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사중주
김재준 외 지음 / 박영사 / 2004년 7월
평점 :
품절


   '입시대한민국'답게 서점가에는 대입성공수기나 '공부 방법'에 관한 책은 굳이 입시철이 아니어도 넘쳐난다. 그러나 나는 유감스럽게도 그런 책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이런 책은 늘 공부로 고민하는 대한민국의 '보통 학생들'에게 소박한 꿈을 주는 미덕에도 불구하고,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성공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심어주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책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쓰여진 것도 절대로 쉬운 것이 아닌 것은 물론이다. 개인의 편견일수도 있겠지만 '공부 방법'에 관한 책은, 개인의 특수한 경험을 보편적인 방법으로 소개하거나 합리적인 근거나 과학적인 검증 없이 '성공의 신화'만 강조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뭔가 특별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책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도 이 특별한 경험이 보편적인 방법으로 소개되는 것이 현실이다.
 
   얼마 전에 우연히 대학교수들이 언어와 창의성을 주제로 고등학생을 위한 책을 냈다는 광고를 보고 망설이다가 책을 사서 보았다. 지금까지 나와 있는 입시 관련 책과는 무엇인가 다르겠다는 생각이 크게 작용했는데, 대학교수들이 고등학생을 위한 책을 썼다는 점과, 수학을 논리적 언어라며 언어의 영역으로 포함시킨 것이 참신한 발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난 내 느낌을 미리 말한다면, 이 책은 지금까지의 책들과는 분명히 다른 참신한 점을 보여주고 있으나 실제로 교육현장에, 학생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겠다.

   이 책은 읽기와 토론(주경철), 영어(김종면), 수학=생각하기(김재준), 글짓기(신광현)의 영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일단 나는 창의성과 언어 능력을 높이려는 시도가 얼마나 성공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지금까지의 책들과는 다른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대표적인 것이 공부하는 방법으로써 제시하는 이 책의 일관된 전제는 '스스로 생각하기'이다. 실제로 학교에서 학생들과 수업을 하다보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부족하다는 것을 많이 느끼는데, 이 책을 통해서 고등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교수와 교사간의 인식의 차이는 이렇게도 큰 것일까? 교사인 내가 생각하기에 이 책이 주요 독자로 삼고 있는 고등학생들이 이 책을 얼마나 이해하며 읽어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구나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학습 방법은 현재 우리 나라의 고등학교 학생이 그대로 따라하기에는 더욱 힘들 것이다. 교수님들이 생각하고 있는 고등학생은 어떤 수준의 학생들인지 잘 모르겠으나 내가 만나고 있는 대다수의 고등학생은 어려움을 느낄 것 같다.

   예를 한 번 들어보면, 대다수의 고등학교 수준의 학생들은 생활 영어 단어 익히기(익히기), 기본 문장 읽기, 일상적인 대화 상황 듣기와 표현하기-사실, 교실에서 '표현하기'가 얼마나 활발하게 이뤄지는지 알 수 없지만- 정도도 힘들어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영어로 사고하기, 입으로 말하기, 다양한 영어 표현 익히기, 개성 있고 세련된 표현 만들기, 영어의 강약 리듬 느끼기의 순서로 영어 학습법을 설명하고 있다. 현실은 기본 문장을 읽고 이해하는 정도의 수준인데, 자기만의 개성 있는 문장 만들기를 주문하고 있으니 그 간극의 차이는 너무나 크다.

   이것이 같은 고등학교 교과서를 보고 문제를 내더라도 대학 교수들은 다른 방향에서 생각을 하는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집필진의 선의(善意)와는 상관없이 이 책은 '다수의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읽힐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 그 원인은 앞에서 지적했듯이 독자의 '눈높이'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 더욱 안타깝기만 하다.

  이 책을 보면 선의가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이런 시도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입시 공화국', '교육 열풍'의 허울좋은 구호 속에 대한민국의 교육 분야 콘텐츠는 얼마나 살풍경한가? 이 책을 발판으로 제대로 된 학습 방법 안내책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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