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풍당당 명탐정 외젠 발몽
로버트 바 지음, 이은선 옮김 / 시공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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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총경 출신으로 영국에서 탐정으로 일하는 외젠 발몽을 주인공으로 한 단편집으로 1907년에 발표된 책입니다. 이 시리즈는 예전 하서출판사의 <세계추리명작단편선>을 통해 한번 접해보았었는데 그때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나서 국내 출간이 무척 반갑더군요. 책도 기대만큼이나 재미있어서 한번에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의 재미요소는 여러가지이지만 굉장히 유쾌하게 쓰여졌다는 것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을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마크 트웨인이 쓴 단편 추리소설은 이런 분위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인데 특히나 주인공 자뻑 프랑스인 탐정 외젠 발몽의 활약이 아주 대단합니다. 프랑스인으로서 영국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과 냉소를 통한 시니컬한 유머와 함께 곳곳에 보이는 발몽의 허영심이나 자의식과잉에 따르는 부수적인 묘사가 굉장히 웃기기 때문이죠. 어떻게보면 자신의 국가에 자부심을 가지고 현재 거주하는 국가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천재 명탐정의 전형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겠어요. 대표적인 예로는 '포와로'를 들 수 있겠죠. 물론 발몽은 여성에게 약하다는 묘사에서 벨기에인 탐정과 큰 차이를 보이기는 합니다만...
그러나 유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추리적으로도 상당한 수준의 이야기가 많습니다. 특히 살인사건보다는 도난과 사기행각이 많은데 추리의 과정도 좋지만 이러한 범죄계획 자체가 치밀하게 짜여져있다는 점이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울러 읽다보니 20세기 초반 셜록 홈즈의 라이벌들이 활약하던 시기에 출간된 작품답지 않다는 느낌이 많이 들더군요. 사실 1907년에 발표된 책이라는 사실을 책 뒤 해설을 보고서야 알았는데 깜짝 놀랐을 정도로 말이죠. 전체적으로 웃음을 자아내는 묘사도 그러하지만 발몽이 실패하는 이야기도 몇개 실려있고 '추리' 보다는 '모험' 에 치중하는 듯한 이야기도 있는 등 당대 기존 단편 추리소설의 전형을 깨는 이야기들이 많아서 오히려 현대적인 느낌이 많이 나거든요. 지금 읽어도 별로 낡아보이지 않을 정도였어요. 한마디로 시대를 앞서간 나름의 독특한 캐릭터와 매력, 재미를 전해주는 좋은 작품입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긴 합니다. 가장 아쉬웠던 점은 독자에게 공정한 정보를 제공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좀 약점을 보였다는 것인데, 유머러스하고 유쾌한 작품 특성상 본격 추리의 맛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약점을 극복하기는 조금 어려웠던 듯 싶긴 하네요. 그리고 이야기마다 수준의 편차가 좀 있다는 것도 역시 전체적으로는 점수를 깎아 먹는 요인이 되었고요.
마지막으로 외젠 발몽 시리즈 다음에 이어지는 셜록 홈즈의 패러디물 두편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도 아쉽더군요. 최초의 셜록 홈즈 패러디물이라고 알려져있는 <셜로 콤즈의 모험>이 실려있는 등 자료적 가치는 높지만 그야말로 패러디나 친구들간의 장난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론 내리자면 재미도 있고 추리적으로도 가치있지만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 로 요약될 수 있겠죠. 별점은 3점입니다. 고전 추리단편집을 좋아하신다면, 또는 유머러스하고 독특한 추리 단편집을 읽기를 원하신다면 추천드립니다. 이 책이 부디 잘 팔려서 고전 황금기 비출간 걸작들이 속속 출간되면 정말 좋겠네요.

1. 500개의 다이아몬드에 얽힌 수수께끼
외젠 발몽이 프랑스 총경으로 근무할 때의 이야기.
백만달러짜리 마리 앙투아네트 목걸이의 경매와 경매이후 벌어진 목걸이 행방을 뒤쫓는 추격전을 다루고 있습니다. '유능한' 발몽이 무능한 부하와 생각못한 방해로 작전에 실패하는 과정이 드라마틱하게 벌어지죠. 간단하지만 효과적이었던 범인의 다이아몬드 운송 계획도 볼거리지만 무엇보다도 '일반인'에게 주인공 명탐정이 패배하는 생각지도 못한 결말이 등장해서 의외였습니다. 뤼뺑 시리즈 제 1작이 뤼뺑이 체포되는 이야기였던 충격과 버금가더군요.
이 시리즈의 특징, 자뻑 외젠 발몽과 그의 떠벌임, 자의식과잉 묘사와 유머러스한 분위기의 반전까지 모두 등장하는 작품으로 별점은 3.5점입니다.

2. 두 얼굴의 폭탄 테러범
발몽이 영국으로 온 이후 이중신분으로 무정부주의자 조직에서 정보를 캐 내다가 폭탄투척에 대한 정보를 얻고 그것을 막으려 활약하는 모험담.
이 이야기는 추리물이라기 보다는 첩보 - 모험물에 가까운 작품입니다. 당시 영국에 대한 발몽의 비판적인 시각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기도 하죠. 쉽게 읽히고 재미도 있으며 발몽의 옛 부하 아돌프 시마르가 등장하는 등 시리즈 팬으로 즐길거리가 많기는 하지만 추리적으로는 점수를 줄 부분이 별로 없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3. 은숟가락에 담긴 단서
벤섬 기브스가 발몽을 찾아와 사건해결을 의뢰한다. 사건은 그와 친구들이 함께 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사라진 백파운드를 찾아달라는 것.
라이오넬 데이커라는 유력한 용의자를 등장시키고 그와의 대화를 통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이 독특한 소품입니다. 두명의 대화도 맛깔나고 은숟가락을 이용한 마술이라는 단서도 꽤나 유용한 등 소품이지만 풍성한 느낌이 좋았어요. 그러나 가장 중요한 '라이오넬 데이커가 어떻게 빚을 갚았나?' 에 대해서 설명되지 않는 것은 좀 아쉽더군요. 별점은 3점입니다.

4. 치젤리그 경의 사라진 재산
치젤리그 경이 숨겨둔 막대한 재산을 찾는 이야기.
이 단편집에서 가장 정통 추리적인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몇가지 단서와 치젤리그 경의 유언을 토대로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이 합리적으로 그려져 있거든요. 어떻게보면 좀 단순한 발상이기는 하나 다른 곳에서 찾아보긴 힘든 트릭이 사용되었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별점은 4점입니다.

5. 건망증 클럽
예전 하서출판사의 <세계추리명작단편선>을 통해 접했던 단편. 다시 읽어도 재미있었습니다. 두가지 사건 - 은화 위조와 사기사건 - 이 묘하게 겹쳐져서 하나로 이어지는 전개도 좋았지만 발몽의 런던 경시청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활약이 이어지다가 마지막에 사기꾼에게 한방 맞는 결말도 여러모로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가장 높이 평가할 부분은 너무나도 기발한 사기꾼의 계획이겠죠. 지금 보기에는 허술하기도 하고 약간 설득력이 처지는 부분도 있긴 하나 아이디어만큼은 정말 대단하거든요. 별점은 4점입니다.

6. 기형 발 유령
랜트림리 경의 저택에 출몰한다는 기형 발 유령의 발소리에 얽힌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 영국 경찰에 대한 발몽의 떠벌임같은 유쾌함은 잘 살아있긴 하지만 초반에 저택에 대한 묘사가 상세하지 않아 독자의 상상력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추리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며 내용도 지나치게 과장이 심한 듯 싶어서 여러모로 조금은 아쉬운 이야기였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7. 와이오밍 에드의 석방
와이오밍 에드로 불리우는 미국 무기징역수의 탈옥을 돕는 발몽이 탈옥에 감추어진 진상을 밝혀내는 이야기.
두가지 사건, 즉 와이오밍 에드의 탈옥과 탈옥에 관련된 사기사건이 등장하는데 탈옥은 구체적으로 묘사되지도 않고 가볍게 넘어가기 때문에 '사기사건' 으로 보는게 적당하겠죠.
솔직히 탈옥도 좀 자세하게 묘사되지 않을까 읽으면서 기대가 컸었는데 좀 실망스럽긴 했습니다. 그러나 범인의 사기 계획이 나름 치밀하고 설득력이 있기에 적당한 수준으로 마무리 되지 않았나 싶네요. 물론 마지막 '변장쇼'는 좀 오버라 생각되지만요... 별점은 2.5점입니다.

8. 레이디 알리시아의 에메랄드
도난당한 블레어 에메랄드를 되찾고 레이디 알리시아를 만족시키겠다는 발몽의 일념이 빛나는 이야기. 그러나 도난사건 자체가 일종의 장난같고 두 연인의 치기어린 쇼로밖에 보이지 않아서 추리적으로는 빵점에 가까운 작품이었습니다. 여성에게 약한 발몽의 일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점은 즐거웠지만 전체적으로 평균 이하였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셜록 홈즈 패러디
1. 셜로 콤즈의 모험
셜로 콤즈가 페그럼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이야기. 스코틀랜드에 대한 조롱과 더불어 패러디로서 즐길거리는 많으나 결국 셜로 콤즈의 추리와 수사는 치기어린 과대망상이었고 결국 운이 좋아서 단서를 찾았을 뿐이라는 결말은 추리소설 애독자로서 씁쓸한 뒷맛을 느끼게 하더군요. 재미도 있고 자료적 가치도 높지만 개인적으로는 씁쓸함이 더 큽니다... 별점은 3점.

2. 두 번째 돈주머니의 모험
코난 도일에게 홈즈가 원고료를 요구하러 찾아오지만 도일에 의해 살해당한다는 나름 충격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내용에 알맹이도 없고 패러디도 아닌 이상한 작품이에요. 저자 로버트 바가 코난 도일의 절친한 친구라는데 친구에게 거는 가벼운 장난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저자들 사이의 개인적인 친분이라는 의미 이외의 것을 찾기는 어렵더군요. 별점은 1.5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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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사건.사고 전담반 존 딕슨 카 시리즈 5
존 딕슨 카 지음, 임경아 옮김 / 로크미디어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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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의한 사건, 사고를 전담하는 런던 경시청의 D-3 부서에서 마치 대령과 로버트 경위가 접수된 다양한 사건, 사고를 해결해 나가는 이야기 7편과 기타 단편 4편이 실려있는 단편집입니다.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을 해결하는 전담부서라는 것은 <미궁과 사건부>나 현대의 X-File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변주된 설정일텐데 이 작품은 1940년이라는 발표 시기를 볼 때 거의 원조격에 해당하는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후대의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D-3 부서로의 직접 의뢰보다는 마치 대령이 활약하는 전형적인 명탐정물에 가깝다는 점에서 이러한 설정이 별로 의미가 있어보이지는 않지만요. 또 마치 대령 캐릭터가 여러모로 딕슨 카의 다른 명탐정들 - 펠 박사 / 헨리 메리베일 경 - 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점도 색다른 설정을 보강하는데는 별 도움을 주지 못한 것 같네요.

어쨌건 앞서 말씀드린대로 이 작품이 첫 발표된 것은 1940년. 때문에 이 작품을 보는 시선은 두가지로 나뉠 것 같습니다. 한가지는 낡고 진부한 트릭이 가득한 낡아빠진 작품이라는 것, 또 다른 한가지는 트릭은 뻔하지만 거장의 솜씨로 완성도높게 마무리한 고전 명작이라는 것이겠죠. 그런데 제가 읽고 내린 결론은 후자쪽입니다.
등장하는 이야기들의 트릭들이 낡고 진부한 것은 인정하지만 그러나 이 작품이 발표된 시기를 감안한다면 적절하지 못한 비평일테고 오히려 이러한 낡은 트릭과 구성으로도 한편의 이야기를 조리있게 진행하는 딕슨 카라는 거장의 솜씨에 더욱 감탄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뻔한 내용이라도 동기를 합리적으로 처리한다던가, 기발한 발상으로 단서를 포착하는 묘사들과 전개방식은 추리소설 작법 측면에서라도 읽어볼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생각되네요.
게다가 D-3 부서와 마치 대령 시리즈 이외의 4편은 고딕 호러, 역사극 스타일의 추리소설을 많이 창작한 딕슨 카의 필력을 잘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었기에 아주 반가왔고 말이죠.

아쉽게도 시간이 너무 많이 흐른 탓에 추리물로서 가장 중요한 재미를 많이 잃기는 했지만 그래도 고전 정통 본격 추리 단편소설의 맛이 잘 살아있는 좋은 작품이었다 생각되네요. 고전을 사랑하는 분들이라면 충분히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으실 겁니다. 별점은 전체 평균하여 2.7점, 대충 3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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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라장 사건
아유카와 데쓰야 지음, 김선영 옮김 / 시공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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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라장이라 불리우는 건물에 일곱명의 학생이 피서차 방문한다. 친구들이기는 하나 각자의 사연으로 갈등이 있는 상황. 그런 그들을 대상으로 한 무서운 연쇄살인극이 시작된다.

아유카와 데쓰야의 1958년도 발표 작품으로 이런저런 리스트 -'필독본격추리30선' 이라던가, '동서 미스터리 베스트 100'이라던가 - 에서 자주 언급되는 고전 본격물이죠. 판타스틱에서 주최한 이벤트 덕분에 읽게 되었습니다. 리뷰에 앞서 관계자 분들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일단 설정부터가 상당히 고전적입니다. 특정 장소에서 특정 인물들에게 닥친 연쇄살인이라는 기본 설정, 그리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전형적인 일본 고전 본격물을 연상케하거든요. 그래도 나름 58년도라는 발표 시기 때문인지 기존 고전 본격물과의 차이점도 몇가지 눈에 뜨이더군요. 대표적인 것이 '리라장'이라는 장소의 존재입니다. 이렇게 특정 장소에서 발생하는 연쇄살인의 경우 보통 외부와 연락이 두절된 '클로즈드 써클' 형태로 전개되는 것에 반해 의외로 경찰이 수시로 오가고 심지어 같이 거주하는 등의 파격을 보여주는 것이 특이했습니다. 그리고 경찰의 수사과정이 탐정보다 훨씬 비중이 높다는 점, 탐정역을 두명 (니조와 호시카게 류조) 등장시키고 탐정의 캐릭터 매력을 없앤듯한 묘사 역시 다른 본격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점이라 생각되네요.
즉 고전 본격물에서 트릭의 알맹이만 남겨두고 작위성을 뺀, 고전 본격물에서 근대 사회파류로 넘어가는 중간 시기의 과도기적인 모습을 보이는 작품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이 작품의 경우 고전 본격물 쪽에 더 치우쳐져 있고 이후 60년대의 다카키 아키미쓰 작품들 - <야망의 덫> - 등을 거쳐 사회파쪽으로 점차 이동하는 식으로 말이죠.

그러나 이러한 과도기적인 모습에서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입니다. 아무래도 '리라장'이라는 장소와 스페이드 카드라는 연출의 작위성을 완전히 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했던 것 같아요. 범인이 구태여 용의자가 축소되고 특정될 수 밖에 없는 외딴 별장의 휴가여행을 무대로 하는 것 보다는 도쿄에서 사고 등을 위장한 범행을 저지르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라는 기본적인 의문을 해소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탐정의 매력이 희박하다는 것도 고전 본격물의 매력에서 중요한 요소가 빠진 느낌이 들었기에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려웠어요. 이러한 명탐정 캐릭터의 묘사는 차라리 더 고전적이었다면 좋았을 것 같았습니다.

또 작품의 기본이 되는 알리바이 트릭은 명성에 걸맞게 훌륭한 편이나 살로메 - 유키타케 살인사건 이후에는 그렇게 잘 짜여져 있다는 느낌을 받기는 어려웠어요. 행동이 운에 의지한 측면도 많았고요.
예를 들면 알리바이 자체도 경찰 수사가 부실한 것이 원인이었다는 것, 하나씨의 증언을 경찰들이 초반에 무시했다는 것, 하나씨의 증언을 남편이 듣지 못했다는 것, 니조가 조사를 핑계로 입을 다물어서 사건이 뒤이어 일어나게 되는 것 등이 있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사람도 많이 모여있을 뿐더러 겐모치 경감과 유키 형사가 리라장에 같이 머무는 동안에도 살인사건이 벌어진다는 것은 솔직히 말도 안되죠...
아울러 마지막 사건의 경우 범인이 단지 아비코를 위해서라는 이유였다면 구태여 범행을 저지르지 않아도 경찰에 이야기하면 충분히 사건이 해결되었을텐데 왜 불가능범죄를 또 저지른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명성과 기대에는 살짝 미치지 못했다고 봐야겠네요. 그러나 명성이 워낙 높은 작품이고 그에 걸맞게 기대가 너무 컸던 탓도 있습니다. 기본이 되는 트릭은 상당한 수준이기도 하고요. 초반의 살로메 - 유키타케 사건 이후에 너무 이야기를 벌리지 말고 적당한 선에서, 예를 들면 니조의 등장 부분 정도에서 마무래 해 주었더라면 정말로 괜찮은 작품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후의 이야기는 별다른 트릭도 없는 사족일 뿐더러 무리수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거든요. 별점은 3점입니다.
일본 고전 본격물을 좋아하신다면 즐겁게 읽으실 수 있겠지만 작품의 설득력과 합리성을 전제로 분석적인 독서를 즐기신다면 약간 실망하실 수도 있으니 참고하세요.

덧붙이자면, 최근 읽은 책 중에서 책의 완성도 측면에서는 가장 좋았습니다. 판형도 마음에 들고 표지 디자인도 좋았지만 앞부분의 섬세한 등장인물 소개라던가 중간중간의 약도, 뒷부분의 해설 등 세세한 부분도 꼼꼼하게 신경쓴 것이 좋았어요. 옛날 추리문고 스타일이기도 한데 앞으로도 이런 책이 많이 나와주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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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을 털어라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지음, 이원열 옮김 / 시작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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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트문더는 출소 직후 옛 친구이자 친적인 켈프로부터 '큰 건수'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것은 아프리카의 한 국가에서 신성시하는 에메랄드를 훔쳐내는 것. 도트문더는 이를 위해 운전수, 장비담당, 자물쇠 담당의 3인을 추가한 5인의 팀을 구성하여 에메랄드를 훔쳐내는데 성공하나 순간의 실수로 장비담당인 그린버그가 보석과 함께 체포되고, 이후 에메랄드를 되찾기 위해 교도소, 경찰서, 정신병원, 은행 지하금고를 차례로 털어내게 되는데...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의 대표작 중 한편으로 그동안 국내에서 이 작가 작품은 보기가 힘들었는데 이렇게 접하게 되니 정말 반갑네요.

이 작품의 테마는 '보석 절도'인데 그야말로 책소개에 있는 '케이퍼 소설'이라는 장르 그 자체라 할 수 있겠습니다. (6, 70년대 유행했던 <스팅>, <내일을 향해 쏴라>부터 최근의 <오션스 일레븐>, <이탈리안 잡> 등의 영화를 일컫는 ‘케이퍼 무비’에서 유래한 말로, 범죄사건을 아주 가볍고 유쾌하게 다루고 있는 것이 특징) 주제와 분위기 모두가 <에드가상 수상 작품집 4>에 수록된 작가의 단편 <도둑들>이 떠오르더군요.

때문에 국내에 그동안 출간되었던 작가의 다른 작품들, <인간사냥 (리처드 스타크 명의)> 라던가 <도끼>와는 사뭇 다른, 계속해서 꼬여만 가는 사건에서 좌충우돌하는 주인공들의 모험에서부터 시작해서 마지막에 악당에게 한방 먹이는 반전에 이르는 과정 전부가 유쾌하고 통쾌해서 읽는 내내 무척이나 즐거웠습니다. 또 여러번 계획이 달라지고 업그레이드됨으로 인해서 흡사 여러편의 소설을 읽는 듯한 풍성함도 좋았고요.
유사한 설정이지만 일본 작품인 다카무라 카오루의 <황금을 안고 튀어라>가 시종일관 무겁고 진지한 전개로 일관하는 것과는 정반대라는 것도 왠지 양국, 그리고 작가의 특성이 명확히 드러나는 것 같아 재미있었어요.
한마디로 유머스러우면서도 읽는 것이 즐거운 그런 책이었습니다.

또한 주인공이자 절도팀을 이끄는 리더인 도트문더라는 캐릭터가 이러한 복잡한 상황의 중심을 딱 잡아주면서도 독특한 매력을 풍긴다는 것 역시 이 작품의 큰 매력 중 하나입니다. 계획의 치밀함과 실제 작전에서의 과감함, 결단력과 더불어 번역자 표현대로 세탁기에서 잔돈을 훔치고 슈퍼마켓에서 음식물을 훔치며 수수하게 백과사전을 팔러 다니는 소시민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주 독특하고 인상적이었거든요.

그러나 계획이 꼬이는 과정과 이후 계획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운과 우연이 많이 작용하며 작위적인 설정이 잦은 것은 좀 아쉽습니다. 작가의 이름값에 비한다면, 그리고 '완벽한 범죄계획'이라는 중요한 테마에 걸맞지않게 전개 자체의 밀도가 좀 낮은 느낌이 크기 때문이죠.
완벽한 첫 계획이 실패하고 그린버그가 체포되는 원인이 '유리 케이스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기 때문' 이라는 것도 좀 어설프며 이후 변호사 프로스커가 보석의 은닉장소를 알아내어 먼저 빼돌렸다는 건 그렇다 쳐도 빼돌린 방법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왜 정신병원에 제발로 들어갔는지 등은 그다지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못합니다. 그 외에도 헬기를 동원한 경찰서 습격같은 대형 사건에서도 별 탈없이 무사하게 작전을 완료한다는 지나치게 유쾌한 설정도 썩 와닿지는 않았고 말이죠. 게다가 '최면술' 이라는 설정은 글쎄요... 너무 오버스러울 뿐더러 현실적이지가 못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나마 치밀했던 앞부분의 계획에 비하면 너무 쉽게 간 것이기에 이 설정은 빼는게 솔직히 더욱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빠른 템포로 유쾌하게 읽히는, 스트레스 해소용 화끈 범죄 모험 소설임에는 분명합니다. 이른바 '케이퍼 무비'를 좋아하신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아울러 책 옆날개 소개대로 영화를 찾아보았더니 예고편이 바로 뜨더군요. 확실히 영화화하기에 좋은 소재라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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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캡슐의 수수께끼 노블우드 클럽 7
존 딕슨 카 지음, 임경아 옮김 / 로크미디어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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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시골마을 소드버리 크로스에서 독이 든 초콜릿에 의한 독살 사건이 벌어지고, 사건 해결을 돕기 위해 런던 경찰청의 엘리엇 형사가 수사에 합류한다. 그러나 엘리엇이 도착하자마자 마을의 지역 유지인 마커스 체스니가 가족, 친지가 보는 앞에서 독살된다. 마커스는 스스로 독살사건의 증명을 위한 퍼포먼스를 벌였던 것. 퍼포먼스로 빚어진 주요 용의자들의 확고한 알리바이 등으로 사건이 미궁에 빠지고 엘리엇은 기디온 펠 박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주의 : 스포일러 있습니다> 

존 딕슨 카의 기디온 펠 박사 시리즈 장편입니다.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작품이죠.

이 작품은 다른 존 딕슨 카 작품과는 다르게 굉장히 소품같은 느낌을 주고 별다른 역사나 전설, 괴담과 연관되지 않는 등 많은 부분에서 독특했습니다. 그 중 가장 독특했던 것은 피해자 마커스 체스니가 스스로 '퍼포먼스'를 벌인다는 것이겠죠. 이 퍼포먼스는 추리물의 맹점인 '가치없는 증언'이라는 요소를 이용하여 이중 삼중으로 꾸며진 일종의 추리쇼이기에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연극적인 느낌과 더불어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의 디테일을 가지고 목격자들이 서로 다른 증언을 하는 등 세세한 부분에서 잘 짜여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퍼포먼스 추리쇼가 작품의 핵심 트릭이기도 하고요. 아울러 이 퍼포먼스와 이어지는 질문-답변을 통해 심리학자 잉그람 교수가 보여주는 진지한 두뇌게임 역시 볼거였습니다.
또 기디온 펠 박사를 통해 작가가 설명하는 "독살"에 대한 진지한 고찰도 재미있었어요. 여러가지 사례들을 열거하며 독살범이 감수해야 할 세가지 위험요소, 즉 독살은 독을 넣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독살범은 독을 넣을 기회와 동기가 없다는 것을 납득시켜야 한다, 그리고 걸리지 않고 독을 입수하여야 한다 에서 도출되는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방법 중에서 가장 도망가기 어려운 것이 독살이다' 라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내용은 충분한 현학적 재미를 가져다 주거든요.

그러나 그 이외의 부분에서는 딕슨 카라는 작가에게서 기대했던 완벽한 추리소설과는 좀 거리가 있었습니다. 범인의 별다른 관여 없이 피해자가 주관한 퍼포먼스가 범인의 혐의를 가리는 역할을 한다는 우연과 운이 겹친 작위성이야 이 퍼포먼스가 중심인 작품 특성상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일단 범인이 소드버리 크로스에서 왜 무차별 독살 사건을 벌였는지에 대한 이유가 전무하다는 것이 가장 크죠. 범인의 진짜 목적은 마커스를 살해하는 것인데 왜 불필요한 사건을 벌여서 시골마을에 수사력을 집중시키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윌버를 가격하여 뇌진탕을 일으킨 것 역시 설득력이 약해요. 윌버가 죽지 않는다면 모든 진상을 고백했을 것이라는 점에서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라 그다지 치밀해 보이지 않더군요.
마지막으로 카메라로 촬영한 필름 트릭은 좀 억지가 강했어요. 과연 낮과 밤의 구분이 그렇게까지 모호했을까라는 의문은 둘째치고서라도 직접 목격한 주요 목격자가 2명이나 있는데 과연 리허설이 원래의 퍼포먼스와 완벽하게 동일했으리라고 확신하는 것은 무리잖아요. 뭔가 하나의 변수라도 생겼다면 이 트릭은 사용할 수 없는 트릭이라 역시 운으로밖에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물론 기본적으로 재미있는 작품임에는 분명해요. 용의자가 굉장히 한정된 상황에서 빚어지는 긴장을 다루는 솜씨도 대단하고 뻔한 상황을 노련하게 극복해나가는 전개 역시 거장답고요. 단점을 쭉 적기는 했지만 공정한 두뇌게임이라는 본격 추리소설로서의 기본 원칙에도 충실한 정통 퍼즐 미스터리로 추리적인 수준 역시 높은 편입니다. 단지 작가의 이름값에 비교한다면 전체적으로 작위성이 너무 지나치기에 아쉽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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