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영화 '아일랜드'의 장면들과 비교하면서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 읽고 나서 책의 앞날개를 본 순간, 나는 경악했다. 1932년도 작품? 세상에... 이렇게 현실적인 공상이 있을 수가! 이 소설은, 믿을 수 없는 상상력이 아니더라도 인간 내면의 치밀하면서도 있을법한 가정, 혹은 파헤침 만으로도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했을 것이다. 아, 잘 읽었다.
신세계 속의 사람들은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멋지지' 않다.
만인은 만인의 공유물이야. (52쪽)
어머니, 일부일처제, 낭만. 분수는 높이 솟구친다. 힘차게 흩어지는 물은 거품까지 일으킨다. 충동의 출구는 단 하나밖에 없는 것이다. 나의 사랑, 나의 아기뿐이다. 이 전근대적인 인간들이 미치고 사악하고 비참했던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들의 세계는 유유자적한 태도를 허용하지 않았으며 건전하고 덕망이 있고 행복해지도록 허용하지 않았다. 어머니라든가 연인으로 인해서, 유혹이라든가 고독한 회한으로 인해서, 여러 가지 질병과 끝없이 고립화되는 고통에다 불확실성과 빈곤으로 인해서―그들은 모진 감정을 체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또한 강한 무엇을 느끼지 않으면 안 되었던 그들이 더구나 고독 속에서, 희망도 없는 개인적인 고립 속에서 모진 감정을 반추하면서 어떻게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54쪽)
어휘라는 것은 적절히 사용하면 X레이와 같아질 수 있어―어떤 것도 관통할 수 있는 것이야. (88쪽)
"……나의 충동을 억제하는 효과를 실험하기 위하여……."
그가 말하는 것이 그녀에게 들렸다. 그 말은 그녀 속에 자리잡은 용수철을 건드리는 것 같았다.
"그대가 오늘 가질 수 있는 즐거움을 내일까지 미루지 말라." 레니나는 심각하게 말했다.
"열네 살부터 열여섯 살 육 개월이 될 때까지 매주 이 회씩 이백 번 반복한 것이군요." 그것이 그가 던진 주석이었다. 미치광이 같은 괴상한 말이 시끄럽게 계속되고 있었다.
"나는 정열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그가 이야기하는 것이 들렸다.
"나는 무언가를 강렬히 느끼고 싶습니다."
"개인이 감정을 가지면 사회는 동요하는 법이에요." 레니나가 확신에 차 말했다.
"사회가 좀 동요하면 어떻습니까? 그러지 말아야 할 이유라도 있습니까?" (116쪽)
물론 사회라는 육신은 그것을 구성하는 세포가 변해도 존속하는 것이야. (120쪽)
그는 포페를 점점 더 증오했다. 인간이란 계속 미소지으면서도 악인이 될 수 있다〔『햄릿』1막 5장 중에서〕. 잔인, 간계, 음란,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악당〔『햄릿』1막 3장 중에서〕―이러한 언어들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는 반밖에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어휘의 마력은 강렬한 것이어서 그의 머릿속에서 계속 울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까지 그는 포페를 진실한 의미에서 증오하지 않았던 것처럼 느껴졌다. 그가 얼마나 그를 증오하는지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에 진정으로 그를 증오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그에게는 어휘가 있었다. 북소리와 같고 노래와 마법과도 같은 이러한 어휘가 있었다. 이러한 어휘들과 이 어휘가 들어 있는 기이한 이야기―사실 그는 이야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밑도 끝도 잘 모르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 이야기는 멋있는 것이었는데―그에게 포페를 증오할 이유를 제공했다. 또한 그 어휘가 그의 증오를 보다 현실적인 실체로 만들었고 심지어 포페를 보다 현실적인 인물로 형상화시켰다. (164쪽)
"오오, 멋진 신세계〔『템페스트』5막 1장 중에서〕여!" (174쪽 외)
그까짓 조그만 실수가 있다고 해서 박해하는 적으로 표변할 수 있는 친구란 가치없는 존재라는 야만인의 말이 옳다는 것을 버나드는 속으로 시인하다가 마침내는 목청을 높여 시인했다. (221쪽)
"여러분은 갓난 아기 상태가 좋습니까?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갓난 아기들입니다. 보채고 앵앵우는 젖먹이들입니다."
야만인은 그들의 짐승 같은 우둔성에 대해 어찌나 분개했던지 자신이 구해주러 온 대상인 그들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퍼붓고 있었다. 모욕적인 언사는 거북등과 같은 완강한 그들의 우둔성 앞에서 무력한 메아리처럼 되튕겨 왔다. 그들은 분노에 찬 표정을 눈에 담고 야만일을 멍하고 침울하게 응시할 뿐이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은 앵앵 울고 있을 뿐입니다!"
비애와 회오, 연민과 의무―이 모든 것을 이제 망각한 상태였다. 이제 이들 인간 이하의 괴물들에 대한 강렬하고 위압적인 증오심에 빠져들고 있었다.
"당신들은 자유롭고 인간답게 살고 싶지 않습니까? 인간다움과 자유가 무엇인지도 모릅니까?"
분노가 원동력이 되어 그의 말이 유창해지고 있었다. 어휘가 술술 터져나왔다.
"그것도 모릅니까?" 그는 반복해서 물었다. 그러나 그의 질문에 대한 응답은 없었다.(264쪽)
"물론 그렇겠지. 실제의 행복이란 것은 불행에 대한 과잉보상에 비하면 항상 추악하게 보이는 법일세. 또한 말할 필요도 없지만 안정이란 것은 불안정처럼 큰 구경거리가 될 수 없는 법일세. 따라서 만족하는 생활은 불행과의 처절한 투쟁이 지니는 매력이나 유혹과 투쟁이 지니는 장쾌함을 갖추지 못하는 것이야. 행복은 결코 장쾌한 것이 아니야." (275쪽)
보편적 행복이 바퀴를 계속 회전시키는 것이니까. 진리와 미는 그럴 힘이 없어. (284쪽)
"하지만 신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변해." (288쪽)
"자네 말을 듣고 있으니까 브래들리라는 이름의 옛날 사람이 생각나는군. 그 사람은 철학이란 인간이 본능적으로 믿는 것에 형편없는 이유를 붙이는 학문이라고 정의했던 사람이었네. 인간은 본능적으로 무엇이나 믿는다는 투였지. 사실 인간이 어떤 것을 믿게 되는 것은 그렇게 믿도록 조건이 주어지기 때문이야. 인간이 어떤 그릇된 이유로 무엇을 믿게 될 때 그에 대한 다른 엉터리 이유를 발견하는 것―이것이 철학이란 것이야. 인간이 신을 믿는 것은 신을 믿도록 조건지워지기 때문이야." (29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