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1학기 수학 성적은 심하게 처참했다. 그 이름도 찬란한 6등급. 이번 방학에 반드시 수학, 이 수학을 갈아마시리!를 부르짖으며 야심차게 계획을 짠 나는, 오늘도 하루를 수학과 보냈다. 시간표에 표시된 걸 보니, 12시간은 족히 함께하였구나. 아이고, 끔찍해라. (오늘은 문제에 마가 끼었는지 잘 안 풀려서, 예상시간을 훨씬 초과해버렸다. 원래 지금쯤 나는, 3시간동안의 행복한 독서 끝에 잠자리에 든지 1시간이 지났어야 하는데, 이제야 수학을 다 끝냈다. 웁스.)

   팔이 뻐근해지고 손끝에 감각이 없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문제집을 덮는데, 순간, 공부가 뭐고 성적이 다 뭐길래 이 아름다운 계절에 나는 이러고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우울해졌다. 그런데 그 때,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스스로에게 상을 주는 의미로 만화책을 읽고 있다고. 이녀석도 하루를 충실히 공부에 쏟은 눈치다.

  그렇구나! 동지!

  나는, 다른 친구들도 방학중에 나보다 더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 안달이 나고 비참해질 줄 알았다. 당연히 다들 열심히 하고 있겠지만, 그걸 확인하는 것이 두려웠다. 그런데 정작, 친구도 나와 같이 공부를 했음을 확인하니, 왜 일까,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짜식 열심히하네. 나만 이러고 있는 게 아니구나! 라고.

  완전한 선의의 경쟁이란 없는 줄 알았다. 어떤 경쟁에도 티끌만큼의 적의는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밤은, 왠지 그런 것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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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nerist 2005-08-09 0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딱 10년전 제 생각이 나네요. 특목고 들어와 첫학기 수학 "양" 맞고 악이 받쳐서 주말 단과 학원 등록해서 칠판 있는거 무조건 배껴 쓰고 정석 베껴쓰고 본고사 문제집 구해다 풀고... 그때 수학에 정 붙여 대학 공대와서 수학/영어 과외로 입에 풀칠하고, 지금도 숫자놀음으로 밥 벌어먹고 살고 있어요. 화이팅. 수학만큼 재밌는 과목도 없다구요. 지금 타이밍이면... 10-가 이차방정식 다 떼시고 10 - 나 에서 이차방정식이 어떻게 평면에 옮겨져 활용되나 나오겠네요. 1차원(선)에서 2차원(면)으로 영역이 확장되면서 어떻게 숫자놀음과 그림이 만나는지 확인하는 황홀한 장면이 그려집니다. 후후... 가까히 살면 공짜과외라도 해드리는건데... 즐겁거든요. 명민한 애들 가르치는거. =)

明卵 2005-08-09 0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매너님, 오랜만이어요. 왜 이렇게 반가운지 모르겠습니다ㅜㅜ 희망이 샘솟는 댓글에 깊이 감동받았습니다. 6등급도 노력하면 어찌 되겠지요? 머리가 돌은 아니니... 그래프 나오면 머리에 쥐내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재밌어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식으로 쓰면 골치아픈 걸 그림으로 어찌어찌 쉽게 푸는, 그맛때문인가 봐요.^^ (시험만 안 치면 수학은 아름다운 과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이번 방학때 수학이랑 영어문법을 잡으려고 했는데... 수학에 너무 신경쓰다보니 문법은 볼 시간도 안 나오네요-_-; 소박한 두마리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컸나?

가을산 2005-08-09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그래도 방학이라 명란님 글을 자주 볼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0^

그리고... 공부요... 그래요.
친구들과 리듬을 같이 타면서 하는 공부가 훨씬 낳은 것 같아요.
혼자서 외곬으로 하는 것보다... 방향 잡기도 낫고, 정신 건강에도 더 나은 것 같아요.
그래도.... 수학은..... 제게는..... 여지껏 컴플랙스입니다. ^^

明卵 2005-08-10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산님, 제 글을 자주 볼 수 있는 게 뭐가 좋아요^ㅅ^; 알라딘에 오면 너무들 띄워주셔서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난감해요! (좋으면서.. 호호;)

BRINY 2005-08-14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에 12시간 수학 공부를 하셨군요. 게다가 학교 선생님이 추천한 도서도 구입하시고. 명란님과 동갑인 우리반 애들은 보충수업 땡땡이 치는 거랑, 틈만 나면 자고 먹는 거랑. PC게임과 만화에 빠져 사는 거 같은 데 말이죠. 2학기부터는 분명 수학에서 좋은 성적 받으실 거여요.

明卵 2005-08-16 0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어째 제 친구들은 하루종일 공부만 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_^ 에잇, 나만 열심히 하면 좋겠는데! 오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