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한국 장편 소설을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 책도 처음에 책을 보고 가져버린 편견 때문에 책을 잡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의외로 <당신들의 천국>은 매우 흡인력 있는 작품이어서, 일단 읽기 시작하자 손에서 책을 뗄 수가 없었다. 읽기 편한 문체일 뿐만 아니라 그 내용도 아주 흥미진진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천국의 의미에 대해, 지배자의 위치에 대해, 사회적 약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1부와 2부를 읽으면서, 나는 내내 이상욱과 황장로가 못마땅했었다. 대체 저들이 한 사람의 인간에게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니, 중요한 것은 그들이 조백헌 원장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바랐는가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나와 조원장이 본 천국과 약자의 위치에 있는 이들이 본 천국의 모습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었다.
이런 생각들은, 계속 동성애자에 대한 생각과 겹쳐졌다. 정신병자로 취급받던 과거와,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편견 속에 살고 있는 동성애자의 현실과 소록도의 원생들의 처지가 겹쳐져서이다. 소록도에 갇힌 나병 환자들과 벽장(closet)에 갇혀 지내는 동성애자들은 확실히 닮은 곳이 있어 보인다. 그렇게 동성애자와, 더 나아가 소수의 개념까지 나아가 생각하다 보니, ‘차이’가 낳는 ‘천국의 차이’에 대한 생각은 나도 곧잘 했던 것이라는 데 생각이 닿았다. 그리고 그 천국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도 좀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또, 작품 속에서는 이정태를 통해 조금 느낄 수 있었던 언론의 역할이라는 것도 동성애자와 연관지어 생각해보았다. 마침 이번 주 주간 동아를 보니 ‘동성애 코드’에 대한 커버스토리를 마련했던데, 그것이 만들어 낼 두 번째 편견에 대한 걱정을 해야 할지, 사회적 관심을 다행스러워 할지는 참 복잡한 문제인 것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 복잡하다. 한 가지를 해결한다고 전체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며, 예상치 못했던 많은 문제들이 어딘가에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처음부터 꼬이지 않게 한다는 것은 이미 불가능한 이 상황에서, 꼬인 것을 풀어내야만 하는 과제를 안은 사회의 구성원들은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특히, 꼬여버린 실타래 속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을 어떻게 ‘그들의’, 그리고 ‘우리들의’ 천국으로 이끌고 함께 가는가는 이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그리고 우리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하는 물음이다.
●우리는 누구도 저들을 심판할 수 없습니다. 저들은 죄가 없소. 저들의 병력이 저들의 죄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여러분도 잘 알고 있는 일이오. (196쪽)
⇒ 장애가 있거나 병을 앓는 사람이 죄가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그들을 ‘보통 사람’처럼 대하는 것―심적으로나 외적으로나―은 힘든 일이다.
●우리는 누구나 오늘의 자기 현실을 최종적이고 불가변의 것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의 현실이 아무리 만족스럽고 행복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 현실은 내일 다시 선택적으로 개선해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 위에 내일의 선택이 열려 있지 않는 한 그 현실은 누구에게도 천국일 수가 없습니다. 선택과 변화가 전제되지 않은 필생의 천국이란 오히려 견딜 수 없는 지옥일 뿐입니다.…(중략)…쫓기고 학대받아온 문둥이들을 위한, 그 문둥이들만의 천국으로 만들고 싶어하신 바로 그 점이 또한 그 천국의 철조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중략)…비록 불행한 병을 앓는다 하더라도 저들에게도 온갖 인간적인 소망과 자기 생의 실현욕은 근본적으로 여느 인간들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기구한 생의 역정을 걸어온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저들이 기구해온 천국이 여느 세상 사람들의 그것과 다를 수는 없습니다.…(중략)…그야 가난한 자의 천국은 우선 재산을 누리는 곳에서, 병을 앓는 자의 천국은 건강을 되찾는 곳에서 먼저 만날 수 있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재산이나 건강은 그것이 극도로 결핍된 처지에서나 어떤 특수한 천국의 내용이 될 수 있을 뿐, 그것들이 언제 어디서나 모든 인간의 궁극적인 천국의 내용일 수는 없습니다. (385~38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