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다음 이야기 2 - 제2의 전국 시대, 중원을 지배한 오랑캐 황제들
신동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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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에서 흥미로왔던 부분은 동진이 패망하고 남조의 송이 들어설 때였다. 동진 역시 서진의 사마충 같이 백치 황제가 등장했다. 유유는 동진을 찬탈해 보위에 올랐다. 이가 곧 송무제다. 이로써 동진은 원제 사마예가 건강에서 건국한 후 103년 만에 망하고 말았다(420). 유유는 경우 2년 만에 60세의 나이로 병사하고 만다. 이어 어린 태자 유의부가 뒤를 이어야 했다.

유유는 유방의 부인 여후와 서진 사마충의 부인 가남풍 등이 나라를 어지럽힌 전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자필 유언장을 남겨 모후에게 정사 간여를 금지시켰다. 그 대신 4명의 대신들을 보정 대신에 임명하여 보필케 한다. 문제는 이 네 대신들이 계략을 꾸며 유의부를 폐하고 셋째 유의륭을 옹립했다. 이가 송문제다.

다행히 송문제는 17세에 즉위해 30년 동안 재위하면서 송의 기반을 착실히 닦았다. 나는 송문제 부분을 읽다가 눈이 휘둥그레지는 기발한 착상을 접할 수 있었다.

원가 22년(445) 유의륭은 임읍(베트남 중남부와 캄보디아)를 치게 했다. 임읍의 국왕 범양매가 전국의 병사를 모아 결전을 치렀다. 이 싸움에 철갑으로 무장한 많은 코끼리 부대가 등장했다. 송나라 군사는 이런 진세를 처음 본 까닭에 크게 당황했으나, 즉시 사자가 백수의 왕이라는 것을 생각해 내 수많은 사자 모형을 만들었다. 과연 코끼리들이 크게 놀라 달아났다. 놀라운 발상이 아닐 수 없겠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송문제는 한창 활약할 무렵 태자 유소에게 피살당하고 만다. 박숙비에게 폐태자의 기밀을 얘기하는 바람에 유소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이 말을 들은 유소가 야음을 틈타 기습을을 했던 것이다. 정도전이 이방원의 기세를 꺾으려다 기습당해 비명에 횡사한 것처럼.

저자는 선비족 탁발규가 386년에 창업한 북위에 대해 높이 평가한다. 바로 효문제(탁방굉)가 실시한 호한융합 정책 때문이었다. 당시 한족 학자들은 북방 민족(선비족) 출신인 그를 폄훼하기도 했다. 저자에 따르면 "탁발굉이야말로 남북 민족이 하나로 융합해 현대의 중국 민족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당대 최고의 인물"이었다!

한편 북위가 북연을 정벌할 때 고구려가 등장한다. 북연의 황제 풍홍은 북위에 10여 개 큰 군(郡)을 잃으면서 힘이 날로 쇠약해졌다. 북귀군 4만 명이 도성 아래까지 오자 풍홍은 아들을 인질로 보냈다. 당시 풍홍은 은밀히 고구려에 사람을 보내 구원을 청했다. 고구려 장수왕이 이를 받아들였다. 436년 풍홍이 일족과 백성을 이끌고 고구려 땅으로 망명하니 북연은 패망하고 말았다(117쪽).

여기서 눈을 뗄 수 없었던 부분이 있었다. 풍홍의 손녀가 훗날 북위의 태후가 되었는데, 그녀가 바로 그 유명한 풍태후다. 풍태후는 지략과 과단성, 잔인함 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녀는 헌문제 탁발홍을 독살하기에 이른다. 할아버지의 복수를 대신해 준 것일까?

신동준 선생은 풍태후에 관한 이야기를 10여 쪽에 걸쳐 하고 있다. 유방의 부인 여후, 측천무후, 서태후 등과 비견될 정도로 명성이 드높았기 때문일 것이다. 탁발홍 사후 등극한 황제가 바로 효문제 탁발굉이었다.

사실상 2권은 북위에 관한 역사가 중심이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저자는 분량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30여 쪽을 할애한다.

 

이어 저자는 북조와 남조의 역사를 교대로 서술해 간다. 아래 연대표를 참고하면 흐름을 따라잡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아울러 말미에 덧붙여진 주요 연대표와 연호도 함께 보면 좋겠다!

 

 

저자는 위진 남북조 300여 년 역사를 훑으면서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속어에 '호랑이 자식이 개일리 없다'고 한다. 그러나 사서를 이와 전혀 다른 현상을 볼 수 있다. 부친은 개세(蓋世)의 영웅인데 반해 아들은 천하의 망나니인 경우가 많았다. 전한 제국을 세운 유방의 경우를 보자. 그의 아들 한혜제 유영은 종일 황음한 모습을 보이며 정무를 돌보지 않았다. 삼국 시대 촉나라 유비의 뒤를 이어 42년 동안 제위한 유선의 경우에는 비록 제갈량 같은 현신이 보좌하기는 했으나 결국 패망을 면치 못했다. - 391쪽

이외에도 저자는 몇 가지 사례를 더 든다. 가령 서진의 무제 사마염은 백치 아들인 혜재 사마충에게 보위를 넘겨주었고, 수문제 양견에는 황음무도한 아들 수양제 양광이 있었다. 그렇기에 수는 그 치세가 40년을 넘지 못했다.

한편 당태종 이세민의 나약한 아들 고종 이치는 결국 측천무후에게 나라를 빼앗겼다. 명태조 주원장의 경우도 한없이 어질기만 한 태자가 일찍 죽는 바람에 황태손인 건문제 주윤문에게 보위를 넘겼다가 결국 내란이 일어나 연왕 주체가 이를 빼앗았다.

정치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후계자를 잘 선정해야 후환이 없는 법이다. 그렇기에 사회주의권은 유독 후계자 선정에 공을 들인 모양이다. 직장인이라면 어떨까? 역시 후임자를 잘 만나야 한다. 그래야 못다 이룬 과업(?)을 잘 마무리 지을 수 있다. 자칫 판도가 뒤집히는 것은 고사하고 희생양이 되기 쉬운 것이 우리 현실이다.

시리즈 1·2권을 다 읽어내기란 결코 만만치 않았다. 분량 제한 탓인지 단편적인 연대기적 서술이 중심을 이루는데다, 적지 않은 왕조의 흥망성쇠가 이어지다보니 맥락을 따라잡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허나 저자의 작은 일침이 정신을 번쩍 차리게 한다.

수천 년에 달하는 장구한 역사를 지닌 중국을 이해하는 데에는 절대적인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사상과 사고방식, 생활 양식, 문화 유형은 역사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중략) 중국에 대한 '지피'가 전제되지 않는 '지기'는 사실 속 빈 강정이나 다름없다. - 445쪽

나는 이 책을 통해 오늘을 사는 현대인으로써 필요한 생존과 삶의 지혜를 배운다. 수 천 년의 역사가 흐른 시점에서 한 국가의 부귀영화는 덧없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 속에는 흥망성쇠의 징조가 항상 드러나 있었다.

탄광 안 카나리아나 사라센의 탑처럼 현실의 징조를 미리 간파하고 조기에 대응할 수 있다면 우리는 큰 위기를 슬기롭게 모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나는 과거와 역사를 통해 오늘을 사는 많은 혜안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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