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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나무
고규홍 지음, 김성철 사진 / 들녘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알라딘 서재를 돌아다니다 kimji님의 서재에서 이 책에 대한 짧은 평을 보고는 사게 되었다. 그러나 이 책만 샀던 건 아니라서 내가 언제 이 책을 읽게 될 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다시 서재를 돌아다니다가 메시지님의 서재에 올려진 이 책 리뷰를 읽고는 다른 책보다 먼저 이 책을 펼쳤다.
컴퓨터에서 내 신분을 밝히는 별명은 '느티나무'이다. 느티나무는 고향을 지키는 나무이다. 느티나무는 동네 사람들이 어울릴 때는 넉넉한 그늘을 만들고 시원한 바람을 부르는 넉넉한 마음씨를 가진 나무이고, 사람들이 하나 둘 고향을 떠났어도 늘 고향 마음 입구를 지키고 서 있는, 그래서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고향'이라면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되는 그런 나무이다. 나는 그런 느티나무를 닮은 사람이고 싶다.(이 책에 느티나무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다시 한 번 내 별명을 만든 기억이 떠올랐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읽은 책이 이시우님의 '민통선 평화 기행'이었다. 이 책의 제일 처음 나오는 절은 '건봉사'인데, '민통선 평화 기행'의 마지막 기행에 건봉사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서 '또 건봉사 이야기야?'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앞에서도 대충 읽은 내용이라 뭔지 모를 답답함을 느꼈다. 평소에 관심이 있었던 '절집'과 '나무'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잔뜩 기대했는데, 처음부터 대충 아는 내용이면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건봉사 한 부분만 놓고 보면 내가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는 생각이다. 사실, 건봉사는 내가 사는 곳에서 너무나 멀다.(그래서, 이 책을 들고 실제로 건봉사에 가 볼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이 책 한 장 한 장에 소개된 모두 서른 세 곳의 절집에 대한 내력과 그 절집에 살고 있는 나무들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차분하면서도 힘이 있고, 소박하고 담담하서도 풍부하고 깊다. 높임말로 두런두런 건네는 지은이의 글은 처음부터 일관되게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건넨다. 처음 이런 글을 읽을 때 느낀 나의 답답함은 지은이의 일관된 글쓰기에 벌써 익숙해져서 아무 곳에서나 책을 펼치게 되었다. 아마도 나 자신도 모르게 '자극적인 글'을 읽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복잡한 절의 내력과 나무의 특성을 독자들이 읽기 쉽게 전달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 글의 저자가 신문기사를 오랫동안 써 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또 절을 찾아가기 위한 Tip을 꼼꼼하게 적어둔 것도 지은이의 기자 정신이 발휘된 것일 것이다. 그리고 책을 본 누구라도 그 자리에 다시 서서 똑같이 셔터를 눌러 보고 싶게 만드는 멋진 사진도 이 책의 장점이다. 나야 사진을 볼 줄 모르는 눈뜬 장님이지만, 그래도 계절별로 그 절집과 나무가 가장 멋진 때를 골라 찍은 사진에 담긴, 그 정성스러움이 아주 돋보인다.
절집이나 나무와 관련된 책들은 몇 권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절집과, 함께 살고 있는 나무에 대한 내력을 함께 소개한 책은 이번이 처음이다. 나 뿐만 아니라 이런 관점으로 쓰여진 책은 드문 것 같다.그러면서 새삼 이 책처럼 절집과 나무를 묶어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절집과 나무의 엮임은 무척 자연스럽기조차 하다.
이제 내가 다시 절집을 찾아간다면 아마 나도 모르게 절집나무에 먼저 눈길이 갈 것 같다. 조금 더 애정어린 눈으로 나무를 보면서 마음을 건넬 수 있을 것도 같다. 나무가 없다면 절은 얼마나 황량할까? 아니, 나무가 없는 절집은 아예 '존재'를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껏 절집에 대한 이야기만 무성했지 절집의 배경인 '절집나무'에 대한 관심은 부족했던 것이다. 도대체 나는 지금껏 무엇을 보면서 산을 오르고, 절집에 찾고, 숲을 걸은 것일까? 아직도 아는 것이 없는 나는 절에 들어갈 때 가져가야할 책이 이제 한 권 더 생긴 셈이다. 나에게 들고 다닐 책 한 권을 더 만들어준 지은이에게 고마운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