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 설렘으로 아이들을 만나고 싶다
파멜라 심스 지음, 신홍민 옮김 / 양철북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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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교직 생활 8년차. 나는 지극히 평범한 교사라고 스스로를 생각한다. 남다른 인연으로 내가 만난 몇 아이들에겐 괜찮은 선생으로 그려지기도 했겠지만, 내가 담임을 맡았던 대부분의 아이들에게는 학교를 떠난 지금에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할 그저 그렇고 그런 여러 선생중의 한 명일 것이다. 지겹고 지루하기는 하지만, 학생들이 마냥 무시하고 안 들을 수는 없는 그런 ‘문학 수업’을 하는 국어 선생이 지금의 내 자신의 모습이다.

그래도 가끔씩은 학교에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판단할 때도 있는지라 학생들과는 큰 마찰 없이 지내고 있는 점이 내 교직 생활의 작은 위안거리라면 위안거리인 셈이였는데, 며칠 전에는 수업이 끝나고 잔뜩 화를 내서 내 작은 위안거리마저 근거가 없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지난 몇 주 동안(사실은 지금껏 계속이었을텐데, 내 눈에 띄인 것이 최근 몇 주 정도) 계속해서 수업 시간에 무기력하게 엎드려 있는 녀석이 있었다. 수업 시간마다 내가 가서 깨우고, 잠시 후면 녀석은 다시 엎드리기를 반복했다.(내가 몇 번 지적한 후 다른 선생님들께도 여쭤보니 대부분의 수업시간에 그렇다고 한다.) 며칠 전에는 안 되겠다 싶어서 교실 뒤로 나가 서 있게 했다. 수업 시간에 녀석과 얘기를 하면 길어질 것 같아서  수업이 끝난 뒤로 미룬 셈인데, 그 날 녀석과 나의 대화는 이랬다. 

“니는 나한테 잘못한 거 없나?”

“……”

“니는 수업시간에 그래, 엎드려 있는 거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나?”

“잘 모르겠는데요.”

“니가 한 일인데 니가 모르면 누가 아노?”

“……”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봐라, 니 내한테 잘못한 거 없나?”

“……”

어느새 내 목소리가 조금 더 커졌나 보다.

“대답을 좀 해봐라, 이 총각아! 답답하다. 이번이 진짜 마지막으로 묻는데이, 니 진짜로 잘못했다는 생각 안 드나?”

“수업 시간에 자는 거는 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순간, 속에서 무엇인가가 울컥 하고 올라와서 내 목소리는 좀 더 커졌다.

“니 뭐라캤노? 학생의 선택? 니가 착각하나 본데, 수업시간에 공부하는 건 학생의 선택 아니거든. 그거 학생의 의무다. 내 말이 맞는지 니 말이 맞는지 교육부에 한 번 물어봐라.”

“저, 급식 당번이라 배식하러 가야 하는데요”

“니는 지금 내 말을 듣고 있나? 왜 딴 이야기고? 그리고, 내랑 이야기도 덜 끝났는데 어딜 간단 말이고?”

“애들이 나 때문에 밥 못 먹고 기다리고 있는데요.”

“니만 당번하는 거 아니잖아. 오늘은 딴 사람이 좀 보내고 우리 이야기 마무리 하자.”

“……”

“니는 나한테 잘못한 거 없나?”

“……”

“안 되겠다. 그라믄 점심 묵고 내한테 좀 찾아온다. 다시 얘기하자.”

“저도 바쁜데요. 화장실도 가야하고…… 쉬는 시간은 학생이 자유롭게 지낼 권리가 있잖아요.”

“아니, 이 총각아! 내가 니를 아무 이유 없이 부르나? 분명히 해야 할 말이 있고, 아직 지금 이 이야기가 덜 끝나서 부르는데, 니는 니 권리만 얘기하노? 나도 학생을 지도할 권리와 책임도 있거든. 지금 분명히 이야기하는데, 점심시간 지나고 다음 쉬는 시간에라도 꼭 찾아 온나! 알겠제?”


이후 그 녀석은 감감 무소식이었다. 내가 교실로 찾아갈 수도 있었지만, 알량한 자존심 탓인지 올라가기 싫었다. 그러는 내내 내 기분은 엉망이었다. '학생의 권리'란 말에 속에서 불길이 확 솟았던 거 같다. 이런데 써 먹으라고 학생의 권리라는 게 있는지 답답했다. 내 스스로는 학생의 권리에 대한 이야기도 제법 했던지라 더 화가 났었다. 마음은 점점 무겁고, 침울했다. 다른 반에 수업을 들어가는 것도 평소처럼 즐겁지가 않았다.


그 다음날, 나는 선생님들과의 공부 모임에서 이 사례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알렸더니 자연스럽게 선생님들의 여러 가지 충고와 조언들이 해 주셨다.

- 수업시간에 공부를 선택할 수 있다는 주장도 검토해 볼 가치가 있지 않은가?

-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라고 다그치는 교사의 태도에 학생이 반감을 가진 것은 아닌가?

- 그럼 선생님(나는)은 그 학생이 반듯한 자세로 공부하는 척 앉아 있기를 바라는가?

- 그 학생이 수업시간에 계속 엎드려 있는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 학생이 잘못을 인정한다고 해서 현재의 문제 상황이 달라지리라고 기대하는가?

- 학생의 현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에서 교육은 출발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 자신이 정한 기준을 벗어난 학생에게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로 판단하는 것은 아닌가?

- 학생이 말한 내용보다 태도 때문에 이런 충돌이 생기고 갈등 상황이 벌어진 것은 아닌가?


그 날 나는 당연히 내가 옳고, 몰지각한 학생의 태도에 대해 분개해 주리라고 기대했던 내 생각이 여러 곳에서 허점을 드러내어 약간 당혹스러웠다. 이렇게 나와는 ‘전혀’ 다르게 생각하는 교사들도 많구나! 싶었다. 그것도 바로 내 주변에……. 그러면서 나는 몹시 혼란스러웠다. 늦은 밤에 집에 돌아와서 다시 문제의 그 장면을 떠올려보았다.

우선 어쩌면 그 녀석을 따끔하게 혼내는 게 내가 덜 피곤한 일이라고 생각한 건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벌과 잔소리는 2분이면 충분할 수도 있지만, 그 녀석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차분하게 이유를 묻고, 내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실제로 그 녀석의 학습태도가 나아지는지 지켜보고…… 이런 과정은 분명히 따끔하게 혼내는 것보다는 훨씬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학생들과 만나면서 나름대로 조심하느라고 하는데도, 내 생각과 행동이 가끔 이렇다. 한동안 그냥 좀 ‘이렇게 하면 되었다’ 싶다가도 어김없이 한 번씩 이런 일이 생겨서 내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게 하고, 기운이 쭉 빠져 있던 시기인 이틀 동안에 파멜라 심스의 ‘처음 그 설렘으로 아이들을 만나고 싶다’를 읽었다. 그런데 이 책은 내가 교사 생활을 하면서 늘 책상 위에 두고, 아껴서 읽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 학교 생활하다가 언제라도 이번처럼 기운이 빠지는 일이 있을 때면 아무 부분이라도 펼쳐두고 읽고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이 책이 말하는 ‘진정한 교육’이란 교사와 학생 사이에 강한 인간적 유대 관계를 쌓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단순히 교과목의 내용만을 전달하는 데 그치는 교사(good teacher) 보다는, 학생을 온전히 한 인격체로 대하며 가르치는 교사(great teacher)가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 인격체로 대한다는 것의 구체적 의미는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대접받고 싶은 만큼, 교사가 먼저 학생들을 대하라.’것이다. 이러면 규칙이 사라져서 질서가 없어질 것이라고 불안해 하지만, 스스로 참여하고 결정하는 과정에서 사라지는 것은 일방적인 지시와 통제, 교사의 위협으로 생긴 아이들의 마음 속 불안이다.

교사들이 학생 시절에 자신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선생님들은 어떤 태도와 성향을 지녔는지를 떠올려보는 게 필요하다.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듯이, 예전의 그 학생들(지금의 교사들)에게 좋은 영향을 준 것처럼 지금의 학생들도 교사의 감시와 위협, 지시와 통제에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교사의 따뜻하고 다정한 관심과 배려, 긍정적인 자기암시와 적극적인 격려를 통해 학생들의 영혼을 성장시킬 수 있고, 이것이 모든 교육의 출발점이 된다고 말한다.

학생들의 영혼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일은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직업을 위임받은 우리 교사들의 몫이다. 교사들이 학생들과 긍정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사고와 생각을 보여 준다면, 더 나은 세계를 만드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한다.


오늘 그 녀석이 속한 반의 수업이 든 날이었다. 그 반의 담임선생님을 찾아갔다. 그간의 상황을 설명하고 혹시 녀석이 그렇게 행동할만한 이유를 아시는지 여쭤보았다. 뾰족한 답은 없었지만, 그래도 일단 내가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스스로 위안을 삼고 싶었다.

약간 긴장하고 수업에 들어갔다. 녀석을 앞으로 나오라고 해서 왜 오지 않았는지 물었다. 역시나 같은 대답! 그러나 내 마음은 저번처럼 심하게 흔들리지는 않은 것 같다. 약간 웃으면서 이대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지내가면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고, 언제든지 시간이 나면 꼭 찾아와서 이야기를 하자고 일렀다. 그랬더니 녀석이 다음 시간은 안 된다고 했다. 나는 다음 시간이 아니라도 괜찮다고, 다음 ‘문학 수업’이 든 시간 전까지 아무 때나 찾아오라고 말하고 자리에 앉게 했다.

 

여러 번 배우고, 다른 사람의 책을 읽어도 내 몸에 익숙해지기는 어렵고, 스스로 다짐하고, 굳은 결심을 해도 다시 흐트러지고 쉬워서 며칠 전과 같은 일이 생긴 것이다. 그 전날에 내가 이 책을 읽기 시작했더라면 좀 더 현명하게 행동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제대로 된 ‘교사’가 되려면 두고두고 읽고 마음에 새겨야 할 보석 같은 책이다.


마지막으로 우문(愚問) 하나!

교사는 왜 학생들을 사랑하고, 관심을 보여 주고 함께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가? 현답(賢答)은 우리의 미래가 우리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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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6-22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샘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 매일 저지르는 일이죠. 아이들을 이해하지는 못하면서 교사 자신의 입장은 같은 교사들끼리 늘 위로받고 싶어하거든요. 에구.. 그렇다고 녀석들을 늘 엎드려있게, 늘 지각하게, 늘 도망가게 둘 수도 없고... 어쩌나...

고사성어를 공부하잖아요? 아이들에게 '후생가외'라는 성어를 이야기할 때는 정말 약간 부끄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해요. 우리-어른, 교사-들이 거의 잊고 사는 後生可畏... 아이들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할 것 같아요. 아직 우리는 교단에서 완전히 내려온 게 아니라 한쪽발은 살짝 걸쳐놓고 있는 게 아닌지... 물론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권위'는 제외하고.

그런데 긍정적인 의미에서 교사의 권위란 뭘까요? 무조건 내 기준이 옳다고 거기에 맞추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닐텐데 말이죠? 흠...

글샘샘께서 쓰신 리뷰읽고 '스승의 날' 선물로 저 스스로에게 선물했던 이 책!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어요. 사실 너무 빠른 효과와 긍정적인 면만 보고 있는 듯 해서 약간의 반감이 남아있거든요.

느티나무 2006-06-22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셨네요. ^^ 늘 안다고,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서 문제가 생기는 거 같아요. 사실은 끊임없이 반복하지 않으면 모르고 있는데요... 모르면서 안다고 생각하는 거, 실수의 지름길인거 같습니다. 저는 제목처럼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