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1학기 수학 성적은 심하게 처참했다. 그 이름도 찬란한 6등급. 이번 방학에 반드시 수학, 이 수학을 갈아마시리!를 부르짖으며 야심차게 계획을 짠 나는, 오늘도 하루를 수학과 보냈다. 시간표에 표시된 걸 보니, 12시간은 족히 함께하였구나. 아이고, 끔찍해라. (오늘은 문제에 마가 끼었는지 잘 안 풀려서, 예상시간을 훨씬 초과해버렸다. 원래 지금쯤 나는, 3시간동안의 행복한 독서 끝에 잠자리에 든지 1시간이 지났어야 하는데, 이제야 수학을 다 끝냈다. 웁스.)
팔이 뻐근해지고 손끝에 감각이 없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문제집을 덮는데, 순간, 공부가 뭐고 성적이 다 뭐길래 이 아름다운 계절에 나는 이러고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우울해졌다. 그런데 그 때,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스스로에게 상을 주는 의미로 만화책을 읽고 있다고. 이녀석도 하루를 충실히 공부에 쏟은 눈치다.
그렇구나! 동지!
나는, 다른 친구들도 방학중에 나보다 더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 안달이 나고 비참해질 줄 알았다. 당연히 다들 열심히 하고 있겠지만, 그걸 확인하는 것이 두려웠다. 그런데 정작, 친구도 나와 같이 공부를 했음을 확인하니, 왜 일까,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짜식 열심히하네. 나만 이러고 있는 게 아니구나! 라고.
완전한 선의의 경쟁이란 없는 줄 알았다. 어떤 경쟁에도 티끌만큼의 적의는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밤은, 왠지 그런 것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