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초 편지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야생초 편지 2
황대권 지음 / 도솔 / 200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책에 대한 아무런 지식 없이 읽기 시작해서 한 50쪽 정도는 도대체 선이는 누구길래 계속 불러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애인인가, 하고 넘겨짚긴 했지만 여전히 궁금증이 남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게다가 죄 짓고 교도소 들어간 사람이라기에는 단어 사용이 말끔하고 문장이 품위있는데다 읽는 순간 지식의 무게가 느껴져서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교도소는 무식한 사람만 들어간다고 누가 그러더냐!하고 나를 꾸짖더라도 뭐라 할 말이 없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고정관념이란 무섭다는 것이다.

하여간, 꼭 화장실에서 손 안 씻고 나온 것처럼 그렇게 찜찜함을 가지고 책을 읽고 있는데 문득 책 앞날개가 보였다. 조그마한 글자들이 나에게 진실을 말해주었다. 줄창 부르던 그 이름, 미선은 여동생의 이름이었으며 그는 말하자면 '엘리트'에, 죄가 없었다. 그제서야 나는 무릎을 딱 치며 궁금증이 완전히 풀림을 기뻐할 수 있었다. 그리고 확실한 교훈을 얻었다. 뭐든지 아는만큼 보인다고, 앞으로 책을 읽을 때는 저자와 책 내용을 적게나마 알아둬야겠다는.

<야생초 편지>라니, 야생초에 아무런 생각도, 관심도 없는 내가 읽고싶다는 생각이 들만한 제목은 확실히 아니었다. 사실 집에 있어서 읽기 시작했을 뿐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읽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야생초에 대해 모르고, 관심이 없기 때문에 읽어야 하는 게 아닐까'라는. 무엇보다도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여서 인지, 작가의 문장이 편안하고, 표현이 상쾌하고, 부드럽게 다듬어놓은 듯 깨끗해서 좋았다. 마치 일기를 쓰는 것처럼 담담하게, 때로는 그림까지 곁들여가며 적은 글은 야생초도 야생초지만 삶과 사람에 대한 작가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에 대해 적은 책은 많지만 야생초 편지는 사랑스런 여동생에게 말한다는 느낌으로 써졌기에 더욱 아름답고 설득력있는 게 아닐까.

이 책의 강점 중 하나는 아름다운 그림이다. 한 마디 말없이 서 있는 야생초를 그린 그림. 집에 야생초에 관련된 책이 있어서 야생초 편지를 읽는 김에 한번 뒤적거려 보았는데, 거기에 실려있는 사진들과 저자의 그림이 어찌나 똑같은지. 색이 서로 녹아들면서 마치 진짜 식물의 잎인 듯, 꽃잎인 듯 그려진 모습이 놀라웠다. 산에 오르는 걸 질색하는 나는 야생초를 직접 본 일이 별로 없지만 어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진짜로 보면 그 책에 그려놓은 거랑 진짜로 똑같거든-'이란다. 사랑을 가지고 열심히 관찰했기에 그렇게 진짜 같은 모양의 예쁜 그림이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가 그린 그림은 진짜일지도 모른다. 보고 또 봐서 머릿속에 진짜를 새긴 다음에 온 힘을 다해 진짜를 쏟아낸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내가 가장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동의의 뜻으로―읽은 부분은 '무위에 의한 학습'이었다. 무작정 정진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무리함이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돌이켜 보면 실제로는 그리지 않고 있었어도, 관념 속에서 또 손안에서 그림 그리기는 계속되고 있었던 거다……. 내가 느껴오던 '그것'이다. 글을 쓸 때도 막힐 때는 잠시 그만두고 잠시 다른 일을 하면 후에 글이 술술 써지는 걸 느낄 수 있다. 그 외에도 여러 번, 나는 '그것'을 경험했지만 아무런 생각 없이 넘어갔었다.

그런데 작가는 그를 '무위에 의한 학습'이라 이름 붙이고 그를 행복하게 여겼다. 이것이 차이일지도 모른다. 그저 느끼기만 하는 것과 감사히, 행복하게 여기는 것. 내가 무위에 의한 학습을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 나름의 방식으로 그를 이해한 것 같다. 저자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그의 글로 인해 나는 한층 자란 것이 분명하므로.

누구나 우리에게 책을 읽으라고 권한다. 그들은 우리가 책을 읽음으로써 생각을 한 뼘씩 키운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한 장 한 장 사랑이 묻어있는 책, 우습고 놀랍고, 때로는 슬픈 책, <야생초 편지>. 누군가에게 뭔가 읽어보라고 권할 참이라면 이 책이다. 영화 아이엠샘의 그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It's a wonderful cho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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