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체제전환과 기독교 한반도평화연구원총서 7
김회권.고재길.설충수 외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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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자신의 정치적 야욕을 위해 기독교를 국교로 채택했다. 그와 함께 달라진 양상이 있었다. 그 전까지 음지에서 행하던 종교행위를 양지로 끌어올리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기독교가 국가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권한과 주권을 갖는 건 아니었다. 국가의 시녀역할에 만족해야 했다. 적어도 루터의 종교개혁 때까지는 그런 흐름에 동조했다. 

 

오늘날 미국의 기독교는 어떤 위치인가? 대통령이 헌법에 손을 얹고 맹세할 정도로 기독교를 국교로 채택한 나라다. 하지만 외양만 그럴 뿐 엄밀한 의미에서는 그들의 국교를 기독교라 단정할 수 없다. 다양한 인종과 그들의 종교적 영향력을 간과할 수 없는 까닭이다. 물론 선거철이 되면 달라진다. 그들의 정치권력은 기독교를 이용하고, 기독교사회는 그들과 곧잘 야합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어떨까? 중국은 개혁개방정책으로 겉으로는 기독교를 공식적으로 인정한다. 삼자애국교회가 그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이미지일 뿐 내부적으로 전혀 다르다. 그들의 교회는 공산당의 정책과 동일노선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중국교회가 안고 있는 한계점이다. 그것 때문에 삼자교회와는 다른 지하교회들이 활발하고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독일은 어떠할까? 독일은 현재까지 기독교, 다시 말해 가톨릭과 개신교를 국교로 인정한다. 신부나 목회자들도 국가가 녹봉도 지급한다. 어찌 보면 공무원들과 다르지 않는 직급이다. 물론 그런 양상이 한때 히틀러의 광기에 동조한 현상으로 나타나긴 했지만, 지금은 국가로부터 독립된 권한과 주권을 펼치고 있다. 

 

김회권 외 7인이 쓴 〈사회주의 체제전환과 기독교〉는 탈사회주의 체제 속에서 교회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를 일깨워준다. 독일, 폴란드, 러시아, 중국, 헝가리 등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국가가 개혁개방체제로 나아갈 때 그 속에서 취한 기독교의 활동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고, 그 일을 통해 남한의 기독교는 통일한국 시대에 무엇을 대비해야 할 것인지를 알게 한다.

 

"마르크스나 엥겔스, 스탈린과 마오쩌둥에 이르는 모든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사상가들은 기독교가 자본주의적인 체제의 산물일 뿐이며 자본주의 소멸과 함께 기독교도 소멸될 것이라고 주장했을 정도로 기독교에 대해 무지했고 적대적이었다. 그런데 마르크스나 엥겔스의 기독교 비판은 무엇보다도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이유 때문에 이루어진 비판이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33쪽)

 

김회권 교수의 '사회주의와 기독교의 대화의 역사와 전망'에 관한 내용이다. '얀 밀리치 로흐만'의 주장을 빌린 마르크스의 기독교 비판에 관한 이야기인데, 그는 기독교 전체를 싸잡아 비판한 게 아니라 기독교 내부의 정치권력의 남용과 맘몬 숭배 사상만을 꼬집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기독교와 공산주의는 본래 '공산(公産)'이라는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출발했다는 뜻이다. 그것이 점차 영적인 적개심으로 변질됐고, 지금은 합일을 이루기가 어려운 처지라고 설명한다.

 

그것은 남한의 기독교와 북한의 주체사상만 바라봐도 마찬가지다. 김일성을 신격화한 주체사상은 남한의 기독교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 그렇다고 남한의 기독교가 추구해야 할 '유무상통'의 나라도 완전히 폐기처분된 사상은 아니다. 그것은 성경에서 궁극적으로 요구하는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지적하듯이 북한도 처음에는 '유무상통'의 성경적 시각에서 출발했다가 지금은 주체사상으로 변질되었다고 꼬집는다. 그만큼 서로 간의 영적인 적개심만 벗겨내면 얼마든지 공통된 분모를 찾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뜻에서 남한의 기독교는 로마나 미국의 국교와는 달리 독일식 기독교의 위치에서 그런 합일을 이루도록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남한 정부는 그 일을 못한다 해도 남한의 기독교사회는 그걸 감당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서독 내부에서 제기된 한 가지 의문이 있었는데 그것은 서독 교회의 도움이 결론적으로 동독 사회주의 체제의 유지와 강화에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었다. 여기에 대해 서독교회의 입장은 명확했다. 동독교회를 위한 서독 교회의 아낌없는 재정적인 후원은 두 교회 간의 '특별한' 공동체적 관계를 유지하는 구체적인 실천의 형태였다. 그것은 일방성, 과시성, 일회성의 특성을 가진 도움이 아니었고 그리스도의 사랑에 근거한 섬김과 인내와 희생에서 나오는 도움이었다."(86쪽)

 

이른바 고재길 교수가 쓴 '독일의 내적 통일을 위한 교회의 역할'에 나오는 이야기다. 서독교회는 분단된 지 20년 동안에도 동독교회를 위해 재정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를 두고 서독 정부나 다른 단체에서 이의를 제기했지만, 서독교회는 그 어떤 흔들림도 없이 꾸준하게 그 일을 추진해왔다는 지적이다. 그렇다고 세를 과시하거나 의를 드러내거나 일방적인 종속관계를 도출하고자 하는 뜻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남한 기독교사회가 본받아야 할 사안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의 기독교, 정확히 말해 남한의 기독교는 국교가 아니다. 그렇다고 독일의 기독교처럼 북한의 종교에 대해 적극적인 지원책을 내 놓고 있는 것도 아니다. 가끔씩 지원과 원조의 손길을 펼 때도 있지만 대부분 정부의 눈치를 볼 때가 많다. 그만큼 정부로부터 독립된 주장이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게 사실이다.

 

이유야 여러 요인들이 있겠지만, 이제부터라도 남한의 기독교는 북한을 돕는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비록 우리정부는 국민들의 정서와 눈치를 본다 할지라도, 기독교는 하나님나라의 관점으로 더 활발한 지원책을 펼쳐야 할 것이다. 괜히 정치권력에 휘둘리고 야합하여 미움을 받기보다,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과 통일한국을 앞당기는데 효자노릇을 한다면 앞으로 더 많은 사랑과 지지를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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