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
야마구치 마사야 지음, 김선영 옮김 / 시공사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미국에서 죽은 시체들이 살아 움직이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다. 이러한 기이한 시기에 미국 북동부 뉴잉글랜드에 위치한 시골마을 툼스빌에 위치한 스마일 공동묘지를 경영하는 발리콘 일가는 일족의 우두머리 스마일리 발리콘의 죽음을 앞두고 있는데 스마일리의 손자 그린이 우연찮게 할아버지의 독초콜릿을 먹고 사망한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소생한 뒤 스스로의 몸을 방부처리하고 자신의 죽음을 숨긴 채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린의 백부 존 등 발리콘 가 사람들이 연이어 살해되는데…

일본 신본격물 중에서도 손꼽히는 아주아주 유명한 작품이죠. 국내에 소개된 것은 좀 늦은감이 있는데 저도 관심이 컸던 작품이기에 곧바로 구입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읽고나니 확실히 평이 갈릴것이 분명한 작품이라 생각되는군요. 누구나 입을 모아 칭찬할만한 희대의 걸작인가? 에 대한 의문부호도 조금이나마 생기고요. 제가 나이가 너무 많이 들은 탓일까요?

일단 먼저 장점부터 꼽아본다면 무엇보다도 그동안 추리계에 없었던 희대의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완벽한 수준의 본격물을 창조해 낸 아이디어를 제일 먼저 꼽아야겠죠. 정말이지 콜롬버스의 달걀같은 발상으로 저만해도 번역 출간 이전에 이 작품에 대한 소갯글을 통해 이미 기본 설정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가장 중요한 트릭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간단하지만 대담하고 효과적인 아이디어로 구태여 예를 들자면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급의 발상이었어요.
또 여러 사건들이 각각 복잡하게 관련되어 있지만 모든 사건들이 해결부분에서 완벽하게 정리된다는 점, 마지막 해결편을 앞두고 미리 전편에 걸쳐 독자들에게 공정하게 정보를 제공해 주는 점 등 본격물로의 치밀함과 더불어 퍼즐을 풀어나가는 맛도 잘 살린 다른 어떤 본격 추리물에도 뒤지지 않는, 추리적인 완성도가 뛰어난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단점도 확실해서, 대단한 발상이기는해도 결국 현실에 기반하고 있지않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정통 본격물이 아니라 판타지 추리물같기도 합니다. 보수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정통 본격물이라 부르기 어려워보이기까지 하니까요. 어떻게 보면 반칙이라 생각될 수도 있지 않을까 보여지거든요.
그리고 작품의 완성도와는 별도로 좌충우돌하는 희극적인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깔려있는게 영 마음에 들지않았습니다. 생명의 본질에 대한 종교적이면서도 현학적인 이야기가 많은 것도 읽기에 좀 부담되는데, 작품의 분위기는 외려 너무 코믹하니 당황스럽기까지 했어요. 데니스 루헤인 같은 작가가 써냈다면 올타임 베스트에 충분히 선정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의 아이디어임에도 이러한 분위기가 발목을 좀 잡는 느낌입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내용은 진지하더라도 이상하게 "웃음"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는 듯한, 과장된 묘사와 설정들이 난무하는 일본드라마 같은 분위기였달까요. 이러한 분위기는 번역 출간이 늦어진 것에도 어느정도는 관련이 있어 보이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코믹한 요소를 좀 더 걷어내고 불필요한 부가 설명이나 묘사도 빼서 기나긴 길이를 줄이는게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도 됩니다

그래도 좀비 추리물이라는 신경지를 개척했다는 발상 하나만으로도 평균이상의 재미를 주기 때문에 별점 3점은 충분한 작품이죠. 제 취향은 아니었지만 취향만 맞는다면 어떤 독자에게든 새로운 신본격 걸작으로 충분히 값어치는 할 것 같아요. 덧붙이자면, 영화가 더 어울리는 작품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이도지 케이의 사건 수첩 미도리의 책장 5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 / 시작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좋아하는 작가 와카타케 나나미의 단편집. 별다른 정보없이 충동구매한 책이었는데 다행히도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일단 책 자체의 구성이 신선한데요. "다이도지 케이 최후의 사건" 이라는 중편 이야기가 총 6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펼쳐지며, 이 중편의 각 장이 끝나면 곧바로 다이도지 케이가 경찰관을 은퇴한 뒤 벌어지는 단편 에피소드들이 이어져서 전개되고, 이 단편 에피소드들이 중편 "최후의 사건"에 등장했던 다이도지 케이의 과거사와 연관된 것들이라는 점에서 중단편집이지만 일종의 유기적인 연결고리를 자연스럽게 가지게끔 만든 아이디어가 아주 돋보이거든요. 단편집이지만 전체적으로 하나의 맥락을 갖추게끔 하는데에 탁월한 실력을 지닌 작가이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죠.

아울러 전직 경찰관이지만 지금은 작가(?)로 입에 풀칠하며 살아가는 다이도지 케이라는 주인공은 물론 각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기상천외한 범죄자들 역시 매력적일 뿐 아니라 이상하게 사건에 엮이게 되는 다이도지 케이의 상황들도 코믹하면서도 관련된 사건들 전부가 상상을 뛰어넘을만큼 황당하지만 묘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독특한 설정과 분위기, 그리고 일상물로 여겨질만큼 평범하지만 희한하게 느껴지는 재미난 캐릭터 들은 작가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겠죠.

또한 그동안은 작가의 단점이라 할 수 있었던 요소들, 즉 본격으로 치기에는 좀 구성의 짜임새가 없고 (이건 제가 단편집만 읽은 탓이 크겠죠) 좀 즉흥적으로 보이는 장난같은 것이 이 단편집에서는 외려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도 재미를 더해줍니다. 약간은 억지스러운 트릭들이긴 하지만 작품 자체의 분위기가 일상계면서도 황당한 상황들이라는 점 때문에 이러한 트릭들이 오히려 더욱 더 이야기들을 유머러스하게 만드는 양념 역할을 해 주거든요. 작가의 팬으로서 전작들과 어느정도 연결되는 세계관도 즐길거리였고 말이죠.

결론적으로 근간 읽은 추리소설들 중에서는 가장 유쾌하고 재미있는 작품이었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와카타케 나나미 작품 중에서도 손에 꼽을만한 작품이라 생각되네요. "코지 하드보일드" 라는 조금은 기괴한 장르명으로 소개되고 있기도 한데, 일상계의 탈을 어느정도는 뒤집어 쓰고 있다는 점에서는 코지라고 불러도 무방할테고 다이도지 케이라는 캐릭터가 하드보일드 탐정의 성격을 갖추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뭐 그다지 과장된 소개는 아닌 것 같기에 코지계열의 팬이거나 가벼운 유머 미스터리를 좋아하시는 모든 분들께 추천합니다. 와카타케 나나미의 팬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겠죠.^^

1. 다이도지 케이 최후의 사건 :
경찰관 다이도지 케이는 상사 고이즈미 무사시와 함께 30대 초반 여성 살해사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다. 피해자 후지노 유키는 자유기고가로 그녀 신변을 조사하다가 다이도지는 그녀에게 일을 의뢰했던 적이 있는 출판사 직원인 소꿉친구 히코사카 나쓰미를 찾아가게 된다....
총 6개 장으로 나뉘어져 있는 중편입니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다이도지 케이의 과거사, 즉 아내의 비참한 뺑소니 사고와 범인을 일부러 놓아준 경찰서 내부 G반 인간들, 그리고 다이도지를 작가의 길로 끌어들이는 히코사카 나쓰미나 원숭이 조지와 같은 곁다리 등장인물이 다른 단편 에피소드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 작품집의 밑그림과도 같은 작품이죠. 그러나 아무래도 단편 에피소드들을 위해서인것 같은 무리한 이야기 전개도 약간 거슬리고 내용도 설명적으로 전개되는 편이라 크게 두드러지는 작품은 아닙니다. 트릭 역시 중요한 단서가 말장난에 가까운 등 공감하기 어려웠고요.
하지만 이야기 자체는 충분히 합리적이고 이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 책의 뼈대라는 점에서 평작 수준이라 할 수 있겠네요.

2. 죽어도 안 고쳐져
작가가 된 다이도지 케이는 경찰시절 겪었던 얼간이 범죄자들을 다룬 "죽어도 안 고쳐져"라는 책을 발표하고 강연회를 가진다. 그리고 차를 타고 이동하려는데 자칭 트레이시라는 범죄자가 다이도지를 협박하며 자신이 뒤집어쓴 누명을 벗겨줄 것을 강요하게 된다.
아주 유쾌하면서도 기발한 소동극입니다. 범죄의 천재로 자부하는 스킨헤드 범죄자 트레이시 로즈라는 캐릭터의 등장부터 유쾌하지만 트레이시가 누명을 뒤집어쓰게 된 밀실 살인사건도 추리적으로 완벽해서 흠잡을데가 없더군요! 게다가 다이도지가 전세를 역전시키는 마지막 장면은 하드보일드 분위기가 물씬 풍기기도 해서 정말 재미있게 읽은 단편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베스트 에피소드를 꼽으라면 이 이야기를 꼽고 싶습니다.
* 덧붙이자면, 책 뒤의 해설에서 트레이시 로즈는 포르노 출신 배우라고 하는데 저는 80년대 헤비메탈 밴드에서 따온 이름인줄 알았습니다. 메탈 쪽이 더 이미지가 비슷한 것 같은데 말이죠...

3. 원숭이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
"죽어도 안 고쳐져"에서 자신을 우습게 다루었기 때문에 딸이 가출했다고 우기는 소매치기 원숭이 조지때문에 딸을 찾아줄 것을 약속한 다이도지 케이. 그러나 그 후 찾아온 경찰에 의해 원숭이 조지가 살해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조금은 미묘한 작품입니다.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들처럼 유머러스한 전개로 재미있게 읽히기는 하지만 범죄가 우발적이고 트릭도 별것 없으며 무엇보다도 증거가 빈약하다는 단점이 크게 느껴지거든요. 추리적으로는 바닥이지만 그래도 다이도지 케이라는 캐릭터가 이 작품에서의 활약이 발군이기에 그런대로 평작 정도는 된다 보여집니다.

4. 죽여도 안 죽어
다이도지 케이에게 한 추리소설가가 자신의 작품을 검토해 줄 것을 요청하며 편지를 보내온다. 경찰관 시절 경험을 살려 조언을 해주다보니 어느새 작품의 살인계획이 현실이 아닌가 의심하게 되는데....
편지로 긴장감을 높여주는 전개가 독특한 작품으로 깔끔한 이야기 구성에 반전도 확실한 편이라 즐길거리가 많은 에피소드입니다. 추리적으로 "증거"라는 것이 빈약하고 동기가 불분명하다는 단점이 크긴 한데 워낙에 아이디어가 돋보여서 단점도 묻혀가는 느낌이랄까요. 확실히 단편은 아이디어가 더 중요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네요.

5. 추락과 붕괴
논픽션 작가 이소베 다카히토의 유고를 이어쓸 것을 본의아니게 떠맡은 다이도지 케이는 고카 악이라는 화산지대에 위치한 이소베의 별장을 찾아가는데...
사건은 별게 없고 트릭도 무지하게 간단하지만 이소베라는 작가와 연관된 인물들의 악의가 거침없이 드러나는 것이 재미있었던 에피소드입니다. 이러한 평범한 악의의 극대화는 작가의 특기이기도 하죠. 전개도 합리적이라 무난한 수준의 평작이라 생각됩니다.

6. 도둑의 엉뚱한 원한
하자키 문화센터에 강연차 방문한 다이도지 케이는 2인조 강도에게 납치되어 그들이 처한 곤경을 해결하고 사건의 복수를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문의받게 되는데...
앞선 이야기들과 동일한 구성, 즉 다이도지 케이가 희한하게 사건에 엮이게 된다는 전개이지만 2인조 강도단이 이야기한 사건의 내용만 듣고 진상을 밝혀내는 전형적인 "안락의자 탐정물" 이라는 점에서 다른 이야기들과 약간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입니다. 사건도 앞선 에피소드들에 비한다면 일상계에 가까운 내용이라 가볍게 읽기에 편했고 단서와 복선들도 공평해서 합리적으로 전개되기에 추리적으로 만족스러운 평균 이상의 괜찮은 이야기라 평하고 싶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리라장 사건
아유카와 데쓰야 지음, 김선영 옮김 / 시공사 / 201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리라장이라 불리우는 건물에 일곱명의 학생이 피서차 방문한다. 친구들이기는 하나 각자의 사연으로 갈등이 있는 상황. 그런 그들을 대상으로 한 무서운 연쇄살인극이 시작된다.

아유카와 데쓰야의 1958년도 발표 작품으로 이런저런 리스트 -'필독본격추리30선' 이라던가, '동서 미스터리 베스트 100'이라던가 - 에서 자주 언급되는 고전 본격물이죠. 판타스틱에서 주최한 이벤트 덕분에 읽게 되었습니다. 리뷰에 앞서 관계자 분들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일단 설정부터가 상당히 고전적입니다. 특정 장소에서 특정 인물들에게 닥친 연쇄살인이라는 기본 설정, 그리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전형적인 일본 고전 본격물을 연상케하거든요. 그래도 나름 66년도라는 발표 시기 때문인지 기존 고전 본격물과의 차이점도 몇가지 눈에 뜨이더군요. 대표적인 것이 '리라장'이라는 장소의 존재입니다. 이렇게 특정 장소에서 발생하는 연쇄살인의 경우 보통 외부와 연락이 두절된 '클로즈드 써클' 형태로 전개되는 것에 반해 의외로 경찰이 수시로 오가고 심지어 같이 거주하는 등의 파격을 보여주는 것이 특이했습니다. 그리고 경찰의 수사과정이 탐정보다 훨씬 비중이 높다는 점, 탐정역을 두명 (니조와 호시카게 류조) 등장시키고 탐정의 캐릭터 매력을 없앤듯한 묘사 역시 다른 본격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점이라 생각되네요.
즉 고전 본격물에서 트릭의 알맹이만 남겨두고 작위성을 뺀, 고전 본격물에서 근대 사회파류로 넘어가는 중간 시기의 과도기적인 모습을 보이는 작품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이 작품의 경우 고전 본격물 쪽에 더 치우쳐져 있고 이후 60년대의 다카키 아키미쓰 작품들 - <야망의 덫> - 등을 거쳐 사회파쪽으로 점차 이동하는 식으로 말이죠.

그러나 이러한 과도기적인 모습에서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입니다. 아무래도 '리라장'이라는 장소와 스페이드 카드라는 연출의 작위성을 완전히 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했던 것 같아요. 범인이 구태여 용의자가 축소되고 특정될 수 밖에 없는 외딴 별장의 휴가여행을 무대로 하는 것 보다는 도쿄에서 사고 등을 위장한 범행을 저지르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라는 기본적인 의문을 해소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탐정의 매력이 희박하다는 것도 고전 본격물의 매력에서 중요한 요소가 빠진 느낌이 들었기에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려웠어요. 차라리 더 고전적이었다면 좋았을 것 같았습니다.

또 작품의 기본이 되는 알리바이 트릭은 명성에 걸맞게 훌륭한 편이나 살로메 - 유키타케 살인사건 이후에는 그렇게 잘 짜여져 있다는 느낌을 받기는 어려웠어요. 범인의 행동이 운에 의지한 측면도 많았고요.
예를 들면 하나씨의 증언을 경찰들이 초반에 무시했다는 것, 하나씨의 증언을 남편이 듣지 못했다는 것, 니조가 조사를 핑계로 입을 다물어서 사건이 뒤이어 일어나게 되는 것, 무엇보다도 사람도 많이 모여있을 뿐더러 겐모치 경감과 유키 형사가 리라장에 같이 머무는 동안에도 살인사건이 벌어진다는 것은 솔직히 말도 안돼는 것 같아요.
덧붙여 마지막 사건의 경우 범인이 단지 아비코를 위해서라는 이유였다면 구태여 범행을 저지르지 않아도 경찰에 이야기하면 충분히 사건이 해결되었을텐데 왜 불가능범죄를 또 저지른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명성과 기대에는 미치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명성이 워낙 높은 작품이고 그에 걸맞게 기대가 너무 컸던 탓도 있습니다. 기본이 되는 트릭은 상당한 수준이기도 하고요. 초반의 살로메 - 유키타케 사건 이후에 너무 이야기를 벌리지 말고 적당한 선에서, 예를 들면 니조의 등장 부분 정도에서 마무래 해 주었더라면 정말로 괜찮은 작품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후의 이야기는 별다른 트릭도 없는 사족일 뿐더러 무리수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거든요. 때문에 별점은 3점입니다. 일본 고전 본격물을 좋아하신다면 즐겁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네요. 하지만 작품의 설득력과 합리성을 전제로 분석적인 독서를 즐기신다면 약간 실망하실 수도 있으니 참고하세요.

덧붙이자면, 최근 읽은 책 중에서 책의 완성도 측면에서는 가장 좋았습니다. 판형도 마음에 들고 표지 디자인도 좋았지만 앞부분의 섬세한 등장인물 소개라던가 중간중간의 약도, 뒷부분의 해설 등 세세한 부분도 꼼꼼하게 신경쓴 것이 좋았어요. 옛날 추리문고 스타일이기도 한데 앞으로도 이런 책이 많이 나와주었으면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샤르부크 부인의 초상 샘터 외국소설선 4
제프리 포드 지음, 박슬라 옮김 / 샘터사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이 작품은 저명한 초상화가 피암보가 샤르부크 부인이라는 부유한 여성의 초상화를 그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녀가 피암보에게 한 의뢰의 핵심은 '자신을 보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만 듣고' 자기를 그려달라는 어떻게 보면 불가능한 의뢰. 그러나 거액의 보수와 더불어 예술적인 활력을 새로이 얻고자 했던 피암보는 승락하죠.

그리고 피암보는 그녀를 방문해서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의 이미지를 구체화하기 시작합니다. '결정학자'라 불리우는 예언자의 딸로 어렸을 때 쌍둥이 눈의 결정을 소유하게 된 뒤 예언능력을 보유하게 되고, 신통한 '무녀'로 알려져 큰 돈을 벌게되었지만 샤르부크라는 남자를 만나 결혼한 이후 그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는 이야기... 이러한 이야기와 함께 실제로 피암보 주위에는 창작을 방해하는 괴인물이 등장하고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죽어가는 연쇄살인극이 동시에 벌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줄거리만 대충 보아도 알 수 있지만 일종의 판타지, 환상소설입니다. 그러나 샤르부크 부인의 정체를 더듬어 가는 과정과 정체불명의 샤르부크씨, 그리고 사람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죽어가게 만드는 괴사건의 진상 등 추리적인 요소도 어느정도 갖추고 있습니다. 게다가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감수성 넘치는 샤르부크 부인의 이야기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가 연상되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여성의 동화와 같은 이야기가 작품의 주 내용이라는 점에서 근대의 아라비안나이트같은 느낌도 드는 복잡하고도 미묘한 작품이죠.

그런데 글을 정말이지 너무 잘써서 깜짝 놀랐습니다. 시적인 표현을 과하게 사용하지만 전혀 부담스럽지 않게 전개하는 솜씨가 대단하더군요. 또 작중의 환상적인 이야기가 실재 현실과 겹쳐지게 만드는 팩션적인 구성 - 예를 들어 실존 화가 앨버트 라이더와 그의 그림 <경마장>, 존 워터하우스의 <사이렌> 을 작품에 등장시키는 등 - 도 돋보이고 무엇보다도 내용 자체가 재미있어서 한번에 읽게 만드는 흡입력이 강하기도 했고요. 발상자체가 재미있잖아요? 얼굴을 보지 않고 초상화를 그리게 만드는 수수께끼의 여인!

샤르부크 부인의 캐릭터 역시 인상적입니다. 독특한 설정에서 오는 힘도 크지만 창조력을 갉아먹는 팜므파탈의 이미지는 다른 작품에서 보기 힘든 부분이거든요. 그만큼 야릇한 성적 느낌과 남자를 잡아먹는 요부로서의 존재감이 탁월합니다. 작중 '메두사'로 비유되는 것이 외려 이미지를 제한한다고 여겨질 정도로 말이죠.

그리고 종교적인 의미를 많이 담고 있는 것도 작품의 분위기를 고급스럽게 끌어올리면서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어 줍니다. 피암보는 보이지 않는 존재를 구체화하기 위해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통해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과정으로 일종의 종교행위를 표방하고 있거든요. 그 외에도 일찌기 신에게 도전했다가 타락한 - 초상화를 실패한 - 타락천사 셴즈라는 인물이라던가 피암보가 겪는 '의미가 있는 우연의 일치' 도 의미가 있는 것으로 그려지는 등 관련된 상징들이 작품안에 가득합니다. 마지막에 피암보가 초상화를 완성하는 곳이 교회라는 것은 이러한 상징의 화룡점정이고요.

그러나 피눈물을 흘리며 사람을 주게 만드는 고대 카르타고의 독약과 샤르부크씨의 존재라던가, 허무하면서도 너무 쉽게 간듯한 결말은 조금 아쉽긴 합니다. 특히 마지막에 밝혀지는 샤르부크씨의 정체에 대한 반전과 결국 피암보가 신을 그려내는데 성공했다는 기적같은 결말은 환상과 현실을 잘 조화시키던 작품의 분위기를 단번에 허상으로 몰고가서 맥이 빠질 정도였어요. 차라리 샤르부크씨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피암보의 그림도 환상으로 남았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그래도 정말 잘 쓴, 재미있는 작품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겠죠. 별점은 3.5점입니다. 독특한 장르문학에 빠져들고 싶은 분들께, 고급스러운 환상문학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왕벌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1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작품은 3년여전, TV 시리즈로 먼저 보았던 작품입니다. 사실 TV 시리즈로 보았을때에는 주인공 쿠리야마 치아키외에는 건질게 하나도 없는 지루하고 재미없는 작품이었기에 별로 기대하지 않고 읽기 시작했죠.
그런데 읽다보니 왠걸, 이거 꽤 물건이더군요. TV 시리즈로 본 <팔묘촌> 역시 소설쪽이 훨씬 좋았었지만 이 작품은 그 정도가 훨씬 심했던 것 같아요. 그만큼 소설이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물론 TV 시리즈에서 실망했던 부분인 사건과 트릭은 책에서도 역시 다른 긴다이치 시리즈에 비하면 살짝 처지기는 합니다. 첫번째 사건인 유사 사건의 알리바이 트릭과 히메노 도사쿠 사건의 진상같은 부분은 경찰 수사의 혼선이었을 뿐 트릭이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한 수준이었고 사건의 핵심인 19년 전의 월금도 사건은 앞서 TV시리즈 리뷰에서도 지적했듯이 '정신착란'으로 넘어가는 트릭이기에 공정하다고 볼 수는 없거든요. 아울러 용의자가 너무나 적은 것도 문제죠. 마지막 장면에는 정말 범인밖에는 남지 않아 버리니까 말이죠.

그래도 수수께끼 풀이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색다른 요소가 많아 즐거웠던 작품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일단 요코미조 세이시 작품 통틀어 최고의 미인이라고 할 수 있는 도모코라는 캐릭터가 대표적이죠. 전형적인 남자 잡아먹는 악녀 캐릭터가 아니라 본인 자체는 순수하고 악의도 없는데 주변 남자들이 화를 입는다는 설정도 독특하지만 그 설정을 뒷받침 해 주는 묘사도 뛰어나거든요. 보통 이런 작품에서는 ‘사실은 악녀였다!’ 라는 식으로 뒷통수를 치기 마련인데 (ex : <밀랍인형>) 끝까지 이 설정을 유지하면서 긴장감있게 끌고가는 것도 신선했고요.
또한 도모코와 다몬 렌타로와의 행복한 결말을 암시하는 해피엔딩 역시 긴다이치 시리즈에서는 보기 힘든 부분인데 도모코에 감정이입한 독자들을 나름 납득시키는 결말이었어요. 솔직히 그리스 조각같은 외모에다가 로열 패밀리인 다몬 렌타로라는 캐릭터는 작위성이 지나쳐서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요...

아울러 작품의 수준을 떠나서 긴다이치 시리즈 거의 대부분이 지닌 매력, 즉 지루할 틈 없이 계속해서 사건이 벌어져서 작품에 몰입하게 만드는 매력이 잘 살아있습니다. 살인사건이 19년 전의 사건을 비롯해서 마지막 추리쇼 직전까지 무려 5건이나 벌이지기도 하지만 살인사건 중간중간에도 수수께끼의 협박문. 괴노인의 등장, 긴다이치 코스케 피습 사건 등 사건이 끊이지 않기에 계속해서 몰입할 수 밖에 없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앞서 말했듯 추리적으로 그다지 뛰어난 점은 없지만 TV시리즈에서도 괜찮게 생각했던 ’박쥐’ 트릭은 역시나 그럴듯했고 추리소설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동기도 합리적이라서 구성적으로는 잘 짜여져 있기도 합니다. 19년 전 사건의 동기야 두말할 필요 없이 확실하고 현 시점에서의 사건 역시 발단은 19년 전 사건과 얽혀있는 등 인과관계가 확실하거든요. 때문에 추리소설로도 충분히 납득할만한 결과물이라 생각됩니다.

기본적인 이야기가 탄탄하고 재미있어서 다른 대표작 수준의 트릭만 하나쯤 더 등장해서 작품을 뒷받침 해 주었더라면 더욱 좋았을텐데 조금은 아쉽네요. 하지만 트릭에 매몰되어 합리적인 이야기 전개나 인간관계가 등장하지 않는 다른 평작들보다는 읽기에 편하고 쉽게 책장을 넘기게 만들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