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몸, 태곳적부터의 이모티콘 ㅣ 길담서원 청소년인문학교실 2
이유명호 외 지음 / 궁리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요즘 들어 아내가 자꾸 피곤해 한다. 건망증도 심해지는 듯하다. 꾀를 부리는 듯 새벽기도를 빠질 때도 많다. 모두가 몇 해 전에 겪은 교통사고 후유증이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우선하는 게 있었다. 아내는 본래부터 '여성의 몸', '어머니의 몸'을 안고 태어났다는 것이다.
내 아내는 우리 집 세 아이들에게 모든 피와 영양분을 나눠줬다. 아니 녀석들에게 빼앗겼을지 모른다. 두 아이들보다 더 아픈 치레를 많이 하는 셋째 녀석을 위해서는 더 많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으니 잠 잘 겨를도 없이 더 곤할 것이다. 그런 점들이 남자인 나와는 다른 아내의 몸, 여성의 몸, 어머니의 몸이지 싶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 세대들은 더 심한 고충을 겪지 않았을까? 벙어리 3년이라는 모진 시집세월 말이다. 우리 어머니도 시집와서 반 평생을 부엌데기로 사셨다. 부엌에서 밥하고 부엌에서 밥 먹고 부엌에서 자식들을 엎어 키우셨다. 내가 아는 교회 집사님 한 분의 어머니도 모진 시집살이 때문에 고막까지 터졌다고 한다.
가부장제 의식, 남녀차별 문화, 남아선호사상, 호주제도, 이 모든 게 남성과 여성의 몸을 차별하는 가늠자였다. 드라마〈뿌리 깊은 나무〉에서 이도가 한글을 반포하려는 목적도 일반백성들로 하여금 백성답게 사는 길을 터보고자 함이었다. 그것이 신분질서를 타파하는 첫걸음이었다면, 이제는 남녀차별을 타파하는 길을 잘 터야 하지 않을까?
이유명호 외 6명이 쓴 〈몸, 태곳적부터의 이모티콘〉은 적어도 남성으로서의 주체와 여성으로서의 주체의 길을 찾도록 도와준다. 길담서원 청소년인문학교실에서 '몸'을 주제로 여러 연사들이 강연을 한 것인데, 뭐니뭐니해도 청소년들의 '몸'에 관한 주체의식을 심어주고 있다.
엄마 밥을 최장기간 먹고 사는 동물은 사람 밖에 없다는 이유명호의 강의나,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성적인 존재라고 이야기한 변혜정, 생명현상은 노년의 삶이라도 똑같다는 전희식, 청소년기에 자기 감각의 몸 틀을 형성해야 한다는 조광제, 온생명이 곧 나의 몸이라는 장회익의 강의는 각자 각자 참신했고 뜻이 깊었다.
그 가운데서도 내게 가장 깊이 있게 와 닿았단 것은 이유명호와 변혜정의 강의였다. 이유명호는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자궁〉으로 유명해진 한의사인데, 그녀는 정자와 난자의 수정이 정자에 의한 일방적인 일이 아니라 둘이 협동작전을 펼쳐야만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야말로 눈에 확 띄는 이야기였다.
더욱이 주먹 만한 자궁이 아이가 들어서면 500배 내지 1,000배로 그 부피가 커진다고 하니, 얼마나 의미심장한 일인가? 아울러 아이들을 출산하면서 쏟아 붓는 피와 영양분 때문에 이 땅의 어머니들이 예전과 달리 건망증이 심해지고 더 피로를 느낄 수밖에 없다는데, 그만큼 어머니들은 태생적인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셈이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늘 피곤해하던 아내를 이해하지 못했으니 어쩌면 좋으랴.
"평생 월경으로 흘리는 피가 약 40리터라고 하면, 우리 몸에 흐르는 피가 몇 리터죠? 체중의 8퍼센트 정도니까 자기 체중을 곱하면 약 5리터가 되겠지요. 40리터는 한 사람이 지닌 피의 8배, 8인분이에요. 그러니 여자들이 늘 혈부족증에 걸려요. 머리 아프고 어지럽고 졸리고……. 남자들이 말할 땐 게으르다고 그래요. 엄마한테는 '왜 이런 것도 몰라?' 아빠보고는 '왜 저런 여자랑 결혼했어?' 이렇게 말한 아들을 제가 알고 있거든요. 엄마가 만날 깜빡깜빡 잊어먹는다고요."(35쪽)
변혜정은 〈10대의 섹스, 유쾌한 섹슈얼리티〉를 펴낸 '유섹인' 대표로 섬기고 있는 이다. 그녀는 성폭력 예방 영상물을 많이 기획하여 만들어냈고, 10대들과도 격이 없이 성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 이다.
이 책에서도 성에 관한 호기심을 재밌게 풀어내고 있는데, 내게 관심거리로 다가 온 것은 '화학적 거세'였다. 성폭력을 행사한 남성에 관한 성적 거세가 그것이다. 그와 관련하여 성폭력이 일어나면 그 일을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 이름으로 고발해야 함을 꼬집고 있다. 더욱이 10대들 가운데 남학생들은 성에 관해 더 당당하지만 여학생들은 속앓이를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여학생들도 주체적으로 자기 성을 드러내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사실 얼마 전에 대학생들의 사이버일탈에 관한 논문을 하나 정리할 게 있었다. 그 때 나타난 설문지 결과는 뜻밖이었다. 1주일 평균 야한 동영상을 보는 시간이 여학생들보다 남학생들이 높게 나타났지만, 1시간 이내에 야동을 보는 비율은 여학생들이 훨씬 높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성적인 호기심이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학생들이 야동이나 사이버일탈에 빠져드는 건 가족과 친구 사이에 왕따인 경우가 많았다. 될 수 있는 한 아이들이 자신의 '몸짓'으로 더 많은 친구들을 사귀도록 해야 한다는 걸 절감하게 됐다.
그래서 그랬을까? 몸짓으로 연극을 하며 세상 언저리를 살피며 살고 있다는 '달가'(강지수)의 몸짓 표현이 마음에 와 닿았던 것 말이다. 그는 아이들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며, 위 아래로 쳐다 보고, 또 공기알갱이를 잡고 또 칼싸움을 하는 등 '몸 소통'에 관한, 이른바 '스킨십 강의'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도 몸을 놀려대고 서로간에 몸짓으로 어울리고 놀았으니 얼마나 재밌었겠는가? 과연 아이들 몸은 부모의 욕망에 빗댄 강제적인 몸이 아니라 자율적인 몸이 되게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