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녀의 하루 - 여인들이 쓴 숨겨진 실록
박상진 지음 / 김영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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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상진은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이다. 그는 권력의 역사보다는 궁녀, 내시, 기생, 천인 등 역사 속 비주류들의 삶에 더 큰 관심을 가져왔다고 한다. 이는 넓은 그물코를 가진 권력의 역사가 포착하지 못했던 또 다른 살아 있는 역사를 찾아내는 것, 그것이 우리의 역사 연구 풍토를 풍요롭게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대중들로 하여금 역사의 존재 의미를 더 잘 느끼게 해줄 것이라는 소신 때문이라고 한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었다. 1부는 <하루로 읽는 조선 궁녀의 일생>으로서 궁녀사를 대표할 수 있는 인상적인 하루들을 궁녀의 전 생애 속에 녹이고 있다.

2부 <하루 일과에서 스캔들까지 궁녀의 모든 것>에서는 하루 일과와 연원, 선발 과정과 일생, 취미 생활과 근무 백태, 그리고 은밀한 성(性)과 스캔들 등 궁녀사 전반을 다룬다.

3부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궁녀 이야기>에서는 조선 최고의 갑부 궁녀가 된 박상궁. 푸른 눈의 프랑스 공사 플랑시와 리진의 애절한 사랑, 사도세자의 숨은 여인 수칙 이씨 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특히 프랑스 공사 플랑시와 리진의 사랑 이야기는 김탁환의《리심》과 신경숙의《리진》을 통해 소설로 환생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두 작가에 의해 리진 이야기가 다루어진 것도 자못 흥미롭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우선 느낀 점은 저자의 손품과 발품이 지극 정성이었다는 점이다. 가령 이리 저리 흩어져 있었을 궁녀에 관한 문헌을 한데 모으고, 이것을 다시 특정 주인공-가령 기옥과 서향, 상궁 조두대, 박상궁 등-을 내세워 하루 일과 식으로 엮어 낸다. 산발적으로 다루었다면 지루했을 것을 스토리텔링으로 묶으니 제법 재밌는 에피소드가 아닐 수 없다. 모름지기 역사는 이렇게 써야하지 않을까?

 

나는 2부를 먼저 이야기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궁녀에 대한 일반적인 개요와 역사적 맥락을 짚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2부에서는 우리 역사에서 궁녀의 등장 시기가 언제였는지, 궁녀의 위계는 어떠했으며 몇 명이 궁에 상주하고 있었는지 등을 잘 알 수 있다.

침방, 수방, 세수간과 소주방에서 일하던 궁녀의 하루를 짜임새 있게 잘 살렸다. 나는 이를 통해 왕과 왕비의 궁궐 생활과 문화까지 엿볼 수 있어서 좋았는데, 특히 매우틀(변기)에 대한 상세 묘사는 왕의 용변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잘 알려 주었다. 작년 개봉했던 <광해, 왕이 된 남자>에도 이런 모습이 나온다. 그 때에는 '매화틀'이라고 했었지만….

서사상궁, 무수리, 방자의 하루도 그간 구분이 애매했던 위계와 역할에 대해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물 긷기와 불 때기를 주로 담당했던 무수리를 일컫는 말의 출처는 몽골어에서 왔다고 한다. 몽골어로 ‘소녀’라는 뜻.

이어 궁녀 선발과 취미 생활, 근무백태, 그리고 성(性과) 스캔들에 대해서도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알토란같이 되살렸다. 내내 읽는 재미가 사뭇 남달랐다.

 

흥미로운 사실은 궁녀 선발시 앵무새 피를 이용한 '처녀 감별법'이 있었다는 것이다. 처녀만 궁녀가 될 수 있다는 법도 때문에 '금사미단(金絲未斷, 처녀막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뜻)'의 판정을 받아야 비로소 입궁이 허락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궁녀의 선발은 정기 선발의 경우 10년마다 한 번씩 있었다고 전한다.

 

다시 1부로 돌아가자. 여기서는 우선 절친 사이였던 궁녀 기옥과 서향 이야기가 가슴 아프게 한다. 둘은 임금(인조) 저주 사건으로 함께 죽음을 맞이했으니 어떻게 된 내막일까? 무슨 추리물이라도 되는 양 하지만, 저자는 두 궁녀의 애틋한 삶을 통해 간간이 쥐부리 글려 행사, 방굿례와 맞담배질, 봉급날 모습 등 당시 풍경을 잘 알 수 있도록 재현했다.

조선 최고의 갑부 궁녀가 되었다는 박상궁 이야기. 그녀는 소설 필사로 번 돈을 부동산에 아낌없이 투자했다. 아마 서사상궁으로서도 이름을 떨쳤을 것이다. 하지만 양손자로 들인 박상간은 박상궁이 세상을 떠난 후 땅을 원래 값의 절반도 안 되는 헐값에 팔아버리고 말았으니…. 안타깝게도 박상궁에게 사람 보는 눈은 부족했던 모양이다.

 

한편 프랑스 공사 플랑시와 사랑에 빠졌던 궁녀 리진의 말로는 비극적이었다고 전한다. 누구에 의해서 그리 되었을까? 플랑시가 배신을 한 것일까? 아니면 먼 이국에서 고국을 그리며 향수병에 스러져 갔을까? 이에 대한 궁금증은 책을 펼치면 금새 알 수 있다.

 

저자 박상진의 다른 작품에 대한 기대도 함께 부풀어오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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