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랍인형
피터 러브제이 지음 / 뉴라이프스타일 / 1993년 5월
평점 :
품절


마지막 형사"와 "가짜경감 듀"로 이미 접해본 영국작가 피터 러브시의 작품입니다. 원래 작가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도 있지만 이 작품에 대한 다른 여러분들의 평을 인터넷 상에서 익히 접해왔기 때문에 헌책방에서 눈에 띄었을때 주저없이 구입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하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먼저 고전 황금 시대인 19세기 후반의 영국을 무대로 한 것이 눈에 띕니다. 이 작가 작품의 시대는 3편의 장편 모두 시대가 다른데 전부 손에 잡힐 듯한 당시 시대 묘사를 하는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됩니다. 현대가 무대인 "마지막 형사"야 그렇다 치더라고 20세기 초엽의 "가짜경감 듀"나 이 작품 모두 창문 밖 거리를 보고 쓴 듯한 현실감 넘치는 묘사가 압권이네요. 특히나 이 19세기 후반의 영국이라는 무대는 "적당히 수사와 재판 등의 조직이 살아 있으면서도 무언가 2% 부족한 듯한" 고전 추리소설적인 상황에 가장 잘 어울리는 시대가 아닐까 싶습니다. 작가가 그것을 의도하고 쓴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그리고 탐정역의 크리브 형사 부장은 시리즈 캐릭터라고 하는데 다른 작품은 접해보지 않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상사에게 치여살며 만년 형사부장에 머물러 있는 궁상맞은 모습도 마음에 들지만 나름 자존심도 있고 행동력, 추리력이 탁월한 능력있는 캐릭터의 모습도 잘 보여주고 있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홈즈를 의식하진 않았겠지만 익히 알려져 있듯 무능한 인물만 있었던 것이 아닌 당시 경찰에도 능력있는 인물이 있었다는 설정은 (출세는 못하지만) 재미있는 아이디어라고 보여지네요. 뭐 레스트레이드도 우직하고 성실하다는 점에서는 능력있는 인물이지만...

하지만 이 크리브 형사 부장보다 이 작품을 빛내는 인물은 역시 미리엄이라는 영국 스타일의 "팜므파탈"이 아닐까 싶네요. 사형선고를 받았음에도 절대 무너지지 않은 굳은 마음과 치밀함을 가지고 시종일관 이야기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비록 마지막 장면에서 결정적 실수를 범하며 무너지긴 하지만 주로 "몸"으로 승부하는 경향이 짙은 미국식 팜므파탈에 비교한다면 상류계급의 귀부인이라는 사고방식과 엄숙하고도 단정하면서도 곧은 행동거지로 무장하고 약점과 눈물을 보이지 않으면서도 치밀하고 독사같은 면모를 갖춘 독특한 악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그림과도 같다는 아름다움까지 갖추고 있죠.

이 인물들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는 스토리텔러로서의 피터 러브시의 진가를 보여주는 "물건"입니다. 크리브 형사부장이 서서히 사건을 파헤치며 드러나는 과거의 또 다른 자살 사건, 과거의 사건과의 이해할 수 없는 연관성에서 비롯된 추론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두 사람의 승부! 결국 마지막에 "일사부재리 원칙"이라는 결정적 법 조항을 바탕으로 밝혀지는 진범의 정체와 전체 사건의 반전은 이 소설의 백미라 할 수 있습니다. 뒤로 갈 수록 독자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면서 나중에 뒤통수를 치는 반전을 준비하는 그 솜씨가 정말 탁월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거기에 제목 그대로 사형집행인과 타소 밀랍인형관의 이야기를 교차시켜서 보다 긴장감을 자아내며 당시 시대상을 느끼게 해 주는 연출 역시 발군이고요.

하지만 정통파에 가까운 추리소설 답게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 가장 큰 의문 "도대체 그 여자는 어떻게 자물쇠를 열 수 있었을까?"에 대한 답을 마지막 승부에서 크리브 형사부장이 이끌어내는 부분에서 약간 치밀함이 부족하여 (물론 이 사건에서는 증거를 제시할 필요는 없다는 나름대로의 전제조건이 있어서 좀 쉽게 넘어가는 경향이 있기는 합니다) 너무 해답 자체가 급작스럽게 돌출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은 남습니다.

그래도 중편정도의 부담없는 길이에 상당한 수준의 트릭과 지적 흥분, 재미를 가져다 주는 책입니다. "마지막 형사"와 "가짜경감 듀"는 물론 엄청나게 재미있게 읽은 책이지만 좀 길었다고 느껴졌었는데 이 책은 깔끔하네요. 아무래도 이 정도 길이가 저한테는 딱 맞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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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츠로 2005-02-22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는데 혹시 [마담타소가 기다리다 지쳐]와 같은 작품인가요?

maettugi 2005-04-29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