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나의 발로 걸어 서점에서, 라는 기준이 무너진 것은 인터넷 서점의 '예약판매' 때문이다.
몇몇 기다렸던 작가의 새 작품이 아직 서점에 전시되기 전에 얼마의 할인과 얼마의 쿠폰, 욕심나는 전작을 끼우거나 꽤 괜찮은 선물을 끼워 광고를 할라치면 참을 수가 없다.
아직도 여전히 궁핍한 시절의 욕심이다.
폴 오스터나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 산도르 마라이, 파울로 코엘료, 가네시로 카즈키 등등의 몇몇 작가의 신작 소식이 전해지면 바로 구매를 신청해두고 여러 날 동안 그야말로 손꼽아 기다린다.
내버려두면 어느 날 산뜻하게 날아올텐데 꼭 몇번씩 배송확인을 하고 만다.
정작 출간일이 되면 까맣게 잊고 있다가 짠하고 나타난 택배를 소중하게 받아 들거면서.
드디어 왔구나, 큰 손님을 맞이하듯이.
애인의 연락을 이토록 기다린 적이 있던가, 이토록 반가웠던 적이 있던가.
여간해선 영화를 예매하지 않는다. 곧 조바심을 낼 나의 성격을 아는 탓이다.
어떤 날 맹렬히 보고 싶으면 달려가 보면 될 일이다.
그래서 이따금 놓치고 마는 영화도 있지만 나의 영화보기 행태에 후회는 별로 없다.
하지만 이번엔 <스파이더맨 3>를 보름도 더 남겨둔 오늘 예매해두고 설레는 기분을 조금 만끽하고 있다.
애써 기대하면 실망도 큰 법, 이라고 마음을 다잡고는 있지만 이 감독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아직은 기분이 좋다.
날짜 혹은 시간이 정해져 있는 기다림은 얼마든지 괜찮다.
기다리는 것 따위 정말이지 자신있다.
허나 기약도 없이, 결정도 없이 기다리는 것은 하지 않는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파스빈더의 영화 제목처럼 그런 것은 하고 싶지 않다.
더는 너를 기다리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