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릴레이 러브스토리, 라고 표지에는 적혀 있었지만, 그것은 써내려간 방식을 말하는 것이지 소설의 내용을 말해주는 건 아니다. 자고로 릴레이란, 한 주자가 다음 주자에게 바통을 넘겨주면서 이어지는 것일진대 <냉정과 열정사이>에서 아오이와 쥰세이 사이에는 어떤 의미에서든 '넘겨주고 넘겨받는' 행위는 없다.
아오이의 이야기가 Rosso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것은, 그녀가 이름부터 시작해서 풍기는 분위기까지 푸른 색채를 띄고 있지만, 그 마음속에는 정열이 숨쉬고 있다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걸까. 묘하게 어울리는 아오이와 붉은 기운 속에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에쿠니 가오리의 풍경은, 내가 지금껏 읽어본 두 소설만 보면, 굉장히 맑으면서도 허망하다. 목욕을 좋아한다는 설정은 항상 그녀의 여인들을 깨끗한 이미지로 지켜주며, 서늘한 정신세계는 작품전체에 한적한 공간의 여유와 가벼운 냉기를 불어넣는다. 그런 모습은 <냉정과 열정사이>에서도 여과없이 보여졌다. 담담하고 조용한 미소의, 시원스런 목덜미가 느껴지는 아오이. 직장은 있었지만 대개 책을 붙들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서 더욱더 무료해 보이는 아오이. 그 무료함이 위태로움을 낳는, 그런 여자였다.
쥰세이에게는 Blu도 어울린다. 무언가에 열정을 드러낼 수 있는 열기의 색깔도 어울리겠지만. 그는 아오이보다 '인간적'이기 때문에 어떤 색과도 그럭저럭 들어맞는다. 그가 복원사이기에 가진 색감있는 눈동자가 그렇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쥰세이의 이야기는 아오이의 이야기보다 더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적어도 쥰세이에게는 부서져내릴 듯한 가느적한 외견이 없었고, 열중하는 일도 있었다. 나는 냉정보다 열정을 더 갈구하는 사람인가.
나는 내심, 아오이는 마빈과의, 쥰세이는 메미와의 생활에서 행복을 찾아 잘 살길 바랬다. 그리고 둘은, 서로를 그저 추억이라고만 생각하면서 피렌체의 두오모에서 만나는 것이다. 그리고 가벼운 이야기를 나눈 후, 다시 그들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 그게 내가 원하던 거였다. 하지만 그렇게 안 된 건 말할 것도 없다.
<냉정과 열정사이>라는 제목(원래는 <냉정과 정열의 사이>라지만.)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냉정과 열정, 그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선 떠오른 것은 아오이와 쥰세이였다. 하지만 그뿐이 아니었다. 냉정과 열정 사이에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두 냉정과 열정 사이에 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