만 220억 원이 들어갔고 미국의 헤지펀드사가 1000억 원에 구매한 데이미언 허스트의 다이아몬드 해골 작품〈신의 사랑을 위하여도 그곳에서 출발했다.

이은화는 <가고 싶은 유럽의 현대미술관>에서 사치 갤러리가 YBA(Young British Artists)의 신화를 만드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그녀가 현대 미술관 기행을 그곳에서부터 시작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오늘날 미술계의 경향은 사치 갤러리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사치 갤러리는 2003년까지 템즈 강변에 있다가 2008년에는 첼시 지역으로 옮겨갔다.

현대미술계의 거장 하면 누굴 떠올릴 수 있을까. 대부분 사람들은 피카소를 꼽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현대 미술계에 가장 영향력을 준 작가로 마르셀 뒤상을 추켜세운다고 한다. 이은화는 그가 '개념미술'의 창시자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른바 일상적인 물체를 미술작품으로 승화시킨 원조가 바로 뒤샹이라는 이야기다. 한국의 박남준도 그런 흐름 속에 있지 않았을까? 뒤샹의 화제작인 <샘>이 자리 잡고 있는 영국의 테이트 모던(Tate Modern) 미술관은 그래서 유명하다고 한다.

루브르는 프랑스와 파리를 꼭짓점으로 잇는 삼각기둥이다. 이은화는 책에서 루브르의 역사도 짬짬이 소개한다. 본래 그곳은 왕실의 궁전이었는데, 프랑스 혁명과 함께 공공 박물관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물론 우피치 미술관이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메디치 가문의 부와 명예를 과시하기 위한 일이었을 뿐 본격적인 공공 미술관의 역사는 루브르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물론 초기 개관 당시에는 하루에 두 시간만 개방했다. 또한 한 번에 20~30명씩 그룹별로 입장해야 했고, 엄격한 감시도 뒤따랐다고 한다. 이런 조치들은 부패한 왕실에 분노하고 있던 민중들을 의식한 탓이었다고 한다.

루브르가 과거와 현대를 조화롭게 연결할 수 있었던 배경이 어디에 있을까? 루브르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를 비롯해 신고전주의 대표화가인 다비드의 <나폴레옹 대관식>, 앵그르의 <발팽송의 목욕하는 여인>, 낭만주의의 대가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 등 수많은 명화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하지만 현대적인 감각도 놓치지 않는다고 한다. 이은화는 과거와 현대를 잇는 비결은 박물관 앞 유리 피라미드에 있다고 꼬집는다. 중국계 미국 건축가인 페이(I.M. Pei)가 설계한 피라미드는 고고학적 기원과 현대적인 투명성을 연결했고, 지하에 내려와 있는 역피라미드는 바닥의 돌로 만든 작은 피라미드와 황홀한 대조를 이룬 것이라 평가한다.

"그런데 콧대 높기로 유명한 세계 최고의 명성도 돈의 유혹을 쉽게 뿌리치지 못하는 모양이다. 200년이 넘는 루브르 박물관 역사상 처음으로 해외에 분관을 유치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것도 중동의 사막 위에. 2004년부터 아랍 에미리트의 수도 아부다비는 이웃한 두바이와 경쟁하면서도 서로 보완할만한 강력한 개발 주체를 문화와 교육에서 찾고 거액을 들여서야 최고의 문화 브랜드를 유치하기로 결정했다.

이미 2005년에 프랑크 게리가 디자인하는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분관 유치를 성사했고, 지하 하디드와 안도다다오도 초청해 각각 공연예술센터와 해양박물관 설계를 맡았다. 그리고 지난 2007년에는 프랑스 정부와 긴 협상 끝에 마침내 루브르 분관 유치에 성공했다."(본문 173쪽)

그 밖에도 이 책은 회색빛 공업도시를 하루아침에 신데렐라로 만든 스페인의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Guggenheim Museum Bilbao), 녹슨 강철을 조각해 만든 얼굴 형상 1만 개를 바닥 전체에 깔아 놓고 홀로코스트에 희생된 유대인들을 기억하게 하는 설치작품<떨어진 나뭇잎들>이 있는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Judisches Museum Berlin) 등을 소개한다. 특히 자본주의가 예술의 본질을 오염시키는 현실을 비판한 작품들을 보유하고 있는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 미술관도 선보여 준다. '미술(Art)에 M을 더하면 시장(Mart)이 된다'는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첫 배낭여행을 떠난 1990년대 초부터 지난 2009년까지 유럽의 미술관들을 지속적으로 둘러보고 또 경험했던 이은화. 그래서인지 그녀는 이 책을 단순한 기행문이나 소감문으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자신과 똑같은 체험을 공감하도록 강요하지도 않는다. 다만 이 책이 "독자들이 지닌 각자의 눈과 각자의 방식으로 유럽의 미술관을 즐길 수 있도록 돕는 안내자와 큐레이터 역할에 충실하고 싶다"며 그것으로 그녀는 족할 뿐이라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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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태곳적부터의 이모티콘 길담서원 청소년인문학교실 2
이유명호 외 지음 / 궁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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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아내가 자꾸 피곤해 한다. 건망증도 심해지는 듯하다. 꾀를 부리는 듯 새벽기도를 빠질 때도 많다. 모두가 몇 해 전에 겪은 교통사고 후유증이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우선하는 게 있었다. 아내는 본래부터 '여성의 몸', '어머니의 몸'을 안고 태어났다는 것이다.

내 아내는 우리 집 세 아이들에게 모든 피와 영양분을 나눠줬다. 아니 녀석들에게 빼앗겼을지 모른다. 두 아이들보다 더 아픈 치레를 많이 하는 셋째 녀석을 위해서는 더 많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으니 잠 잘 겨를도 없이 더 곤할 것이다. 그런 점들이 남자인 나와는 다른 아내의 몸, 여성의 몸, 어머니의 몸이지 싶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 세대들은 더 심한 고충을 겪지 않았을까? 벙어리 3년이라는 모진 시집세월 말이다. 우리 어머니도 시집와서 반 평생을 부엌데기로 사셨다. 부엌에서 밥하고 부엌에서 밥 먹고 부엌에서 자식들을 엎어 키우셨다. 내가 아는 교회 집사님 한 분의 어머니도 모진 시집살이 때문에 고막까지 터졌다고 한다.

가부장제 의식, 남녀차별 문화, 남아선호사상, 호주제도, 이 모든 게 남성과 여성의 몸을 차별하는 가늠자였다. 드라마〈뿌리 깊은 나무〉에서 이도가 한글을 반포하려는 목적도 일반백성들로 하여금 백성답게 사는 길을 터보고자 함이었다. 그것이 신분질서를 타파하는 첫걸음이었다면, 이제는 남녀차별을 타파하는 길을 잘 터야 하지 않을까?

이유명호 외 6명이 쓴 〈몸, 태곳적부터의 이모티콘〉은 적어도 남성으로서의 주체와 여성으로서의 주체의 길을 찾도록 도와준다. 길담서원 청소년인문학교실에서 '몸'을 주제로 여러 연사들이 강연을 한 것인데, 뭐니뭐니해도 청소년들의 '몸'에 관한 주체의식을 심어주고 있다.

엄마 밥을 최장기간 먹고 사는 동물은 사람 밖에 없다는 이유명호의 강의나,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성적인 존재라고 이야기한 변혜정, 생명현상은 노년의 삶이라도 똑같다는 전희식, 청소년기에 자기 감각의 몸 틀을 형성해야 한다는 조광제, 온생명이 곧 나의 몸이라는 장회익의 강의는 각자 각자 참신했고 뜻이 깊었다.

그 가운데서도 내게 가장 깊이 있게 와 닿았단 것은 이유명호와 변혜정의 강의였다. 이유명호는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자궁〉으로 유명해진 한의사인데, 그녀는 정자와 난자의 수정이 정자에 의한 일방적인 일이 아니라 둘이 협동작전을 펼쳐야만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야말로 눈에 확 띄는 이야기였다.

더욱이 주먹 만한 자궁이 아이가 들어서면 500배 내지 1,000배로 그 부피가 커진다고 하니, 얼마나 의미심장한 일인가? 아울러 아이들을 출산하면서 쏟아 붓는 피와 영양분 때문에 이 땅의 어머니들이 예전과 달리 건망증이 심해지고 더 피로를 느낄 수밖에 없다는데, 그만큼 어머니들은 태생적인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셈이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늘 피곤해하던 아내를 이해하지 못했으니 어쩌면 좋으랴.

"평생 월경으로 흘리는 피가 약 40리터라고 하면, 우리 몸에 흐르는 피가 몇 리터죠? 체중의 8퍼센트 정도니까 자기 체중을 곱하면 약 5리터가 되겠지요. 40리터는 한 사람이 지닌 피의 8배, 8인분이에요. 그러니 여자들이 늘 혈부족증에 걸려요. 머리 아프고 어지럽고 졸리고……. 남자들이 말할 땐 게으르다고 그래요. 엄마한테는 '왜 이런 것도 몰라?' 아빠보고는 '왜 저런 여자랑 결혼했어?' 이렇게 말한 아들을 제가 알고 있거든요. 엄마가 만날 깜빡깜빡 잊어먹는다고요."(35쪽)

변혜정은 〈10대의 섹스, 유쾌한 섹슈얼리티〉를 펴낸 '유섹인' 대표로 섬기고 있는 이다. 그녀는 성폭력 예방 영상물을 많이 기획하여 만들어냈고, 10대들과도 격이 없이 성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 이다.

이 책에서도 성에 관한 호기심을 재밌게 풀어내고 있는데, 내게 관심거리로 다가 온 것은 '화학적 거세'였다. 성폭력을 행사한 남성에 관한 성적 거세가 그것이다. 그와 관련하여 성폭력이 일어나면 그 일을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 이름으로 고발해야 함을 꼬집고 있다. 더욱이 10대들 가운데 남학생들은 성에 관해 더 당당하지만 여학생들은 속앓이를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여학생들도 주체적으로 자기 성을 드러내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사실 얼마 전에 대학생들의 사이버일탈에 관한 논문을 하나 정리할 게 있었다. 그 때 나타난 설문지 결과는 뜻밖이었다. 1주일 평균 야한 동영상을 보는 시간이 여학생들보다 남학생들이 높게 나타났지만, 1시간 이내에 야동을 보는 비율은 여학생들이 훨씬 높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성적인 호기심이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학생들이 야동이나 사이버일탈에 빠져드는 건 가족과 친구 사이에 왕따인 경우가 많았다. 될 수 있는 한 아이들이 자신의 '몸짓'으로 더 많은 친구들을 사귀도록 해야 한다는 걸 절감하게 됐다.

그래서 그랬을까? 몸짓으로 연극을 하며 세상 언저리를 살피며 살고 있다는 '달가'(강지수)의 몸짓 표현이 마음에 와 닿았던 것 말이다. 그는 아이들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며, 위 아래로 쳐다 보고, 또 공기알갱이를 잡고 또 칼싸움을 하는 등 '몸 소통'에 관한, 이른바 '스킨십 강의'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도 몸을 놀려대고 서로간에 몸짓으로 어울리고 놀았으니 얼마나 재밌었겠는가? 과연 아이들 몸은 부모의 욕망에 빗댄 강제적인 몸이 아니라 자율적인 몸이 되게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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