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처럼 여행하기
전규태 지음 / 열림원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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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 그는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남은 인생은 겨우 삼 개월. 주치의가 말했다,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그동안의 인연과 과감히 결별하고 떠나라.” 그렇게 정처 없이 떠돌다 호주의 깊은 산골에 둥지를 틀고 십여 년을 칩거했다.

그는 십 년 남짓 여행하며 그림만 그렸단다. 구도나 색채기법, 원근법 등 그림에 관해서 전해 배운 바가 없지만 기성화가도 칭송하는 그림을 그려내기도 했다. 자신은 여행으로 ‘풍경개안’된 덕분이라고 웃는다. 그가 직접 그린 그림들은 이야기의 풍치를 한결 더한다. 빵 안에 박힌 건포도마냥.

이 책은 그가 시한부 인생의 아픔을 이겨내고 나그네길에서 길어 올린 희망의 노래다. 또 하나의 나를 찾아 나선 자유의 그림이다. 그에게 여행은 새로 태어난 제2의 인생을 확인하는 길이었다. 그는 말한다, “난치병을 부유(浮遊)로 극복했다”고.

 

여행을 통해 나 자신을 기쁘게 하면서, 명승고적뿐 아니라 오지도 마다 않고 넓은 세상을 만나며 문득문득 살아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게 되었다. 발끝부터 머리카락 한 올까지 내 몸 곳곳에 말을 걸고 격려해주며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다. - 34쪽

 

그는 아무 것도 없는 호주의 눌라보를 보며 경이를 느끼고, 익숙한 사물 우체통에서 ‘히스테리아 시베리아카’를 경험한다. 여행자는 ‘참된 나’[眞我]를 찾는 에트랑제(étranger, 이방인)다. 인생의 행복을 위해서는 여행이라는 엘릭시르(elixir, 연금술)가 필요하단다. “낯선 하나는 익숙한 여럿을 일깨워준다.”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처음 만난 것은 1274년, 그의 나이 아홉 살 때였다. 9년 뒤인 1283년, 단테는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었고 깊이 사랑에 빠졌다. 베아트리체는 1288년 시모네 데파르디와 결혼했고, 첫아이를 출산하다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사랑하는 연인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르네상스를 이끈 위대한 걸작을 탄생시킨 것이다.

1302년 단테는 권력투쟁에 휘말려 피렌체에서 영구추방되었다. 20년을 타지에서 겉돌다가 1321년에서야 후원자 귀도 폴렌타 영주의 사절단으로 피렌체를 찾았다. 이 무슨 운명의 장인가! 그는 피렌체에서 얼마 머무르지 못하고 그만 말라리아에 걸려 세상을 떠나버렸다.

 

단테의 『신곡』에 이런 구절이 있다. “고향을 찾아간 자는 더 이상 나그네가 아니다. 돌아갈 고향이 없다며 향수를 느끼고 있는 동안에만 나그네인 것이다.” 돌아갈 고향이 있는 자는 나그네일 수 없다. 하지만 고향을 찾으려 하지 않는 자 또한 진정한 나그네가 아니다. 여기에 여행의 묘미가 있다. 이 모순을 제대로 감당하고 극복하는 자만이 나그네로서의 삶을 그만두지 않고 끝내 그리던 고향을 찾아낼 수 있다. - 92쪽


저자 역시 단테와 같은 절박한 심정으로 삶과 생명의 의미를 찾아 떠났으리라. 나는 이 책을 통해 그가 느끼고 깨달았을, 절실한 체험에 동참한다. 나는 사랑, 죽음 그리고 여행에 관한 깊은 통찰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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