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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라장 사건
아유카와 데쓰야 지음, 김선영 옮김 / 시공사 / 2010년 10월
평점 :
리라장이라 불리우는 건물에 일곱명의 학생이 피서차 방문한다. 친구들이기는 하나 각자의 사연으로 갈등이 있는 상황. 그런 그들을 대상으로 한 무서운 연쇄살인극이 시작된다.
아유카와 데쓰야의 1958년도 발표 작품으로 이런저런 리스트 -'필독본격추리30선' 이라던가, '동서 미스터리 베스트 100'이라던가 - 에서 자주 언급되는 고전 본격물이죠. 판타스틱에서 주최한 이벤트 덕분에 읽게 되었습니다. 리뷰에 앞서 관계자 분들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일단 설정부터가 상당히 고전적입니다. 특정 장소에서 특정 인물들에게 닥친 연쇄살인이라는 기본 설정, 그리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전형적인 일본 고전 본격물을 연상케하거든요. 그래도 나름 66년도라는 발표 시기 때문인지 기존 고전 본격물과의 차이점도 몇가지 눈에 뜨이더군요. 대표적인 것이 '리라장'이라는 장소의 존재입니다. 이렇게 특정 장소에서 발생하는 연쇄살인의 경우 보통 외부와 연락이 두절된 '클로즈드 써클' 형태로 전개되는 것에 반해 의외로 경찰이 수시로 오가고 심지어 같이 거주하는 등의 파격을 보여주는 것이 특이했습니다. 그리고 경찰의 수사과정이 탐정보다 훨씬 비중이 높다는 점, 탐정역을 두명 (니조와 호시카게 류조) 등장시키고 탐정의 캐릭터 매력을 없앤듯한 묘사 역시 다른 본격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점이라 생각되네요.
즉 고전 본격물에서 트릭의 알맹이만 남겨두고 작위성을 뺀, 고전 본격물에서 근대 사회파류로 넘어가는 중간 시기의 과도기적인 모습을 보이는 작품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이 작품의 경우 고전 본격물 쪽에 더 치우쳐져 있고 이후 60년대의 다카키 아키미쓰 작품들 - <야망의 덫> - 등을 거쳐 사회파쪽으로 점차 이동하는 식으로 말이죠.
그러나 이러한 과도기적인 모습에서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입니다. 아무래도 '리라장'이라는 장소와 스페이드 카드라는 연출의 작위성을 완전히 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했던 것 같아요. 범인이 구태여 용의자가 축소되고 특정될 수 밖에 없는 외딴 별장의 휴가여행을 무대로 하는 것 보다는 도쿄에서 사고 등을 위장한 범행을 저지르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라는 기본적인 의문을 해소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탐정의 매력이 희박하다는 것도 고전 본격물의 매력에서 중요한 요소가 빠진 느낌이 들었기에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려웠어요. 차라리 더 고전적이었다면 좋았을 것 같았습니다.
또 작품의 기본이 되는 알리바이 트릭은 명성에 걸맞게 훌륭한 편이나 살로메 - 유키타케 살인사건 이후에는 그렇게 잘 짜여져 있다는 느낌을 받기는 어려웠어요. 범인의 행동이 운에 의지한 측면도 많았고요.
예를 들면 하나씨의 증언을 경찰들이 초반에 무시했다는 것, 하나씨의 증언을 남편이 듣지 못했다는 것, 니조가 조사를 핑계로 입을 다물어서 사건이 뒤이어 일어나게 되는 것, 무엇보다도 사람도 많이 모여있을 뿐더러 겐모치 경감과 유키 형사가 리라장에 같이 머무는 동안에도 살인사건이 벌어진다는 것은 솔직히 말도 안돼는 것 같아요.
덧붙여 마지막 사건의 경우 범인이 단지 아비코를 위해서라는 이유였다면 구태여 범행을 저지르지 않아도 경찰에 이야기하면 충분히 사건이 해결되었을텐데 왜 불가능범죄를 또 저지른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명성과 기대에는 미치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명성이 워낙 높은 작품이고 그에 걸맞게 기대가 너무 컸던 탓도 있습니다. 기본이 되는 트릭은 상당한 수준이기도 하고요. 초반의 살로메 - 유키타케 사건 이후에 너무 이야기를 벌리지 말고 적당한 선에서, 예를 들면 니조의 등장 부분 정도에서 마무래 해 주었더라면 정말로 괜찮은 작품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후의 이야기는 별다른 트릭도 없는 사족일 뿐더러 무리수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거든요. 때문에 별점은 3점입니다. 일본 고전 본격물을 좋아하신다면 즐겁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네요. 하지만 작품의 설득력과 합리성을 전제로 분석적인 독서를 즐기신다면 약간 실망하실 수도 있으니 참고하세요.
덧붙이자면, 최근 읽은 책 중에서 책의 완성도 측면에서는 가장 좋았습니다. 판형도 마음에 들고 표지 디자인도 좋았지만 앞부분의 섬세한 등장인물 소개라던가 중간중간의 약도, 뒷부분의 해설 등 세세한 부분도 꼼꼼하게 신경쓴 것이 좋았어요. 옛날 추리문고 스타일이기도 한데 앞으로도 이런 책이 많이 나와주었으면 합니다.