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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부메의 여름 ㅣ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 손안의책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의 유명 인기 작가 교코쿠 나츠히코의 데뷰 장편입니다. 꽤 비싼 가격이지만 괜찮게 디자인된 장정과 작가 이름에 혹해서 바로 집어 든 작품입니다. 좋은 책은 많이 사 주어야 추리장르가 활성화 되겠죠? (물론 저도 헌책방을 애용하긴 하지만요...) 하지만 손안의 책이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이 책은 디자인과 장정만은 정말 괜찮은 수준이더군요.
전쟁 직후인 1950년대, 작가 세키구치는 친분이 있던 탐정 에노키즈의 조수 역할을 한 것을 계기로 유서깊은 산부인과 병원 가문인 구온지 의원의 괴사건, 어느날 구온지 가문의 사위인 마키오씨가 밀실에서 행방불명 되고 아내인 교코는 20개월째 임신중인 상태로 지내고 있다는 사건에 참여하게 됩니다.
전쟁때 한쪽눈의 시력을 잃고 일종의 과거-원념을 볼 수 있게 된 에노키즈는 수수께끼와 같은 말을 남기고 사건에서 손을 떼고 과거 마키오와 학교 동창이자 교코와 마키오의 연애편지를 전달했던 역할을 했던 세키구치는 자신의 심약한 성격으로 잃어버렸던 과거에 쫓기며 사건에 점차 빠져들게 됩니다.
결국, 사건은 평소 친하던 고서점 교코쿠도의 주인이자 세이메이의 계보를 있는 신사의 신주인 추젠지 아키히토의 추리로 구온지가문의 숨겨진 역사와 사건의 뒤에 감추어진 진실이 드러나게 됩니다….
작가 교코쿠 나츠히코의 작품은 이 책 말고는 단편집 “백귀야행”을 구해서 읽어보았는데 추리소설가로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괴담류의 공포소설적인 분위기가 더 강하더군요. 작가 이력을 보니 일본 요괴에 대해 권위자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이 소설도 “우부메”라는 일본 전통 요괴, 즉 아이를 낳다가 죽은 어머니의 집념이 형상화 된 요괴를 테마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거기에 20개월이나 임신을 하고 있다는 임산부나 밀실에서 사라진 의사, 그리고 구온지 가문 병원에서 발생한 계속된 신생아 실종 사건이 복합적으로 얽혀서 전통 요괴 이야기를 꽤 그럴싸하게 현대적인 감각의 추리 작품으로 재 가공하고 있습니다. 변격물과 유사하지만 그 감각을 따와서 보다 현대적인 작품으로 발전되었다고 할까요?
하지만 단점이라면 일단 너무 말이 많은 주인공 탐정 추젠지 아키히토라는 캐릭터는 그다지 맘에 와 닿지 않는군요. 그야말로 똑똑하고 잘난척 하는 탐정의 전형이라 왠지 거부감이 느껴집니다. 그의 추리의 바탕이 되는 논리를 설명하는 여러 부분은 읽기에도 조금 짜증이 나더라고요. 그리고 해설자역의 실질적 화자 세키구치라는 캐릭터는 그야말로 추리소설의 해설자 역으로는 빵점에 가깝습니다. 본인 스스로 너무나 심약하고 마음의 병도 있어서 사물을 객관적으로 볼 수도 없고 사건에 간접적으로 관여되었던 과거 때문에 오락가락하는 혼돈상태를 계속 보여서 결과적으로 사건을 근본적으로 미궁에 빠뜨리는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추리소설에 보아왔던 것 중에 가장 터무니없는 밀실 트릭 때문에 추리소설로의 가치가 많이 떨어집니다. 이 트릭 만큼은 작가의 논리 –추젠지의 말을 빌린-를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부분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수긍하기 힘들더군요.
그래도 일본 정통 변격물이라 할 수 있는 에도가와 란포에 비해 보다 현대적인 문체와 세련된 감성으로 포장된 기본 줄거리, 즉 구온지가문의 어두운 숨겨진 역사와 그것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끔찍한 결말을 일본 전통 요괴와 엮어서 끔찍한 결말로 치닫는 이야기는 정말 높이 사 줄만합니다. 트릭이 너무 약해서 추리소설이라기 보다는 좀 다른 작품, 어떻게 보면 스릴러물에 가까운 이야기라 생각되지만 이야기의 흡입력은 상당하다 생각됩니다. 제가 아는 추리 매니아이신 decca님은 집어들고 하루만에 다 읽으셨다고 하더군요.
다만 초반의 추젠지의 장황한 이야기나 등장이 별 의미 없었던 괴인 탐정 에노키즈라는 캐릭터는 어떻게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을… 그래도 후속작을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