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경 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기억난다. “광장 전문을 꼭 읽어보세요. 별로 안 길거든요. 저는 그 책을 읽고 아, 이 사람은 천재다, 라고 생각했어요.” 메모지에 ‘광장’이라고 꼼꼼히 적어서 가지고 있은 지도 거의 반년, 긴 숙제를 해결하는 기분으로 책을 잡았다. 별로 길지도 않고, 언어영역 지문에서도 자주 다루어지고, 교과서 심화 내용에서도 본 적이 있어 나름대로 친근했기 때문에 금방 읽으리라 생각했다. 읽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문제는 읽기만 해서 되는 책이 아니라는 데 있었다. 흔히 ‘천재’라고 하는 사람의 작품―대표적으로 이상이 있겠다―은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면이 많던데 그래서일 거야, 하면서 나의 무식을 덮어보려 한다.
끊임없이 “중립국.”이라는 대답만을 하는 이명준의 모습이 나에게 가장 익숙하긴 했지만, 그보다 ‘밀실’이라는 개념이 더 절실하게 다가왔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고서도 그러했듯 나는 내가 잘 모르는(즉, 어려운) 내용에 대해서는 글로 쓰고 싶지 않으므로, 사회와 사상에 대한 것이 아닌 개인적인 ‘밀실’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내밀한 밀실. 그 밀실 속에서 우리는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이런 책을 읽고 나면 늘 나를 괴롭히는 생각, 통일에 대한 의문들이 들고 일어났다. 통일은 무엇을 의미할까? 사상과 문화의 통합? 통일을 해야 할까? 그것이 우리 민족의 '광장'을 중립적인 위치로 만들어 줄까? 이명준이 결국 바다로 몸을 던졌듯, 어떻게든 '나뉘어진' 광장들 속에서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좌절 뿐일까?
내가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고, (꼭 그럴 필요는 없지만) 최인훈을 천재라고 인식하려면 몇 번을 더 읽어야 할 것 같다. 귀차니스트인 내가 그렇게 할런지는 모르겠지만, 아직은 이해가 부족한 작품이다.
● 아무도 광장에서 머물지 않아요. 필요한 약탈과 사기만 끝나면 광장은 텅 빕니다. 광장이 죽은 곳. 이게 남한이 아닙니까? 광장은 비어 있습니다. (57쪽)
● 풍기는 분위기는 영 다르지만, 쉼표가 하도 많아서 일본책인 것 같은 느낌이 잠시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