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thing's Gotta Give
줄리안 머서는 곧 복잡한 심경이 되고 말았다. 레스토랑에 들어선 후 해리 샌본의 얼굴을 본 그 순간부터. 이 남자는 어떻게 이 곳 파리까지 오게 된 것일까. 이 남자는 어째서 하필이면 이 레스토랑, 하필이면 에리카 앞에 앉아 있게 된 것일까. 그녀와 해리 샌본이 다정히 앉아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본 그 순간부터 줄리안 머서는 무언가 얻어맞은 듯 불안해진 것이다. 그녀를 혼자 두지 말았어야 했다. 반지를 고르겠다고 파리 시내를 샅샅이 뒤지는 따위의 짓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도무지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그는 알 수가 없었다. 이 불안감의 정체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명백히 해리 샌본이 보는 앞에서 에리카를 먼저 택시에 태우고 사라지는 당당한 모습을 보이리라, 처음부터 다짐을 하고 있었다. 해리 샌본은 식사 내내 여행에 관한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너스레 떨며 주절거리고 있었고, 그는 짐짓 이 웃음이 화려하지 않으면 어쩌나 전전긍긍대고 있었다. 에리카의 생일 파티가 끝나기만을, 그 순간이 되면 저 문을 박차고 나가 그녀가 지금 누구와 함께 있는지, 그녀가 택한 사람이 누구인지 똑똑히 해리 샌본에게 보여주고 싶어 좀이 쑤실 지경이었지만, 분위기가 허락하는 대로 꾹 참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이 이상했다. 그의 예상대로 세 사람은 레스토랑을 나와 해리 샌본이 보는 앞에서 미끄러지듯 굴러 들어온 택시에 올라탔다. 에리카는 잠시 해리 샌본에게 다가가 무언가 말을 건내려 했지만, 1초 혹은 2초 동안 나를 넘겨다 본 후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그대로 탔다. 이상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줄리안은 뒷목에서 스믈스믈 기어올라오는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만일 줄리안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상하게 여겼을 것이 분명했다. 그는 이토록 신경을 곤두세우는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줄리안, 그 조차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해리 샌본의 얼굴을 본 순간부터 치밀어 올라오는 이 불안함.
이유는 단 하나. 유리창의 김 서림이 사라진 후의 분명함처럼 어느 하나 불투명했던 이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에리카는 해리 샌본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끝났다고 생각했던 그 사랑이 그의 얼굴이 들어서는 순간, 빛의 속도보다 더 빠르게 두 사람을 휩싸고 만 것이다. 줄리안은 호텔로 가는 순간까지 방황했고, 호텔로 들어서는 모퉁이 직전, 그녀의 눈물 한 방울에 모든 것을 결정지었다. 그녀를 행복하게 하는 길은, 자신을 행복을 저당 잡혀 그녀를 보내는 것.
그녀를 고이 보내주리라. 그녀의 사랑을 인정하여 그녀를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녀에게 똑바로 인지 시켜주리라. 곧바로 그는 실행에 옮겼고, 택시는 마침 호텔 앞에 멈춰 섰다.
그녀는 곧 맑은 눈동자가 되어 택시를 서둘러 내렸다. 같은 택시를 타고 그녀는 해리 샌본에게 갔다. 줄리안은 한꺼번에 벌어진 이 사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랑이 끝난 것이라고는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그는 그녀를 생각했다. 드넓은 파리 시내에서 해리 샌본을 찾지 못하고 덩그마니 남겨진 에리카. 줄리안에게는 아직 기회가 남아 있었다. 지금까지 생각했던 모든 기회가 사라졌지만, 아직 하나, 남아 있었다. 그녀에게 달려가 자신이 사랑이라 믿었던 것에 배신당한 그녀를 위로하는 것. 완벽했다. 줄리안 역시 택시를 잡아타고 그녀의 택시를 뒤좇았다. 세 사람이 함께 있었던 레스토랑을 지나 샹제리제 거리를 지나, 퐁네프 다리 중턱. 택시에서 내리는 에리카.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해리 샌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